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74)
EP.574 574화 – 관리국은 코끼리다 (4)
574화 – 관리국은 코끼리다 (4)
– 차진철
자세를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격한 진동과 소음, 사방에서 몸을 일으키는 흉측한 암석 덩이들!
어느 정도 전투가 있을 수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우리가, 관리국이 무엇을 놓쳤을까?
장서진의 능력을 정확히 몰랐다.
살아있는 조각을 만들 수 있다는 것까진 알았는데, 그 ‘조각’의 범주가 상상 이상으로 넓었던 것.
“허! 돌덩이를 이어 붙인 것도 조각이냐?”
“신입, 이거 제기랄 어떡하지?”
“거, 욕 좀 줄입시다.”
“욕이 안 나오겠냐? 저 많은 걸 부수기엔 유탄 숫자가 모자라다고!”
사방에서 일어난 암석 조각들에게 포위당한 상황.
김지호가 챙겨온 유탄발사기의 탄환은 부족하다.
그렇다고 내 주먹으로 어떻게 하기엔 무리다.
…
이계의 별 조각을 쓴다면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할 수 있다.
별 조각은 저 돌덩이의 단단한 표면을 무시하고 내부의 ‘본체’를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신입 요원으로 위장한 상황이라 김지호의 시선이 신경 쓰일 뿐.
그때, 김지호가 무언가 결정 내린 표정으로 날 보았다.
“신입, 그냥 써라.”
“무슨 -”
“너, 호텔 참가자지?”
“…”
“유산 써. 아까 암석 손 내부에서도 썼잖아. 보진 못했지만, 피부를 짓누르는 무언가를 느꼈다고.”
솔직히 조금 당황했다.
내 연기력이 김지호에게 들킬 정도로 허술했나?
하긴, 내가 엘레나처럼 전직 배우거나 가인이처럼 전직 교주는 아니긴 하지.
상대도 은근히 허당이긴 하지만 요원이고.
무엇보다 선후배 관계로 붙어 다니며 여러 차례 임무를 수행하며 알게 모르게 힘을 쓴게 크다.
이미 들킨 마당에 더 이상 시간 끌 필요는 없겠지.
“뒤로 물러서십쇼. 내 유산은 피아를 식별하지 못하니까.”
이윽고 만물을 뒤트는 파동이 사방을 휩쓸었다.
마법사의 힘으로 생명을 얻은 암석들이, 다시금 무생물로 돌아가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쿵!
‘이계의 별 조각’이 가장 덩치가 컸던 암석 거인의 머리와 충돌하는 소리.
유산을 사용하는 데 이런 물리적인 충돌이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난 언젠가부터 별 조각을 마치 주먹도끼처럼 쓰곤 한다.
가만두면 온 사방에 펼쳐지며 낭비되는 별 조각의 파괴력을 한 점에 집중하려는 내 나름의 노력이다.
마지막 남은 돌조각이 바스러지는 순간, 처음으로 장서진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 세상에 정녕 이런 물건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제 알겠냐? 네 저항은 진즉부터 의미 없었다.”
“흐으…!”
그때, 김지호가 짜증스럽게 물었다.
“야, 하나만 묻자. 대체 왜 이렇게까지 지랄이냐?”
“…”
“우린 널 죽일 생각 없어. 널 써먹을 생각이라고! 근데 왜 이렇게 난리야?”
이 점은 나 역시 궁금했다.
죽일 생각이 아니라 데려갈 생각이라고 처음부터 태성 그룹에 통보했잖은가?
회장이야 이성이 반쯤 마비된 것 같으니, 자기 아들이 연구소에서 실험용 쥐처럼 고문당하는 미래를 상상했을지 모르지.
하지만 장서진 본인은 정신 멀쩡한 것 같은데 왜 이 난리지?
정말 관리국에게 뭐, 생체실험이라도 당할까 봐 그러나?
