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63)
EP.563 563화 – 기억할 수 없는 세상 (2)
563화 – 기억할 수 없는 세상 (2)
– 한가인
돌이켜보면, 할아버지는 호텔에서 관리국에 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관리국과 관련한 정보가 궁금한 경우 추궁 대상은 아리였지 할아버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묵성 할아버지 역시 상상 이상으로 오랜 시간 관리국에 봉사해온 사람이다.
그러니, 할아버지가 알고 있는 비밀 역시 상당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대화가 그 증거다.
“퇴마사 비슷한 일을 하며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니, 위치 정보가 이상하게 나오는 곳을 발견했다고?”
“그렇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떠오르는 게 있구나. 가인아, 혹시 이런 의문을 가져본 적 있냐?”
의문 이전에 든 생각.
따지고 보면, 나와 할아버지의 생물학적 나이 차이라는 건 의미 없어진 지 오래다.
203호의 시간을 합산하면 내가 더 많을 수도 있다.
물론, 할아버지도 ‘회귀자’임이 밝혀졌으니 아닐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나와 할아버지 둘 다 외견과 나이가 일치하지 않음은 명확하다.
그런데도 나는 자연스럽게 할아버지를 연장자로 대하고, 할아버지는 나를 연소자로 대한다.
하긴, 이런 걸 따지기 시작하면 아리에겐 처음부터 편하게 말했으면서 명백히 아리보다 어린 할아버지에게 존대한 것도 이상한 일이지만.
“온갖 도시 전설이나 괴담 속에 등장하는 ‘이세계’란 어떤 장소일까?”
도시 전설, 괴담, 신화.
인간은 예로부터 다른 세상을 상상해왔다.
거창하게는 천국이나 지옥이 있고, 중국 설화에 나오는 무릉도원도 좋은 예시다.
현대의 괴담을 예로 들면, 엘리베이터를 특이하게 조작했더니 이세계에 도착했다 같은 것을 말한다.
현실에는 저런 초자연적인 현상 중 일부가 실제로 존재한다.
“괴담에서나 나올 법한 이계는 실존한다. 따지고 보면, ‘호텔 파이오니어’ 역시 일종의 이계지.”
“일리 있네요.”
“생겨나는 원리, 만드는 방법 등은 우리 – 참, 이젠 아니지. 관리국도 몰라. 하지만, 관리국은 몇몇 이계의 사용법을 익히는 데 성공했다.”
“이계 사용법?”
“쓸 수만 있으면 꽤 유용하거든. 예컨대, 처리하기 어려운 괴물을 이계에 처박고 입구를 닫아버리는 건 어떨까?”
“… 한번 본 적 있네요.”
“본 적 있어?”
“202호, 인어공주에서 아리와 함께 끔찍한 괴물이 봉인된 장소에 간 적 있습니다.”
혼돈체를 봉인하기 위한 목적.
“다른 용도도 있습니까?”
“창고.”
“예?”
“관리국이 루프를 거듭하며 정보를 저장하는 수단에 대해 고민해봤냐?”
“아?”
“극소수의 요원은 회귀하며 자아를 유지할 수 있다지만, 컴퓨터는 불가능하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세상을 관리하려면 수많은 정보가 필요한데, 정보 저장 매체가 루프 후에 남아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요원의 기억으로는 부족한가요?”
“풋! 인마, 지구 전체에 요원이 몇 명이라 생각하냐?”
“모르죠.”
“사실 나도 정확히는 몰라.”
“…”
“100명은 넘고, 1,000명은 안될 거다. 정황상 그래.”
“너무 범위가 넓은데요.”
“미안해. 내 직급이 충분히 높지 않았거든. 아리는 더 정확히 알지도 모르지.”
아리는 최고 계급으로 승진하기 직전이라는데, 할아버지는 그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100명이든 1,000명이든, 사람 기억력이라는 게 뻔한 거 알지? 단순 정보량으로 치면, 1,000명의 사람이 기억하는 걸 다 합쳐도 네 스마트폰 한 대만 못하다.”
손톱만 한 USB 한 개에 전공 책 수천 권이 들어가는 세상이니, 맞는 말이다.
그렇다.
요원의 기억력 따위로는 문명 전체를 관리할만한 정보를 축적할 수 없다.
