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70)
EP.570 570화 – 베스트 프렌드 (3)
570화 – 베스트 프렌드 (3)
– 익투스(ἸΧΘΥΣ)
관리국의 개입으로 진행 중이던 상반기 결산 보고가 초토화된 지도 이틀째.
상황은 점차 혼란으로 치닫고 있다.
난데없이 무도한 군인들에게 멱살 잡히는 것으로도 모자라 뺨까지 얻어맞은 선라이즈의 이사와 대주주들이 엄청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는, ‘요한 이사’가 평소에 쌓아온 신뢰 정도로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 지이잉! 지이잉!
“익투스.”
“웬만하면 요한이라 불러주게.”
“음, 그 부분은 좋아! 요한, 핸드폰이 울리는 것 같은데?”
건너편에 앉아있는 사람은 감탄이 나올 정도의 미인인데, 정작 이 아가씨는 음료만 마시고 있다.
대화 상대는 테이블 위의 앵무새다.
나도 보통 사람은 아니지만, 요즘의 일은 진짜 뭐가 뭔지 모를 노릇이군.
“핸드폰이야 어제부터 난리지. 이사와 주주들은 내게 해명을 바라고 있네.”
“해명?”
“대체 무슨 사고를 쳤길래 관리국이 개입했냐는 게지.”
“삐이이….”
“삐이이 할 게 아니야. 이대로라면 선라이즈는 끝일세. 이 세상에 관리국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있을 것 같나? 억만금을 벌어도 관리국 군인이 와서 총 한 발 쏘면 모든 것이 -”
“흥분하지 말고 진정해. 관리국은 개입하지 않을 거라니까?”
관리국은 선라이즈에 개입하지 않는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꿈만 같은 이야기였지만 놀랍게도 이 말에는 상당한 근거가 있었다.
내 앞에서, 요원이 날 발견하고도 순순히 물러갔기 때문이다.
당시엔 그저 놀랐을 뿐이나 흥분이 가라앉고 곰곰이 생각하니 답이 나왔다.
이 ‘친구’는 관리국과 연줄이 있다.
직원 몇몇을 신통력으로 홀린 수준이 아니라 무려 ‘요원’과 연줄이 있다!
단순히 연줄일까?
그게 아니라면….
“친구, 혹시나 해서 말인데…. 자네, 혹시 관리국의 일원인가?”
친구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부리를 비틀었다.
여러 번 보며 느꼈는데, 정상적인 새라면 하지 않는 저 동작의 의미는 분명 ‘비웃음’이다.
“숨길 필요 없네! 나는 자네가 관리국 요원이라 해도 받아들일 – 아니지, 그 경우엔 내가 모셔야지. 모실 준비가 되어있네. 나는 -”
이번의 내 말은 조금 당황스러웠는지, 앵무새가 고개를 까딱했다.
“뭐? 요원이라도 모실 준비가 되어있어?”
“그렇다니까?”
“… 그, 익투스 – ”
“요한.”
“네가 잊은 과거의 진실에 대해 내가 해준 말을 잊은 거야?”
“진실?”
“아폴리온의 죽음은 관리국의 계략이었다고 했잖아. 그런데 -”
“친구,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일세.”
평생을 모셔 온 존엄한 아버지, 아폴리온은 파멸했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관리국의 계략이었다는데, 듣기 전부터 짐작했기에 놀라지 않았다.
“지나간 일?”
“나는 아버지를 사랑했네. 아버지께서도 날 사랑하셨겠지. 그러니, 아들이 앞으로도 잘 살기를 바라시지 않겠나?”
“… 복수를 바랄 것 같은데.”
“어허! 이 답답한 친구야! 복수하면 죽은 아폴리온이 살아나기라도 하나? 죽은 사람 – 신은 죽은 대로 잊고, 남은 사람은 새 삶을 살아야지!”
갑자기 앵무새가 붕어처럼 부리를 뻐끔거리더니, 고개를 엘레나 양쪽으로 돌렸다.
“쿡!”
“엘레나 양?”
“풋! 아하핫! 이거, 진심이네요.”
진심이네요?
지금 내 말이 진심인지 거짓말인지 판별한 건가?
