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8)
57화 – 106호, 미션의 방 – ‘희망의 호텔랜드’(4)
57화 – 106호, 미션의 방 – ‘희망의 호텔랜드’(4)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21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6호(미션의 방 – 희망의 호텔랜드)
현자의 조언 : 0]
…
당황했다. ‘엄마’.
지금 이 몸이 아리와 외견이 약간 다르다 생각은 했지만 설마 진짜 다른 사람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냥 이게 원래 아리 모습인데 지금의 모습은 염색이라도 한 걸까 정도로 생각했을 뿐.
다른 사람의 사진을 건드렸을 땐 모두 그 사람으로 변했는데, 왜 아리의 사진을 건드렸을 때만 아리의 엄마의 모습이 된 거지?
고민은 집어치우기로 했다. 이런 건 원래 나중에 시간 많을 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보다, 지금의 상황은 나쁘지 않다. 뭔지는 몰라도 아리는 ‘지금의 내 모습’을 꽤 신뢰하는 분위기가 아닌가?
당황을 가라앉히고 최대한 ‘아리의 엄마’를 흉내 내봤다.
그러니까, 양팔을 벌리고 최대한 활짝 웃고, ‘우리 딸 이리 온~’ 정도?
그런 느낌으로 입을 벙긋거리고 있었다.
“휴우….”
아리는 뭔가 크게 실망한 분위기로 한숨을 내쉬었다.
연기가 어색했나?
—-쨍그랑!
실패는 아닌 것 같다. 내가 고민하는 사이에 아리는 유리를 깨고 건너왔다.
“됐다! 이걸로 두 명 꺼냈네. 이제 진철 형이랑 엘레나만 꺼내면 되겠다. 아리 너도 옆에 가서 쉬고 있어.”
“…”
다음은 진철 형이다. 누구로 변신하는 쪽이 괜찮으려나? 역시 아리 모습으로 다시 한번 신비주의로 가볼까?
왠지 꽤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진철 형 쪽으로 통하는 거울 앞으로 가서 손을 허리 뒤편으로 돌린 채 어딘가 샐쭉한 표정을 흉내 내고 있던 차 –
—퍼억!
주먹이 날아왔다.
“난 그런 행동 안 해.”
“윽! 놀랐네. 비슷한 느낌 아니었어?”
“전혀 아니야.”
“형. 진짜 전혀 아니에요.”
“그러면, 좀 더 미스테리한 분위기로 약간 입가를 비틀어볼까?”
“너, 지금 진철 오빠를 구출하는 게 목적이야? 아니면 날 놀리는 게 목적?”
“…”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어떻게 하면 진철 형을 구출할 수 있을 것인가.
몇 번 아리 모습으로 거울 앞에서 춤추듯이 행동해봤다.
그래봐야 아리의 한숨만 깊어질 뿐이다.
아리는 그걸 보다가 그냥 날 밀어내고 자기가 뭔가 하려고 했다.
그러나 거울에 아리 모습은 아예 비치지도 않았다.
다시 내가 가서 여러 가지 다채로운 자세를 취하면서 이리 오라고 말해봤다.
진철 형은 대체 뭐지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기만 하지 다가오지도 않았다.
“진철 오빠의 캐릭터를 좀 생각하고 연기해봐.”
“캐릭터?”
“그냥 내가 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제일 먼저 탈출한 사람’만 타인을 구출할 자격이 생기는 것 같으니까 내 생각 말해볼게. 엘레나 모습으로 변해봐. 그리고 입가에 피도 묻혀가면서 반쯤 죽어가는 티를 내봐. 진철 오빠가 못 참고 나올 거야.”
…
죽어가는 엘레나 흉내. 확실히 형에게 통할 느낌이다.
잠깐 사이에 시간을 많이 썼구나.
엘레나의 사진을 건드린 후, 아리의 코치에 따라서 입가에 주사기로 뽑은 피도 묻히고, 일부러 몸에 상처도 내고 하면서 크게 다친 엘레나를 흉내 냈다.
그렇게 거울 앞으로 가서 혼신의 연기를 시작한 지 1분 정도.
—쨍그랑!
결국 죽어가는 엘레나를 보며 견딜 수 없던 표정을 짓던 형이 거울을 부수고 나왔다.
“…”
이상하게 아리랑 똑같이 나와서 날 보자마자 말문이 막힌 표정을 지었다.
“형도 저쪽에 가 계세요. 이제 마지막으로 엘레나만 구출하면 되니까.”
“그…. 엘레나 흉내를 네가 낸 거냐?”
“설명은 저쪽 가서 들으세요.”
“… 수고했다.”
표정은 고맙다기보다는 날 한 대 치고 싶은 것 같은데, 상황을 보니 억지로 참는 듯한 표정.
