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68)
EP.568 568화 – 베스트 프렌드 (1)
568화 – 베스트 프렌드 (1)
– 한가인
패트릭 비더만, 라이언 레이놀드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또 다른 지혜.
세 명의 전 참가자와 충돌한 후, 나는 마음속으로 한 가지 결단을 내렸다.
신성한 태양을 다시 채워야 한다.
처음 탈출했을 때만 해도 더 이상 충전하지 않을 생각이었지.
저주의 방 내부의 NPC가 아닌, 현실의 사람을 대상으로 충전한다는 게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따져도 망각의 소원과 관리국의 방해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기도 했고, 한번 싸울 정도의 힘은 남아있었기에 마음에 여유도 있었다.
상황이 바뀌었다.
호텔이 예고한 본격적인 위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태양은 비어버렸고, 적은 막강하다.
상황이 바뀌면 계획 또한 바뀌어야 함이 인지상정.
…
플랜 B에서 중요한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신성한 태양의 충전 판정은 생각보다 너그럽다.
군중이 날 꼭 신으로 여기지 않아도 된다.
206호에서 시민들이 날 시조의 후계자로 여기니, 그것만으로도 힘이 차올랐음을 기억하라.
엘레나가 내게 판단을 의지할 정도로 전폭적 신뢰를 보이자 그것도 일종의 신앙심으로 취급했다.
외모나 이름 등은 중요하지 않다.
이 부분은 사실, 현실 종교도 마찬가지다.
하나님, 알라, 부처님, 브라흐마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사람?
‘야훼’는 유대인들이 본래 부르던 – 여호와, 야흐오, 야흐와 등 다양한 학설이 있다 – 명칭을 잊었기에 나온 추측 중 하나일 뿐이다.
둘째, 익투스가 아직도 살아있었다!
한여름 밤의 꿈 당시 벌어진 일을 다시금 되새겨보자.
1층 정문을 통해 탈출, 하늘에서 추락하다가 페로에게 빙의한 채 모래시계를 써서 내 몸을 허공에 멈췄다.
말하는 앵무새가 되어 관리국에 포획당했다가, ‘익투스’가 탈출할 때 같이 나왔다.
이후로는 익투스가 모시던 악마, 아폴리온과 협력해 하늘에서 추락하는 내 몸을 되찾았지.
마지막에 소소한 갈등이 생겨 아폴리온이 죽긴 했지만,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이 모든 일은 우리에겐 꽤 오래된 일이지만, 현실 기준으론 약 1년 반 전에 일어났다.
그러므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나저나 악마가 죽었는데 악마 숭배자가 살아있어?
라고 하기엔, 딱히 죽을 이유가 없긴 하네.
굳이 따지면 보호자가 사라졌으니, 관리국의 가차 없는 토벌에 당했을 줄 알았는데….
익투스 나름의 수가 있었던 모양이다.
자세한 사정은 직접 만나보면 알 수 있겠지.
여기까지 상황을 정리하던 중, 옆에 있던 사람이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가인 씨.”
“네?”
“그 사람, 어떤 능력이 있다고 했죠?”
“사람을 홀리는 카리스마, 약간의 신통력, 거기에 내 빙의에 저항하는 힘이죠. 다만.”
“다만?”
“아폴리온이 죽은 지금도 저 힘이 그대로일까? 그것까진 봐야 알겠네요.”
“또 하나. 섣불리 접근해도 될까요? 당신을 알아보면 -”
“내가 꿈으로 빈 소원이 무엇인지 잊었어요?”
“아하!”
“관리국도 나에 대한 정보를 대부분 잃었는데, 그 녀석이라고 예외일 리가 없죠.”
“마지막! 그 사람을 어떻게 찾았어요?”
너무 쉬웠다.
“아리에게 들었죠.”
“네?”
“숨어지내는 걸 관리국이 최근에 찾았다고 하더군요.”
“… 생존력이 대단한 듯하면서 미묘하게 허술한 사람이네요.”
