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80)
EP.580 580화 – 추억 여행 (4) Fin
580화 – 추억 여행 (4) Fin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120일 차
현재 위치 :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71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이른 아침,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며 날짜를 확인했다.
“오늘이 120일째네.”
송이가 답했다.
“호텔에서 나오고 4개월이 지난 건가요?”
“으음….”
4개월이면 120일이 아니라 122일 아닐까?
첫 번째와 세 번째 달은 31일이었으니까.
“아, 이틀 더 지나야 하나?”
“글쎄….”
여행을 시작한 게 114일 차였으니까 벌써 일주일 가까이 흘렀다.
그동안 관광지도 여럿 구경했고, 세 사람은 이전보다 더 친해졌다고 생각한다.
“하암…! 그럼, 오늘이 마지막이야?”
“오늘 혹은 내일이 마지막이려나? 아닐 수도 있어.”
미로가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나, 조금 더 놀고 싶어.”
“그렇게 해. 어차피 본격적인 시작까진 아직도 시간이 남았으니까.”
“오빠, 예전 집을 너무 쉽게 지나친 것 아니에요?”
“…”
며칠 전 만났던 괴담 미로는 내게 스무 살 가까운 시기의 기억을 뒤져보라고 권고했었지.
처음으로 간 장소는 예전부터 살아온 서초동 집이었다.
“내가 아는 주택가가 아니었어. 엉뚱한 아파트단지로 변했지.”
“으음….”
“초등학교 대신 엉뚱한 건물이 있던 것과 비슷해. 예전 기억을 떠올릴만한 무언가가 전혀 없었어.”
축복의 힘이 분산되며 약해진 현재, 통찰의 힘은 강력한 예측에서 깨어있는 직감의 영역으로 내려갔다.
허나, 여전히 ‘적절한 장소’에 도착하거나 ‘그럴듯한 정보’를 얻으면 어렴풋한 느낌은 온다.
중학교에서 위화감을 느끼고 조언을 쓴 끝에 ‘동생’이라는 키워드를 얻은 게 그 증거다.
주택가는 아니었다.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도착했다.”
“여기가 오빠가 졸업한 고등학교죠? 그 무슨 여자애랑 같이 다녔다는 -”
“… 들어가자.”
“그, 무슨 고백 받았다고 하지 않았어?”
“풋!”
“와…! 송이야, 지금 가인이 봤어?”
“오빠 웃는 거 보니까 어이없다아! 고백 정도는 내가 훨씬 많이 받았는데!”
“풋!”
“가인이 얘 왜 이렇게 기분 나쁘게 풋 풋 하는 거야?”
“남자들은 원래 이래. 고백받은 게 인생 최고 자랑이라!”
두 사람이 뭐라고 말해도 바뀌지 않는 진실.
나는 한가인, 승리자다.
*
나는 신반포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다.
세상의 시작과 끝이 여러 번 반복된 후에야 졸업한 모교로 돌아온 셈이다.
“…”
신기하게도 이름은 똑같았지만, 공통점은 딱 그 정도.
중학교가 그러했듯이 신반포 고등학교 역시 내가 아는 그 학교가 아니었다.
그러나 학교는 결국 학교다.
교실, 운동장, 학생, 선생님 – 이런 기초적인 공통점이 내 머리를 살살 간질이는 듯했다.
“가인아~ 뭔가 떠올라?”
“… 건물로 들어가자.”
“내부 출입은 막는 것 같긴 한데…. 하긴, 우리가 언제 그런 거 신경 썼나요.”
— 딩! 딩!
귓가를 간질이는 종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주변을 돌아보니 과거의 그 학교로 돌아온 듯한 착각도 들었다.
자연스럽게 멈춘 발걸음.
문득, 고개를 드니 3학년 5반이라 적혀있다.
내가 3학년 5반이었나?
여기까진 확신할 수 없다.
고등학교의 기억은 지금의 내게 정말 어마어마하게 오래전 일이니까.
— 드르륵!
교실 문을 여니 학생 두어 명이 있었다.
“어? 누, 누구세 – 으악!”
날 보고 당황하던 학생들은 뒤에서 들어오는 송이와 미로를 보고 입을 쩍 벌렸다.
일반인 정도야 두 사람이 알아서 처리할 테니, 난 집중하자.
말없이 교실 중앙에 앉자 이번엔 이런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잠시 후, 신반포 고등학교 제21회 졸업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졸업생 여러분은 -」
“…”
「가인아! 축하한다!」
부모님의 목소리?
생각해보면 씁쓸하다.
내 삶이 한 번이 아니었다면, 부모님의 숫자도 한둘이 아니었을 터.
부모님에 대한 내 기억은 여러 사람에 대한 기억이 섞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
단지, 외모와 이름이 명확히 떠오르는 사람만 부모님이라 인지하고 있을 뿐이지.
“어? 드, 드라마 촬영 중이라고요? 그런 이야기는 들은 적이 -”
“드라마가 아니라 음, xx 대학 영화 동아리 실습! 미안해~!”
“아, 아니에요.”
즉석에서 지어내서 그런지 너무 허술한 거짓말이다.
