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71)
EP.571 571화 – 관리국은 코끼리다 (1)
571화 – 관리국은 코끼리다 (1)
– 차진철
호랑이를 이해하기 위해 호랑이 굴에 직접 들어온 사람.
그게 바로 나, 관리국 신입 요원 차진철이다.
최근 깨달은 한 가지 사실.
요원이란 놈들은 내가 아는 한, 세상에서 제일 오만한 놈들이다.
아리까지 포함한 이야기다.
묵성 요원은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
— 끼익!
서울 근교의 거대한 단독주택 앞에서 내렸다.
가격대가 제법 나가보이는 기암괴석과 그럴듯한 정원은 물론, 작은 호수까지 있는 그림 같은 저택.
고작해야 10명도 안 되는 사람이 사는 장소라기엔 퍽 호화스럽다.
하지만, 한국에서 손꼽히는 재벌, 태성 그룹 회장의 거주지임을 고려하면 이 정도가 당연하다 봐야겠지.
“아오~! 차 후배, 운전을 왜 이렇게 해?”
“…”
“진짜 너무 거칠잖아. 사격 훈련이 아니라 운전 훈련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덜미를 잡으며 내린 사수, 김지호 요원은 내 운전 실력에 불만이 많은 모양이다.
내가 봐도 거친 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은 호텔에서조차 운전을 할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운전 실력이 늘긴 커녕, 호텔 들어가기 전보다도 크게 줄었다.
“미안합니다, 김 선배.”
“아이고! 됐다. 일이나 하자.”
내 사수, 김지호 요원은 정말이지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지만, 소소한 짜증은 금방 잊는 사람이기도 하다.
몇 안 되는 그의 장점이라 볼 수 있지.
“해야 할 일 숙지 했지? 신입, 시작해.”
고개만 까딱이며 네가 하라는 말투.
이 부분은 오만해서는 아니고, 신입에게 일을 가르치는 과정이라고 본다.
그런 것 치고는 살짝 불쾌한 태도긴 하네.
저택으로 다가가 벨을 눌렀다.
— 딩동!
“…”
“…”
“한 번 더 -”
“아니, 아니지. 차 후배. 저 인간들이 우리가 온 걸 모를 것 같아?”
사전에 연락하고 왔으니 모를 리 없다.
“지들 나름대로 항의하는 거야. 이런 거지. 우리가 누구? 대한민국 10대 재벌 태성 그룹!”
“…”
“내가 누구? 태성 그룹 총수 장민철! 그러면 내 사정도 봐줘야 하는 것 아니냐? 하! 웃기지도 않아.”
굳이 이렇게 연극하듯 말할 필요 있나?
이런 것도 태성 그룹을 압박하는 전략인가?
“그냥, 힘으로 열고 들어가면 -”
일리 있다 싶어 자세를 잡았다.
“어어? 야 인마, 힘이라니까 네 팔 힘을 말하는 줄 알았냐? 그게 아니고 -”
— 콰직! 쩌어억!
문이 열렸다.
“들어갑시다.”
“- 아니, 이걸 어떻게 힘으로 열었냐?”
보통이라면 이런 힘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놀라 자빠져야 정상일 텐데, 김지호 역시 요원인지라 어이없어하는 선에서 끝났다.
처음엔 ‘호텔 출신’임을 숨기기 위해 유산은 물론, 용기의 축복도 숨겼지만….
어느 시점부터 약간의 괴력은 숨기지 않았다.
관리국, 요원의 세계에서 이 정도의 특별함은 그리 희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앞의 김지호 역시 나름의 패가 있고.
내부에 진입하니, 김지호의 예측대로 태성그룹 오너 장민철 회장이 눈을 시퍼렇게 뜬 채 기다리고 있었다.
“이게…. 이게 무슨 무도한 짓입니까!”
“무도하다? 우리 말하는 겁니까? 연락은 드렸습니다만.”
“연락! 하! 대놓고 납치극을 벌이면서 연락만 하면 되는 줄 아시오? 내가, 어! 당신 가족을 내놓으라고 사전에 연락하면 순순히 내놓을 생각이냐!”
“회장, 미안한데 난 가족 없으니 그런 협박은 의미 없습니다.”
나와 김지호는 장민철 회장의 늦둥이 막내아들을 데려가기 위해 왔다.
“닥쳐라! 이, 이 자식들!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우리가, 우리가 -”
아들의 안위가 걸려서인지 이성을 찾지 못하는 모습.
옆에 있던 노부인이 흥분한 회장을 말리더니, 눈물까지 글썽이며 나섰다.
