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59)
EP.559 559화 – 에스퍼 호의 비밀 2 (4)
559화 – 에스퍼 호의 비밀 2 (4)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27일 차
현재 위치 : 에스퍼 호
현자의 조언 : 1」
– 한가인
‘가시 면류관’을 쓴 개체를 확보한 후, 에스퍼 호의 상황은 빠르게 안정되기 시작했다.
내가 하나하나 싸워가며 제압하는 것과 ‘자칭 예수’가 말 한마디로 불러내서 얌전히 만든 후 가면을 벗기는 것은 효율성의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리 빨리 행동한다 해도 희생자는 있었다.
이미 입에 담기 껄끄러울 정도로 잔혹한 일을 벌인 가면도 적지 않았으니까.
호텔 딜라이트에서는 직접적인 희생자가 없었기에 적당히 넘어갈 수 있었지만, 에스퍼 호 사태는 그럴 수 없다.
배가 항구에 도착하고 나면, 경찰이든 관리국이든 여러 조직이 개입하게 되지 않을까?
“…”
나중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자.
그보다, 조금 전부터 신경 쓰이는 부분은 따로 있다.
“여러분은 모두 죄인입니다. 최초의 세계, 모든 것이 시작하기 전! 인류는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
설교 내용이 점점 이상해지고 있다.
그 때문인지 극장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반응도 불길하게 변화했다.
핏발 선 눈빛, 전신을 덜덜 떠는 태도.
가면을 쓰지 않은 일반인은 물론, 아직 가면을 쓰고 있어 반쯤 혼돈체로 변한 자들도 마찬가지다.
하나같이 가시 면류관 개체의 힘에 저항하지 못한다.
나는 그 틈을 노려 주변을 돌아다니며 가면을 벗겼다.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얘야, 어떻게 해야겠니?”
질문을 받은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답했다.
“어, 어…. 자, 잘못했으니까 사과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린아이다운 답변.
“하! 사과? 그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하지! 어찌 그 정도로 속죄했다 말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죄인이여, 천고의 죄인이여! 회개하라. 죄를 인정하고 속죄하라.”
“회, 회개하고 속죄하겠습니다.”
“그렇지요? 모두 회개하셔야겠지요? 말로만 하시면 안 되겠지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서서히 헐떡이는 사람들.
슬슬 저놈이 말하는 ‘속죄’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대부분의 가면을 벗기기도 했고, 슬슬 교주 개체도 제압해야겠다 싶어서 일어났다.
— 벌컥!
“오호? 학생, 학생입니까? 학생 역시 어, 위대한 분의 계시를 받았지요?”
조금 전에 내가 보인 신성한 태양의 힘을 그렇게 해석한 건가?
아무래도 좋다.
“목사님, 그래서 회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찢어질 듯 옆으로 벌어지는 입.
기괴하기 그지없는 뒤틀린 웃음.
“추하기 그지없는 죄인의 삶. 그 전체를 바쳐야 – 크읏!”
본능적으로 알았다.
저 문장이 끝나면 곤란하다는 사실을!
즉시 화신의 서를 꺼내 교주 개체를 제압하려 시도했다.
화면이 정지한 듯한 순간, 마도서의 힘이 정신 나간 교주의 몸에 닿았다.
접촉하는 순간 깨달았다.
제압할 수 있다.
육체의 통제권을 강탈할 수 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접촉 자체가 위험할 수 있음도 알았다!
— 파지직!
“크읍!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아버지께서 -”
들을 필요 없다.
이 머저리는 어쩌다 가시 면류관을 썼을 뿐인 평범한 인간이다.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는 숙주에 불과하다.
하지만, 저놈이 쓰고 있는 ‘가시 면류관’은 대체….
“…”
위험을 감수하고 마도서로 제압 시도?
아니면 신성한 태양의 힘을 살짝 더 쓴다?
고민하는 순간, 뒤편에 엘레나가 나타났음을 깨달았다.
동시에 이 상황을 손쉽게 해결할 방법도 알았다.
“으아악!”
고통스럽다는 듯, 비명을 지르며 헐떡거렸다.
누가 보면 사악한 악마가 날 단박에 찢어 죽이려는 것처럼!
