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77)
EP.577 577화 – 모두의 해석 (2), 추억 여행 (1)
577화 – 모두의 해석 (2), 추억 여행 (1)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112일 차
현재 위치 : 서울시 서초구 서초3동 신길 아파트 205호
현자의 조언 : 2」
– 한가인
“마지막, 그림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아리가 전달한 세 번째 정보, 신비한 그림.
“사실, 이 부분이 제일 중요할 겁니다. 문제는 -”
가장 중요하지만, 가장 해석이 어렵다.
“- 제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는 점이죠.”
세상에는 한번 본 풍경을 완벽히 기억해서 그림으로 재현하는 서번트 증후군 같은 능력도 있지만, 내게는 해당 사항 없다.
심지어 그림을 보자마자 이해할 수 없는 힘이 덮치기까지 했다!
도망치느라 바빴는데 어떻게 그림을 완벽히 기억하겠는가?
상현 형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그림의 디테일은 중요하지 않을 겁니다.”
“…”
“가인 군의 기억력이 비상하긴 합니다만, 2~3초 힐끔 본 그림을 사진처럼 기억하는 건 완전기억능력의 영역입니다.”
“그렇죠.”
“그런 초능력이 가인 군에게 없다는 사실은 아리 양도 압니다. 그러니, 그림의 디테일은 핵심이 아닙니다. 주요 오브젝트와 전체적인 구도면 충분하죠.”
애초에 내가 기억하지도 못할 디테일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
“배경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나 나올 법한 신전, 중앙에 액자가 있고 액자 속에 또 그림이 있다.”
“맞습니다.”
“그림에는 태양을 등지고 나아가는 배가 있다.”
“하나 추가하면, 특이할 정도로 ‘반사’가 강조되어 있다. 이 부분은 거울을 암시한다?”
“사실 그 부분은 가인 군이 덧붙인 해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
“거울이 존재함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렇지요. 물론, 지금은 가인 군 해석에 동의합니다.”
이런 부분 역시 동료들과 말하며 느끼는 소소한 견해차다.
다만, 조언을 통해 거울의 암시는 실제 존재했음을 확인했으니 이 부분 해석은 내가 맞았다.
곧, 나와 상현 형이 함께 입을 다물었다.
“…”
“…”
그림의 해석은 굉장히 의견이 많이 갈렸기에 더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마구 던지며 조언으로 맞냐고 물어보기도 했었지.
아무 말이나 던지고 올빼미에게 맞췄나요? 하는 식으로는 정상적인 답변을 얻기 힘들다는 사실만 알아냈을 뿐.
“해, 방주, 액자, 거울, 신전.”
“…”
“그래도 두 개는 확실하네요. 여기까진 ‘근거 있는 추론’이라 올빼미도 정답에 근접했다는 식으로 말해줬고.”
“해와 거울 말입니까?”
“해는 104호의 주 혹은 그와 유사한 존재를 뜻한다.”
“거울은 207호에서 본 거울과 사실상 같은 물건이다.”
이게 우리가 내린 결론이다.
나머지 셋은 아직 유의미한 해석이 나오지 않았다.
— 탁!
상현 형이 가볍게 탁자를 치며 주의를 환기했다.
“예전 이야기는 이쯤 합시다. 사실, 오늘의 본론은 이제부터 아닙니까?”
그렇지!
사실, 아리가 전한 정보 관련 이야기는 동료들끼리는 지난 두 달간 쉼 없이 했던 이야기의 재탕에 불과하다.
오늘의 본론은 ‘추억 여행’이다.
“그렇죠. 형, 통화로 말씀드렸지만, 내일부터 꽤 긴 여행을 갈 생각입니다.”
“…”
“그래서 말인데, 선라이즈를 부탁드립니다. 요즘은 슬슬 손 떼고 있긴 하지만, 내가 없으면 익투스가 이상한 짓을 할까 걱정스럽거든요.”
상현 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탁자 위에 작은 명함을 올렸다.
『선라이즈(주)
이사 김상현』
내가 없는 사이 선라이즈를 관리하는 것, 이게 바로 상현 형이 한국으로 온 또 하나의 이유다.
상현 형으로선 일종의 귀국 명분이기도 하다.
멀쩡히 미국에서 병원 경영 잘하다가 별 이유도 없이 한국으로 가겠다고 하면 주변에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내’나 ‘아들’은 기겁하기 마련이지.
한국 대기업에서 고연봉을 주고 이사로 스카우트했다 정도는 되어야 일반인들도 고개를 끄덕이는 명분이 된다.
“선라이즈 관리는 신경 쓸 것 없습니다. 내가 이래 봬도 경력직 아닙니까?”
“경력직?”