그때, 창백한 표정의 청년이 중얼거렸다.
“… 당신들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야말로 심각하기 그지없는 표정이다.
“뭘 모르는데? 야, 궁금하니까 말이나 해봐라.”
“궁극의 예술에 무엇이 필요한지 당신들이 짐작이나 할까!”
“그래, 그래 알겠으니까 말해봐. 그놈의 예술이 뭔데?”
“크, 크흐….”
“울지 말고.”
“으흐흐! 으흐흐!”
이윽고 장서진이 미친 사람처럼 허우적거리더니, 별 조각 때문에 파괴당한 암석 거인의 머리 부위로 걸어갔다.
“하하하! 이 머저리들, 너희 두 눈으로 보라고!”
— 바스락!
쪼개진 머리가 갈라지며 내부에서 붉은 액체가 튀어나왔다.
“보아라! 일찍이 옛 성현이 이르기를, 사람이야말로 가장 귀한 존재라 하였다.”
“…”
“최고의 조각을 만들기 위해선, 최고의 재료가 필요하다. 나는, 하늘에서 내리치는 벼락을 목도하며 이 고통스러운 진실을 알고 말았다!”
“…”
“그러므로 궁극의 예술에는 반드시 사람이 쓰여야 한다! 하, 이걸 너희가 감당할 수 있겠 -”
“… 풋!”
더없이 비장한 표정과 어울리지도 않게 무게 잡는 말투.
듣고 있으니 헛웃음이 저절로 나왔는데, 김지호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었다.
“야, 야, 서진아. 그니까 네가 말하는 궁극의 예술이라는 게 이거야? 암석 손에는 사람 손가락이 들어가 있고, 움직이는 조각 재료에 뇌랑 골수가 섞여 있다?”
“…”
“그래서 이 난리였던 거야? 사람을 죽여서 만드는 조각이니까, 관리국이 용납할 수 없겠구나 해서?”
“…”
이래서 장민철과 장서진이 이렇게까지 이 악물고 들이받았구나?
사람을 재료로 써서 만든 조각이라는 ‘비밀’을 알면 관리국이 자신들을 죽일 줄 착각한 거다.
“너 진짜 병신이냐? 니 조각을 우리도 입수해서 성분 분석까지 해봤는데, 재료에 사람 신체가 섞인 걸 모를 줄 알았냐?”
만난 이래 처음으로 장서진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저 머저리가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관리국은, 처음부터 장서진의 ‘예술’에 살인이 필수임을 알고 있었다.
“아, 알았다고? 이, 이 염료는 -”
“피가 섞였지.”
“… 이 골재는 -”
“실제 인골과 척수가 섞였지. 안다니까?”
차에서 나온 대화.
관리국은 살아있는 사람을 필요로 하는데, 장서진의 조각은 드론과 달리 ‘사람’을 대체할 수 있다.
즉, 저 조각에 일종의 영혼 같은 신비한 것이 깃들어있다는 말인데….
장서진 따위가 설마하니 영혼을 창조했겠는가?
이게 가능하면 진짜 신이지.
나와 동료들은 호텔을 거치며 관리국이 어떤 조직인지 안다.
비유하자면, 식빵 전체를 지키기 위해선 일부분을 도려내는 것을 서슴지 않는 집단이다.
하지만, 우리와 달리 진짜 일반인의 인식은 어떨까?
지금 장서진의 모습이 보여주고 있다.
“어째서….”
“…”
“어, 어째서 이러는 건가요? 당, 당신들은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슨 세상의 비밀을 혼자 깨우친 흑마법사 같던 녀석이 삽시간에 어린아이로 변했다.
“뭐가 안 되는데?”
“나, 나, 나는 미, 미친놈이고, 아버지는 나 때문에 미쳤지만…. 여러분이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
횡설수설하는 목소리.
장서진을 두렵게 만든 것은 본인으로선 대적할 수 없는 관리국의 힘이 아니었다.