아예 한쪽 무릎까지 꿇고 입술을 깨물어 피까지 흘렸다.
그러자 기대했던 반응이 나타났다.
— 지이잉!
피부를 저릿하게 짓누르는 강렬한 울림.
위기에 빠진 날 발견한 엘레나가 정의의 축복을 발현했다!
— 콰직!
상황이 종료되기까진 딱 한방으로 충분했다.
황금의 물결이 교주 개체를 강타하는 순간, 그 자리에는 한 줄기 핏물만 남은 것이다.
*
“가인 씨.”
“네?”
“방금, 연기였죠?”
“…”
“아무리 정의의 힘을 빌렸다지만, 딱 한 대 치니까 죽는 정도의 적인데 가인 씨가 비명까지 지르는 게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이런 걸로 속이고 싶지 않아서 솔직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엘레나가 이런 이유로 화내거나 하진 않았다.
“어머, 어머! 어떡해…. 결국 죽였어요. 이 사람, 꽤 유명한 SNS 스타였는데.”
SNS 스타? 가시 면류관을 썼던 숙주를 말하는 것 같다.
“휴우…. 이래서야 모른 척 넘어가긴 글렀네요. 사람이 많이 죽었으니, 관리국 사람들이 올 것 같아요.”
따지고 보면 엘레나가 방금 피떡으로 만든 남자는 ‘가시 면류관’에 의해 조종당한 희생자에 불과하다.
엘레나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 죄책감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후에 벌어질 후폭풍을 염려하고 있을 뿐.
“…”
새삼스러운 이야기다.
엘레나까지 갈 것 없이, 나부터가 골치 아프다 싶으니 주저없이 엘레나의 힘을 이용했으니까.
그보다, 고깃덩어리가 된 숙주의 몸에 무언가 보였다.
“으엑! 뭐 하세요?”
“이거, 멀쩡하네요.”
가시 면류관.
사람은 물론 혼돈체조차 홀릴 수 있는 도구.
“…”
찰나, 상당한 유혹을 느꼈다.
신성한 태양의 사용을 자제하는 현재, 가시 면류관은 일종의 대체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 엘레나가 준비한 겁니까?”
“아니요. 애초에 이런 건 가면이라고 보기도 힘들잖아요? 게다가 가시 면류관을 쓰고 예수님을 흉내 내는 건 굉장히 조심스러운 문제라….”
다른 가면과 달리 가시 면류관은 엘레나가 준비한 게 아니다.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준비한 것.
그러니까….
‘가시 면류관’만 진짜다.
나머지 가면은 가시 면류관이 만들어낸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
“가인 씨가 쓰시게요?”
“… 고민 중입니다.”
엘레나에 의해 죽은 교주는 죽는 순간까지 ‘SNS 스타’ 같은 느낌은 없었다.
가시 면류관에 의해 본인의 자아를 대부분 상실했던 것.
나라면 버틸 수 있을까?
“…”
화신의 서로 교주를 제압하려는 순간, 가시 면류관과 접촉하며 느꼈던 불길한 직감.
이 물건은 보기보다 훨씬 위험하다.
현실에 두 번의 기회는 없으니 섣부른 행동은 삼가야 한다.
설령 내가 이 가시 면류관을 통제하지 못할 확률이 1%라 해도, 대책 없이 무작정 한번 써보는 식의 행동은 지극히 어리석다.
은솔 누나와 합류해서 피리를 준비시킨 후 써보는 게 낫지 않을까?
조금 더 생각해보자.
“엘레나, 혼란은 어느 정도 가라앉은 것 같네요. 이제 선원들을 -”
“그렇지 않아도 직원을 모아놓고 확인하고 있었죠.”
내가 엘레나를 제지한 후, 그녀는 가면들을 전부 창고에 넣어뒀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끼리 회의하는 사이에 다수의 승객과 선원들이 가면을 쓴 채 날뛰었다.
가면이 저절로 날아간 게 아니라면 누군가 가면을 배포했다는 의미다.
높은 확률로 크루즈 선원 혹은 직원이 범인이다.
“갑시다. 범인을 찾아서 목적이나 들어보죠.”
