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56)
EP.556 556화 – 베테랑 요원 김아리, 에스퍼 호의 비밀 2 (1)
556화 – 베테랑 요원 김아리, 에스퍼 호의 비밀 2 (1)
– 김아리
어디선가 귀곡성이 들려올 것만 같은 스산한 분위기의 폐병원.
어지간한 사람은 무너져가는 건물의 외견만 봐도 겁에 질리겠지만, 이 자리에 ‘어지간한’ 사람은 없다.
“공기가 서늘하네.”
“하하, 들어갈까요? 보고에 따르면, 정신 나간 의사 하나가 -”
— 끼익!
요원의 성격이야 다들 제각각이지만, 지금 함께 온 요원 김지호는 참 말이 많은 편이다.
그런데도 이 녀석과 함께 온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 지지직!
전기가 잘 통하지 않는 어둑한 복도.
피비린내와 시체 썩는 냄새가 뒤섞인 악취가 코를 찌른다.
— 철컥!
긴장한 표정으로 관리국 특제 무기를 가다듬는 모습을 보니, 쓴웃음이 들었다.
이미 선발대가 한 차례 훑었기에 폐병원에 웅크린 혼돈체의 강함을 대충 알기 때문이다.
이 녀석의 도움 따윈 필요 없어.
애초에 도움을 바라고 데려온 게 아니라 차진철에게 이것저것 가르치고 있다길래 소식이나 들으려고 데려왔을 뿐이니까.
“금방 끝내고 올 테니, 여기서 기다려.”
“예? 선배님, 단독 행동은 금물 -”
— 쩌어억! 우르릉!
단박에 천장을 쪼개니 김지호의 눈에 살짝 놀라움이 깃들었다.
“호텔에서 기적을 얻었다더니!”
요원쯤 되면, 상당수가 호텔에 관해 최소한 소문 정도는 들어봤을 테니 이 녀석의 반응이 이상한 건 아니다.
“가만히 있기나 해.”
다음은 뭐, 우당탕 와당탕 정도.
간호사와 환자를 뒤틀어서 만들었다는 기형 괴물들에게 안식을 주고, 이상한 책에 홀린 의사와 대면했다.
“흐으으…! 과연, 관리국의 주구답게 솜씨가 상당하구나! 너희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세상의 이면 속에서 내가 보아온 -”
광기에 찬 의사의 삼류 악당 같은 대사를 들으며 품속에서 ‘살아있는 카메라’를 꺼냈다.
“어둠을 보았도다! 인류의 타락, 모든 이가 태초의 바다에서 벗어날 때 저지른 원죄를 보았나니 -”
“치즈.”
“뭐?”
— 찰칵!
혼돈체 격리를 업으로 삼은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야.
이런 잡스러운 녀석의 수준은 분위기만 봐도 안다.
그냥, 카메라 한번 찰칵하면 그걸로 끝이지.
“우와…! 선배님, 돌격하는 게 무슨 전차 같았습니다.”
“…”
“갑자기 날아가시길래 설마 의사의 비술에 홀리기라도 한 줄 알았는데, 벌써 다 끝내실 줄이야!”
“나온다.”
“예?”
— 지이잉!
곧, 살아있는 카메라에서 한 장의 사진이 튀어나왔다.
보기만 해도 답답한 회백색 건물에 갇힌 나이 든 노인의 사진이다.
“오! 이게 그 유명한 카메라군요!”
“…”
“소문은 들었거든요. 그, 펜으로 한번 그어봐도 됩니까?”
“해봐.”
김지호가 관리국 특제 양복 내부에서 펜을 꺼내더니, 사진에 선 하나를 그었다.
곧, 선이 날카로운 송곳으로 변하며 내부의 노인을 찔렀다.
당연히 노인의 표정 또한 처참히 일그러졌다.
“우왓! 이러면 죽은 겁니까?”
“아니. 봉인된 존재는 죽지 않아.”
