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72)
EP.572 572화 – 관리국은 코끼리다 (2)
572화 – 관리국은 코끼리다 (2)
– 차진철
김지호가 장철민 회장의 막내, 장서진의 거처로 다가갔다.
“냄새가 나네. 느껴지지?”
“들어갑시다.”
내겐 느껴지지 않았다.
김지호는 종종 혼돈, 타락의 징후를 후각으로 느끼곤 하는데, 본인도 능력의 근원은커녕 그런 능력을 언제 얻었는지도 모른다.
요원 중 이런 사람이 널렸기에 내 ‘괴력’도 별일 아닌 것처럼 넘어갈 수 있었지.
— 끼익!
방이라기엔 정말이지 넓은 공간이다.
방송에 나오는 금수저들이 종종 ‘내 방 수영장, 내 방 거실’ 같은 단어를 쓰면서 서민들이 뒷목을 잡게 하는데, 딱 그런 느낌의 장소.
주변엔 조각에 쓰이는 듯한 여러 종류의 칼과 새하얀 돌덩어리, 질척이는 흙과 종류를 알 수 없는 다수의 염료가 있었다.
장서진, 태성 그룹 회장 장민철 회장의 막내아들.
그는 세간에 천재 조각가로 유명하다 들었는데, 조각을 위한 작업실인 모양이다.
작업실 중앙엔 홀쭉한 체구의 젊은 청년이 있었다.
서른은 넘었다고 들었는데, 외모만 보면 20대 초반처럼 보이네.
그는 침입자인 우리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그쪽에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지금 한창 작업 중이라서.”
이번에도 내가 나섰다.
“장서진, 헛소리 말고 나와라.”
“어차피 작품 때문에 오신 거 잘 압니다. 완성품이 하나 늘면 관리국에도 이득 아닙니까?”
태연하기 그지없는 목소리.
“본부에서 조사받은 후에 마저 완성해도 늦지 않겠지. 좋은 말 할 때 듣길 바란다.”
바깥의 장민철 회장 내외는 눈에 핏발이 설 정도로 긴장해 있었는데, 정작 잡혀가는 당사자는 평온한 모습이다.
장서진은 알고 있는 것이다.
관리국이 자기 능력을 탐내고 있으며, 섣불리 죽일 리 없다는 사실을.
눈치가 전혀 없는 놈은 아니라는 것.
“몸 쓰는 일 하시는 분이라 그런가? 조금 답답하네.”
“…”
은근히 신경을 긁는 말투가 거슬렸다.
“미안한데, 영감이라는 건 흐릿한 잔상이거든요. 끌려가서 조사받고 하다 보면 영감도 흐려지고 -”
— 탕!
장서진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총소리와 함께 탁자 위의 조형물이 터졌다.
뜬금없이 사격?
아직 말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는데?
김지호 이 인간 오늘따라 굉장히 신경질적인데?
“어이쿠! 뒤쪽 분은 성격이 급하시군요.”
“야, 우리도 시간 없으니까 순순히 -”
— 우드득!
돌이 바스러지는 소리.
굳어있던 관절이 움직이는 소리.
사방에서 느껴지는 진동과 소음.
“…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한데.”
장서진이 당황한 표정을 짓는 순간, 작업실 한편의 조각이 무슨 살아있는 인간처럼 형형한 기세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조각품’을 만들어내는 것.
이게 바로 장서진의 능력이다!
“아 제기랄!”
“… 김 선배.”
살아있는 조각을 만들 줄 아는 놈이 자기 안위를 신경 쓰지 않을 리가 있겠냐?
당연히 제 주변에 경호 하나는 둘 수 있지.
그러니까 그냥 좋게 좋게 데려가려 한 건데.
“그냥 아오! 부수면 될 것 아니야!”
짜증 내는 김지호의 말에 장서진이 픽 웃으며 반박했다.
“이 조각도 관리국이 탐내던 ‘재산’ 아닙니까?”
“닥쳐 이 자식아.”
휙 달려 나간 김지호의 손에는 평소 좋아하던 권총과 다른 굵직한 무기가 들려있었다.
경호용 조각을 예상했다면, 그 조각과 싸우는 상황을 대비하는 것도 당연한 것.
— 쿵! 우르릉! 쾅쾅! 바스스!
벼락같이 쏘아진 굵직한 탄자가 연거푸 박히는 순간, 큰 파열음이 터지며 삽시간에 경호용 조각이 박살 났다.
“우와…! 대단한 화력이네. 관리국에 저런 것도 있습니까?”
“유탄발사기 처음 보냐? 군대에서 수류탄 정도는 던져봤을 -”
“전 군대 안 갔습니다.”
“…”
“미국 국적이라서요. 요원님은 현역으로 가셨습니까? 아~ 그렇구나~! 고생하셨겠네~!”
아, 이 새끼 왜 이렇게 한대 후려주고 싶지?
어째 아까부터 말본새가 미필 같더라니!
슬쩍 눈살을 찌푸리니, 장서진이 씩 웃었다.
