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82)
EP.582 582화 – 폭풍전야 – 꿈꾸는 방랑자 (1)
582화 – 폭풍전야 – 꿈꾸는 방랑자 (1)
– 한가인
머리가 아프다.
의식이 흐릿하다.
온통 뜨거운 열기로 가득해서 맨정신을 유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몸은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기 힘들고, 매 순간 끊이지 않는 두통이 엄습한다.
신체적인 고통보다 더욱 괴로운 것은 감각과 정보의 차단.
앞이 거의 보이지 않으며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몸 상태 때문인지, 징계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상태창도 제대로 확인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어둠 속에서 생각하는 것.
동료가 다가올 때마다 억지로 입을 열어서 떠오르는 대로 정보를 뱉는 것 정도다.
“…”
문제의 그 날, 나는 제주도에서 호텔에 들어오기 전의 기억을 떠올리려 시도했다.
결과는 지나치게 성공적이었다.
이미지 몇 장 정도가 아니라 한 편의 단편영화에 가깝게 그날의 일을 알아낸 것.
정보를 얻던 당시에도 ‘이게 맞나?’ 싶었다.
축복이 멀쩡할 때도 통찰이 이 정도의 위력을 발휘한 적 없는데, 약해진 후에 이런 성능을 보여준다는 게 이상했기 때문이다.
과연, 이벤트가 끝나자마자 나는 즉시 무력해졌고, 다음과 같은 알림이 떴다.
「규칙 위반 감지!」
「처벌 : 천기누설」
「참가자 한가인은 금지된 지식을 탐내고, 해당 정보를 타인과 나누었습니다. 참가자 한가인은 장기간 활동할 수 없습니다.」
“…”
새삼 따지기도 웃기긴 한데, 규칙을 어긴 건 내가 아니라 올빼미 아닌가?
제주도에서 한 편의 심오한 단편영화를 볼 줄은 나도 몰랐는데!
하긴, 올빼미도 나름의 처벌을 받고 있을 것 같아.
어쩌면 새장에 갇혀있을지도 모르지.
‘장기간’이라는 표현이 의미심장하다.
구체적인 기간이 적히지 않았으니 정확히 언제 징계가 풀리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렴풋이 짐작은 간다.
호텔에서 나올 때 상인이 말했던 6개월 기한이 이제 한 달 좀 넘게 남았지?
그 시기가 되면 징계가 풀리고 활동할 수 있는 상태가 될 것 같다.
구체적인 날짜를 알려주고 싶지 않아서 ‘장기간’이라는 표현을 쓴 거겠지.
“흐으으….”
“괜찮은가?”
누군가의 목소리.
동료 같은데 몸 상태가 너무 끔찍해서 누구인지도 모르겠네.
어쨌든, 동료들은 한 명씩 돌아가며 거의 매일 내게 찾아왔다.
호텔이 내린 징계인 만큼 동료들이 옆에 있다 해서 큰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었지만….
심리적으로는 크게 위안이 됐다.
“네 꼬락서니는 누가 물수건이라도 갈아줘야 할 것 같은데, 근처에 사람이 없군.”
“…”
근처에 사람이 없다면, 지금 말하는 존재는 누구지?
“정말 모르는가?”
올빼미가 내 옆에 있다.
실체를 가지고 나타났나?
아니면 목소리만 전하는 상황?
어느 쪽이든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지?
“새는 어디로든 갈 수 있지.”
새는 그렇지만, 당신은 아닐 것 같은데.
애초에 난 당신도 징계받았을 줄 알았어.
“난 괜찮다. 섬에서의 일은 나 못지않게 ‘비밀’이 힘을 많이 썼으니까.”
비밀이라면, 아리의 후원자 아닌가?
그는 내 후원자도 아닌 데 왜 그리 적극적으로 나섰지?
“그가 네 후원자는 아니지만, 비밀은 곧 그의 영역이다. 그리고…. 그 녀석은 제법 초조해하고 있다.”
비밀의 후원자가 초조해한다?
“그는 네가 자신의 참가자를 구해주길 바란다.”
상황은 이해했다.
제주도에서의 일은 올빼미와 ‘비밀’이 합작한 일이고, 책임이 분산됐기에 그 둘은 그리 강한 처벌을 받지 않은 모양이다.
“네 처벌이 이리 가혹해진 건 비밀을 본 것 이상으로 보자마자 누설했기 때문이다.”
비밀을 알아낸 것보다 타인에게 누설한 게 더 큰 문제라는 것.
그래서 내 죄명이 천기‘누설’이구나.
“따라서 책임은 대부분 너에게 있다고 했다.”
?
“처벌도 네가 감당해야 할 문제라고 했지.”
??
“그래서 난 별일 없다.”
???
이 새 놈이 이게 뭔 소리야?
