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55)
EP.555 555화 – 신입 요원 차진철
555화 – 신입 요원 차진철
– 차진철
— 따르릉! 따르릉!
“으음, 또 형님이 – 어라?”
상현 형님이 또 나를 만류하기 위해 전화한 줄 알았는데, 엘레나였다.
받자마자 경쾌하고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진철 씨, 초대장 받으셨죠? 이메일로 보냈어요!”
“하하, 물론입니다.”
“오실 거죠? 여러분을 위해 가장 좋은 방을 준비해서 -”
“으흠! 어흠! 그, 엘레나. 요번에는 힘들 것 같습니다.”
“… 흐음.”
아쉬움이 깃든 목소리.
비범한 미모를 자랑하는 동료를 실망하게 했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지금은 내게도 바쁜 시기다!
“엘레나,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제가 조금 바쁩니다.”
“네. 의사 선생님께 들었어요. 괜찮아요! 다음에 기회가 있겠죠.”
엘레나는 곧 송이와 은솔 누님, 거기에 가인이까지 온다고 했다며 기쁜 반응을 보였다.
송이랑 은솔 누님은 몰라도 가인이 녀석이 간다고 했으니 엘레나에겐 아무래도 좋지 않을까?
덕분에 죄책감이 사라졌다.
마침내 호텔을 나와 현실로 돌아온 현재, 그녀의 사랑에도 소기의 성과가 있길 바란다.
“엘레나, 요즘 즐거운 모양입니다.”
“그럼요~! ‘꿈’을 어떻게 쓸지 고민 많았는데, 잘 쓴 것 같아요.”
“축하합니다.”
통화가 끝났다.
“…”
동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대략적인 파악이 끝난 현재.
‘유송이’와 ‘엘레나’를 생각하면 다소 기묘한 기분이 든다.
두 사람이 딱히 악의적인 소원을 빈 건 아니다.
오히려 재미있고, 약간은 부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호텔 동료가 아닌 제삼자 혹은 일반인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어떨까?
“…”
관리국이 호텔 탈출자를 경계하는 이유가 어렴풋이 이해 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자신들만의 놀이동산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 재테크나 하자.”
*
10, 17, 22, 30, 35, 43, 보너스 번호는 44.
조금 전에 당첨된 로또다.
당첨금 127억, 세금 떼어도 대충 80억 가량의 어마어마한 가치다.
그 돈이 조금 전에 통장에 들어왔다.
호텔을 겪기 전이었다면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면서 정신이 반쯤 나갔겠지?
“…”
감흥이 없다.
어차피 관리국에서 주기적으로 조작하는 가짜 행운이기도 하고, 그런 걸 떠나서 요원이 되려는 내게 돈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조금 더….”
아직 부족하다.
로또 1등 당첨자는 대한민국에서 매주 쏟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권 당첨 정도로는 관리국이 날 ‘회귀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복권 당첨금은 단순한 초기자금이고, 다음부터가 진짜다.
“이게 맞나?”
인터넷을 뒤져서 괴상한 프로그램 하나를 내려받았다.
일종의 거래 프로그램이라는데, 복잡하기 짝이 없는 데다가 굉장히 허접스러웠다.
“으음…. 아무리 봐도 이상한데.”
아리 말에 따르면, 3년 내로 이런 괴상한 것들의 가격이 미친 듯이 오른단다.
“…”
말이 되나?
내가 경제 상식이 부족한 편이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이게 말이 되냐?
화폐라는데 누가 발행하는지부터가 불명확하다.
유통량을 통제하는 금융 당국도 없고, 가치를 보증하는 신뢰성 있는 기관도 없다.
결정적으로 이놈의 화폐를 어디에 쓸 수 있는지 아는 사람도 없다.
이걸로 피자 한 조각 사 먹을 수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아~ 진짜 존내 이상하네. 아리 기억이 잘못된 거 아닌가?”
이런 데이터 쪼가리에 3년 내로 온 세상이 들썩거릴 정도의 돈이 쏠린다는데, 믿을 수가 없다.
심지어 아리 말에 따르면 이것도 관리국의 ‘조정’을 통해 폭등 시기가 크게 늦춰진 결과란다.
“조금만 넣자. 조금만…!”
아무리 복권 당첨으로 공짜로 먹은 돈이라지만, 인터넷 어딘가에 버린다고 생각하니 좀 아깝네.
딱 1억 원만 쓰자.
— 딸깍!
비트코인 5,000개 구매.
“됐다.”