앵무새뿐만이 아니라 아가씨 쪽도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구나!
“저 말이 진심이라고?”
“하핫! 요한 이사님 생각보다 재밌는 분이시구나. 알았어요, 알았는데, 관리국 부분은 정말 아니랍니다. 우린 관리국과 같은 편이 아니에요. 그냥, 아는 사람이 좀 있는 정도지.”
“… 그렇습니까.”
실망스럽다.
나는 이 둘이 차라리 관리국의 일원이길 간절히 소망했기 때문이다.
현재 선라이즈에 벌어진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건 관리국뿐이니까!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지. 선라이즈는 위기일세. 이사와 주주들은 내게 해명을 요구하고 있고, 난 해명할 방법이 없어.”
“아, 그것 때문에 우리보고 관리국 사람이냐고 물은 거냐?”
“어떻게 할 셈인가? 친구에게 애원하기는 염치없네만, 이대로 회사가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걸 바라진 않을 것 아닌가!”
미묘하게 엄브렐라 코카투 품종을 닮은 앵무새가 고개를 까딱였다.
“물론이지. 엘레나.”
그러자 아가씨가 그림이 그려진 종이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이게 뭡니까?”
“제작 의뢰한 조각의 디자인이랍니다. 완성까진 며칠 남았어요.”
“음? 이건….”
“어때요?”
굉장히 화려한 동물 조각이다.
“부엉이 조각입 -”
“올빼미.”
“올빼미 조각? 여하튼, 그림대로라면 대단히 비싸 보이는군. 여기저기 보석이 가득한데? 설마 진짜를 쓸 생각인가?”
“당연하지.”
“목적은?”
“잘 들어.”
…
한참 동안 설명을 들은 후, 나는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이런 말이 있네. 이유 없이 날 싫어하는 이가 있다면, 싫어할 이유를 만들어줘라.”
“그런데?”
“… 나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관리국의 손에서 벗어날지 고민했는데, 자네는 관리국이 우릴 싫어할 확실한 이유를 추가하는 느낌이군.”
그래서 불안했다.
“비유가 이상한데?”
“뭐?”
“관리국은 원래도 이유 없이 선라이즈를 싫어한 적 없어. 익투스 네가 이유 그 자체잖아.”
“… 요한이라 부르게. 조만간 이사회를 소집하지.”
*
“재밌는 사람이네요!”
“황당하지 않아요? 어제 내가 아폴리온의 죽음에 숨겨진 진실 -”
“진실이 아니고, 가인 씨가 지어낸 거짓말.”
“… 거짓말을 해줬더니, 눈물까지 뚝 뚝 흘리던 놈인데.”
“그랬어요?”
“그러더니 오늘 와서는 죽은 악마는 악마고, 난 살아야겠다고 저 난리네. 뭐? 자네가 요원이면 충심으로 모실 준비가 되어있어?”
“굉장히 ‘유연한’ 사고방식이네요.”
*
– 익투스(ἸΧΘΥΣ)
이사회가 시작하자마자 난리가 났다.
“요한 이사,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나, 난 아직도 그 고릴라 같은 요원이 꿈에 나옵니다!”
“사람이…. 어찌 사람이 키가 3m가 넘을 수 있는지.”
키가 3m면 그건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고! 멍청한 놈 같으니!
“단순히 그날의 고생이 문제가 아닙니다! 군인들이 수시로 총을 겨누기 시작하면, 회사가 굴러가겠습니까? 이…. 이 다이아몬드 배지에 무슨 의미가 있냐는 말입니다!”
저 말하는 놈은 다이아몬드 배지를 얻은 날 무릎 꿇고 눈물까지 흘렸던 놈이지.
“요한 이사님!”
“…”
“요한, 요한 이 사람아!”
“…”
사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무시한 채 가만히 침묵했다.
본디, 대화란 내가 아닌 상대가 애원하게 만들어야 하는 법.
5분 정도 침묵을 지키니 주변이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지금이지.
— 짝!
가볍게 손뼉을 치니,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모인다.
“여러분의 걱정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대한 답 역시 준비해두었지요.”
주변에서 슬며시 피어나는 기대감을 느끼며 말했다.