“네놈의 조각이 사람 여럿 해친 건 아냐?”
“알죠.”
“죄책감은 없고?”
“요원님, 누가 식칼로 사람을 죽이면 그게 식칼을 파는 사람 잘못입니까?”
“식칼은 네 조각처럼 자아를 가지고 날뛰진 않지.”
“난 살인을 지시한 적 없다고 말하는 겁니다.”
“…”
뒤통수 한 대만 쳐줄까?
“무섭습니다. 아픈 건 참을 만한데, 그 무식하게 큰 손에 맞으면 제 영감이 사라질 것 같거든요.”
출발하기 전, 김지호가 본부에서 가져온 구속 장비를 장서진에게 씌웠다.
이상한 그림과 문자가 가득 적힌 수갑과 구속복, 가면이 한 세트.
그동안 몇 차례 본 관리국 특제품인데, 꽤 강력한 혼돈 억제력이 깃들었다고 한다.
직접 착용한 바에 따르면, 호텔 참가자에게 먹힐 수준은 아니었다.
그냥 몸이 무거워진다. 정도였으니까.
“차 후배. 다 씌웠으니 출발!”
*
출발하고 5분쯤 지났을까?
운전에 집중하고 있으니, 뒤에서 장서진과 김지호의 대화가 시작됐다.
“본부로 가는 겁니까?”
“그래.”
“가면 어떻게 되죠?”
“속죄해야지.”
“속죄라는 거, 이제부턴 여러분을 위한 조각을 만들라는 거지요?”
“잘 아네.”
“질문 더 해도 됩니까?”
“… 물어봐.”
본부에선 가능하면 충돌 없이, 얌전히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앞으로 저놈의 능력을 써먹을 생각인데 반감이 과하면 곤란하다 생각했겠지.
그것 치곤 김지호가 총을 꽤 여러 발 쏘긴 했는데, 뭐 겁주려는 의도로 이해하자.
막상 장서진 태도를 보면 겁먹은 분위기도 아니고, 김지호가 그런 계산을 하면서 움직였는지도 의문이지만.
“관리국에는 원격 조종 드론이 많잖아요? TV에서 여러 번 봤는데.”
“많지.”
“내 조각이 할 만한 일이면 드론 시키면 되는 것 아닙니까?”
“…”
일반인이라면 의문 가질 만한 부분이다.
원격 조종 드론이 넘쳐나는 조직이 왜 굳이 ‘살아있는 조각’을 필요로 하는가.
나아가서 왜 위험한 일에 굳이 사람을 투입하는가.
“첫째는, 드론 성능이 네 생각만큼 미덥지 못해서다.”
반란 세력 응징을 드론만으로 진행했던 201호의 관리국.
어설프게 부활한 해신조차 ‘터미네이터’로 응징할 수 있었던 202호의 관리국.
현실의 관리국은 기술적인 면에서 위의 관리국에 미치지 못했다.
예컨대, 양산형 전투 드론의 전투 시간은 1시간 미만이란다.
가장 큰 원인은 배터리 기술의 문제라는데, 여기까지만 하자.
그다음 설명은 내가 이공계 지식이 없어서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이유는요?”
“… 드론에는 영성(靈性)이 없다.”
“네?”
드론에는 영혼이 없다.
드론에는 생명이 없다.
드론에는 혼돈의 반대편에 있는 ‘무언가’가 없다.
누군가에겐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관리국에게 이 점은 아주 실질적인 이유다.
“이쯤 하자. 네가 본부에서 일하다 보면 알게 될 테니.”
또한, 이것은 일반인에겐 통제된 정보 중 하나다.
“아, 더 설명해주시지 않아도 하나는 알 것 같은데?”
“됐으니까 조용 -”
“그러니까, 로봇이 아니라 ‘진짜 사람’을 반드시 희생해야만 한다는 것 아닙니까?”
“… 조용히 하라니까.”
김지호의 말에서 일말의 당황을 느꼈다.
상대가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찔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 건방진 손님에게 고통받는 ‘선배’를 거들어줘야겠다.
무엇보다 우리의 진짜 목적을 고려하면, 이 대화 흐름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 자! 운전에 방해니까 둘 다 조용히 합시다.”
“감동입니다. 역시 우리는, 인간은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존재로군요?”
“장서진, 너 모르나 본데 내가 굉장히 운전 초보야. 그니까 닥치고 있어.”
누군가에겐 놀랄 만한 사실 하나.
관리국은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 긴 세월 노력해왔다.
흉측한 혼돈체 격리 과정에 노출되는 사람을 최대한 줄이고, 어떻게든 첨단 로봇과 드론을 투입하는 것이 그 노력의 일환이다.
그 과정에서 관리국은 깨달았다.
어떤 일은, 반드시 사람이 해야 해결된다.
어떤 일은, 반드시 사람이 죽어야 끝난다.
*
– 김아리
아침에 승진 임명 문자를 받은 후, 한국지부장의 안내를 받아 뜬금없이 호주 사막 한복판에 도착했다.