이런 느낌으로 80억을 적절히 투자하며 시간을 보냈다.
남은 돈은 약 17억 원.
이제 5,000만 한국인의 꿈과 희망을 사러 갈 시간이다.
*
경기도 용인시 외곽.
‘행복 부동산’의 늙수그레한 공인중개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회, 회장님! 어, 으, 지곡동 xx지 토지와 건물을 한 번에 구매하시겠다는 것 맞습니까?”
현찰로 15억 상당의 거래, 심지어 일종의 악성 매물에 대한 거래였기 때문인가?
공인중개사 입에서 자동으로 ‘회장님’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몇 번을 말합니까.”
“뜨, 뜻은 알겠습니다만, 그래도 현장을 한번 보고 오시는 게 -”
“그냥 땅 주인에게 연락이나 하십쇼.”
15억 상당의 부동산을 거래하겠다면서 무슨 땅, 무슨 건물을 사는지 구경 한번 한 적 없다.
내가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상황이니, 공인중개사에겐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자,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매도인에게 연락하겠습니다.”
물건을 보지도 않고 15억 쓰는 건 너무 과하니까 구경 정도는 할까?
아니지, 내 진짜 목적을 생각하면 누가 봐도 의심스럽게 행동해야 정상 아닌가?
이런저런 고민에 빠진 찰나, 훤칠한 키의 젊은 직원 하나가 슬쩍 내 어깨를 짚었다.
“차 사장님, 한번 시찰이라도 하시지요?”
“괜찮습니다.”
“어차피 매도인을 만나시기까진 시간이 꽤 걸립니다.”
“그러면 한번 구경이나 합시다.”
*
황량한 토지, 허름한 건물.
합계 15억짜리 매물에 대한 내 객관적인 평가다.
아무리 부동산이 비싸다지만, 강남 한복판도 아닌데 이 가격이 말이 되나 싶다.
근데 난 이걸 사려고 왔지.
“회장님. 이쪽도 한번 둘러보시겠습니까?”
“…”
직원은 옆에서 계속 지곡동 요즘 시세가 어쩌고, 3층 빌라 관련 건축법이 어쩌고 하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공부 좀 한 모양인데, 정작 ‘차 회장’이 아무 관심 없으니 쇠귀에 경 읽기가 따로 없다.
30분 정도 흘렀을까?
하늘이 어두워질 무렵,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회장님, 매도인 쪽과 연락이 되었답니다. 가실까요?”
“그러지.”
그때, 직원이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차 회장님.”
“음?”
“실례입니다만 -”
“실례라고 생각하면 그만두는 게 좋아.”
내 지론이다.
“어, 흠, 그 말씀이 맞습니다만, 너무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뭐가?”
“그…. 아까 시세를 말씀드렸으니 짐작하셨겠지만, 솔직히 이게 15억에 걸맞은 매물은 아니거든요?”
“그래?”
“… 뭔가 내부 정보라도 얻으셨습니까?”
내가 고위 공무원 혹은 정치인에게 땅값이 오를만한 정보를 얻었다고 생각하나?
하긴, 일반인이라면 이 정도가 합리적인 판단이지.
“글쎄? 나도 모르지.”
“에이~! 누가 모르는 일에 15억을 투자합니까? 뭔가 아시는 것 아닙니까?”
넌지시 찔러보는 말투.
그 모습이 우스워서 나도 받아주었다.
“알면 어쩌게? 왜 궁금해서?”
“궁금하냐고요?”
그리고 청년이 웃었다.
“그럼요! 궁금하죠. 3개월 후에 정부에서 새로운 고속열차 노선 관련 발표를 할 거라는 사실, 그 덕에 저 매물의 시세가 3개월 후에 12배로 오른다는 사실!”
청년이 빙그레 웃었다.
“마지막으로 위 정보 모두가 눈가림이며, 실제 이유는 건물 지하에 갇힌 일련번호 D – 0241 때문이라는 사실까지! 네가 어디까지 아는지 궁금하단 말이지.”
그는 더 이상 내게 존대하지 않았다.
마침내 관리국이 내게 접근한 것이다.
*
— 터벅! 터벅!
초가을,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한적한 길.
청년은 재밌다는 듯 말했다.
“한창 즐거운 시기지?”
“…”
“네게 벌어진 일, 내가 말해볼까? 언제나 그렇듯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중, 소설에서나 볼법한 일이 벌어졌다.”