가면을 품속에 넣는 순간, 이해할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죄를 기억하라.’
“원죄?”
“예?”
“아닙니다.”
*
꿈틀거리는 뱀이 천장을 기어 다니고, 바닥의 카펫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펄럭거리며 직원들 발목을 붙잡는다.
여기에 갑자기 핏물이 흐르는 벽을 더하니, 공포영화 속 한 장면이 따로 없었다.
당연히 선원들은 공포에 질려서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엘레나가 불길한 상상으로 선원들을 압박하는 상황.
“흐억!”
“어설프게 속이려 들지 마세요.”
“서, 선주 님! 정말 모르는 일입니다!”
“흐음….”
30분 이상 엘레나의 거짓말 탐지 능력까지 동원해 심문했다.
그 결과 직원들이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 가면을 객실에 뿌렸음을 알아냈다.
문제는, 그 ‘누군가’의 정체를 모르겠다는 점.
“저, 정말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지시했는데, 당연히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당연히 따라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지시를 따랐는데, 정작 명령을 내린 사람을 모른다.
엘레나가 어떻게 하죠? 하는 표정으로 날 보았다.
“…”
뒤처리는 관리국에 맡기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런 문제의 처리는 우리보다야 관리국이 더 잘 할 테고, 추후 아리와 연락해서 배에서 벌어진 일의 진상을 알아내면 그만이니까.
“여러분, 잠시 제 말을 들어주세요.”
*
“점심 무렵? 그쯤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갑판 아래 통로를 걸어가면서 -”
“멈추지 말고 그때 했던 동작을 그대로 해보세요. 기억 나는 만큼이라도.”
“아, 알겠습니다.”
현실로 돌아온 후 깨달은 기묘한 사실.
축복이 약해졌다.
나 뿐만이 아니라 동료 전원을 포함한 이야기다.
언뜻 생각하면 호텔 특유의 밸런스를 위한 조치 같지만, 이상한 이야기다.
호텔 밖 현실의 밸런스를 호텔이 왜 신경 쓴단 말인가?
이에 대한 올빼미의 답도 미묘한 구석이 있다.
축복이 약해진 데에는 밸런스 조절 따위가 아닌 근본적인 이유가 더 있는 것 같은데….
어쨌든, 나는 약해진 축복에 적응 중이다.
“됐습니까?”
“존, 당신은 됐습니다. 다음 사람, 데이비드? 늑대 가면을 5층 객실에 보냈다고 했죠?”
“죄, 죄송합니다. 이상한 가면일 줄은 몰랐 -”
“사과할 필요 없고, 그때 했던 행동을 최대한 기억나는 대로 재현해보세요.”
예전처럼 슥 훑어보는 정도로는 ‘통찰’이 쉽게 정보를 얻어내지 못한다.
지금처럼, 재현을 시키거나 내가 직접 뒤져야 한다.
그렇게 하면 –
“…!”
보인다.
보인다!
“가인 오 -”
“송이야, 조용. 지금 보이나 봐.”
흑백 사진 같은 흐릿한 이미지.
가면을 든 채 복도를 걷는 –
이게 아니야.
예전처럼 미래의 가능성을 보는 게 아니라, 과거의 일을 보려는 상황.
더 전을 봐야 한다.
가면을 누구에게 받았는지, 누가 지시를 내렸는지!
“…”
마치 역재생처럼 변화하는 이미지.
회의실이다.
네 명? 다섯 명의 직원이 누군가를 마주했다.
흐릿하다.
어째서지? 직원들이 기억을 잃어서?
조금 더, 조금 더 –
“…?”
착각인가?
조금 전에 시선을 마주친 것 같은데.
진철 형 정도는 아니지만, 제법 큰 체형의 남자.
이목구비는 알아볼 수 없다.
입술이 천천히 움직인다.
느릿하게, 마치 미래의 누군가에게 보라는 것처럼.
‘동료의 위치를 확인해봐야 하지 않겠나?’
“…”
착각이 아니다.
통찰이 찾아낸 정체불명의 남자.
그 남자가 ‘미래의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오빠, 오빠! 뭔가 보여요?”
「동료 위치정보(*)
이은솔 : 검색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