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52)
EP.552 552화 – 나 홀로 학교에 (2)
552화 – 나 홀로 학교에 (2)
– 박승엽
처음으로 든 생각은 ‘호텔이 날 속였어!’였다.
“1, 1년은 쉬라고 했잖아….”
분명히 상인 입을 빌려서 1년은 쉬라고 했으면서, 별일 없을 것처럼 말했으면서!
심호흡하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이미 일이 터진 이상, 누굴 원망해봐야 소용 없을 테니까.
“위기 상황에선 미묘하게 침착하네.”
소피아의 담담한 목소리를 들으니 미묘하게 마음이 안정됐다.
친하든 친하지 않든, 괴현상에 휩쓸린 게 나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다.
“내가 자는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몰라.”
“… 뭐?”
“모른답니다.”
“아니, 말투를 지적한 게 아니라 왜 모르냐고 물은 거야.”
“나도 잤으니깐.”
“…”
이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어졌다.
영혼의 함 내부에서 잠을 잘 수도 있구나.
그나저나 나랑 소피아가 둘 다 조는 사이에 사고가 터진 게 우연이 맞나?
“설마 같이 자는 게 일종의 조건?”
“그럴 수도…. 주변을 살피죠.”
*
교실 상황을 살펴보니 다른 사람이 사라졌다는 사실 외에도 이상한 점이 적지 않았다.
“미묘하게 내가 아는 방배중학교랑 달라.”
“그렇네요.”
예컨대, 천장에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그 대신 반쯤 폐물처럼 보이는 낡은 선풍기가 몇 대 걸려있었는데, 굉장히 구식이었다.
“저것 봐! 끈을 당겨서 작동시키는 선풍기야.”
“…”
“저런 건 본 적도 없는데.”
“기계식 선풍기 중에서도 상당한 구형이네요.”
의심에 마침표를 찍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책상이나 의자, 교실 뒤편 사물함 등도 모두 낡은 목재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소피아, 이곳은 아무래도….”
“…”
“최소 수십 년 전의 방배중학교인 것 같아.”
*
— 덜컹!
“열리지 않네요.”
정문은 물론, 1층 교무실 근처에 있는 뒷문까지 포함해서 학교 밖으로 나가는 길이 전부 막혔다.
자물쇠로 잠겨 있다?
그렇게 보기엔 유리문에 몸을 부딪쳐도 일말의 요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포르투나, 당신 힘으로 열 수는 없나요?”
소피아는 현재 영혼의 함에 속박된 상태.
무리하게 파괴적인 마법을 사용하면, 잔여 시간이 빠르게 감소한다.
그래서 내게 부탁하는 것.
“이제 포르투나가 아니라니깐! 비켜봐.”
가볍게 심호흡하자 심장에서 뜨거운 열기가 샘솟으며 전신에 활력이 돌았다.
아크샤의 혼을 끌어내는 단계!
“훗!”
“뭐죠?”
“예전엔 힘을 끌어내는 첫 단계부터 성공률이 한 20%였어!”
“… 그걸 익혔다고 할 수 있나요? 그냥 견습이지.”
“그렇네.”
지금 생각하면 과거의 난 무공을 익혔다고 하기도 좀 그랬다.
소피아 말대로 그냥 견습 정도.
“하앗!”
벽력처럼 뻗은 손이 유리문과 충돌하는 순간.
— 우르릉!
굉장한 박력과 함께 유리문은 물론, 나와 소피아가 서 있는 장소까지 상당한 진동이 덮쳤다.
하지만, 유리문에는 금 하나 가지 않았다.
“… 뭐야?”
부자연스럽다.
자물쇠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정문은 그냥 불투명한 유리다.
반경 수 미터를 진동시킬 정도의 물리력을 버텨낼 재질이 아니라고!
“마법적인 결계라도 있나 보네요.”
순간, 눈동자가 시야 한구석을 향했다.
‘꿈’이 이루어준 내 두 번째 소망.
「각성」
단 한번.
나는, 하늘을 가르는 천하제일고수가 될 수 있다!
“쓰지 마세요.”
“… 갑자기 무슨 -”
“쓰지 말라면 쓰지 마. 일회성 힘 아니야? 하찮은 일에 낭비하지 말라는 말이야.”
“쓰, 쓸 생각도 없었어.”
“학교 내부나 더 살피죠.”
*
1층부터 3층까지 온 사방을 헤집고 돌아다녔다.
교무실부터 교실까지 전부 한 번씩 살펴보기도 했고 전파를 찾지 못하는 핸드폰을 조작하기도 했다.