“…”
“하늘에서, 불가해한 빛이 내려오더니 모든 것이 사라졌다. 정신 차렸을 때, 나는 과거에서 깨어났다.”
“…”
“아, 이거 아니야? 바다에서, 천지를 뒤흔드는 고함을 들었다. 하늘을 찌를 듯 일어선 소용돌이가 단숨에 대한민국을 갈아버렸다. 정신 차렸을 때, 나는 과거에서 깨어났다.”
“…”
“이것도 아니냐? 이놈의 세상에 멸망 시나리오가 셀 수 없이 많으니 이해하라고. 핵심은, 세상이 망하더니 넌 과거에서 깨어났다는 말이지.”
회귀자.
곧, 요원 후보.
“과거로 돌아왔으니 해야 할 일 있잖아? 그렇지! 일단 복권 사야지. 당첨~! 아이고 좋다! 다음은? 비트코인도 샀더라? 1억 원어치만 산 건 뭐야? 너무 많이 사면 뭐, 세상의 균형을 무너트릴 것 같았어? 아니면 나비효과?”
장난스러운 청년의 목소리.
“하하! 차 회장님, 혹시 이런 생각은 해본 적 없어? 내가 겪은 행운이 어쩌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
“세상에 나 말고 다른 회귀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당신입니까? 아니면 당신이 속한 조직?”
청년이 빙그레 웃었다.
“눈치가 없진 않네.”
외견상 나보다 다섯 살은 어려 보이는데 툭툭 나오는 반말.
기분 나쁘진 않다.
이 사람이 요원이라면, 실제 살아온 시간은 나보다 훨씬 많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 날 혼내기라도 할 셈입니까? 뭐, 다른 사람의 행운을 빼앗았다?”
회귀자가 얻는 이득의 본질이 이것이다.
타인이 얻었어야 할 이득을 내가 가로채는 것.
복권 당첨, 코인 투자, 부동산 시세 차익.
본래라면 전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얻었어야 할 이익이다.
청년은 내 질문에 웃음으로 답했다.
“풋!”
“…”
“으흐흣! 아하하!”
“그렇게 웃깁니까?”
“웃기지. 웃기고말고!”
“어느 부분이 그리 웃깁니까?”
“타인의 행운을 빼앗는다? 하하! 틀린 말은 아닌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가 그런 이유로 널 탓할 리 있겠어?”
관리국은 ‘그런 이유’로 날 탓하지 않는다.
“짐작하지?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알잖아. 나 같은 ‘희한한’ 사람들이 어디 속해 있는지.”
“관리국.”
“살면서 이런 생각 해본 적 없어?”
누구나 한 번쯤 할만한 생각.
“관리국은 어디서 돈이 솟아나는 걸까? 이런 생각 말이야.”
경찰은 정부 예산으로 돌아간다.
군대도 정부 예산으로 돌아간다.
세상을 지키는 공적 조직은 일반 시민의 세금으로 돌아가는 게 상식이다.
관리국은 이런 상식에서 벗어난 집단이다.
그 어떤 개인, 기업, 정부도 관리국에 세금을 내지 않는다.
그런데도 관리국은 전 세계에 지부를 두고, 구성원에게 풍족한 월급을 제공한다.
심지어 인건비 따위는 관리국 운영 비용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혼돈체와 싸우기 위한 수많은 전쟁 병기, 전 지구를 감시하는 인공위성과 드론, 인터넷을 통제하는 시스템까지!
이 모든 것을 위한 자원이 다 어디서 나는 걸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니, 세간에는 음모론이 널리 퍼져있다.
각종 대기업의 실질 소유주가 관리국이다.
정부에 내는 세금 중 일부가 관리국에 흘러간다.
…
전부 틀렸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이 관리국에 세금을 낸 적 없다고 생각하지.”
“…”
“착각이야. 전 인류는 우리에게 세금을 낸다. 그것도 가장 무거운 세금을!”
본래라면 타인에게 가야 했을 복권 당첨금.
본래라면 타인이 얻었을 코인 투자 이익.
본래라면 기존 땅 주인이 얻었을 시세 차익.
이 모든 ‘행운’을 전 지구에서 징수하는 조직!
내 앞에 검은 리무진 한 대가 나타났다.
다가서려는 순간, 청년이 내 어깨를 짚었다.
“어제까지의 넌 ‘놀이터의 어린아이’였지.”
“… 놀이터.”
“축하한다. 이제부터 너는 깨어난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 문장을 기억해라.”
‘놀이터’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믿는 단 하나의 문장.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우리만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