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57)
EP.557 557화 – 에스퍼 호의 비밀 2 (2)
557화 – 에스퍼 호의 비밀 2 (2)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27일 차
현재 위치 : 에스퍼 호, 2층 객실.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엘레나의 꿈, 에스퍼 호를 보고 처음으로 떠올린 감상은 바다 위의 거대한 성을 닮았다는 것.
파란 하늘과 푸른 물에 반사되는 흰색과 금색이 뒤섞인 모습이 정말이지 화려했다.
부드러운 파도를 가르며 우아하게 나아가는 모습은 또 어떠한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호화 유람선답게 주변의 승객들 또한 하나같이 풍요와 여유가 가득해 보였는데, 표의 가격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승객 중 가장 가난한 사람이 나일지도 모르지.
“오빠, 신기하지 않아요?”
“배가 예뻐서? 대단하긴 해.”
“그것도 그런데…. 이 배, 세계적으로 유명하거든요. 타이타닉처럼?”
“그래?”
“무슨 유명 잡지에서 5년 연속 별 다섯 개를 줬다는 둥, 어디 유명 기업가가 호평했다는 둥 하는 기사가 많았어요.”
“재밌네.”
“재밌죠. 왜냐하면, 이 배가 실제로 언제 생겼는지 우리는 알잖아요.”
에스퍼 호를 만들어낸 건 엘레나의 소원이다.
즉, 에스퍼 호는 겨우 27일 전에 지구에 갑자기 나타났다.
“실제로는 27일 전에 생겼는데, 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엔 5년 전부터 유명한 호화 여객선. 무슨 생각 드세요?”
“‘꿈’의 힘이 상상 이상으로 강력하다는 생각.”
“그게 전부?”
“이 모든 변화를 관리국이 전혀 모를까 하는 약간의 의심.”
“그런 거 말고요.”
송이가 하고 싶은 말이 뭘까?
“너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데?”
“뭔가….”
“뭔가?”
“꿈 같네요.”
“꿈 맞지.”
“아니, 호텔 보상을 말하는 게 아니라…. 현실 전체가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저와 오빠 머릿속에 있는 ‘호텔에 들어오기 전의 기억’이라는 것도 누군가의 조작이 아니었을까.”
“…”
“호텔 참가자는 우리 전에도 있었죠. 그 사람들이 소원을 빌어 현실을 뒤튼 적도 많았을 테고.”
소원으로 만들어낸 가족이 진짜 가족일까?
진철 형은 그렇지 않다고 믿었기에 소원을 쓰지 않았다.
반면, 송이처럼 꿈으로 가족을 만들어낸 사람도 있다.
후자의 심리가 무엇일지 궁금했는데, 어렴풋이 이해했다.
송이가 생각하기엔, ‘진짜 가족’이라는 건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소원으로 만든 가족이 가짜일 이유도 없는 셈이다.
배에 탑승할 때까지도 은솔 누나는 나타나지 않았다.
생각보다 더 바쁜 모양이다.
*
에스퍼 호에 탑승하자마자 유람선 승무원을 불러 엘레나가 어디 있는지 물었다.
“엘레나? 아하, 선주 님을 말씀하시는지요?”
일개 손님이 뜬금없이 배의 주인인 엘레나를 만나겠다고 하면 황당해할까 봐 초대장을 보여줄 생각이었는데, 그럴 필요 없었다.
“하하! 선주 님은 지금 한창 바쁘신 시간입니다. 아시잖아요?”
뭘 안다는 거야?
당황하려는 차, 송이가 빙글빙글 웃으며 날 잡아끌었다.
“오빠, 에스퍼 호에 대해 그다지 알아보지 않은 것 같아요.”
“음….”
어차피 내 명의로 사이트에서 예약해봐야 이상한 일만 생기니, 그냥 송이에게 맡겼다.
게다가 나도 소위 ‘퇴마사’일에 매진하느라 나름대로 바빴고.
“이 유람선은 특이한 이벤트가 많은 걸로 유명해요.”
“이벤트?”
“뜬금없이 해골 선장이 튀어나온다거나, 보물찾기가 시작된다거나!”
“… 그게 뭐야.”
“놀이동산 이벤트 같은 거죠. 엘레나가 주관한다고 들었어요. 에스퍼 호의 인기 비결 중 하나죠.”
진짜 인생을 재밌게 즐기고 있었네.
부럽다.
나도 의문의 5,000억 상속자 컨셉으로 초거대 저택에서 50명의 하인을 거느리며 살 걸 그랬나?
호화 유람선 내부를 돌아다녀 보니, 정말이지 없는 게 없었다.
수영장이나 스파는 기본이고 기가 막힌 레스토랑, 바, 헬스장은 물론이고 카지노와 영화관까지 있었으니까!
신기하다 싶어 은솔 누나처럼 바에 가서 와인을 시켰다.
“마실래?”
“오빠, 저 미성년자잖아요.”
“…”
아니, 송이는 귀찮게 이런 설정은 왜 유지한 거야?