“내 친구입니다.”
진심 어린 이야기였는데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동료는 동의할 수 없던 모양이다.
“지금은 ‘요한’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네요.”
“기독교의 12사도 중 하나죠. 이 친구, 전에도 그러더니 참 기독교 좋아해요. 이럴 거면 그냥 교회를 다닐 것이지.”
*
– 익투스(ἸΧΘΥΣ)
지금으로부터 약 1년 반 전.
나는 평생 모셔 온 신을 잃었다.
이해할 수 없는 무서운 존재가 존엄한 아폴리온을 이 세상에서 지워버린 것.
그날의 일은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아폴리온의 유해를 온몸으로 맞으며 울부짖었다.
광야에서 하느님을 찾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이스라엘의 메시아조차 신을 잃은 적이 없으니, 그날의 내 고통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으리라.
죽은 줄 알았다.
살아날 도리가 없다고 여겼다.
비루한 목숨을 이대로 내려놓고 싶었다.
…
나는 살아남았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리라.
나라 전체를 떠들썩하게 할 정도의 사고였으니 관리국이 뒷수습하느라 바빴다는 게 첫째다.
둘째 이유는 다름 아닌 나의 성장이 아닐까?
일찍이 이런 말이 있다.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 (너를 죽이지 않는 시련은 너를 더 강하게 만든다.)
인간은 시련 속에서 강해진다.
나처럼 선택받은 자 역시 마찬가지다.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 속에서….
나는 살아남았으며, 또한 강해졌다.
*
주식회사 선라이즈의 대주주와 이사들이 모인 회의장.
“xx 년 상반기 보고입니다. 상반기 매출은 무려 13%나 상승했으며, 여기에는 다이아몬드 계급의 적극적인 기여가 -”
“호재가 더 있습니다! 중국 정부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
“베트남 지사의 매출 역시 상승곡선이며 -”
쉼 없이 들려오는 기쁜 소식에 모두의 표정이 밝아진다.
선라이즈 사의 매출과 순익이 늘어난다는 것의 의미는?
결국, 대주주와 이사들이 부자가 되고 있다는 말이 아니던가!
자연스레 신실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을 보라.
그래, 이것 역시 과거의 일을 통해 내가 얻은 교훈이다.
사람들의 신실한 마음을 키우는 데 필요한 건 설교나 은총 따위가 아니었다.
통장에 꽂히는 황금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기적이 아니던가!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내가 신도들을 모아두고 설교하며 ‘위대한 은총’을 베풀면, 포악한 관리국에서 군대를 보낸다.
반면, 사업이 부흥하며 황금을 얻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엎드리면, 군대가 오긴커녕 정부에서 표창장까지 준다.
그렇다고 선라이즈의 성공이 ‘교단’과 무관한 것도 아니다.
“하하, 요한 이사님! 이번에도 수고하셨습니다.”
“정말이지, 이사님만 믿고 따르니 모든 일이 술술 풀리지 않습니까?”
“요한 이사! 당신은 정말…. 하늘이 내린 분일세!”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주변 사람들을 보라.
이사와 대주주는 물론, 표면적으로 내세운 회장 역시 내게 고개를 조아린다.
이들은 과거의 신도들과 다를 바 없다.
신이라는 구식 단어가 ‘요한 이사님’으로 바뀌고, 기도하는 대상이 아폴리온에서 ‘요한 이사님’으로 바뀌었을 뿐.
결과적으로 내게 엎드리는 이가 늘어난다는 방향성은 같은데, 한쪽은 군대가 오고 다른 한쪽은 표창장이 온다.
무엇이 더 현명한 방향인지는 답이 나왔다.
과거, ‘누군가’가 내게 이런 지혜를 주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나 혼자서는 깨닫지 못한 채 시골 교주 역할이나 하고 살았겠지.
“…”
누구였지?
누가 내게 지혜를 내렸는가?
분명 알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기억나지 않는다.
