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54)
EP.554 554화 – 나 홀로 학교에 (4) Fin
554화 – 나 홀로 학교에 (4) Fin
– 김아리
“요원님, 춥지 않으십니까?”
“…”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창백한 숨결’에 관한 정보를 떠올렸다.
*
「‘창백한 숨결’
일련번호 : C – 2213
위험 등급 : C
추운 겨울밤 나타나는 허상과 같은 존재.
동사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 앞에 나타나 유혹한다.
고통스러운 죽음에서 벗어나게 해줄 테니 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바쳐라.
그리하면 너는 엄동설한을 이겨낼 수 있는 얼어붙은 마음을 얻으리라.
관리 절차 : 격리(Contain)
첫째, 감염된 숙주를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격리 구역에 가둔 채 관리한다.
둘째, — 」
*
기록에 따르면, 저 노인은 창백한 숨결에 ‘감염’된 후, 본인의 소중한 사람을 바쳐서 생명을 연장했다.
그랬기에 나는 저 숙주 혹은 제물을 동정하지 않는다.
— 슈우우…!
서서히 들려오기 시작한 얼어붙은 숨결.
끝없이 내려가는 온도.
분명 히터가 작동 중이고 계절도 초가을에 불과한데 창문에 성에가 끼기 시작했다.
승엽이도 추위를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했지.
‘삼매진화’로 격리 구역 내에 모닥불을 피우니 추위가 가셨다며 자랑스레 떠들었지만….
사실, 모닥불로 버틴 게 아니다.
본인이 그렇게 믿을 뿐이다.
“요원님, 어디로 가는 중입니까?”
“네 집으로 간다고 했잖아.”
“내 집이요? 아들 내외가 강릉에 살고 있긴 합니다만.”
“정확히는 살고 있었다고 해야지. 22년 전에 네 아들과 며느리는 죽었으니까.”
“…”
— 타닥!
창문이 얼어붙는 소리가 들려온다.
슬슬 견디기 힘들 지경이지만, 괜찮아.
거의 다 왔으니까.
— 끼익!
“도착했네.”
“여기는….”
낡은 아파트 앞에 멈췄다.
이름은 ‘무지개 아파트’라는데, 아무래도 좋다.
어차피 현실의 무지개 아파트에 격리하는 게 아니므로.
“이름, 김동호 맞지?”
“맞습니다.”
“김동호 씨, 앞으로 여기서 지내세요. 여기는 음, 현 정부에서 제공하는 노인 복지 주택인데 -”
대충 아무 소리나 지껄이며 노인과 함께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 철컹!
아파트 정문이 잠긴다.
“… 문이 잠겼네요.”
방배중학교의 ‘격리 구역’.
승엽이는 정문이 잠기는 등, 격리 구역에서 물리적으로 탈출할 수 없던 걸 관리국 탓으로 여기는 것 같다.
아니다.
관리국의 통제는 해당 ‘격리 공간’으로의 접근 자체를 막는 것이지, 내부 학교에서 벗어날 수 없던 건 관리국과 상관없다.
‘창백한 숨결’의 힘이다.
“그러게 말이지요.”
서늘하게 웃는 노인.
마치, 이젠 너도 얼어붙은 세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듯한 태도.
“…”
혼돈체를 격리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종종 호기심이 든다.
광기에 찬 괴물들과 진심 어린 대화를 해보고 싶은 마음.
이런 장소에 희생자를 가두면 즐겁나요?
우리가 널 격리하는 상황을 이해하고 있으신가요?
무슨 생각으로 아들과 며느리를 얼어 죽게 했나요?
마지막.
지금의 당신은 인간인가요?
아니면 ‘창백한 숨결’인가요?
“…”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므로 괴물과 소통하지 말라.
이는 관리국에 전해 내려오는 가장 오래된 격언 중 하나다.
그림을 펼쳤다.
— 펄럭!
“음? 요원님, 그 그림은 무엇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노인은 그 숨이 다할 때까지 얼어붙은 세상에서 창백한 숨결을 토해낼 것이다.
노인이 죽고 나면, 창백한 숨결은 해방되어 새로운 숙주를 찾아내겠지.
그리고, 우리는 창백한 숨결과 그 제물을 다시금 찾아내어 격리하리라.
세상은 이렇게 돌아간다.
*
— 철썩!
묵성 옆에서 깨어나는 순간, 물 한 컵이 날 덮쳤다.
“큭!”
“…”
“크크큭! 야, 비 맞은 생쥐 같은 네 꼴을 보니 – 으윽!”
묵성의 입을 다물게 하는 데는 펀치 한 방으로 충분했다.
어이없어서 노려보니 우습지도 않은 변명을 덧붙였다.
“야, 야. 내가 얼마나 심심했겠냐?”
“…”
“네가 꿈의 왕국으로 탈출할 셈이니, 내가 한숨 자긴 해야겠는데 언제 탈출할지 알아야 말이지!”
덕분에 묵성은 내가 꿈의 왕국을 쓸 때까지 무작정 벤치에서 졸아야 했다.
아마 수면제라도 먹든지 했겠지.