대학교 영화 동아리라니?
미로는 아무리 봐도 대학생 아니잖아?
물론, 송이를 보고 얼굴이 새빨개진 남학생들을 보니 별문제 없어 보였다.
「야, 야! 빨리 와!」
“…”
어렴풋이 들려오는 친구의 목소리.
이외에도 낄낄거리는 주변 친구들이 보인다.
「뭐야? 너네끼리 무슨 이벤트라도 만들었어?」
이건, 내 목소리다.
“얘들아, 나가자.”
“뭔가 떠올랐어?”
“… 떠오를 것 같아.”
“응?”
“운동장으로 가면 기억날 것 같네.”
“무슨 말 -”
“미로, 오빠 방해하지 말고 그냥 나가자. 본인도 헷갈리겠지.”
“으, 응.”
*
운동장으로 나오니 발이 저절로 움직였다.
마치, 목적지가 어디인지 잘 아는 것처럼.
“송이야.”
“네?”
“저기, 저 정문 쪽에서 내 쪽으로 걸어와 줄래?”
“어…. 알겠어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정문으로 이동한 송이.
그 시점에서 내 몸이 돌처럼 딱 굳었다.
송이가 내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
기억이 만들어낸 흐릿한 환영이 송이를 덮었다.
나이는 동갑, 키는 송이보다 살짝 크다.
물결치는 고동색 머리는 어깨 아래까지 살짝 내려와 있다.
아리나 미로, 엘레나처럼 길 가는 사람들이 화들짝 놀랄 미인은 아니고, 요즘 송이보다도 부족하지만….
그래서 현실에 있을법한 사람!
과거, 반포 중학교 남학생 수십 명을 손짓 한 번으로 휘둘렀던 전설의 도내 A급 –
“으악!”
“오, 오빠?”
“으아아악!”
“가인아? 갑자기 왜 -”
“꺄아아아악!”
“얘 진짜 귀 아프게 왜 이래!”
아아….
깨달았다.
자각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둔 진실이 드러났다!
이 순간, 나는 ‘통찰’의 힘이 진심으로 원망스러웠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직감이 아니었다면 지금 내 눈앞에 이 환영이 떠오르진 않았을 텐데!
제발! 내 기억아! 차라리 여기서 멈춰라!
나 그냥 이거 믿을래!
*
– 유송이
“가인 오빠?”
“가인아?”
“…”
이게 대체 뭐래?
난 아직도 고등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가인 오빠가 이렇게 정신이 반쯤 나갔는지 모르겠어.
누가 보면 우주적인 악마가 튀어나와서 뇌를 녹이기라도 한 줄 알겠다!
어이가 없어서 가인 오빠 얼굴 앞에 손을 휘저었다.
“자아~ 오빠! 보여요? 내 손 보여요?”
“…”
“가인 오빠는 바보다~!”
더 세게?
“가인이는 멍청이다~!”
부족해?
“가인아, 송이 누나에게 죄송합니다. 해볼래?”
“죄송합니다.”
“어엇? 뭐야 진짜?”
“… 미안.”
“왜 이래요?”
“충격적인 진실을 깨달았어.”
“뭔데요? 알고 보니 동생이 한 명 더 있었다?”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미로도 끼어들었다.
“사실은 아리랑 같이 학교 다닌 적 있다거나?”
오, 이건 좀 신선한 가설 –
“허억!”
‘아리랑 같이 학교 다녔다’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가인 오빠가 식겁했다.
“그, 그래서였어….”
“오빠?”
“아리가 내 기억에서 위화감을 느낀 이유가 뭐였을까 궁금했는데, 그거였구나….”
“예?”
“호텔에 오기 전에 나랑 아리가 찍은 사진 따위가 있을 리가 없는데!”
뭐라는 거야?
호텔에 오기 전에 아리랑 찍은 사진?
“아~ 진짜 뭐가 문제인데요?”
“…”
도무지 입을 떼지 못하는 모습.
가인 오빠도 종종 우리에게 정보를 숨기곤 하지만, 지금의 일은 그런 느낌은 아니다.
중대한 정보를 숨긴다기보다는….
마치, 흑역사를 감추고 싶은 소년 같은 모습.
결국, 가인 오빠가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렸다.
“… 송이야, 호텔 오기 전에 연애한 적 있니?”
“으악!”
한가인, 이 멍청아!
가, 갑자기 이런 민감한 질문을 막 던지지 말라고!
“대, 대학 가서 사귈 생각이었어요.”
진짜야!
애초에 잘생긴 애들이 주변에 없기도 했고.
“… 만약에, 어떤 남자애가 있다고 치자.”
본인 이야기네.
“가인 오빠랑 아무 상관 없는 남자애가 있다고 치죠.”
“걔가 사실은 연애한 적 없는데, 모종의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여자친구가 있다고 말하고 다녔어.”
오빠, 그러고 다녔어요?
“… 그런 일이 있었 – 아니지, 그런 애가 있었다고 치죠.”
“근데, 그…. 가짜 여자친구가 훗날 진실을 알아챈 거야.”