관리국에겐 책이든 컴퓨터든 정보를 보관하기 위한 특별한 장소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세상에는 괴담에서나 나올법한 이계가 실제로 있고, 관리국은 그런 장소 중 몇 개를 확보해서 다채로운 목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을 알았다.
“지금부터 너랑 가려는 장소는 이계 중 하나다. 관리국이 확보하지 못한 장소지!”
‘기억할 수 없는 세상’
관리국의 통제를 벗어난 이계 중 하나로, 입구는 설악산 인근에 있다고 한다.
“평범하게 괴물이 가득한 지옥도였다면, 그냥 입구를 통제하고 말았을 게다.”
“평범하게와 괴물이 가득하다가 같이 있을 수 있는 단어입니까….”
“이곳은 그렇지 않았어. 잠입한 직원, 요원 중 상당수가 멀쩡히 돌아왔지. 심지어 별다른 전투 흔적도 없었다.”
들어가자마자 터무니없는 괴물이 공격하는 장소는 아니라는 것.
“문제는 직원은 물론, 요원들조차 내부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기억할 수 없는 세상이군요.”
“맞아. 우리는 – 자꾸 이러네. 관리국은 내부의 비밀을 궁금해했다.”
“그럴만하죠.”
“그래서 강력한 정신 방어력을 가진 요원을 보냈지.”
“은솔 누나처럼 피리가 있다거나?”
“비슷한데, 수준이 훨씬 낮았어. 피리 같은 특급 보물은 세상에 드무니까.”
“그 사람도 기억을 잃었습니까?”
“대부분.”
대부분과 전부는 다르다.
일부는 기억하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가 아닐지.
“뭐라고 하던가요?”
“딱 한 문장만 기억하더라. 이곳에 구원의 가능성이 있다.”
“…”
구원.
신비롭지만, 또한 꺼림칙한 단어다.
여태껏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말을 호텔에서 여러 차례 들었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구원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게 다야. 그 후로도 여러 번 누군가를 보냈지만, 언젠가부턴 살아나오는 사람조차 드물어졌지.”
“으음….”
“어느 시점부턴 관리국도 포기했다. 사실, 이런 것 하나에 매달리기엔 이 세상에 신비롭고 해괴한 장소가 한둘이 아니거든.”
이런 장소에 가는 게 도움이 될까?
…
앞으로 우리가 하려는 것 역시 파멸의 위기를 막아내는 일이다.
‘구원의 가능성’이 있는 장소를 살피는 일에도 의미는 있겠지.
— 툭!
할아버지가 내 어깨를 툭 쳤다.
“30년도 넘은 이야기라 나도 잊고 있었는데, 네게 이계 관련 이야기를 들으니 자연스레 떠올랐다.”
“… 상태창 때문이군요.”
“펜 가져왔지?”
“네.”
어디에나 써지는 펜과 상태창.
이 둘을 조합하면, 죄수조차 편집할 수 없는 무적의 메모장이 탄생한다.
설령 내 기억이 사라진다 해도 기록은 남으리라.
*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37일 차
현재 위치 : 강원 특별자치도 태백시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관리국이 포기한 장소라는 할아버지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이계의 입구 주변에 무장 직원을 배치하긴커녕, ‘출입 금지’라 적힌 철조망 하나 두른 게 끝이었기 때문이다.
“보안이 너무 허술한 것 아닙니까?”
“보통은 저런 철조망 하나 설치하면 일반인은 근처도 안 가.”
틀린 말은 아닌데, 그래도 허술해 보인다.
“세상에 괴상한 장소가 한둘인 줄 아냐? 매일 점심마다 식인 괴물을 토해내는 연못에 배치할 사람도 모자라다.”
“…”
“사람만 없지, 보안 시스템은 지금도 작동 중이라고.”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다.
우선순위를 따지면야, 식인 괴물이 매일 튀어나오는 연못부터 막아야겠지.
철조망 너머로 걷다 보니 허름한 오두막이 나타났다.
“아주 낡았군요. 위장을 위해 지은 건가?”
“어, 낡은 건 위장이 아니고 그냥 관리를 하지 않아서다.”
“…”
“가만히 있어라. 그래도 보안 센서는 여기저기 있거든.”
관리국이 설치한 보안 시스템을 할아버지가 해체하기까지 30분이면 충분했다.
새삼스럽지만, 관리국도 자신들이 설치한 걸 전직 요원이 해체하는 미래까진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오두막 입구에 멈췄다.