이거 뭔가 억울한데?
따지고 보면 내가 머리 굴려서 제일 먼저 나와서 모두를 구해내는 상황인데 왜 고마워하는 사람은 없고 다 화가 난 분위기인가!
마지막으로 엘레나 쪽의 거울로 가서 생각했다.
누구의 모습을 취해야 엘레나를 설득하기 편할까?
신비한 방법으로 엘레나를 구출하러 온 아리 흉내? 듬직한 진철 형 흉내? 승엽이로 변신해서 불쌍한 체하기?
의외로 이거다 싶은 게 떠오르지 않았다.
언제나 아름답고, 친절하고, 상냥하지만 동시에 속내를 거의 드러내지 않는 엘레나가 아니던가. 따지고 보면 서로가 친해졌다 싶으면서도 속내를 감추는 건 모두가 마찬가지긴 하지만.
엘레나에게는 더더욱 어떤 마음의 벽이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모르겠다.
일단은 아리의 모습으로 변신해서 여러 가지 동작을 취하며 넘어오라고 해 봤다.
미동도 하지 않는다. 아예 반응 자체도 없고, 다른 거울에 있는 괴물과 다를 바 없는 존재로 여기는 듯하다.
다음으로 승엽이로 변신해서 뭔가 시도하자 –
엘레나는 아예 내가 비치는 거울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제일 위험한 거울이라고 생각한 걸까?
이렇게 아예 소통을 거부하듯이 떠나버리자 방법이 사라졌다.
내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자, 다른 사람들도 내 곁으로 와서 머리를 짜내기 시작했다.
“어떻게 부를 방법 없냐? 소리 질러봤어?”
“거울 너머로는 목소리가 넘어가질 못해요.”
“엘레나 자신으로 변해보는 건 어때?”
“뭐로 변신하냐를 떠나서, 아예 거울 시야 밖으로 나갔어. 아예 보이지도 않아.”
10분도 남지 않았다.
대책이 없다.
엘레나는 거울 시야 밖으로 나가버린 후 아예 내가 비치는 거울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중간중간 엘레나가 스쳐 지나가는 건 보였지만, 아무리 봐도 그냥 하염없이 미로를 탐색만 하는 모양새.
5분이 남았을 때. 엘레나는 ‘자신이 비추지 않는 거울’을 발견했다.
저 거울의 실체는 단순히 괴물이 숨어있는 거울. 그걸 엘레나가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하지 못했다. 엘레나는 마치 안전한 거울을 마침내 찾아낸 듯한 기쁜 분위기로 그 거울을 부쉈고….
그다음 장면은 잊도록 하자. 모두에게 상당히 큰 충격이 되고 말았으니까. 동료가 눈앞에서 잔혹하게 죽는 장면은 여러 번 본다고 익숙해지는 장면이 아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 거울의 집은 딱히 물리적으로 힘든 구간은 아니었기에, 자이로드롭에서 약화된 아리와 진철 형이 어느 정도는 회복한 느낌이 든다.
현재까지 생존자.
한가인, 차진철, 김아리, 박승엽.
*
/미션 4. 진짜? 가짜? 거울의 방 성공! 축하합니다. 다음 미션으로 진행하겠습니까?/
*
/미션 5. 우주에서 출발하는 청룡 열차.
미션 5까지 도달한 참가자분들 축하드립니다! 우리 열차는 우주에서 출발할 예정입니다. 그에 앞서 로켓을 타고 우주로 날아갈 예정이니 올바른 위치에 자리를 잡으세요.
30초 후 시작합니다!/
또 무슨 미친 소리야? 우주에서 출발해? 그 와중에 눈에 확 들어오는 단어가 있다.
‘올바른 위치에 자리를 잡으세요.’, 30초 후 시작합니다.
자이로드롭에서 한번 당했기에 이젠 이해했다. 위치선정 자체가 중요하다는 의미.
다시금 공간이 요동쳤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주선 안에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
30!
“뭐죠? 뭐죠? 뭐죠? 우리 어디 가야 하는 거죠???”
“제발 조용히 좀 해라! 근데 진짜 어딜 가야 한다는 거지?”
27!
탁 트인 넓은 공간. 4명의 사람. 창밖을 보자 말 그대로 우주선을 쏘는 시설.
25!
“일단 어디로든 움직여야 하는 거 아냐?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저쪽에 문이 몇 개 있긴 하다!”
23!
“문이 4개나 되는데요? 어디로 가요?”
“흩어지자!”
“흩어지다니?”
“어디가 맞는 곳인지는 모르니까, 다 흩어지면 누군가 살겠지. 나는 여기로 갈게!”