이 혼돈체는 관리국이 파악한 것만 세도 50명이 넘는 사람을 죽였으므로 동정할 필요는 없다.
*
일을 끝낸 후, 요원 김지호에게 정말 궁금했던 본론을 물었다.
“김지호, 오랜만에 들어온 신입 요원 말이지.”
“아하~! 요원 차진철 말이지요?”
“네가 이것저것 알려주고 있다고 들었어.”
“그렇습니다. 하하, 진철이 고 녀석, 덩치는 산만한 데 아무것도 모르더군요!”
“… 그래?”
“회귀를 깨닫자마자 복권부터 사더니, 그 돈으로 코인에 주식에 부동산까지 사다가 걸렸지 뭡니까? 하하! 시공 회귀를 자신만 겪는 줄 알았나? 순진하기도 하지!”
“…”
“뭐, 좋을 때 아닙니까! 선배님도 기억하시겠지만, 처음 회귀를 자각했을 때는 누구나 그렇지요!”
“…”
아….
김지호 얘랑 같이 일한 적이 거의 없어서 몰랐는데, 이런 성격이었네.
“하, 저는 숫제 그 녀석이 부럽기까지 합니다. 이 별에 웅크린 거악의 무게에 대해 그 녀석이 짐작이나 하겠습니까?”
“…”
“무지의 낙원 속에서 살아왔으니까요. 녀석에게 세상의 어둠을 알려줄 생각입니다.”
듣는 내가 다 부끄러운데 본인은 못 느끼나?
김지호 본인이야말로 소위 ‘요원이 된 자부심’에 한가득 취해있는 상태잖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얼마 전까지 평범한 무직 백수로 살던 사람이 어쩌다 보니 운명의 선택을 받아 회귀했다.
여기에 심지어 ‘관리국’이라는 신비 조직의 부름을 받아 세상의 비밀까지 알게 된 상황.
선민의식이 생기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사실 ‘선택받은 인간’이 맞으니까 꼭 착각도 아니고.
“진철이 그 녀석이 짐작이나 할까요? 이 음험한 병원에 숨어있던 병원장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하, 피비린내를 맡으며 토하지나 않으면 다행입니다!”
“…”
아무리 봐도 이 신참은 루프를 끽해야 2~3회 겪은 것 같다.
시선이 ‘밑’, 평범한 사람을 향해 있으니 자신의 위대함에 취한 상태.
루프를 거듭하며 시선이 ‘위’를 향하면 깨닫는 날이 오겠지.
요원조차도 조금 큰 톱니바퀴에 불과하며, 위에는 끝이 없는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
“침묵이라….”
“선배님?”
내가 관리국 수뇌부에 속하게 되면, 오랜 의문을 풀 수 있을까?
호텔의 경고에 따르면 1년 후에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는 종말을 막아낼 수 있을까?
“하하, 선배님이 -”
“왜 자꾸 의미 없이 웃는 거야?”
너무 싸구려 악당 같잖아.
얘 설마 이런 게 멋있다고 생각하나?
“예?”
“아니야. 계속 말해봐.”
“으흠, 선배님이 신입에게 관심이 있으신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 진철이 녀석, 덩치만 컸지 영 젬병이지 뭡니까?”
“…”
“요즘은 간단한 무술을 훈련하라고 코치 중입니다. 요원이란 무릇, 총화기와 마도구가 무력화된 순간에서도 용기를 드러낼 수 있는 자! 영웅이 되기 위해선 그만한 자격을 입증해야 -”
아, 나 이제 못 참겠어.
— 따아악!
“아얏! 서, 선배님! 갑자기 왜 -”
“닥쳐.”
차진철이 관리국의 ‘이런 면’만 보지 않길 바랄 뿐이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24일 차
현재 위치 : 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 405(서울역)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벌써 24일 차다.
탈출할 때 상인이 뭐라고 했었지?
첫 6개월은 그냥 쉬고, 다음 6개월은 정보 정도는 수집하라고 했었지.