호텔에서 보낸 시간만 따져도 미성년자일 리가 없는데!
“생각해보니 이상하네. 너, 미성년자인데다가 지금 방학도 아니잖아.”
“아니죠.”
“… 근데 부모님도 없이 너 혼자 이런 데 와도 되는 거야?”
여고생이 방학도 아닌데, 혼자서 유람선 여행을 떠난다.
이게 대체 몇 번 지구의 상식이란 말인가!
친애하는 호텔 동료는 간단히 답했다.
“그런 사소한 문제는 신경 쓴 적 없어요.”
“… 그래.”
알아서 하겠지.
건너 듣기로는 송이의 주변 상황도 엘레나 못지않게 희한하니, 아무래도 좋을지도.
만화 주인공처럼 살고 있다고 들었다.
그보다, 호텔에서 은솔 누나가 자주 보여준 행동을 따라 해봤다.
— 팅~!
“와인잔을 이렇게 한번 튕겨야 해.”
“…”
동그란 와인잔을 한 손으로 감싸 쥐고, 향기로운 포도 향을 음미한다.
“후으…!”
“…”
“이게 바로 보르지뉴 27년 산 와인의 풍미 -”
“부르고뉴 아니에요?”
“… 부르고뉴 27년 산 와인의 -”
“3년산으로 바꾸면 구분할 수 있어요?”
“…”
분위기 좀 내고 싶은데 왜 이렇게 방해하는 거야?
— 호로록!
“으음.”
“어때요?”
“…”
“솔직히 말해봐요.”
솔직히 말하자.
“나, 술을 무슨 맛으로 마시는지 모르겠어. 그냥 콜라가 훨씬 맛있어.”
여기까지 듣다가 참기 힘들었는지, 바텐더가 한마디 건넸다.
“하하, 잘생긴 손님! 프랑스에 그런 속담이 있습니다. 와인이 무르익기까지 숙성 시간이 필요하듯, 그 풍미를 이해하기 위해선 인생의 숙성이 필요하다.”
그런 말도 있나?
잘 생겼다는 말은 빈말이겠지만 기분 좋았다.
“손님께선 젊고 잘생기셨으니 아직 술을 이해하실 때가 아니지요. 하아…. 세상의 풍파를 겪다 보면 -”
“…”
내 생각엔 이 배에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도 없고, 나보다 고생한 사람도 없을 것 같다.
*
엿들을 사람 없는 장소로 옮겼다.
한적한 곳인데도 귓가를 간질이는 클래식 음악이 들려왔는데, 듣다 보니 내 마음조차 풍요로워지는 듯했다.
“좋네.”
“그러게요. 아주~ 긴 파티 타임 같아요.”
“그러게. 호텔 기준으론 엄청나게 긴 파티타임이네. 엘레나 되게 재밌게 사는 것 같아서 부럽다…. 나는 퇴마사 일 같은 걸 왜 하고 있지?”
“진짜 오빠는 왜 사서 고생 중이죠?”
“어쩌다 보니, 하고 있더라.”
둘만 남아서일까?
자연스레 내가 요즘 하는 일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처음부터 퇴마사 하겠다! 한 건 아니야. 은솔 누나 호텔 일을 우연히 해결하고 나니, 자연스레 세상 곳곳의 ‘뒤틀림’이 눈에 들어왔을 뿐.”
“그래요?”
“딱히 돈을 받은 적도 없어.”
딱히 돈이 필요하지도 않다.
엘레나처럼 요란하게 살고 있지 않을 뿐, 내 통장엔 이미 호텔이 깔끔하게 만들어준 많은 돈이 있으니까.
“지금은 다들 휴식을 즐기고 있지만. 6개월 후엔 슬슬 몸을 풀어야 할 거야.”
“… 그렇죠.”
“1년 후엔 무언가 시작될 테고.”
“오빠, 방금 되게 재수 없는 예언자 같았어요.”
“…”
“농담이에요.”
“요즘, 이상한 사실을 알아냈어.”
“이상한 사실?”
“어쩌면…. 관리국도 알아채지 못했을지도. 아리에게 물어봐야 알겠지만.”
어느 순간 내가 알아낸 기묘한 사실.
분명 관리국도 모를 확률이 높다.
그들에겐 나처럼 ‘상태창’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좀 재밌네요. 뭘 알아내셨는데요?”
“상태창에 ‘현재 위치’가 나오는 것 알지?”
“네.”
“… 가끔, 그 위치가 갑자기 바뀔 때가 있어.”
“예?”
무슨 말이냐는 듯 동그래진 송이의 눈.
“3일 전 일을 예로 들면, 어쩌다가 휘경동 근처를 갈 일이 생겼거든? 주소도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동 어쩌고 이런 식으로 나와.”
“그렇겠죠.”
“그런데, 특정 건물 내에서 갑자기 위치가 ‘검색 중’으로 바뀌더라.”