탑 비슷하게 생긴 구조물 내부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
타라는 거 맞지?
버튼 이상한 것 누르면 갑자기 용암에 밀어 넣는다던가?
아니, 너무 망상 아니야?
관리국이 날 숙청할 생각이라면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칠리가 –
“아.”
아까부터 생각이 자꾸 ‘관리국이 날 숙청하는 상황’으로 가네.
예전이라면 이런 생각 자체를 떠올리지 않았을 텐데.
“…”
의심병에 빠진 건 스스로 떳떳하지 않아서야.
관리국이 날 숙청할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현실로 돌아온 후 겪은 몇 번의 선택.
선택의 순간, 나는 관리국 요원이었을까? 아니면 호텔 파티의 일원이었을까?
모르겠다.
이 의심과 혼란이 씨앗이 되어 내 마음에 한 가지 불안감이 나타났다.
관리국이 날 죽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 띵!
갑자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내부엔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가 보였다.
“거, 들어오지 않고 뭐 하시는가?”
“…”
“기다리고 있었네. 아리 요원.”
보는 순간 알았다.
이 사람은 ‘침묵하는 자’의 일원이다.
그렇다면, 과거 호텔 참가자일까?
“슬슬 들어오지?”
“죄송합니다.”
“말 편히 하게. 문자를 받은 시점에서 우린 평등한 관계니까.”
“그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남자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마치 할아버지에게 칭찬받는 기분이라 썩 유쾌하진 않았다.
엘리베이터 내부를 살피니 나도 모르게 살짝 눈썹이 올라갔다.
“감상이 어떤가?”
“… 처음 보는 인테리어네.”
“어디가 특이하지?”
“숫자 모양도 좀 이상하고, 계기판 구조도 특이하고.”
“왜 그런 것 같나?”
“선문답은 별로야. 호텔에서 많이 해봤거든.”
“하하! 그 마음 이해하지. 호텔 놈들이 좀 불친절하냔 말일세.”
“…”
그럴 수 있다고 짐작은 했지만, 이 사람도 전 참가자다.
“뭐, 정답은 간단해. 이 구조물은 이번 세상에서 생긴 게 아니거든.”
“…”
잠시 말문이 막혔다.
이 구조물이 이번 루프에서 생긴 게 아니다?
과거 루프에서 만들어졌다?
이는 곧, 루프로 인한 세계의 리셋을 견딜 수 있는 구조물이라는 말 아닌가!
“종말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있듯이, 종말을 견딜 수 있는 시설도 있네. 자네도 알지 않나?”
“… 몇 개의 이계를 창고용으로 쓴다는 건 알아.”
“비슷한 거야. 이계는 아니지만.”
“…”
— 띵!
나로선 알 수 없는 숫자가 눌러졌다.
“목적지까진 1시간 정도 걸리니, 마음 편히 먹게나.”
“1시간?”
뭔 놈의 엘리베이터가 1시간을 움직여?
“목적지가 얼마나 멀길래?”
“멀어서가 아니라 느려서 그래.”
“뭐?”
“엘리베이터, 지금 출발한 상태네.”
“…”
정말 느렸다.
속도로 치면 사람이 걷는 것보다도 느리다.
“왜 이렇게 느리지?”
“자네에게 일종의 투시력이 있다는 보고가 있더군.”
“…”
투시력?
정황상 부등변다면체를 익히며 생긴 공간 지각 능력을 말하는 것 같다.
207호의 월면기지에서 미로를 정확한 위치로 보내기 위해 썼던 그런 능력을 말하는 건데, 투시력과는 전혀 다르다.
하지만, 외부에서 보면 투시력처럼 보일만 하지.
“그런데?”
“이제부터 바깥을 느껴보게. 원한다면 외벽을 투명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지만, 그건 너무 위험해서.”
“… 나는 엘리베이터가 느리게 가는 이유를 물었어.”
“나도 그 질문에 답변을 한 거야.”
잠깐의 침묵.
상대의 말대로 정신을 집중해서 엘리베이터 외부 공간을 느끼려 노력했다.
그러자 뭔가 이상한 벽이 느껴졌다.
“이게 뭐야?”
“뭐가 느껴지지?”
“무슨 거대한 벽이 -”
“자세히 느껴봐. 벽이 아니야. 직선이 아니라 곡면이라고?”
“곡면?”
“너무 커서 휘어짐을 느끼지 못한 모양인데, 더 집중하게.”
“…”
그 말을 듣고 집중하니, 정말 곡면이 느껴졌다.
구체, 동그란 구체다.
구체가 너무 커서 처음엔 휘어져 있음을 느끼지 못하고 직선 벽처럼 느낀 것.
그리고 –
“…”
숨이 멎었다.
“진정하게. 안전하니까.”
“…”
“이 구조물은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졌네.”
“…”
“우리가…. 지금의 우리보다 훨씬 위대했던 시절의 산물일세. 다시는 재현할 수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