이처럼 나와 소피아는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수십 년 전의 중학교에서 깨어났다’라는 영문 모를 괴현상에서 탈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3층을 넘어서 4층에 있는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 인근에 도착했다.
“… 냄새.”
“으윽! 엄청나게 독해!”
이게 무슨 냄새야?
사람의 몸이 만들어내는 분비물이 마구 뒤섞인 후 발효되었다?
여기서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게 무서울 정도였다.
“옥상에 뭔가 있나 보네요.”
긴장한 표정의 소피아.
나 역시 조심스레 탐색 과정에서 구한 나무막대를 움켜쥐었다.
별것 아니지만, 이 막대에 내 무공이 더해지면 고릴라라도 때려죽일 자신이 있다.
— 끼이익!
옥상으로 향하는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
— 바스락!
처음으로 발견한 것은 끝없는 쓰레기들.
과자 봉지와 빈 페트병, 쿠킹포일이 뒤섞인 쓰레기의 산.
옥상 전체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많아서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꽤 많은 페트병이나 비닐봉지에 ‘인간의 분비물’이 담겨있었는데, 더 이상 살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옥상 가운데에 있는 허접스러운 텐트 혹은 움막.
여기까지 확인하고 깨달은 사실.
“누가 저 텐트에서 살고 있나 봐.”
“아주…. 오랫동안 말이죠.”
옥상을 가득 메운 악취는 곧, 사람이 살아가며 쌓인 흔적이었다.
나무막대로 쓰레기를 툭툭 치며 길을 열었다.
“오~!”
“왜 그래?”
“구역질하면서 허우적거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태연하시네요?”
“…”
소피아 얘는 진짜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나는 천하제일 고수라고!
게다가, 저런 말 하는 소피아도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고전적인 금발 미녀인 것 치고 태연한 기색이다.
본질은 수백 년을 버텨온 마녀니까 당연한가?
“흐음. 머리는 나빠도 행동력은 괜찮은 건가.”
“습관적인 독설 좀 그만해….”
아리 누나도 이 정도는 아니라고!
막대로 텐트를 툭툭 쳤다.
“흐으으… 흐으으….”
안쪽에서 들려오는 허약한 신음.
“누군지 몰라도 건강 상태가 안 좋은가 봐.”
“이런 환경에서 건강하면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겠죠.”
별수 없이 허름한 텐트를 걷어내고 내부로 들어갔을 때, 나는 잠시 말문을 잃었다.
“…”
허름한 행색의 노인.
팔다리는 가냘프게 야위었고, 피부에 검은 반점이 가득하다.
게다가 눈 한쪽은 백내장에 의해 제구실을 못 하는 것 같았다.
가만두어도 오래 살긴 어려워 보였다.
“저기요?”
“흐으으….”
그나마 멀쩡한 한쪽 눈이 느릿하게 움직여 나를 본다.
약 5초의 적막.
뒤늦게 노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드…. 드디어!”
“…”
“와, 왔구나…! 나를, 이, 이 지옥에서 구하러 왔구나!”
“…”
뭐라고 해야 하지?
구하러 온 게 아니라 저도 잡혀 왔다고 하면 실망하지 않을까?
아니지, 실망 정도가 아니라 충격으로 죽을지도 몰라.
“이, 이럴 때가 아니지! 지금, 지금이 몇 시입니까?”
“시간이라면…. 슬슬 저녁 시간 -”
“들어오세요! 여기, 여기로!”
“…”
한 사람이 있기도 좁은 텐트다.
나야 이미 들어와 있지만, 소피아는 허름한 텐트 비슷한 움막의 출입구 쪽에 기대어 있었다.
“거, 거기 요원님! 무, 문을 닫으셔야 합니다!”
어색하게 웃는 소피아.
우리가 ‘요원’이 아닌 건 둘째치고, 노인에겐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악취가 났다.
노인에게 나는 악취의 극심함에 비하면, 옥상의 쓰레기더미는 꽃밭이라 불러도 될 정도.
덕분에 밀폐된 움막에 노인과 함께 머무르는 데에는 상당한 각오가 필요했다.
“해, 해가 지면! 해가 지면 위험합니다! 학교는 물론, 이 세계 전체가 -”
– 쉬이이이…!
기다렸다는 듯, 어디선가 들려오는 기묘한 숨소리.
소피아가 즉시 출입문을 닫고 들어왔다.
“이제 됐나요?”
“이, 이제부터는 조용히….”
“…”
침묵 속에서 생각했다.
기괴한 세계에서 최소 수년간 살아남은 듯한 노인.
