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73)
EP.573 573화 – 관리국은 코끼리다 (3)
573화 – 관리국은 코끼리다 (3)
– 차진철
뒷좌석이 잠잠해진 후, 장서진의 감상적인 말을 되새겼다.
‘감동입니다. 역시 우리는, 인간은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존재로군요?’
인간은 귀중한 존재다.
인간은 특별한 존재다.
예로부터 인명의 소중함을 강조한 여러 현인과 각종 종교단체에서 해왔던 말이다.
들어와서 보니 관리국 역시 저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
다만, 인간이 귀중하고 특별한 이유에 대한 해석이 다소 다를 뿐.
그때, 뒤에서 다시 장서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덩치 큰 요원님.”
“…”
“운전 중인 요원님.”
“왜?”
“왜 이렇게 덜컹거려요? 엉덩이가 아파서 견디기 힘들 정도입니다.”
그 말에 옆에 있던 김지호가 픽 웃었다.
“아, 그건 내가 사과할게. 저 녀석이 운전은 진짜 더럽게 못 해.”
어이없어서 나도 한마디 했다.
“장서진 네 집구석이 문제다.”
“갑자기요?”
“눈이 있으면 밖을 봐라. 무슨 강원도 두메산골도 아니고, 재벌 집 주변 길 상태가 왜 이리 개판이야?”
아까 김지호에게 운전 못 한다고 한마디 들었을 때부터 하고 싶던 말이다.
무슨 도로 여기저기에 이렇게 돌이 많아?
그때, 장서진이 담담히 답했다.
“내 작품이죠.”
“뭐?”
“조각이 꼭 미술관에만 있어야 한다는 법이 있습니까? 어떤 아이는 세상을 보고 싶어 하고, 어떤 아이는 도로를 걷고 싶어 하는데….”
“…”
딱 정신 나간 예술가가 할법한 말이라 난 할 말이 없었다.
대신, 김지호가 어이없다는 듯 따졌다.
“저게 무슨 작품이냐? 그냥 길가에 돌 대충 던져둔 것처럼 생겼는데?”
“습작이니까요. 가다 보면 성공작도 나옵니다.”
“성공작?”
“아마 여기쯤?”
바로 그 순간.
— 쿠궁!
도로 옆 흙을 뚫고 거대한 암석 손이 나타났다!
“으엇!”
“씨발 이게 뭔데!”
덮쳐오는 손을 인지한 순간, 이미 시야가 어두워졌음을 알았다.
암석으로 된 손이 삽시간에 차 전체를 덮어버린 것!
시간이 느려진다.
본능적으로 내 강력한 힘, ‘찰나’를 발현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
차는 이미 실시간으로 박살 나고 있다.
이계의 별을 쓰기엔, 장서진과 김지호가 바로 뒤에 있다.
힘으로 이겨낼 수밖에!
“으랴압!”
단박에 차체를 우그러뜨리는 암석 손의 손가락들!
이 악물고 양팔에 힘을 불어넣어 손가락들의 전진을 막는다.
그야말로 헤라클레스라도 된 것처럼 눈을 부릅뜬 채 양 팔에 힘을 쏟아부었다.
“크 -! 장서진 이 새끼가 -”
과거라면 이 정도 괴물은 근력으로 이겨낼 수 있었겠지.
하지만, 패트릭 비더만이라고 했었나?
전 참가자인 그놈이 용기의 축복을 나누어 가진 상황.
덕분에 나까지 약해진 지금은 무리라는 게 느껴진다.
‘이계의 별 조각’을 써야 한다.
그걸 위해선 이 자리에 나만 있어야 하고!
“김지호! 나가! 밖으로 나가라고!”
김지호는 ‘왜?’ 혹은 ‘도와줄게!’ 따위의 무의미한 말로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내가 버티는 사이 즉시 장서진을 끌고 손가락 틈새로 몸을 비틀며 빠져나갔다.
그 시점에서 상황은 끝났다.
별의 파동에 노출된 암석 손이 삽시간에 생명을 잃고 무너진 것이다.
그 때, 나는 암석 손의 잔해에서 장서진의 조각이 품은 중대한 비밀을 보고 말았다.
“…”
마음이 무거워졌다.
상상도 못 한 비밀이 있어서가 아니라, ‘예상했던 비밀’이었기 때문이다.
