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79)
EP.579 579화 – 추억 여행 (3)
579화 – 추억 여행 (3)
– 미로
뽀드득! 하는 소리.
부스럭거리는 소음.
남모르게 움직이는 인기척.
송이가 나 몰래 침실 밖으로 나가고 있어?
“…”
나도 조심조심 몸을 일으켜 이불 밖으로 나왔다.
이미 열려있는 문틈으로 얼굴을 빼꼼 내미니, 멀리서 휙 지나가는 송이가 보였다.
저 방향은 ‘다른 동료’의 방이야.
“…”
송이가 그럴 리는 없지만, 왠지 모를 호기심을 참기 힘들어서 살금살금 뒤를 밟았다.
— 끼익!
‘그럴 리는 없지만’이라는 내 생각이 무색하게, 송이가 가인이의 방으로 들어가고 있어….
그냥 여행 일정 말하는 것 아닐까?
… 나만 빼고?
그냥 관리국이나 종말을 부르는 빛, 그런 큰 계획 이야기 아니야?
… 나만 빼고?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든다.
그냥 이쯤 하고 돌아가서 코 자면 될 것 같은데, 절대 잘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살며시 문으로 다가가니, 살짝 열린 틈이 보였다.
이, 이건 훔쳐보는 것 아니야!
송이가 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은 거잖아?
둘이서 무슨 일을 하는지 확인만 하자.
…
으악!
“꺄아아악!”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충격이 영혼을 사로잡는 순간!
아찔한 기분과 함께 의식이 흐릿해졌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115일 차
현재 위치 : 전남 순천시 장천 9길 42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미로의 몸에서 검푸른 안개가 뿜어져 나오는 순간, 나와 송이가 동시에 외쳤다.
“나왔다! 나온 것 맞지?”
“성공한 것 같은데요!”
다행이다!
그나저나, 괴담 미로를 한 번 부를 때마다 매번 이렇게 쇼를 해야 하나?
“우와…. 신기하네요?”
의식을 반쯤 잃은 듯한 미로와 주변에서 꿈틀거리는 살아있는 안개.
곧, 섬뜩한 기운이 하나로 뭉쳐 미로의 몸을 잠식해갔다.
약 3초 정도 흘렀을 때, 몽롱하게 변했던 미로의 눈에 다시금 총기가 깃들었다.
“… 너희, 뭘 하는 – 아하! 환영이었구나.”
이것이 괴담 미로와 나의 첫 번째 만남이었다.
*
돌이켜보면, 우리가 미로라는 존재를 인지한 건 굉장히 오래된 일이다.
102호에서 벌칙을 받고 있던 두 요원이 합류한 후, 아리가 진심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기까지 체감상 몇 달은 걸렸었지?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승엽이가 이상한 나비에 홀렸던 날이다.
그날, 아리와 나는 승엽이의 정신세계 속에서 처음으로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지.
여하튼, 미로에 대한 첫인상은 전혀 좋지 않았다.
미로를 살리겠다는 아리부터가 미로에게 인격적인 문제가 있음을 부정하지 않았으니까.
그 후에 합류한 상현 형님이 말해준 이야기들은 경각심을 큰 폭으로 증가시켰다.
그랬음에도 우리는 아리를 잃고 싶지 않았기에 미로의 부활에 동의했다.
…
부활한 미로는 여태껏 경계했던 음험한 미로와는 완전히 다른, 순수한 소녀에 가까웠다.
관리국이 이런 소녀를 대체 어떻게 길렀는지 의심스러웠을 정도다.
물론, 순수한 소녀에겐 여전히 ‘자정의 미로’라는 어둠이 있었으나 본인의 순수함이 가려질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많은, 정말 많은 일이 벌어진 현재, 괴담 미로가 나타났다.
지금의 그녀야말로 오랜 세월 경계했던 심해호텔 혹은 자정의 미로가 도착한 최종 결말인 셈이다.
괴담 미로는 많은 것을 잃었다.
살아있는 생명이라기보다 악마나 정령 혹은 ‘현상’에 가까워졌기에 소환 과정이 필수다.
여전히 기괴할 정도로 강하지만, 정의의 축복과 유산 3개를 휘두르던 전성기의 강함에 비하면 큰 폭으로 약해졌다.