식량, 물 등을 어떻게 구했는지도 궁금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노인이 살아남은 방식이다.
“흐음…. 장소는 옥상, 움막을 통해 몸의 직접 노출을 막은 건가요?”
“흐으으….”
노인은 잠깐의 대화로 이미 기력을 잃은 것 같다.
“저기…. 승엽 님.”
“어울리지도 않게 님은 무슨 님이야? 돌아가.”
악취를 견디기 힘들었는지, 소피아가 영혼의 함 속으로 돌아갔다.
당장 싸울 것 같진 않으니 큰 문제는 아니다.
“흐으으… 흐으으….”
단지, 악취 가득한 움막 속에 나와 죽어가는 노인만 남았다는 사실이 괴로울 뿐.
*
– 김아리
“아리양! 내, 내 말 이해했지! 승엽이가 -”
“알았어. 너는 집에서 대기해.”
— 탁!
벌써 세 번째 걸려 온 미로의 전화.
내용도 계속 똑같으니, 미로가 평정심을 잃은 모양이다.
하긴, 원래도 침착한 성격은 아니었지만.
“…”
승엽이와 소피아의 난데없는 실종.
학교에선 이미 난리가 난 상태고, 승엽이가 ‘꿈’으로 불러낸 부모님도 학교에 도착했단다.
교사는 물론, 승엽이의 부모님들조차 철없는 소년의 뜬금없는 가출이 아닌지 의심했다고 한다.
여러모로 주변에 믿음을 주지 못하는 녀석이다 싶어 웃음이 나왔다.
“풋! 아, 웃을 때가 아닌데.”
승엽이나 미로는 모르겠지만, 이들이 처음이 아니다.
처음은 가인과 은솔이었지.
다음은 승엽과 미로, 참, 미로는 아직 아닌가?
여하튼, 불과 1~2주 사이에 동료들이 연이어 혼돈 재해에 휩쓸렸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
현실이 원래 요 모양 요 꼴이니까?
그럴 리가!
혼돈 재해란 마치 교통사고와도 같다.
국가 단위로 보기엔 매일 최소 두 자릿수 이상 발생하고, 요원으로서 느끼기엔 온 세상이 혼돈 재해로 가득하다 느껴질 정도지만….
한국 국민 개개인으로선 평생 두세 번 겪을까 말까다.
“…”
우리를 공격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
모르겠다.
차라리 독약을 타고 총으로 쏜다면 모를까, 의도적으로 혼돈 재해에 휩쓸리게 할 수가 있나?
게다가, 그런 악의적인 개입이 있다면 호텔에서 ‘1년은 쉬세요’ 했을 리 없을 텐데….
“후우….”
동료들은 관리국 요원인 내가 온갖 걸 숨기려 한다고 불평하지만, 나도 이럴 땐 너무 힘들어.
뭐가 뭔지 너무 혼란스럽다고.
그 순간.
— 띠리링!
관리국 스마트폰에서 긴급 알림이 터졌다.
「탈출 개체, ‘행운의 소년(M – 3274)’이 제물과 접촉!」
“… 승엽아, 그새 뭔가 저질렀구나?”
너무나 그 아이다워서 놀랍지 않았다.
「‘창백한 숨결’ 격리 절차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유사시 행운의 소년을 처분하라는 -」
처분? 처분!
즉시 연락했다.
상대는 관리국 한국지부장, 박현민.
— 틱!
“김아리 요원, 긴급 알림 확인했나? 곧 타격대를 -”
“취소해.”
“뭐?”
“처분 명령 취소하고, 타격대 파견 명령도 취소해.”
“… 창백한 숨결 격리 절차에 문제가 생긴다면 -”
“내가 가서 처리할 테니 시키는 대로 해.”
“…”
불편함을 감추지 못하는 기색.
통화 상대, 박현민은 관리국 한국 지부장이므로 ‘명목상’ 그에게 명령할 권한이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당연히 요원인 내게도 그런 권한은 없다.
하지만, 나는 이 남자에 대해 잘 안다.
관리국의 많은 이들이 그렇듯, 박현민은 더 높은 직책에 올라 더 많은 권한과 비밀을 얻기를 꿈꾸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높은 사람 혹은 ‘곧 높아질 사람’에게는 꼼짝 못 하는 게 이 남자의 특징이지.
“그리하지. 하지만 김아리 요원, 예의를 지켜주게. 아무리 자네가 ‘The Silent’ 후보 명단에 포함되었다 해도 말이지!”
동료를 구출하기 위해 출발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