“오늘 나는 두 가지를 이야기하러 왔습니다. 첫째, 여러분이 두려워하는 관리국의 폭거는 더 이상 없습니다.”
“그 말을 -”
“믿으라는 겁니까?”
“어허! 말하고 계시지 않나!”
“아무 소리나 하고 있으니 -”
산발적인 소요.
하긴, 내가 안심하라 한다고 쉽게 안심할 상황은 아니지.
증거가 필요하다.
관리국이 우리를 공격하지 않으리라는 증거.
‘친구’가 만들어낸 기적이!
“여러분, 곧 손님 한 분이 들어올 텐데, 모두 침묵해주시기 바랍니다.”
“갑자기 손님? 요한! 돈 많은 놈 하나 데려온다고 안심할 상황이 -”
“침묵해주시기 바랍니다.”
“…”
다시금 조용해진 회의장.
곧,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의 체형은 사람보다는 고릴라의 그것에 가까웠고, 3m라는 말도 안 되는 수치까진 아니었으나 2m는 넘는 거한이었다.
“햐~! 이거 다 아는 얼굴인데? 안녕들 하쇼?”
“…”
“대답 안 해? 야, 너 전에 이름 뭐라 그랬지?”
“바, 박진봉이라고 합니다, 요원님.”
“인마, 표정 풀어. 오늘은 저기, 저 요한 이사님 초대로 왔으니까.”
바로 이틀 전에 이사들을 공포에 질리게 했던 요원이 직접 나타났다!
허나, 그날과 달리 요원은 더 이상 주먹을 쓸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 자리는? 야! 요한!”
“아무 자리나 편히 앉으시지요.”
다소 기분 나쁠 수 있는 하대.
하지만, 상대가 요원임을 고려하면 받아들여야 한다.
무엇보다 저 사람이 나와 친한 것처럼 행동하니,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뜨지 않는가!
그래, 이거다.
관리국이 불러온 공포를 잠재울 수 있는 건 관리국 요원뿐이다.
…
대체 ‘친구’는 무슨 수로 요원을 저리 부리는 걸까?
본인은 관리국 소속이 아니라고 하는데, 나로선 그 말이 더 수수께끼다.
“여러분, 이제 관리국의 폭거는 없으리라는 제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모두가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해야겠군요. 출발합시다. 선라이즈의 성소(聖所)로.”
“서, 성소?”
종교단체도 아니고 회사에 성소(聖所)라니?
당황하는 이사들의 마음에 십분 공감한다.
사실, 회사에 성소가 생길 줄은 창업자인 나도 몰랐기 때문이다.
*
선라이즈 본사 빌딩 지하.
평소 올 일 없는 폐쇄적인 곳이다 보니 공기가 다소 답답했다.
‘성소’의 문 앞, 뒤로 돌아 모두와 눈을 마주쳤다.
여전히 혼란으로 가득한 사람들의 눈동자가 보인다.
별다른 설명도 없이 무작정 데려왔으니 놀랄 만하지.
“이 자리에 모인 분들은 최소 다이아몬드 계급입니다.”
다단계 – 네트워크 마케팅의 핵심은 계급이다.
브론즈 – 플래티넘 – 루비 – 사파이어 – 에메랄드 – 다이아몬드로 이어지는 철저한 계급 구도!
경쟁 심리를 자극하는 구조 속에서 하위 계급은 상승욕을 불태우고, 상위 계급은 심리적인 만족감과 함께 충성심을 가지게 된다.
“다시 말해, 우리 선라이즈의 진정한 가족이라는 말이지요. 그러므로 회사의 ‘진실한 비밀’을 얻을 자격이 있으십니다.”
진실한 비밀.
참고로 그 비밀은 이틀 전에 만들어졌다.
“들어오시지요.”
— 끼이익!
성소의 문이 열리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내부를 살폈다.
기기묘묘한 그림과 조각이 가득한 괴이쩍은 장소.
여기저기서 타오르는 촛불과 향 덕에 내부 공간은 흐릿하다.
독한 연기를 마신 몇몇 이사들이 콜록거리며 아찔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말없이 성소 중앙의 조각 앞에 무릎 꿇었다.
“요한 이사님?”
“그건 뭡니까?”