무엇보다 정의의 축복을 영구히 상실했다고 한다.
이렇듯, 전성기의 그림자나 다름없을 만큼 약해졌지만….
그녀는 가장 중요한 목적을 이루었다.
결국 시간 제약에서 벗어난 채 현실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어찌 됐든, 본인 전성기와 비교하지만 않는다면 지극히 강대한 존재기도 하고.
*
나와 송이의 설명을 한참 동안 경청한 후, 그녀가 답했다.
“질문이 셋이네. 첫째, 내가 과거에 뭘 봤고 구체적인 목적은 무엇이냐 맞지? 두 번째는 회귀자에 대한 내용이고, 마지막은 앞으로의 충고?”
“맞아.”
“…”
그녀는 잠시 침묵한 후, 어딘가 기묘한 눈빛으로 날 보았다.
“내가 네 질문에 순순히 답해줄 것 같아?”
“그럴 것 같아.”
“왜?”
지금부터는 불필요한 신경전은 접어두고 우리에게 협력하라는 설득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명분 역시 준비되어 있다.
“첫째로, 지금의 넌 어린 미로에게 반쯤 종속된 상태야. 어린 미로는 내 동료고. 그러니까, 너 자신을 위해서라도 협력하는 게 맞지.”
“더 말해봐.”
호선을 그은 입꼬리.
진지하다기보단 재밌어하는 태도에 가깝다.
“둘째, 우린 관리국과의 관계를 정립하고, 나아가서 현실의 이해할 수 없는 재난을 막을 생각이야. 네 목적도 비슷할 것 같은데, 아닌가?”
“… 그래, 그렇지.”
첫째보다는 와닿는 이유인가 보다.
그렇지만 여전히 충분치 않아 보였다.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고민하는 시점.
“풋!”
갑자기 미로가 웃었다.
“됐어, 됐어. 어차피 말해줄 생각이니까.”
“말해준다고?”
“나는 이제 너희를 믿어.”
“…!”
농담이 아니고 지금 이 답변에 진심으로 놀랐다!
뭐? 누굴 믿어? 미로가 우리를 믿는다고?
이 여자 머릿속에 ‘타인에 대한 신뢰’라는 게 존재하는 거였어?
송이도 입을 반쯤 벌린 채 중얼거렸다.
“가, 갑자기 그런 말 하지 마!”
“왜 그리 놀라?”
“내, 내 머릿속의 넌 다섯 살 때 말문이 트이자마자 부모님을 세뇌해서 관리국 제물로 바치는 사람이었는데!”
이번엔 미로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 내 과거를 알면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그건 그래.
괴담 미로의 어린 시절이 곧 조금 전에 꺅! 하면서 쓰러진 어린 미로니까.
곧, 미로가 다소 감상적인 표정을 지었다.
“아리….”
“아리?”
“내 소중한 딸. 가장 완벽한 작품. 내 모든 것….”
애처로울 정도로 떨리는 목소리.
거기에 담긴 감정의 무게가 상당했기에 나와 송이가 동시에 놀랐다.
원래 이런 성격인가?
‘괴담화’하면서 성격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악령 같은 존재는 생전의 고집, 원한에 대단히 집착하곤 하니까.
“내가 감상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생각하네.”
“…”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는 세상 그 누구보다 아리에 대해 잘 알아.”
아리와 보낸 시간은 우리가 훨씬 더 많다.
하지만, 함께한 시간이 길다 해서 ‘창조자’보다 더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그 아이의 본질은 나와 같아.”
역시나 송이가 반박했다.
“솔직히 성격 아주 다른데?”
“내 성격적 결함을 많이 가다듬었으니까. 어떤 의미에선, 내가 되고 싶었던 나야.”
미로가 되고 싶었던 또 다른 미로, 아리.
“그 아이가…. 마침내 나보다 먼 곳까지 나아갔구나.”
“…”
미로와 달리 호텔 2층을 돌파하고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미로와 달리 관리국의 정점, 침묵하는 자가 되기까지 했다.
“나와 닮은 사람. 내 장점은 남기고, 단점은 걷어낸 사람. 날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
“…”
“그리고 나보다 멀리 나아간 사람. 그게 아리야.”