“여러분, 제발 생각해주세요. 우리, 태성 그룹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기부금을 냈습니까? 서진이가…. 서진이가 이번에 ‘약간의’ 잘못을 저지르긴 했지만, 속죄할 기회를 주신다면 -”
“그 속죄, 본부 와서 하면 됩니다.”
“거짓말! 우리가, 우리가 모를 줄 아느냐! 네놈들이 서진이를 살려줄 리가 없 -”
— 탕!
한 발의 총성이 사방에 적막을 불러왔다.
— 탕! 탕!
연이은 총성.
김지호가 저택을 장식한 조각 여럿을 총으로 부수고 있다.
보는 앞에서 저지르는 재물 손괴인데, 항의하긴커녕 모두가 찍소리도 못했다.
조금 전까지 열변을 토하던 것이 무색하게 파들거리는 태성 그룹 회장 내외와 감히 다가올 생각도 하지 못하는 저택 경호원들이 보인다.
그렇다.
이들은 우리를 지극히 두려워한다.
회장의 호통은 겁먹은 개의 울부짖음에 불과하다.
“자, 자. 이제 정신들 차리셨나?”
“…”
“우리도 바쁜 몸이라서. 마지막으로 말하지. 비켜! 한 번만 더 큰 소리 내면 내일 태성 그룹 회장님 부고 소식이 한국일보 1면에 뜰 것 같으니까.”
더 이상의 방해물은 없었다.
덕분에 회장의 막내아들, 장서진을 찾기 위해 저택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차 후배.”
“듣고 있습니다.”
“일반인들 같잖은 협박 들어줄 필요 없어.”
“그냥 뭐, 무슨 소리 하는지나 들어보려고….”
“공포영화 좋아해?”
뜬금없이 공포영화?
“영화는 잘 안 봅니다.”
“가끔 봐. 배울 게 많거든.”
“무슨 말인지….”
“잘 만든 공포영화 빌런의 특징이 뭐냐면, 말이 거의 없어.”
“…”
“소통도 거의 하지 않아. 그냥, 다짜고짜 폭력을 행사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지.”
일반인이 우릴 두렵게 하는 법에 관한 이야기.
이 정도는 호텔 경험 덕에 나도 안다.
그러므로 나와 김지호의 견해 차이는 다음 부분에 있다.
“두려움을 사는 법이라면 나도 압니다. 단지, 왜 굳이 무서운 괴물이 되어야 하는지 의문일 뿐.”
“그렇게 해야 우리에게도, 일반인에게도 이득이라고 했잖아.”
“그건 당신 생각이지, 내 생각은 아니지 않습니까.”
입사 3개월 차 신입의 답변치고는 내가 봐도 대단히 건방진데?
김지호에게 살짝 미안한데, 이놈의 반응을 보고 싶다.
나는 ‘관리국을 이해하기 위해’ 신입 요원이 되었으니까.
“… 너도 언젠가 이해할 거야.”
억지로 설득하는 대신, 한발 물러서는 선배 요원의 모습.
흥미로운 부분 아닌가?
일반적인 회사에서 신입이 선배에게 ‘그건 니 생각이고, 내 생각은 다름’ 따위 소리를 했다간 평판이 조져질 텐데 말이지.
관리국의 문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요원 사이의 문화’는 의외로 수평적이다.
요원들 하나하나가 회귀자이기에 하나같이 중세 왕족에 버금갈만한 비대한 자아를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나도 왕족이지만, 너도 왕족이다.
범부, 평민이 우리에게 기어오르는 건 봐줄 생각 없지만, 같은 왕족끼리는 서로 존중하자.
이런 느낌.
그때, 김지호가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차 후배.”
“듣고 있습니다.”
“종종 느끼는 건데, 넌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하는 것 같다.”
“…”
허당인 줄 알았는데 이런 눈치가 있었나?
“나쁘지 않아. 오랜 시간 함께 할 사람들을 이해하는 건 서로에게 도움이 되니까.”
“오랜 시간 함께 할 사람?”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모양이지? 너랑 나는 이번 삶은 물론, 다음 삶과 그다음 삶에서도 계속 만나게 될 거다. 그 어떤 가족, 그 어떤 친구보다도 긴 시간을 함께하는 -”
“…”
“…”
지호야, 이거 남자끼리 할 말은 좀 아니지 않냐?
“아, 씨발. 아니, 아, 후배 네게 욕한 건 아니고 -”
본인도 느낀 모양이다.
“뭐 하다 이딴 말이 나왔지? 여하튼, 내 말은 이해하려는 노력은 좋다 이거야. 근데 하나는 알아두라고.”