“이사님? 왜 그러십니까?”
“허허, 아닙니다. 잠시 생각할 게 있었습니다.”
한 달 전인가? 아니면 두 달 전?
그 시기에 갑자기 머릿속 기억의 많은 부분이 흐릿해졌다.
아폴리온의 죽음 과정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하던 그 시점.
“이사님! 요한 이사님!”
경박한 목소리에 살짝 눈썹을 치켜뜨니, 최근 이사회에 영입된 사람이 나타났다.
“박진호 이사, 무슨 일입니까?”
“감탄했습니다! 이 박진호, 요한 이사님의 수완에 또 한 번 감탄했습니다!”
“… 과찬이시오.”
뭔 소리냐?
갑자기 뭔 감탄?
“이런 큰일을 아무도 모르게 벌이시다니요! 제게 귀띔이라도 해주셨으면 좋았을 것을!”
“…”
이 자식 갑자기 왜 이래?
무슨 큰일을 벌여?
나도 모르는데 너한테 뭘 알려주라는 거야?
나로선 무척 당황스러운데, 주변의 이사와 대주주들은 벌써 기대감 가득한 표정을 짓는 상황.
별수 없이 어색하게 웃어넘기려는 차, 연단에서 오늘의 상반기 결산을 발표하던 사회자가 당당하게 외쳤다.
“자~! 선라이즈 가족 여러분! 오늘의 가장 기쁜 소식은 따로 있습니다! 새로운 가족을 소개하겠습니다. 요한 이사님께서 특출난 수완을 발휘해 모셔 오신 -”
내가 뭘 어쨌다고?
특출난 수완으로 누굴 모셔 와?
“- 엘레나 이바노바 님이십니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대단한 미녀가 들어오는 순간, 회의장에 잠시 정적이 자리 잡았다.
물론, 정적이 깨지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모두 박수로 맞이해주세요!”
“와아아아!”
“화, 환영합니다!”
삽시간에 주주와 이사들의 얼굴이 시뻘게지며 난리가 났다.
들어온 사람이 단순히 아름다운 아가씨라서가 아니다.
그녀, 엘레나 이바노바는 세계 최고의 호화 유람선 에스퍼 호의 주인이자 개인 재산이 ‘최소’ 천억에 달한다는 부호였기 때문이다.
그녀보다 부유한 사람은 한국에도 더 있지만, 그녀만큼 아름다우면서도 유명하고, 세계적인 유명 인사들과 교류가 있는 소위 ‘셀럽’은 드물다.
이런 유명 인사가 회사에 합류한다면, 얼마나 많은 광고 효과와 인맥 창출이 있을 것인가!
장밋빛 기대가 사방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불길한 말을 지껄이는 사람도 있었다.
“그, 듣기로는 최근에 에스퍼 호에 무슨 사고가 났다고 들었는데….”
“아이고 박 이사님! 그런다고 저 미모와 재산이 어디 갑니까?”
“이 친구야! 배는 여차하면 다시 만들면 그만이지!”
당연히 순식간에 진압당했다.
저 아름다운 아가씨의 합류가 회사에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는가는,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미 황금으로 가득한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
“에헴! 안녕하세요.”
“우왓! 한국어도 잘하시는군요?”
“그렇답니다. 세간엔 알려지지 않았지만, 어린 시절 한국에서 살았거든요.”
“오오!”
“선라이즈 사의 비전에 대해서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제가 투자하게 된 이유는 -”
선라이즈사에 내 사리사욕 말고 무슨 거창한 비전이 있었나?
창업자인 나도 처음 듣는 비전을 아름다운 아가씨가 열심히 떠들기 시작했다.
행복한 꿈으로 가득한 회의장.
익투스 – 요즘은 ‘요한 이사’라 불리는 나는 딱 한 가지가 궁금했다.
“…”
저 여자 누가 데려옴?
난 아닌데, 왜 다들 내가 데려왔다고 야단이지?