“…”
“그래서 난 아리의 판단을 믿어. 내가 내린 판단보다, 아리의 판단이 더 정확하다고 믿어.”
미로가 하려는 말을 어렴풋이 이해했다.
“그런 아리가 목숨을 걸고 널 찾아갔지. 그래서 난 너희 또한 자격이 있다고 믿어.”
미로가 종종 말해왔던, 비밀을 알 자격에 관한 이야기다.
이젠 우리에게도 자격이 있음을 믿는다는 것.
선민의식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호텔 파티 또한 선택받았다고 믿는 태도.
그래서였을까?
미로는 과거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정보를 전했다.
“예전의 내가 겪은 일. 복잡한 배경 설명은 생략할게. 다 지나간 일이니까. 간단히 말하면, 침묵하는 자 상당수가 인간이 아님을 알았어.”
여기까진 나도 짐작한다.
“단순히 인간이 아니다 정도가 아니야. 그보다 훨씬 심했어. 목적 자체가 인간의 번성이 아니었으니까.”
인간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목적 자체가 인류를 위함이 아니다?
이건 207호의 ‘렙틸리언 공주’보다도 심각한 상황이다.
적어도 에이디아는 인류를 사랑했으니까.
“표현을 정확히 했으면 좋겠는데. ‘상당수’가 인간이 아니라는 건, 인간도 있다는 의미지?”
“아마도.”
“그렇다면, 전부 배신자라고 볼 수는 -”
“일반인 같은 답이로구나.”
“…”
미로는 천상 요원이니까 요원처럼 생각하자.
빵 일부에 곰팡이가 피었으니 그 일부만 도려내는 건 일반인의 사고방식이다.
일부에서 곰팡이가 눈에 보일 정도라면, 주변에도 보이지 않는 감염이 퍼져있다는 게 관리국식 사고방식이고.
따라서 요원들은 여차하면 빵 절반을 버릴 기세로 광범위하게 도려낸다.
같은 잣대를 관리국 최상층에 적용한다면, 일부가 타락한 시점에서 전부를 도려내야 마땅하다.
미로가 보기엔 이것이야말로 ‘일관적인 태도’다.
여기까지 이해하니, 과하다 싶을 정도로 비밀주의였던 미로의 태도를 약간 이해할 수 있었다.
칼을 들이대려는 대상이 무려 관리국 수뇌부인 상황에서 대체 누굴 믿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호텔 잠입 임무에 자원한 건가? 호텔에서 얻은 힘으로 침묵하는 자들에게 맞서려고?”
“비슷했지. 실패했지만.”
첫 번째 질문과 이에 대한 답이 끝났다.
“… 여기까진 과거의 생각이고.”
끝이 아니다?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들어. 왜 아리가 너희에게 경고하지 않았을까?”
“아?”
“아리는 관리국의 모든 비밀을 알았어. 지금의 나보다도 많은 진실을 알았지. 침묵하는 자들이 타락했다면, 아리도 당연히 알았을 거야.”
“…”
“그리고 네게 경고했겠지. 관리국은 적이니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 여기에 더해서 그들을 견제할 수 있는 정보를 줬을 테고.”
“… 그렇네. 아리가 그런 말은 하지 않았어.”
“그 애는 관리국이 적이 아니라고 본 거야. 그래서 이젠 잘 모르겠어.”
미로는 이제 본인의 판단보다 아리의 판단을 더 신뢰한다.
자신과 닮았으면서도 자신보다 더 멀리 나아간 존재이기 때문이다.
…
침묵하는 자 상당수는 인간이 아니다.
그들의 목적 또한 인류의 번영이 아니다.
그런데도 아리는 이들이 적이 아니라고 보았다.
뭔가 알 것 같은데, 비슷한 국면을 저주의 방에서 봤던 것 같은데….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다음 질문은 네 기억에 관한 이야기지? 듣자마자 드는 생각이 있는데.”
“말해줘.”
“가장 쉬운 설명은, 네가 ‘어설픈 회귀자’라는 거지.”
어설픈 회귀자.
“요원이 어떻게 루프를 견뎌내는가? 이 부분은 나도 정확히 몰라. 어렴풋이 영혼의 격이 높아서가 아닐까 추측할 뿐. 여하튼, 요원이 10이고 일반인이 1이라고 치자.”