19!
잠깐 사이에 다들 작은 방들로 들어갔다. 서로를 신경 쓸 틈도 없다.
나는….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16!
여긴 우주선이다. 우주선은 어떤 식으로 비행하더라? 애초에, 그냥 우주선 안에 있으면 우주로 가는 것 아닌가? 왜 특정 장소는 있으면 안 되는 걸까?
14!
깨달았다.
13!
곧바로 옆에 있는 방으로 가서 승엽이를 끄집어냈다. 말할 틈도 없이 그냥 바로 원래 있던 가운데 큰 공간으로 던졌다.
“형???”
“가만히 있어! 무조건 거기 가만히 있어!”
8!
다음에는 건너편 방으로 들어간 아리. 역시 무조건 힘으로 끌어내려 했는데 순순히 나왔다.
“뭘 알아챈 거야?”
“가운데 있어!”
5!
큰일이다. 진철 형은 힘으로 끌어낼 수가 없는데.
“형 무조건 나와요! 거기 아니에요!”
“뭐?”
“닥치고 나오라고 당장!”
2!
2초 남기고 모두가 원래 있던 공간으로 돌아왔다. 다들 얼떨떨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발사!
우주선이 발사됐다. 동시에, 작은 방으로 통하는 문들이 잠겼다.
발사 후 1분 정도 흘렀을까? 작은 방들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전부 우주선에서 분리됐다.
당연한 일이다. 우주선이 출발하고 나면 우주선의 추진을 담당하는 추진체들은 전부 분리되기 마련이니까.
때문에, 우리는 애초에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시작부터 올바른 위치에 있었으니까.
*
“그러니까, 애초에 처음 있던 장소에 가만히 있으면 되는거였구만?”
“그런 거죠. 바깥쪽 작은 방들이 전부 함정이었던 겁니다. 전부 추진체로 통하는 방이었어요.”
“그러면 시작하고 무슨 올바른 위치로 가라, 30초 준다. 이건 뭐냐?”
“뭐 함정 아니겠습니까.”
“진짜 갈수록 피곤하네. 난 또 다 같이 흩어져야 한둘이라도 살 줄 알았는데. 다 죽을 뻔했네.”
“이상하게 여기 들어온 후로 가인이 형이 평소보다 머리가 좋아진 것 같아요.”
“평소보다?”
“…”
“아냐. 가인이는 아마 원래 머리가 좋았을 거야.”
“굳이 ‘아마’를 붙일 필요 있냐.”
“하여튼 수고했다. 이걸로 끝인가?”
“끝은커녕 시작 아닌가요. 미션 이름이 우주에서 출발하는 청룡 열차인데 우리는 아직 열차를 타지도 않았잖아요. 그냥 우주로 출발만 한 거지.”
“하. 좀 쉬자. 진짜 죽겠다.”
*
우주공간을 움직이며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우리는 열차의 정거장에 도착했다.
“이제, 이걸 타면 그놈의 청룡 열차가 시작되는 건가.”
“여기 오는 데만도 위기였는데, 열차를 타면 대체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냐?”
“다들 정신이나 똑바로 차립시다.”
주변을 돌아봤다. 어느샌가 모두가 한없이 지친 표정.
그나마 거울의 방이 딱히 물리적으로 힘든 장소는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나름대로 체력을 회복했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다.
겨우 1시간의 휴식으로 회복을 논하기에, 아리는 이미 대량의 피를 썼다. 진철 형은 아직도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몸 전체가 파르르 떨린다.
슬슬 한계에 도달한 상황. 오늘의 하루는 그 어떤 때보다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거장 안쪽에 청룡 열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출발하기 전에 대충 무슨 일 생길지 예상이라도 해보자. 마음의 준비는 해야지.”
“당장 바로 보이는 위험 요소가 있네요.”
“아리 누나? 뭐가 위험해 보이세요?”
“우주를 달리는 은하철도 같은 청룡 열차인데, 외부에 오픈되어있어. 대충 생각해도 숨은 어떻게 쉬라는 건지 모르겠네.”
“헉! 우주공간에 노출되면 우리 터져 죽는 거 아니에요?”
“넌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토탈리콜 같은 고전 영화에서나 나온 이야기를 하니? 우주에 나가도 터져 죽지도 않고, 엄청나게 오래 있는 거 아니면 얼어 죽지도 않아. 그 전에 숨을 못 쉬어서 죽지.”
“예? 대체 왜-”
“자, 자! 과학 상식 이야기는 그쯤하고. 대충 그런가 보다 해. 어떻게 숨을 쉴지가 문제 될 모양이네. 벌써 열차에서 무슨 소리 나기 시작했으니까 빨리 가서 타기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