관리국 역시 이 비밀을 짐작하고 있다.
*
생명을 잃고 무너지는 암석 손의 잔해를 밀어내고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누군가 황급히 내부로 들어왔다.
“백 백! 다시 안으로!”
“김지호, 뭐 하는 -”
“바깥 상황 봐!”
암석 손이 내는 어마어마한 소음과 진동 덕에 느끼지 못했던 바깥 상황이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일곱 명의 경호원, 어디서 구해왔는지 무려 돌격소총씩이나 들고 있다.
그들에게 뭐라 뭐라 소리치는 회장과 그 옆에 붙어있는 장서진.
어처구니없다.
— 탕! 타당!
아예 우릴 죽일 셈인지, 암석 손의 유해 틈새에 총까지 쏘는 상황.
“…”
상황은 대충 이해했다.
관리국이 장서진의 존재를 알고 요원을 보낸 이상, 한국 재벌 ‘따위’가 저항할 방법은 없지.
그러나, 막내아들을 애지중지하는 회장은 고심 끝에 묘수를 떠올렸다.
“태성 그룹은 관리국에 소중한 막내아들을 내줬다. 그런데 이동 중 정체불명의 혼돈체가 급습해 요원은 물론, 장서진까지 죽었다. 우리 책임 아니다. 뭐 이런 시나리오?”
“아마 그렇겠지? 우릴 죽이고 묻으려나 본데?”
“… 너무 허술한 거 아닙니까?”
장민철 회장 이 인간, 유치원생이냐?
하다못해 조선시대에도 암행어사가 일하다 갑자기 죽으면 감찰 대상이던 수령부터 목이 날아갔을 텐데!
“뭐, 재벌 회장님을 치매 환자로 만드는 게 부성애의 대단함 아니겠냐? 그만큼 아들을 사랑하나 보지.”
— 탕! 타다당!
연거푸 총탄이 날아온다.
그러나 이 자리에 당황하는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나나 이 사람이나 요원이다.
조각과 싸우는 상황을 대비해 유탄발사기까지 챙겨오면서 설마하니 방탄방검복을 입지 않았겠는가?
거기에 각자의 힘을 고려하면, 대단한 위기도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여기 죽치고 있는 이유.
“뒤처리, 어떻게 할래?”
“보통은 어떻게 합니까?”
“아, 일반인이 요원에게 총구를 들이댔는데 살려줄 리가 있냐? 이건 심대한 공무집행방해라고.”
“… 경호원은 죽입시다.”
“회장은 살리고?”
“아무래도 장서진 저놈을 써먹으려면….”
“그래, 그래. 회장은 아들 잘 뒀으니 한번 봐주지.”
“나갑시다.”
“아냐, 넌 여기서 구경해라.”
“음?”
“오늘 내가 쪽을 많이 보였으니, ‘선배님’ 솜씨도 보여줘야지!”
*
바깥 상황이 정리되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반파된 암석 손의 잔해를 바리케이드 삼아 이리 번쩍, 저리 번쩍하는 몸놀림.
신기에 가까운 사격술로 일곱 경호원의 머리를 죄다 터트리는 솜씨!
김지호가 일말의 과장 없이 영화에서나 봤던 007 요원처럼 싸웠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자신 있게 호통치던 회장 낯빛이 점점 창백해지더니, 경호원이 죄다 죽을 때쯤엔 사색으로 변했다.
반대로 김지호의 표정에선 자신감이 살아났다.
“아~ 우리 회장님. 왜 이렇게 일을 피곤하게 만드실까?”
“…”
“장서진. 너도 참 그렇다. 설마 이런 돌 장난감에 정말 우리가 죽을 줄 알았냐?”
“감탄했습니다. 두 분 다 진짜 잘 싸우시네요. 요원쯤 하려면 이 정도가 기본인가?”
남의 일처럼 말하는 모습에 김지호가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이거 솔직히 너무 건방진데?
“… 여유가 넘치는구나.”
“겁먹을 이유가 있나요? 다른 조각도 많고, 무엇보다 최악의 상황이 와도 제가 죽을 일 없을 것 같은데!”
다른 조각이 많다는 말마따나 땅이 격렬히 진동하며 사방에서 흉측한 거체가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문득, 장민철 회장의 저택 여기저기에 있던 기암괴석이 떠올랐다.