“들어가려고 하니 좀 불안하긴 하구만.”
“별일 없이 나온 사람이 대부분이라면서요?”
“우리도 그럴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
“…”
“오랫동안 나오지 않으면 아리가 구출하러 오긴 할 게다. 꿈의 왕국이 있으니까.”
“불안한 이야기 그만하고 들어가죠.”
— 턱!
문을 잡은 채 잠시 멈췄다.
열자마자 위험하면 알림이 뜨지 않을까?
“하 이놈아! 불안한 이야기 하지 말라면서 네가 이러냐!”
“… 엽니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37일 차
현재 위치 : 검색 중….
현자의 조언 : 3」
처음으로 인지한 것은 회색으로 가득한 공간.
입구도 출구도 보이지 않는 답답한 방에 나와 할아버지가 갇혀있음을 알았다.
나갈 길을 찾던 중, 오랜만에 대화 창이 깜빡였다.
“천장! 천장!”
고개를 드는 순간, 할아버지가 눈을 부릅뜬 이유를 알았다.
“저건…!”
거울!
거울이다!
207호, 소위 모의고사에서 종말을 부르는 빛의 주요 원인이 ‘거울’임이 밝혀졌으니, 현실에도 있으리라 짐작은 했는데!
설마 이런 곳에 있었어?
현실의 거울은 관리국의 통제 영역 밖에 있다?
아니면, 큰 덩어리는 관리국이 가지고 있고 통제 영역 밖에 있는 조각도 있다?
머리가 혼란스러워지려는 찰나 – 오랜만에 대화창이 깜빡였다.
멀리서 손님이 오셨구려.
바로 옆에 있으면서 대화창?
당황하는 순간, 할아버지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었다.
“나 아니다!”
그제야 눈을 부릅뜨고 ‘대화자’가 누구인지 살피니, 기다렸다는 듯 흐릿한 이미지가 떴다.
검색 중 : 손님맞이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아쉽구려. 허나, 미리 연락하지 않고 왔으니 이해하리라 믿소.
“이건…!”
소통이다.
할아버지가 아닌, 다른 소통의 주인이 이곳에 있다!
검색 중 : 로마에는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지. 내 집에선, 내가 세운 법도를 따라주길 바라오.
본인만의 법을 따라라? 이게 무슨 –
— 지지직…!
다음 순간, 머릿속을 긁는듯한 섬뜩한 감각과 함께 이해할 수 없는 힘이 엄습했다.
아예 몰랐으면 이게 뭔가 했겠지.
하지만, ‘기억할 수 없는 세상’의 특징에 대해 듣고 왔으니 즉시 알았다.
나와 할아버지의 기억을 주무르려는 것!
상태창의 정신 보호로는 지금의 공격을 견디기에 충분치 않았다.
즉시 마도서를 소환했다.
바로 이런 순간을 위해 세레나의 깨달음을 내가 흡수하지 않았는가.
— 펄럭!
내가, 내 정신이, 내 영혼이 한 점으로 응축한다.
세레나의 깨달음, ‘궁극의 자아’가 내 정신을 보호하려는 순간.
위기 알림이 동작했다.
「조언 : 3 -> 0」
「간섭을 받아들여라. 크게 보면, 그리 해야 이득이니라.」
“…”
저항하지 말라는 조언.
그동안 같으면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따랐겠지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억할 수 없는 세상’의 지배자는 전 참가자이며 축복, 소통의 주인이다.
유산인지 축복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은 할아버지에겐 없는 기억 조작 능력이 있는 것 같다.
다른 참가자와 충돌하는 상황에서도 올빼미가 ‘나를 위해’ 조언해줄까?
“…”
믿자.
이번에는 믿어도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상대는 ‘지혜’가 아니라 ‘소통’의 주인이니 올빼미 역시 내 편을 들 것 같다.
그렇다면, 상대가 또 다른 ‘지혜’의 소유자라면 올빼미는 누구 편을 들 것인가.
할아버지가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허…! 소통에 이런 가능성도 있을 줄이야!”
… 어떤 축복은 악독한 마음을 가진 자가 얻어야 제 성능을 발휘하기도 한다.
의식이 허물어지기 직전, 첫 번째 기록을 남겼다.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내 기억 조작
의심할 것
현자의 조언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