곧, 모두의 시선 속에서 그녀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저런 미녀가 접근하는 상황 자체가 부러웠는지, 내게 질시의 눈길을 보냈지만….
나는 극도의 긴장감으로 식은땀이 흐르는 걸 감추느라 바쁘다.
— 털썩!
“안녕하세요?”
“… 안녕하십니까.”
이 유명한 아가씨에게 무엇부터 물어야 할지 내용을 고르는 시점.
무언가 – 부드러운 생물이 내 어깨에 올라왔다.
“음?”
“하핫, 제가 아끼는 앵무새랍니다. 친절히 대해주세요.”
황당하기 그지없는 행위.
일반인이라면 이게 무슨 짓이냐는 고성이 나왔겠지만, 상대는 회사에 장밋빛 꿈을 가져온 대부호이자 화려한 미모의 젊은 아가씨다.
덕분에 이런 행동조차 모두가 웃어넘겼다.
“하하! 이것 참 귀여운 새로군요?”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말은 잘하나요?”
“이름은 페로고, 말은 엄청나게 잘한답니다. 저기…. 부탁이 있어요.”
“어엇! 말씀하시지요!”
“요한 이사님께 개인적으로 드릴 말이 있는데, 가능할까요?”
“물론입니다. 여기, 이쪽에 방음이 잘 되는 방이 있습니다.”
홀린 것처럼 정체 모를 아가씨, 앵무새와 함께 개인실로 들어가며 생각했다.
다른 건 몰라도 ‘말을 잘한다’라는 말은 진실이구나.
앵무새가, 내 어깨 위에서 속삭였기 때문이다.
“친구, 오랜만이지?”
이제야 알았다.
오늘의 괴상하기 짝이 없는 일을 꾸민 게 이 새로구나.
“… 초면입니다만.”
“섭섭하네. 우리가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 네가 이토록 훌륭한 사업체를 꾸렸을 줄은 상상도 못 했어.”
“…”
“사업에 재능이 있었구나? 몰랐네.”
수상할 정도로 친한 체하는 정체 모를 괴물이다.
그런데, 어색하지 않았다.
분명 모르는 새인데.
분명 모르는 목소리인데.
이상할 정도로 익숙했다.
잊어버린 기억 속의 한편에 이 ‘친구’가 있는 것 같았다.
“믿었어, 믿었다고! 내 소중한 친구 익투스.”
“…”
그날 이후 모두에게 숨긴 내 진실한 이름, 익투스(ἸΧΘΥΣ)를 들었음에도 놀랍지 않았다.
무의식중에 ‘이 새라면 내 이름을 아는 게 당연하다’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투스야, 대답 좀 해봐.”
“‘익’이 성이고, ‘투스’가 이름이 아닐세.”
“우린 이제부터 큰일을 하게 될 거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지 간에 금발 아가씨와 이 수상쩍은 새를 쫓아내리라 마음먹었다.
그래서 손끝에 ‘존엄한 힘’을 모으는 순간.
“오~! 이 파동! 대단한데?”
“…”
“혹시나 했는데 역시 그렇네. 아폴리온이 죽을 때 파편을 주워서 힘을 얻었구나? 역시 내 친구야.”
“거기까지 알았다면, 얌전히 물러나는 게 좋을걸세. 내가 손을 쓰기 전에 -”
“친구, 널 위해 하는 말인데, 지금 이 건물은 포위된 상태야.”
순간, 말문이 막혔다.
“관리국 요원이 타격대 일곱을 이끌고 왔거든. 궁금하면 확인해 봐도 좋아.”
“…”
“어때, 이제 나랑 동업할 생각이 들어?”
“… 왜 이렇게 동업을 바라는지 모르겠는데. 비범한 새 친구,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도 -”
“섭섭하게 왜 이래? 우린 베스트 프렌드라고.”
“…”
“친구 사이엔 니꺼 내꺼가 없는 거야.”
이 말은, 그동안 들은 말 중에 가장 불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