그것들이 전부 조각의 일종이었나?
그보다도, 조각의 수가 관리국의 예측보다 훨씬 많다.
능력을 각성한 시점이 생각보다 이른 모양이다.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김지호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 아까 암석 손을 부수면서 내부를 봤는데 -”
“나도 알아. 너도 알고.”
“…”
“신경 쓰지 마. 그냥, 저 건방진 놈 혼내주고 데려가면 우리 일은 끝난다.”
이게 대의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관리국이라는 코끼리의 일면인 것 같다.
어쩌면 가장 혼탁한 밑바닥일지도 모르지.
“…”
문득, 미묘하게 떨리는 김지호의 목소리를 느끼며 생각했다.
관리국만 코끼리가 아니라 이 사람, 김지호도 코끼리 같은 사람이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은 그에게도 고민의 순간일 터.
*
– 김아리
지루한 시간이 흐른 후, 마침내 정체 모를 거대한 장소에 도착했다.
회색 벽으로 가득한 초거대 연구소 같은 장소였는데, 호주 대사막 지하에 이런 게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네.
동행자와 함께 복도를 걸어가며 내 상념은 조금 전의 충격적인 경험을 떠올렸다.
엘리베이터에서 인지한 거대한 구체의 정체는 다름아닌 ‘달’.
“…”
오래전에 가인이에게 현실엔 달이 없다고 말했었지?
의도치 않게 거짓말을 한 셈이네.
그래도 이 경우엔 변명거리는 있어.
설마하니 달이 지구 지하에 들어와 있을지 누가 알았겠냐고!
애초에 달이 지구 지하에 있다는 게, 물리학적으로 말이 되는 거야?
물론, 이 세상에 그런 상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긴 하지만.
“…”
달은 달이되, 달이 아니었다.
관리국조차 더 이상 재현할 수 없다는 기적의 정체는 다름 아닌 달의 ‘봉인’이었으니까.
그리고, 달을 봉인한 원리에 대해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비슷한 걸 봤어.”
“음?”
“달을 봉인한 구조. 호텔에서 비슷한 걸 봤어.”
“호…. 세상의 비밀이 그쯤 드러났다면, 2층 후반이었나?”
“맞아.”
피차 호텔에 대해 알고 있으니까 대화가 편하네.
“몇 호였나? 204호? 205호?”
“206호.”
상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금 전 내가 깨달은 놀라운 사실을 툭 털어놓았다.
“자네가 경험한 206호에서도 관리국이, 전 인류의 영적 질량으로 악마를 짓눌렀던 모양이지?”
“… 비슷해.”
달은 봉인되어야 한다.
저런 터무니없는 ‘흉한 것’을 봉인할 수 있는 힘은 단 하나, 인류 전체의 영적 질량뿐이다.
“축하하네. 오늘 자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았으니. 허나, 이는 시작에 불과함을 알게.”
“…”
복도를 쭉 걷다 보니 거대한 문이 보였다.
“저 뒤에는 다른 침묵하는 자가 있네. 앞으로 자네와 영겁의 시간을 함께할 사람들이지.”
“별로 그러고 싶진 않은데.”
“우리도 딱히 함께하고 싶어서 함께 하는 건 아니야.”
“…”
“그 전에, 자네에게 딱 하나만 묻고 싶은데.”
“응?”
갑자기 질문?
후드를 쓴 남자가 품에서 자그마한 종이를 꺼냈다.
“보이나?”
“그냥 흰 종이 아니야?”
“지금은 그렇지.”
“원래는?”
“원래는 사진이었네. 약 두 달 전까진 그랬지.”
“…”
내가, 호텔 파티가 현실로 돌아온 시기다.
“신기한 일이야. 딱 자네가 돌아온 시기에 사진이 흰 종이로 변하다니?”
“… 모르는 일이야.”
“이 사진엔 본래 한 인물이 있었네.”
한 인물.
“누군지는 몰라. 본래는 알았는데, 이젠 모르겠네. 위대한 부처께서 내 머릿속 기억을 지운 듯해.”
“…”
“혹시, 사진에 있던 사람이 누구인지 아나?”
“…”
“그는 인류의 배신자일세. 나는 반복되는 루프 속에서 그를 수 없이 죽여왔지.”
이상한 이야기다.
정말로 이상한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