태어나서 처음 본 ‘코끼리의 일부’가 너무나 잔혹했기 때문이리라.
김지호가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날 보았다.
“신입.”
“…”
“너, 진짜 호텔 참가자였구나?”
“어떻게 알았습니까?”
“야, 내가 신입 훈련한 게 이번이 처음인 줄 아냐? 아무리 회귀를 견뎠다 해도 진짜 신입은 너 같지 않아.”
“…”
“유령 보고 괴물 보면 비명 지르고 도주하고 소변 지리고 다 한다고.”
너무 태연했구나.
괴물을 볼 때마다 비명이라도 질러야 했나?
“그때부터 이상했는데, 김아리 선배님이 널 은근히 신경 쓰길래 설마 했지.”
얼마 전, 아리가 업무 배분 과정에 개입했었지.
가인이가 교주 노릇을 하는 회사에 날 보내기 위함이었는데, 역시 외부에서 보기엔 이상했던 모양이다.
“확신한 건 아까 암석 손에서 탈출할 때고. 그래, 참가자 맞지?”
“맞습니다.”
서로의 시선이 오가고, 김지호는 탐색하듯 물었다.
“저 중2병 걸린 재벌 2세 말이지. 본부에서 어떻게 평가할까?”
“유용하다고 볼 것 같습니다만.”
그러니까 데려오라고 했겠지.
“왜? 사람을 죽여서 사람의 대체물을 만드는 게 의미 있어?”
“사형수 같은 제물 상당수는 통제가 잘 안 되는데, 저 조각은 장서진이 시키는 대로 따르니 의미 있습니다. 아닙니까?”
그렇다.
관리국이 찾아낸 장서진의 가치는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다가 아니다.
더럽게 말 안 듣는 인간 제물을 지시대로 순응하는 인간 ‘조각’ 제물로 바꾸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대단히 유용하다.
김지호가 빙그레 웃었다.
“됐다. 신입, 이 정도면 배울 건 다 배웠네.”
그리고 –
— 탕!
한 발의 총성이 울리며 태성 그룹 회장, 장민철의 머리가 터졌다.
“이야~! 내일 난리 나겠네. 한국일보 1면에 실리겠는데? 회장님 급사!”
“…”
옆에서 아버지의 머리가 터지는 순간, 장서진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경호원은 가차 없이 죽였으면서도 ‘장민철’은 죽이지 않았던 이유.
장서진을 통제하기 위한 인질이기 때문이다.
지금, 그 장민철을 가차 없이 죽였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히끅! 죄, 죄송합니다! 시키는 대로 -”
— 탕!
장서진의 머리가 터졌다.
이윽고, 폐허가 된 도로에 딱 두 명의 사람만 남았다.
“…”
“…”
“이래도 됩니까?”
“뭐? 본부에서 징계라도 할까 봐? 내가 시말서 한 장 쓰지.”
관리국이 탐내던 초능력자와 재벌 회장을 죽였는데, 시말서 한 장이면 충분하다.
그게 요원이다.
“반항이 심하고 능력이 생각보다 쓸모없었다고 하면 돼.”
“… 고맙습니다.”
김지호가 저 둘을 죽인 이유.
당연하지만, 조각을 만들기 위해 사람을 죽여서 따위가 아니다.
나는 내가 호텔 참가자임을 관리국에 숨기고 있는데, 저들이 내 유산을 봤다.
우리에겐 장민철과 장서진의 기억을 깔끔하게 지울 방법이 없었다.
그러니, 죽여서 입을 막을 수밖에.
“고마울 것 없어. 그나저나, 아 진짜!”
“…?”
“니가 참가자인 줄 알았으면 가오 안 잡았는데!”
이 와중에 이걸 신경 써?
“돌아가자.”
“그럽시다. 차가 망가졌으니 꽤 오래 걸어야-”
“한 대 더 불렀어 임마.”