순수한 휴식은 겨우 6개월인데 벌써 한 15%는 훅 지나간 느낌이네.
현실로 돌아온 후, 우리는 서로의 삶에 대해 가능하면 간섭하지 않았다.
이 말이 서로가 어떻게 지내는지 모른다는 의미는 아니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일상을 만들었다.
누군가는 세상의 비밀을 더욱 파헤치고자 했다.
누군가는 소원을 쓰지 않았다.
…
그리고 두 사람은 기묘한 놀이동산을 만들어서 부귀영화를 누리기 시작했다.
그중 한 사람, 엘레나가 내게 초대장을 보냈다.
— 띵!
놀이동산을 만든 또 다른 한 사람이 나타났다.
커피숍 문이 열리며 싱그러운 미소의 소녀가 들어온 것.
곧,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지금 송이의 모습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남성은 물론 여성이라도 감탄할만한 매력!
“가인 오빠! 오랜만이에요!”
“그러게. 영상통화나 메시지는 여러 번 했지만, 실제 만나는 건 처음인가?”
“맞아요.”
“잘 지냈지?”
“그럼요.”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며 턱 밑까지 차오른 이야기를 꾹 삼켰다.
… 송이야.
마음속으로만 물어볼게.
그러니까….
왠지 모르게 키가 살짝 컸구나.
왠지 모르게 비율도 살짝 좋아졌구나.
왠지 모르게 이목구비도 조금 뚜렷해졌구나.
설마 꿈으로 빈 소원 중 하나가 성-
“쿨럭!”
“왜 그러세요?”
“아니야.”
-형 따위의 단어를 함부로 꺼낸다?
즉시 조언이 ‘허리를 숙이세요.’ 따위의 말을 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뺨 한 대 맞으세요’가 나올 수도 있고!
참아야 하느니라.
“은솔 언니는요?”
“따로 합류한다고 하네. 알다시피 누나는 우리와 달리 바쁜 사업가니까.”
“어라? 오빠, 저도 진짜 바쁘게 살거든요?”
“바쁘게 노는 것과 바쁘게 일하는 건 다르지.”
“킥! 그건 그렇네. 참, 가인 오빠 때문에 얼마나 귀찮았는지 알아요?”
“…”
“엘레나 언니가 보낸 초대장에 적힌 사이트에 들어갔죠. 사이트에서 오빠가 쓸 방을 고르는데, 갑자기 오빠 쪽만 계속 취소되는 거 있죠?”
내 소원 때문이다.
호텔 파티를 제외한 사람들은 나에 대한 기억 혹은 정보를 빠르게 잊는다.
소원을 빌 때만 해도 관리국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지.
목적은 성취했지만, 그 결과 생활이 꽤 불편해졌다.
예컨대, 내 명의로 특정 사이트에 가입해서 뭔가를 주문하면 계속 주문이 취소되는 등의 일이 생긴다.
일반인이 보기엔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의 구매 기록, 쉽게 말해 전산 오류처럼 보이려나?
정확한 판정은 나도 잘 모르겠다.
“덕분에 재밌긴 해. 은솔 누나 비서, 승아랑 만나본 적 있지?”
“네.”
“걔는 내가 은솔 누나 사무실에 들어갈 때마다 놀라. 매번 날 잊거든.”
“언니에게 들었어요. 오빠가 비서 놀리는 재미에 심취해서 매번 순간이동으로 들어온다고.”
“…”
“중학생이에요? 승엽이도 아니고.”
“…”
유치하다는 말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송이에게 들으니 은근히 기분 나빴다.
따지고 보면, 송이야말로 꿈을 사용해 만화 주인공 같은 삶을 구현했잖아?
“송이야, 옆에 이거 보여?”
의자 위에 올려둔 케이지들을 가리키자 송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부터 궁금했어요. 하나는 페로가 든 상자죠?”
— 삐익!