“3~4에 해당하는 존재가 있다는 말이지?”
“어? 이미 알고 있네?”
요원이 10이라면, 3~4의 재능을 타고난 ‘어설픈 회귀자’들.
과거, 상현 형에게 들었다.
현실에서 ‘마마’라 불리는 존재를 만났는데, 그녀는 현실에선 이미 지워진 상현 형의 과거를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고 한다.
“내가 어설픈 회귀자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풀리잖아? 동생에 대한 기억이 다른 건, 단순하게 매번 다른 사람이었으니까. 이름이나 외모는 네가 회귀 과정에서 가졌던 ‘여러 명의 동생’중 비교적 뚜렷하게 기억나는 한 명의 것일 테고.”
“…”
“중학생 때 요원에게 죽은 기억과 수능까지 치른 기억이 혼재된 것도 이것으로 설명 가능.”
“…”
“회귀를 인지하지 못하고, 모순적인 기억을 한 번의 삶이라 착각하는 일은 어설픈 회귀자들의 공통점이야.”
상현 형이 만난 ‘마마’라는 사람도 그랬다.
회귀를 인지하지 못하고, 모순적인 기억도 눈치채지 못했지.
일리 있는 이야기다 싶어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
미로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런데, 네 이야기를 듣다가 ‘진짜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어.”
“뭔데?”
“왜 대학 다닌 기억이 없지?”
“뭐?”
“이상하잖아. 네가 어설픈 회귀자로서 호텔에 오기 전에 여러 번의 삶을 살았다 치자. 몇 번은 재수 없이 어릴 때 죽었다 쳐도, 많은 경우 늙어 죽을 때까지 살았겠지?”
“…”
“그런데 왜 스무 살 이후의 기억이 없지? 참고로 난 어릴 때 기억이 거의 없고, 보통은 이게 정상이야.”
“…”
“넌 마치, 모든 삶에서 스무 살을 넘긴 적 없는 사람 같아.”
미로와 대화한 이래, 지금처럼 섬뜩한 순간이 없었다.
나는 존재하는 기억에서 의구심을 느꼈다면, 미로는 존재하지 않는 기억에서 의구심을 느꼈다.
이런 부분은 말 그대로 회귀에 대한 경험의 차이가 아닐지.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이 정도로 충분한 것 같네. 마지막 질문은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였지?”
“맞아.”
“쉽네. 어린 시절 기억은 이쯤 뒤지고, 스무 살 근처의 기억을 집중적으로 찾아봐.”
“…”
“누군가 널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어떻게든 죽여 왔다면, ‘스무 살이 가까운 한가인’은 네 원수가 보기엔 위험천만한 상태야. 즉, 네가 19살쯤 되었을 때는 온갖 미친 짓을 벌여서라도 죽이려 했겠지.”
“…”
“요란한 일을 벌였을 거야. 그 기억을 떠올려봐. 너는 통찰의 힘을 얻었다고 하니, 그 힘도 적극적으로 써보고.”
“…”
“충분해?”
“고마워. 진심이야.”
“다행이네. 슬슬 나도 견디기 힘들었거든!”
대화가 끝날 무렵, 괴담 미로는 다시금 안개로 변해 허무의 영역으로 돌아갔다.
다시금 몸의 통제권을 찾은 순수한 소녀는….
“꺄아악! 가, 가인이 진짜 싫어~!”
눈물까지 뚝뚝 흘리며 내 목을 잡고 흔들었다!
가, 갑자기?
“소, 송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킥! 아읔! 진짜 귀여운 거 봐!”
극도로 흥분한 미로와 그 모습을 보고 킥킥거리는 송이!
미로가 긴장, 방심한 상황에서 끔찍한 환각을 기습적으로 보여주는 그런 계획 아니었어?
송이는 얘한테 대체 무슨 환영을 보여준 거야?
“…”
울먹이는 미로, 옆에서 달래며 오해를 풀어주는 송이.
정처없이 흔들리는 몸의 진동을 느끼며 생각했다.
만약, 누군가가 나를 반복적으로 죽여왔다면, 내가 스무 살이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 하는 적이 있다면….
그 사람만큼은 내가 ‘반드시’ 죽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