“가인 군 교단 관리는 206호에서도 해봤으니….”
듣고 보니 사실이다.
“다만, 마지막으로 내 의견을 말하겠습니다.
“네.”
“나는 가인 군이 남은 두 달 동안 엘레나 양 혹은 미로 양과 데이트나 하면서 유유자적 보냈으면 좋겠군요.”
“왜, 왜 그 두 사람 이름을 -”
“몰라서 묻습니까? 싫으면 방구석에서 뒹굴면서 게임이나 하는 것도 추천합니다. 요즘 진솔이는 무슨 콜? 총 쏘는 게임만 온종일 하던데.”
서바람, 김진솔.
상현 형이 꿈으로 불러낸 아내와 아들이다.
203호에서 얻었던 가족과 같은 사람이라고 들었다.
적어도 상현 형은 그렇게 믿는다.
“총 쏘는 게임? 승엽이 말로는 롤 점수도 본인보다 높다던데.”
“그건 승엽 군 점수가 낮은 겁니다.”
“이야~ 진솔이 게임 재능이 승엽이보다 훨씬 뛰어나구나!”
“승엽 군은 신체적인 재능이 문제가 아니라 말도 안 되는 고집과 키보드로 쉴새 없이 치는 채팅이 진짜 문제 – 아니, 대화 주제 돌리지 맙시다.”
아니, 승엽이 얘는 호텔까지 경험했는데 아직도 롤하면서 애들하고 싸워?
“형, 저도 그냥 놀러 가는 거라니까요. 승엽이 걔는 채팅까지 치나?”
“진솔이 말로는 스킬 사이사이에 욕설을 섞는다더군요. 그보다 그냥 놀러 가는 것 맞습니까? 여행 이름부터 ‘추억’ 여행인데?”
스킬 사이사이 욕설?
‘Q 병신아 W 물리지 E 말라고 R 했잖아!’ 라고 채팅 치는 승엽이를 떠올리자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았나 되짚는 차원에서 -”
“가인 군이 살았던 흔적이 여기 있겠습니까? 이곳 기준으로 가인 군은 4개월 전에 생성된 사람인데.”
“…”
“애초에 자기 삶을 반추하는 여행, 그런 건 은퇴한 노인이 인생을 정리할 때 하는 거지 가인 군처럼 젊은 사람이 할 일은 아닙 -”
“상현 형이 아는 그 어떤 노인보다 제 나이가 더 많을걸요.”
“…”
상현 형이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쩌다 보니 내가 말싸움에 이긴 모양새지만, 애도 아니고 이런 걸로 기쁘진 않다.
“가인 군, 웃을 일이 아닙니다.”
“…”
“아리 양이 한 말 때문에 여행 가는 것 아닙니까?”
아리가 해준 충격적인 말에 따르면, 내 기억의 일부가 이상하다고 한다.
혼자 곰곰이 생각해도 정확히 어디가 이상한지 가늠할 수 없었다.
기억 속 장소에 직접 찾아가보면 떠오를지도 모르지.
루프로 인해 내가 아는 그 장소와 현실의 실제 장소가 많이 달라졌지만, 공통점도 있을 테니까.
“송이랑 미로가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
“다른 사람들은 요원이다, 사업이다 하면서 바쁘더군요.”
나 대신 선라이즈를 관리해야 하는 상현 형이 좋은 예시다.
그때, 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송이 양과 미로 양 둘 다 학생 아닙니까?”
“맞죠.”
“… 지금이 방학입니까? 아, 한국은 방학 일정이 -”
“방학 시작까지 아직 2주인가 남았어요. 승엽이는 학교 가요.”
그 말에 상현 형이 붕어처럼 입술을 뻐끔거렸다.
무슨 놈의 중학생, 고등학생이 이렇게 제 마음대로 학교도 안 가냐고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송이나 미로는 출석 일수 따위를 신경 쓰지 않는다.
“혼자 가지 않고 동료들과 함께 가는 건, ‘평범한 여행’처럼 만들고 싶어서입니까?”
“형, 자꾸 복잡한 의도 덧붙이지 말라니까요. 그냥 놀러 가는 거고, 겸사겸사 소소한 일도 할 뿐입니다.”
“미로 양은 어떤 의미에선 ‘이중인격자’ 비슷하게 변했다니, 어둠의 미로 양이 도움을 줄지도 모르겠군요.”
“어둠의 미로라니…. 그 말해주면 좋아하겠네요.”
“어쨌든, 마음을 정한 듯하니 말리지 않겠습니다. 성과가 있기를.”
대화를 끝내고 돌아가는 상현 형을 보며 생각했다.