“무슨 새 조각 같은 게 -”
“이리들 오시지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모여든 사람들.
나는 다소 과장된 몸짓을 연기하며 조각을 향해 고개를 조아린다.
멘트는 –
어이쿠, 저 조각의 이름을 정하지 않은 것 같은데?
짧은 기간 동안 온갖 걸 준비하다 보니 이런 엉뚱한 부분에 빈틈이 있었다.
“이사님?”
금발 아가씨가 친구를 뭐라고 불렀더라?
페로?
“…”
“이사님, 여기는 대체 -”
“로오오오…!”
“음?”
양손을 모은 채 합장하며 다시금 말한다.
“로오오오…! 로오오오…! 위대한 분이시여! 여기, 어리석은 자 요한이 당신 앞에 왔나이다. 지혜를 내리소서.”
움찔거리는 사람들.
들린다.
사이비 종교 아니냐는 말.
요한 이사가 이상한 종교를 믿고 있었냐는 중얼거림.
그래서 관리국이 왔구나 하는 탄식.
하지만, 아까 회의장에 요원이 있지 않았냐는 속삭임.
믿음보다는 불신이 가득하구나.
슬프다 슬퍼!
이 어리석은 중생들이여!
어리석은 범부들을 어찌해야 빛의 길로 이끌 수 있으리오?
“… 지혜를 내리소서.”
요한아! 익투스여!
그토록 고초를 겪었음에도 아직 인내심을 배우지 못했는가?
우민의 깨달음이 현인보다 늦음은 당연한 것.
지금은 그저, ‘기적’이 도래하길 기다리면 될 뿐이니.
— 삐이익!
신령한 – 솔직히 신령하다기보단 시끄럽지만, 분위기 덕에 신비한 – 소리를 내며 앵무새 한 마리가 나타나 올빼미 조각의 어깨 위에 올라탔다.
직후,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
“어헛! 이, 이게 무슨!”
“뭡니까? 무슨 전기라도 통한 -”
“조용히 하시지요.”
“죄, 죄송합니다. 요한 -”
“조용.”
벼락이라도 맞은 듯 파들거리는 앵무새.
나는 살면서 앵무새도 ‘연기’할 수 있음을 오늘 처음 알았다.
마치 신내림이라도 받은 것처럼 파들거리던 앵무새의 부리가 열렸다.
“삐이이 -! 부곡동새빛아파트폭락신길동264토지신용산역노선확대경성신도시청운동재개발 -”
“우왓! 이, 이게 뭐야!”
“- 925회차앞번호21145129노메디케미컬신약갤노트11배터리폭발이걸믿냐대성IDT9월호재진도코인10월안정 -”
“어, 어! 조, 조금만 천천히 – ”
“조용히 해 이 병신아!”
눈이 벌겋게 물든 채 한 마디라도 기억하려 애쓰는 이 어리석은 중생들을 보라.
실로 영혼 끝까지 탐욕으로 물든 아귀가 따로 없구나.
이들에게 가장 위대한 기적은 곧, 황금의 축복인 법.
“삑!”
신호음과 함께 앵무새의 부리가 닫혔다.
직후, 극도로 흥분한 사람들이 외쳤다.
“뭐, 뭐냐고! 난 하나도 듣지 못했어!”
“박 이사가 뭔가 적는 것 같았는데?”
“이, 이리 보여줘! 다 같이 -”
“우그적!”
“미친 새끼! 종이를 삼켜?”
“우그적! 비, 비밀은! 아그작! 알 사람만 알아야 -”
가만두면 자기들끼리 멱살이라도 잡겠구나.
이것이 사람인지 돼지인지 모르겠노라.
“자, 자. 진정들 하시길.”
거짓말처럼 사방이 조용해진다.
“지금 제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어느새, 조각 앞에 무릎 꿇은 나.
곧,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사람들이 조각 앞에 더없이 공손한 태도로 납작 조아렸다.
“기도합시다. 로오오오…!”
“로오오오…!”
더 없이 신실한 분위기 속에서 – 홀로 생각했다.
아까 뭐라고 했지?
부곡동 새빛아파트가 어떻다고? 폭등? 폭락?
가격이 오르는 지 내리는 지 정도만 다시 말해줄 수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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