“꺄아악!”
“…”
“말해봐요.”
그니까 여자애 입장에서 보면, 이상한 남자애가 내 사진을 가지고 다니면서 ‘내 여친이요~’ 하고 다녔다 이 말이지?
심지어 그걸 알았어!
“어떻게 해야 해?”
상상만 해도 돌아버릴 것 같은 전개!
나는, 단 하나의 답 외에는 떠올릴 수 없었다.
“기억을 지우세요.”
“…”
“그 여자애 기억 지우고, 본인 기억도 지워.”
“…”
“할 수 있잖아? 하라고 좀!”
“기, 기억을 지우기엔 너무 강한 여자애면?”
“설마 아리야? 미치겠네! 진짜! 진짜 호텔 오기 전에 아리랑 같은 학교 다녔어요?”
밖에다 아리 사진 내밀고 내 여친이요~! 하고 다녔다고!
“그건 아닌데 -”
“그럼 그냥 자살해! 자살하라고!”
“…”
— 짝!
미로가 핸드폰을 꺼냈다.
“둘 다 미안. 나 이제 못 견디겠어.”
“…”
“이거, 광역 최면 기능 있어. 관리국이 준 핸드폰이거든.”
“207호 교황청 핸드폰에도 그런 기능 있었는데.”
“아리는 모르겠고 우리 기억부터 좀 지우자. 나 좀 힘들어.”
미로가 핸드폰을 조작하고, 핸드폰에서 기묘한 신호음이 들리기까지….
우리 중 아무도 미로를 막지 않았다.
한 가지 슬픈 사실.
관리국 핸드폰에 탑재된 최면 기능은 일반인에게나 통하는 것이었다.
나에겐 살짝 졸린 정도로 그쳤고, 정황상 다른 두 사람도 마찬가지.
하지만, 나는 이 일을 기점으로 조금 전의 대화가 없었다고 믿기로 했다.
*
늦은 시각.
학교에서의 성과라고는 ‘모두가 잊기로 한 기억’ 말고는 없었기에 여행을 조금 더 다녀야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때, 허공을 보며 조언을 쓰던 오빠의 표정이 바뀌었다.
“오빠? 뭔가 찾았어요?”
“… 이런! 단순한 걸 놓치고 -”
가인 오빠가 설명하기 전에 미로가 잽싸게 끼어들었다.
“잠깐 정지!”
“…”
“가인아, 입 밖에 내기 전에 생각! 난 가인이 전 여친 이야기는 물론, 차인 이야기도 듣고 싶지 않아.”
“그, 그런 것 아니 -”
“전 여친이 바람피웠다거나, 아니면 여친이 둘이었다거나! 이런 것도 -”
“그런 것 아니라니까!”
“그럼 뭔데요?”
“내 진짜 마지막 기억.”
진짜 마지막 기억?
“신반포고 다녔다면서요?”
“다니다가 수능을 쳤지.”
“아, 수능 친 장소가 마지막?”
“아니, 더 있어. 내가 수능에서 다섯 문제 틀리고 -”
수능에서 다섯 문제 틀렸다.
이거 자기 자랑 맞지?
“K 대학 입학했거든.”
“거기까진 들었어요.”
“축하 파티도 하고, 학교엔 현수막도 붙었어.”
“…”
“어머님은 막 기뻐서 우시고, 아버지도 눈시울을 글썽 -”
“나, 가인이 자랑도 그만 들을래.”
“개학할 때까지 배낭여행을 다녔거든.”
배낭여행?
“여행 자금을 든든히 받아서 꽤 여유롭게 다녔지. 마지막엔 제주도의 호텔에서 보냈어.”
“…”
“가자. 제주도의 호텔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순간 딱 알았어. 이게 마지막 키워드야.”
“그 키워드는 올빼미가 줬나요? 진작 줬으면 그놈의 학교 갈 일 없었을텐데.”
“…”
“어쩌면 가인이 후원자도 견디기 힘들었을지도 몰라!”
“… 3개 짜리 조언이긴 했어.”
*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125일 차
현재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아아….
도착하는 순간, 알았다.
여기구나.
이곳이 바로 내 기억의 마지막 퍼즐, 가장 중요한 비밀이 숨겨진 장소다.
처음부터 이 장소를 떠올렸다면, 시간을 아낄 – 아니지.
순수하게 즐기기 위한 여행의 성격도 있었으니까 시간낭비 같은건 없어.
그냥, 고등학교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 잊자.
고등학교의 일은 우리 사이는 물론이고 내 인생에서 없는 일이야.
… 아리 기억 속엔 있나?
“…”
이상한 꿈을 꿨다.
시기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2월의 저녁.
때는 수능 끝난 고3, 대학 개학 전 잠깐의 휴식 시간.
살면서 여러 번 찾아오지 않는 인생의 황금기가 아닐까?
종일 관광을 다니다가 심신이 지친 채로 호텔에 누워서 잠든 직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
아니지, 여기가 아니라 조금 더 전이다.
“… 아.”
여지껏 올바른 장소가 아니었기에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통찰!
마침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스쳐 가는 이미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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