상현 형이나 은솔 누나처럼 ‘현실’에 깊이 몰입해서 ‘상식적으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은 송이나 미로가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반대로 송이나 미로가 보기엔, 다른 동료들이 ‘롤플레잉’에 과하게 심취한 사람들처럼 보이지 않을까?
두 사람에게 현실은 그냥 거대한 놀이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놀이터 속 학교에 가니 마니 따위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
– 유송이
약속 장소에 나와 기다리고 있으니, 새삼 날씨가 꽤 추워졌음을 알았다.
차갑고 건조한 공기, 옷 틈새로 들어오는 날카로운 바람.
확연한 겨울이다.
다음 주부터 겨울방학이었나? 다음다음 주?
뭐, 상관없지.
내 방학은 이미 시작했으니까.
“에취! 아~ 가인이 왜 이렇게 늦어!”
“많이 추워?”
“조금! 아, 송이야! 커피 마실래?”
옆에서 들려오는 미로의 발랄한 목소리.
슬쩍 고개를 돌리자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새하얀 머리카락과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붉은 눈동자의 소녀.
이런 애가 보드라운 겨울옷을 입고 머리에 빨간 털모자까지!
정말 눈의 요정이 따로 없네.
“송이야~! 우리, 가인이 오는 대로 눈 던지자!”
동료긴 하지만 정말 귀엽다.
어떨 때는 뭐랄까?
살짝 껴안아 주고 싶어.
“이럴 때 보면 참 다르네.”
“응?”
“아니야.”
생긴 건 아리랑 똑같은데, 막상 같이 있으면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가 없다.
아리였으면 뭔가 좀 재수 없이 행동하지 않았을까?
예를 들어 본인이 가장 늦게 온다던가!
“미로는 요새 어떻게 지내?”
“잘!”
“… 승엽이 말로는 학교에 가지 않는다던데.”
“재미없어. 자꾸 이상한 공부 시키고.”
재미없고 공부하기 싫으니까 학교 가지 않겠단다.
평범한 중학생이 이런 소리를 하면 곧 ‘금쪽이 방송’에 출연하지 않을까?
“진짜 제멋대로 사네…. 이런 무개념 중학생이 어딨어?”
“와~ 송이가 그런 말 하니까 완전 깨!”
“내가 뭐 어때서?”
“너도 마음대로 살잖아! 네 학교에 유송이 팬클럽이 생겼 – 으읍!”
“조, 조용히 해!”
“- 으읍!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어! 악!”
“으아앗!”
입을 막으니까 손을 문다고!
“이, 이 멍청이가 진짜!”
“멍청이? 말 다 했어?”
“그럼 지능 낮은 중딩이라고 해줄까!”
“성형 중독 고딩!”
“…!”
미로, 너 오늘 뒤졌어.
이 버르장머리없는 저능아같으니라고!
이렇게 우리가 눈을 부릅뜨며 2차전을 시작하려는 순간.
“… 이, 이게 뭐야?”
여행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뭐, 뭐야? 너네 왜 눈바닥에 뒹굴고 있니?”
“…”
“…”
거짓말처럼 침묵이 찾아왔다.
어색하게 미로와 눈을 마주치니, 굉장히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어흠! 송이랑 놀고 있었어.”
“오, 오빠도 참! 누, 눈싸움 알잖아요. 눈싸움하다가!”
“그렇지! 가인이도 맞아라!”
미로가 기다렸다는 듯 바닥의 눈을 모아 던졌다.
가인 오빠는 고개만 까딱해서 피하며 답했다.
“눈싸움도 좋지만, 그보다 여행 일정을 말해줄게.”
“… 응.”
곧, 가인 오빠의 손에서 여러 지명이 적힌 종이와 사진 몇 장이 나왔다.
“이건 내가 고등학교 때 살았던 주소야. 웹 지도로 찾아보니까 현실에선 무슨 이상한 아파트 단지 있더라. 여기, 시골은 돌아가신 증조할아버지 집이 있던 장소고, 또 여기는 -”
미로가 사진 하나를 쿡 찔렀다.
“여긴 어디야? 학교?”
“신반포 고등학교. 내가 졸업한 학교인데, 놀랍게도 똑같은 이름의 학교가 지금도 있어.”
“그야 지명을 따서 지은 이름이라 그런 것 아닌가?”
“그건 그래. 어쨌든 여기도 가봐야 해. 왜냐하면….”
“왜냐하면?”
“여, 여기는 가영이랑 내가 같이 다닌….”
“가영이?”
갑자기 가인 오빠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이게 뭔가 싶어 시선을 돌리니, 미로도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나, 나중에 설명해줄게. 음, 내, 자, 자랑스러운 기억이랄까?”
가영이?
자랑스러운 기억?
… 의심스러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