지루한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내가 옆에서 깨어나자마자 물을 뿌려?
아직도 마음은 중학생이야?
“참, 승엽이에게 전화 왔다.”
“잘 들어갔대?”
“그렇다더라. 그러면서 녀석이 자랑을 어찌나 하던지!”
“그래?”
“듣다가 느꼈는데…. 고 녀석, ‘창백한 숨결’의 가장 완벽한 대응법을 알아냈던데?”
“…”
일련번호 C – 2213, 창백한 숨결에 대한 가장 완벽한 대응법.
세상이 얼어붙고 몸이 굳어가는 추위 속에서도 ‘마음’은 얼어붙지 않는 것.
북극의 한파조차 견뎌내는 따스한 마음이야말로 해답이다.
가장 완벽한 답이지만, 정작 요원은 쓰기 힘든 답이기도 하다.
생각해봐.
저 노인이 제 목숨 살겠다고 아들과 며느리까지 혼돈체의 밥으로 던져준 걸 알면서 어떻게 따스한 마음을 유지하겠냐고!
“소피아와도 잠깐 이야기했는데, 승엽이 고 녀석이 평소보다도 특히 더 멍청해 보였다더라.”
“…”
“복잡하게 생각하고, 계산하면 따뜻한 마음이 녹아버릴 테니 행운이 녀석을 인도했을지도 모르지. 여하튼, 이 문제는 됐고….”
“다른 할 말이 있어?”
“차진철 고 녀석이 연락했다.”
“…”
“슬슬 시작하겠다는군.”
현실로 돌아오기 전, 관문 열차에서 동료들끼리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 중, 차진철이 언급한 기묘한 이야기.
*
“아리야.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나는 요원이 되고 싶다.”
“요원? 쉽지. 어차피 너희는 관리국이 신경 쓸 특급 인재니까, 내가 보고하면 -”
“그건 싫어.”
“뭐?”
“네가 나에 대해 보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게 무슨 -”
“해줄 수 있냐?”
*
누군가는 기기묘묘한 말장난이나 철저한 논리로 ‘내가 관리국에 보고하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설득하려 했겠지.
차진철은 그런 설득 대신, 간곡한 부탁으로 대신했다.
어처구니없는 데다가 감성적인 시도다.
“아리 네가 고 녀석 부탁을 들어줄 줄은 몰랐다.”
“…”
호텔과 관련해서 관리국을 속이는 건 쉽다.
애초에 관리국이 우리에 관해 아는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호텔 파티가 정확히 몇 명인지도 확신하지 못하는 게 관리국이다.
각자가 무슨 축복이 있고, 어떤 유산이 있는지까지 가면 아는 정보보다 모르는 정보가 더 많겠지.
나는 많은 정보를 숨겼다.
“괜찮은 거냐?”
“…”
“추궁당하진 않았고?”
“그다지. 오히려 승진한다는 소문이 파다해.”
“승진?”
대화 주제는 차진철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갔다.
“그나저나 진철이 녀석도 참! 요원 일이 뭐가 좋다는 것인지 원….”
“신비롭고, 명예롭게 보일 테고, 돈도 많이 주니 좋아할 만한 이유는 있지.”
“밖에서 보면 그렇게 느껴지려나?”
“그보다는 왜 이렇게 바보같이 구는지 모르겠네.”
“바보 같다?”
“그냥, 내가 그 녀석의 뜻을 관리국에 전하면 바로 요원 명패 달아줄걸?”
“그렇겠지.”
“근데 그건 싫다잖아?”
“흐음….”
잠시 고민하던 묵성이 나름의 가설을 제시했다.
“재벌 2세가 부모 도움 없이 자기 능력으로 성공하고픈 그런 심리 아닌가?”
“상황이 전혀 다르잖아?! 요원이 되기 위해 필요한 건 애초에 실력이 아니라고!”
“그러냐?”
묵성의 표정은 시큰둥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든, 자신과 큰 상관 없다는 분위기.
이해한다.
자리를 뜨기 직전, 마지막으로 ‘전 동료’를 보았다.
“잘 쉬어.”
“…”
“아들, 손자랑 행복한 시간 보내고.”
“무슨 작별 인사하듯 말하지 마라. 그냥 휴가라니까, 휴가!”
김묵성이 ‘꿈’으로 빈 소원은 아들 내외와 손자의 부활, 그리고….
퇴사.
이는, ‘이번 루프 동안’ 관리국이 묵성에 대한 정보를 잃었음을 뜻한다.
오랜 세월 세상을 위해 봉사한 노인에게 마침내 휴식이 찾아온 셈이다.
아직 다른 동료들에겐 알리지 않았다.
…
요원에게 ‘살아서 은퇴한다’라는 개념은 없다.
세상에 마지막 숨을 토하는 순간이야말로 유일한 탈출구이며, 예외는 없다.
언젠가 시곗바늘이 한 바퀴 돌아가면, 묵성의 짧은 휴가는 끝이 나리라.
*
– 차진철
— 띠리리링! 띠리리링!
바삐 울리는 전화.
화면을 살피니, 익숙한 이름이 떠 있었다.