“하, 이 양반 꼼꼼하시네.”
이렇게 또 하나의 임무가 마무리되었다.
관리국이 느끼기엔 허무하기 짝이 없는 결론이겠지만, 내게는 뭐….
나쁘지 않았다.
관리국과 요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있으니까.
“차 신입. 니가 참가자인 걸 왜 숨기는지는 모르겠지만, 보고 안 할 테니 알아서 해라. 그리고 이젠 다른 사수 찾아. 그놈에겐 들키지 말고.”
“…”
*
– 김아리
— 끼이익!
마침내 관리국의 수뇌부, 침묵하는 자들에게 향하는 문이 열렸다.
처음으로 인지한 것은 짙은 어둠과 시야를 가리는 아득한 안개.
몸을 무겁게 만드는 음울함을 뚫고 걸어가던 중, 은은한 빛을 뿜어내는 석판을 발견했다.
우리는 이 별의 적자요, 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 섰도다.
“…”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따라 읽게.”
“우리는 이 별의 적자요, 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 섰도다.”
“뒷 문장이 더 있잖은가?”
그러므로 오직 우리만이 모든 신비를 알 자격이 있다.
“그러므로 오직 우리만이 모든 신비를 알 자격이 있다.”
자격 없는 이에게 결코 신비를 허하지 않음을 맹세하리.
“… 자격 없는 이에게 결코 신비를 허하지 않음을 맹세하리.”
세 문장을 읽는 순간, 이해할 수 없는 심유한 압력이 내 정신에 가해짐을 느꼈다.
“…”
이제부터 내가 얻는 비밀은 ‘자격 없는 이’에게 알려선 안 된다.
나 역시 ‘침묵하는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턴 주의하게.”
“…”
“의무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 섣불리 신비를 외부에 노출하면, 석판의 응징이 있을 터.”
“… 어떤 응징이 따르지?”
“허! 시작부터 고약한 심보가 보이는데? 응징당하는 한이 있어도 ‘동료’에게 정보를 알리고픈 모양이지?”
“…”
이 사람, 부담스럽다.
나보다 훨씬 많은 루프를 견뎌온 데다가 호텔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기까지 하니, 내 심리를 너무 쉽게 읽어.
“가지. 다시 한번 축하하네.”
어두운 통로를 따라 쭉 걸었다.
마침내 도착한 통로의 끝, 그곳에는 나보다 앞서서 이 길을 걸었던 이들이 있었다.
…
207호에서 가인이가 말해준 정보.
가인이 본인은 미로의 정신 속에서 알아냈다고 하니, 이는 곧 과거의 미로가 알아낸 사실이다.
침묵하는 자 중 상당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는 정말이지 ‘사소한 것’에 불과했다.
…
많은 것을 알았다.
관리국과 이 세상이 품은 가장 흉측한 비밀 역시 알았다.
또한, 이 별의 모든 이가 저지른 죄에 대해 알았다.
‘우리’는 모두가 함께 저지른 죄를 세상에 퍼트릴 수 없기에 침묵할 수밖에 없음을 알았다.
“…”
오래전, 현실로 탈출해 처음으로 요원이 되었던 나날을 생각한다.
내가 회귀자 임을 알고, 세상이 반복적으로 루프 중임을 알았던 순간의 충격을 생각한다.
“…”
왜 여태 한 번도 의문을 가지지 않았을까?
세상이 반복된다면, 당연히 생겨야만 하는 일이 있다.
이것이 바로 모든 문제의 원인이었는데, 단 한 번도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
– 한가인
누군가의 손길을 느끼며 잠에서 깨었다.
본능적으로 상태창을 살피는 순간.
“…”
상태창이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대신, 건너편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아…! 이거, 지금 꿈인가?”
“…”
“그래서 상태창이 이상한가? 아리야?”
“…”
이상하게도 아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따라오라는 듯 손짓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