“…”
“그 상태에서 오래 기다리면 정말 이상한 주소가 나와. 은솔 누나 호텔에서 본 주소는 ‘아틀란티스’였지.”
“아, 아틀란티스?”
너무 뜬금없는 단어였는지, 송이가 크게 당황했다.
“3일 전에 나온 이름은 ‘아르티오 시’래.”
“거기가 어디죠?”
“나도 몰라.”
잠시의 침묵, 내 나름의 가설.
“알 수 없는 지명, 알 수 없는 공간이 세상 일부를 침범하는 느낌이지.”
“신기하네요. 음, 이게 1년 후에 시작할 종말과 관련 있으려나?”
“글쎄.”
거기까진 확신할 수 없다.
잠시 고민하던 송이가 207호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207호는 현실의 모의고사라고 분석했었잖아요?”
“그랬지.”
“지금, 우리는 수능을 치는 중이고.”
“비슷해.”
“207호의 문제 핵심에는 항상 ‘거울’이 있었어요. 현실에도 거울이 있겠죠?”
“아마도….”
지명이 뒤틀리는 현상과 거울이 관련 있을까?
아직은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 어렵다.
*
오후 다섯 시 경, 유람선 최상층으로 나오라는 안내가 들려왔다.
미리 준비해둔 그럴듯한 옷을 챙겨입고 나오니, 역시 깔끔한 베이지색 톤의 원피스를 차려입은 송이가 보였다.
“이야~! 이렇게 보니까 엄청 예쁘네!”
“이렇게 보면 예쁘다? 다르게 보면 별로였어요?”
당황하는 순간, 송이가 장난이라는 듯 킥킥거렸다.
최상층에 도착하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며 약간의 소금기 섞인 바닷냄새가 느껴졌다.
꽤 많은 이들은 가족 손님이었는데, 덕분에 조잘거리는 아이들이 많았다.
하늘에서 내리쬐는 따사로운 햇볕과 행복한 분위기 속에서 미소 짓는 사람들.
여기에 귓가를 간질이는 클래식 음악과 여기저기 솟아난 열대 지방에서나 자라날 법한 나무들까지!
천국의 풍경이 따로 없으리라.
곧, 천국과 같은 배의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릴 법한 귀인이 나타났다.
“신사 숙녀 여러분, 에스퍼 호의 선주 님이십니다! 박수로 맞아주세요!”
즐겁게 웃으며 박수치는 사람들.
보통은 유람선 선주의 존재감이 이렇게 클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엘레나의 등장은 곧 흥미로운 저녁 이벤트의 시작을 말한다.
그걸 기대하고 온 아이들과 그 부모들이 싱글벙글 웃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놀이동산 같은 분위기다.
“엘레나가 이번엔 뭘 준비했을까요? 보물찾기? 요전엔 엘레나를 찾아라였다던데?”
“엘레나를 찾아라? 진짜 재밌게 살고 있었네!”
엘레나가 등장하는 순간, ‘번쩍!’하는 느낌과 함께 배의 조명이 살짝 바뀌었다.
자연스레 모두의 이목, 심지어 조명까지 엘레나를 비추는 느낌.
어지간해선 선주가 연예인도 아니고 뭐하나 싶을 텐데, 정말이지 비범한 미모를 가진 사람이 이런 일을 벌이니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우와….”
길게 말할 것 없다.
그냥 예쁘다.
햇빛을 등지고 선 엘레나가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것만 같았다.
사람이 아니라 살아있는 빛처럼 느껴졌다.
그 모습에 감탄하는 내가 우스웠는지, 송이가 툭 쳤다.
“입 다물어요. 언니도 참, 이런 걸 좋아할 줄이야!”
“배우 지망생이었잖아?”
“하긴, 남들의 관심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의미네요.”
순간, 엘레나와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반갑다는 듯, 슬며시 웃음 짓는 모습 역시 아름다웠다.
“어머, 엘레나 언니! 바로 우리 쪽으로 오는 건 아니겠죠?”
그랬다간 너무 눈에 띄겠지.
나야 특유의 초능력 때문에 반나절만 지나면 다들 잊겠지만, 송이는 ‘누구길래 선주랑 이렇게 친하지?’라는 관심을 받을 터.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엘레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었기에 주변 사람들과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남들 모르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
귀찮은 일이 없어 다행이라 생각하는 한편, 조금 아쉬웠다.
엘레나가 남들 눈치 보지 않고 바로 우리에게 오길 바랬던 걸까?
“가인 오빠.”
“응?”
“선물 준비했죠?”
“여기 들고 있잖아.”
“엘레나가 오자마자 줘봐요.”
“…”
장난기 어린 송이의 표정.
나도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풋! 좋아. 바로 준다!”
행복한 시간이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 근데 오빠.”
“응?”
“아까부터 조금…. 이상한 기분 들지 않아요?”
“뭐?”
“뭔가가 머리를 쿡 쿡 찌르는 느낌인데.”
머리를 쿡 쿡 찌른다고?
「조언 : 3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