“뭡니까?”
“관리국은 코끼리야.”
“무슨 말인지.”
“맹인모상, 장님이 코끼리를 만진다는 비유 들어봤지?”
“…”
“네가 보는 관리국과 ‘위’에서 보는 관리국은 전혀 다를 거야.
신참이 보는 관리국과 베테랑이 보는 관리국은 다르다.
그렇다면, ‘아리’는 어떤 시선으로 관리국을 접하고 있을까?
“들어가자. 여기, 여기가 장서진 그 놈 방인 것 같네.”
*
– 김아리
이른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니 문자가 한 통 와 있었다.
“… 이런 날이 오다니.”
문자의 내용은 단순하면서도 명쾌했다.
‘요원 김아리, 오랜 세월 보여준 헌신과 업적, 특히 호텔을 탈출한 위업을 고려하여 승진을 명한다.’
“…”
나는 오늘 승진한다.
지구 전체를 지배하는 가장 강대한 조직의 핵심으로 올라서는 것.
단언컨대 관리국의 수뇌, 침묵하는 자의 권한은 세속의 그 어떤 지도자와도 비교할 수 없다.
조금 유치하게 말하면, 나는 오늘부로 미국 대통령을 손가락 한번 까딱해서 죽일 수 있는 권력을 얻는다.
“…”
생각보다 그리 기쁘지 않았다.
호텔에서 겪었던 충격적인 경험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권력을 휘두르는 일 따위에 별 취미가 없어서기도 하고.
다만, 강렬한 호기심이 생겨났다.
이제부터 내가 접근할 수 있는 수많은 비밀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
밖으로 나오자 집 문 앞에 검은색 차 한 대가 있었다.
차에 탑승하니 운전석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일어나셨군요.”
“… 네게 존댓말 들으니까 되게 어색한데.”
운전자는 관리국 한국지부 총책임자, 박현민이다.
이 정도 직책이면 진지하게 한국 대통령보다 훨씬 격이 높은 권력자라고 본다.
어디 가서 존댓말 할 일이 드물고, 누군가의 운전기사 노릇 할 일은 더더욱 드물다.
“문자를 받으신 시점에서 당신은 하늘 아래 가장 고귀한 신분입니다.”
“무슨 왕이야?”
“일개 왕 따위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
“당신이 부럽습니다. 정말로.”
“…”
“또한, 영광입니다.”
“출발이나 해.”
“그러지요.”
멍하니 뒷좌석에 기댄 사이, 차는 그야말로 기괴한 경로를 통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상한 장소로 가고 있었다.
뭐, 마음 편히 있자.
아무렴 관리국 한국지부장이 날 갑자기 암살하겠는가.
그보다 고민에 빠질 시간이다.
나는 이제부터 무엇을 알고, 무엇을 할 수 있게 될까?
나보다 먼저 침묵하는 자의 직위에 앉았던 이들은 왜 나를 승급시키기로 했지?
침묵하는 자 중 일부는 전 참가자겠지?
혹시 전대 지혜의 주인을 오늘 만날 가능성은?
…
머리가 복잡해진다.
너무 많은 가능성이 동시에 떠오르니, 도리어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가늠할 수 없었다.
“무슨 생각 중이십니까?”
“많은 생각.”
“… 궁금하군요.”
“안돼. 운전에 집중해.”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진 채 2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여기, 호주 아니야?”
“맞습니다.”
서울에서, 비행기도 아니고 차 타고 2시간 만에 호주라….
한국지부장 정도 진급해야 알 수 있는 비밀 통로 같은 건가?
…
그러려니 하자.
어차피 조금 후면, 저 사람이 아는 모든 정보는 물론 더 많은 비밀이 내 손에 들어온다.
“저기, 탑 같은 것 보이십니까?”
“보여.”
“그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슬쩍 뒤를 보니, 박현민은 차 밖으로 나와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제게는 자격이 없습니다. 당신에겐 있고.”
“길 안내 고마웠어.”
“아닙니다. 다만….”
“다만?”
“고마우시다면, 질문드려도 되겠습니까?”
“…”
“지금 무슨 생각 중이십니까?”
얘, 은근히 호기심이 많네.
하긴, 관리국 상위 계급쯤 되면 이런 호기심이야말로 살아가는 원동력 중 하나겠지.
“나도 너처럼 궁금해하고 있어.”
“무엇을 말이죠?”
“침묵하는 자 말이야.”
“네.”
“‘무엇에 대해’ 침묵하는 걸까?”
“…”
탑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