「상현 형님」
“아이고~! 형님도 참, 어제 다 말씀드렸는데….”
— 띠리링! 띠리링!
더 무시하면 나중에 호통치겠지?
은근히 속정이 깊으면서도 뒤끝 있는 동료다.
전화를 받았다.
“형님, 오랜만 -”
“아직 시작하지 않았지요?”
“… 아직입니다. 말 편히 하시죠.”
“어제 통화 후로 한참 더 생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다! 진철아, 관리국에 들어가는 일은 피해야 한다.”
상현 형님은 관리국을 좋아하지 않는다.
심해 호텔의 미로에게 호되게 데었기 때문이리라.
호텔에서 티를 내지 않았던 건 주변에 아리와 묵성 할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온 지금, 형님은 관리국에 대해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저주의 방에 생겨난 유사 조직들을 보며 확신을 얻었지! 놈들은 악독하기 그지없는 -”
“세상을 지키는 조직 아닙니까.”
“… 필요악임은 부정하지 않으마. 하지만, 네가 몸담을만한 곳이 아니다.”
관리국에 대한 관점은 각자 다르다.
상현 형님에게 그만의 생각이 있듯, 나에게도 내 생각이 있다.
“형님,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
“…”
“가까이서 지켜보겠습니다. 그래서 아리에게 저에 대해 보고는 하지 말아 달라고 했지요.”
관리국이 나에 대한 어떤 선입견을 품지 않길 바랐다.
그래야, 그 참모습을 내게 숨김없이 보여줄 테니까.
고요한 침묵.
호텔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덕에 상대의 생각이 느껴졌다.
내 말에 설득되었다기보단, 날 설득할 수 없음을 알고 체념한 게 아닐지.
“큼, 형님. 바람 양과 진솔 군은 잘 있습니까?”
서바람.
김진솔.
상현 형님이 ‘꿈’으로 불러낸 가족의 이름이다.
형님이 느끼기엔 203호에서 만들었던 ‘진짜 가족’과 현재의 두 사람이 동일인인 걸까?
모르겠다.
나는 돌아가신 내 어머니와 꿈으로 살려낸 누군가가 같을 수 없다고 믿는다.
물론, 가족을 덧칠한 동료들에게 내 이런 마음을 전할 생각은 없지.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는 게 소위 사회생활의 시작 아니겠냐?
“… 잘 있지. 진솔이가 공부를 얼마나 잘하는지 모른다.”
“형님 닮았군요.”
“어제, 은솔 양이 내 병원에 왔다.”
“그렇습니까?”
“요전의 일로 호텔 딜라이트에 악소문이 퍼지긴 했지만, 어찌어찌 수습 중이라더라.”
“가인이 녀석은 어떻게 지낸답니까?”
“듣기로는 호텔이 약속한 휴식 동안 퇴마사 비슷한 일을 하려는 것 같던데.”
“퇴마사요?”
헛웃음이 나왔는데, 가만 생각하면 은근히 어울린다.
현실로 돌아온 지 약 2주 차.
다른 동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도 대충 알고 있다.
호텔 대표이사가 된 은솔 누님.
그럴듯한 병원 하나를 차린 상현 형님.
뜬금없이 퇴마사 활동 중인 가인이 녀석.
부럽게도 인생을 즐기고 있는 엘레나와 송이.
아리와 묵성 할아버지는 다시 요원으로 돌아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연락하진 않았다.
섣불리 접촉하면 관리국의 감시에 노출된다는 경고를 들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미로와 승엽이와도 개별적으로 만나진 않았다.
“…”
마지막으로 나.
“진철아.”
“듣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즉시 연락해라. 우리 중 누구라도 도우러 갈 테니.”
“말만 들어도 고맙습니다.”
— 탁!
관문 열차에서 아리를 닦달한 끝에 누군가의 도움 없이 관리국 요원이 되는 법에 대해 알아냈다.
요원이 되기 위한 조건은 단 하나, ‘루프의 인지’이다.
쉽게 말해 회귀자여야 한다는 것.
당연히 무슨 기업처럼 공개채용 절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정부처럼 요원 시험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있을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회귀자는 회귀했다는 티를 내기 마련이니까!
TV를 켰다.
「오늘의 추첨, 시작하겠습니다! 황금손으로 버튼을 눌러주세요! 공이 나오는 순서와 관계없이 번호만 맞으면 당첨입니다! 추첨을 시작합니다.」
“…”
「17번! 43번! 10번! 30번! 35번! 22번! 2등 보너스 볼 뽑겠습니다! 44번!」
“17, 43, 10, 30, 35, 22…. 마지막은 44인가.”
정확하다.
단 한 개의 숫자도 틀림이 없다.
그러니까….
오늘부터 나는 총재산 127억 갑부가 되었다.
요원이 되기 위한 첫 발자국을 내디딘 셈이다.
물론, 아직 조금 더 해야 하지만.
“…”
세상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로또는 주작이다!
진짜 주작이라고!
돌아가신 어머니, 당신이 매주 구매하셨던 꿈과 희망은 관리국 개새끼들의 주작입니다!
오피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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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호텔 탈출기-55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