기다렸다는 듯 들려오는 페로의 울음.
곧, 송이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케이지에 손을 넣었다.
“어머, 어머! 아이 귀여워~! 아직도 계속 케이지에 살아야 해요? 외부에 노출되면 레이저 포탑 공격받아서?”
“아니. 이젠 인식 발찌 채워서 괜찮아.”
“어? 근데 왜 케이지에 가둬둔 거죠?”
“그냥. 꺼내두기 귀찮아서.”
“…”
— 삐익!
개도 아니고, 앵무새를 어깨에 얹고 다니면 시선을 너무 끌잖아.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짓던 송이가 이번엔 다음 케이지를 가리켰다.
“이건 뭐죠?”
“엘레나에게 줄 선물.”
“오! 오빠에게 그런 센스가? 앗! 저한테 줄 건 없어요?”
“…”
아.
여기까진 생각 못함.
내 표정을 보고 직감한 송이가 타박했다.
“와…! 진짜 너무하다.”
“…”
“그래서, 엘레나에게 주는 선물은 뭔데요? 구경이나 해야지~!”
“어, 어! 건드리면 안 돼.”
“왜, 비싸요? 반지라도 – 으악!”
“…”
“미쳤어! 미쳤어! 한가인 이 자식 진짜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미쳤 -”
“조, 조용! 주변에서 보잖아!”
“누가 이딴 걸 선물로 주냐고! 나한테도 줄 필요 없어!”
충격받은 송이를 황급히 진정시켰다.
“아니, 아니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것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끔찍한 동물 사체를 – 으읍!”
더 말하다간 카페 주인이 경찰을 부를 것 같아서 송이 입을 막았다.
“이건, 운이 없었을 뿐이야.”
“네?”
“최근에 퇴마사 활동을 시작했다고 했지? 그 과정에서 우연히 얻은 거야. 조금 전에는 네가 ‘관측’하는 과정에서 중첩된 가능성이 죽어있는 상태로 발현했을 뿐이야.”
“… 대체 무슨 말이죠?”
“다시 중첩된 상태로 돌려야겠네.”
— 철컥!
송이가 점점 더 해괴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퇴마사 비슷한 일을 하다 보니, 온갖 끔찍한 게 모여들더라.”
“…”
“그만큼 이 세상이 많이 뒤틀려있다는 이야기겠지. 호텔이 약속한 휴식이 끝나면,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테니 송이 너도 긴장해.”
“…”
“슬슬 출발하자. KTX 시간 거의 됐어.”
*
오후 3시경, 송이와 부산항에 도착했다.
항구에는 이미 초대형 크루즈가 정박한 상태였다.
1년 내내 화려한 삶을 즐기는 러시아의 상속자 – 라는 설정의 엘레나가 만들어낸 초호화 유람선!
이 유람선은 그 자체의 화려함 못지않게 그 주인의 화려한 미모로도 유명하다.
“으아~! 나, 크루즈 여행은 처음인데?”
“해봤잖아요.”
“내가?”
“1층 관문의 방, 잊었어요?”
네 번째 시련, 에스퍼 호의 비밀.
당연히 기억은 한다.
“… 그게 무슨 크루즈 여행이야? 악몽의 현실판에 가깝지.”
송이가 픽 웃으며 손을 뻗어 유람선에 적힌 이름을 가리켰다.
「에스퍼 호」
“똑같네요.”
“…”
“엘레나의 장난인가 봐요. 우리만 알아볼 수 있는.”
내게는 이름부터 다소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오빠? 슬슬 탑승 시간인데.”
“…”
“가인 오빠?”
현실로 돌아온 후 다소 흐릿해진 힘, ‘통찰’이 불길한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엘레나…. 왜 하필 배 이름부터 저렇게 불길하게 지은 거야?”
“오빠가 준비한 선물이 세상에서 제일 불길해요. 이런 걸 가지고 다니니까 세상의 불길함이 오빠 주변에 모이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