“너는 진실을 말해주면 말이 험해지는 나쁜 버릇이 있다.”
어이가 없어서 욕이 나오려던 차, 다음 말이 내 입을 다물게 했다.
“이젠 좀 얌전히 있어라. 움직이기도 힘들겠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깨어있는 게 맞을까?
후원자가 내 옆에서 대화하는 시점에서 현실이 아닌 것 같다.
나는 꿈속에서 후원자와 대화 중인 게 아닐까?
“이제야 알았느냐?”
평소라면 바로 떠올렸을 텐데, 두통과 현기증이 너무 심해서 늦게 알아챘구나.
“오랫동안 심심할 테니 재미있는 꿈을 꾸게 도와주마.”
— 푸드득!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내 의식 또한 부유하듯 떠올랐다.
*
처음으로 도착한 것은 은밀한 회의실.
송이와 엘레나, 상현 형과 묵성 할아버지 넷이 모여있었다.
회의실은 재건된 딜라이트 호텔 같은데, 은솔 누나가 없네. 바쁜가?
이런 구성이라면 상현 형이 혼자 이야기하고 나머진 듣기만 할 것 같은데, 의외로 송이가 중앙에 있었다.
제주도에서 내가 무력해지기 전에 내게 정보를 전달받은 사람이 바로 송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송이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바람에 ‘누설’이 추가되어서 처벌이 가혹해졌네.
“세 가지 이야기, 다 이해하셨나요?”
상현 형이 고개를 끄덕인다.
“첫째는 환생 후에도 전생의 죄에 대한 책임이 있느냐는 것. 둘째는 방주와 관련한 비극적인 역사. 셋째는…. 천국? 맞습니까?”
“네.”
엘레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랐어요. 가인 씨가 호텔에 오기 전부터 회귀자였다?”
할아버지가 정정했다.
“요원처럼 완전한 회귀자는 아니다. 그랬다면 기억과 인격이 계승되어야 하는데, 가인이는 호텔에 오기 전엔 그렇지 않았어.”
“전에 언급한 마마와 유사한 것 같습니다. 루프 전의 기억을 어렴풋이 떠올리긴 하는데, 그게 전생의 기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죠.”
“기억의 모순은 단순히 자신이 헷갈려서라고 생각하고.”
“그게 보통 사람 아니겠습니까? 난데없이 루프 같은 걸 떠올리는 게 더 이상하니까.”
엘레나가 다시 의문을 던졌다.
“이야기 자체는 이해했는데, 이 내용이 지금 우리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모르겠네요.”
“내 생각에, 첫 번째 이야기는 가인 군 개인에 대한 정보 같습니다. 환생 후에도 전생의 죄에 책임이 있는가? 이건 환생 전후에 같은 사람이냐의 문제인데….”
“관리국 요원들과 무관한 이야기지. 그들은 기억과 인격이 완벽하게 계승되는 자들이니, 당연히 같은 사람이다.”
“그렇습니다. 가인 군처럼 불완전한 회귀자일 때 생기는 윤리적인 고찰이죠. 가인 군 개인에 대한 정보입니다.”
할아버지와 상현 형의 이야기를 들은 송이가 다소 불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기…. 그 말대로면, 이야기 속의 ‘어린 히틀러’가 가인 오빠라는 말인가요?”
그러자 모두가 조용해졌다.
… 아무리 그래도 어린 히틀러는 너무하네.
“으흠, 다음 이야기로 갑시다. 방주에 관한 이야기. 이거야말로 현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동의한다. ‘방주’라는 키워드 자체가 익숙하지 않냐? 이미 여러 번 들었어.”
송이가 기억났다는 듯 강조했다.
“가인 오빠는 ‘주’ 역시 방주의 일종인 것 같다고 중얼중얼했어요!”
“그러고 보면, 은솔 언니도 말했었죠. 에스퍼 호에서 이상한 영역에 잡혀갔을 때, ‘방주’로 지칭되는 신적인 존재를 만났다고.”
상현 형이 턱을 쓸며 중얼거린다.
“아무래도 ‘방주’는 보통 생각하는 배와 전혀 다른 무언가군요. 대재해 속에서 필멸자를 보호하는 신적인 존재를 칭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신적인 존재 그 자체일 수도 있지.”
할아버지의 말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다들, 그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이해했기 때문이다.
“… 주 또한 방주다. 가인 군의 신성한 태양은 작은 주다.”
“신성한 태양은 사람의 영혼을 모으는 역할을 하죠.”
결국, 엘레나가 두려운 기색을 드러내며 중얼거렸다.
“세상 사람들의 혼을 한데 모아서 신적인 존재로 빚어내면, 그게 방주다?”
“유력한 가설이 아닌가 싶구나.”
방주에 대한 해석이 이루어졌으니, 뒤늦게 도착한 사람들이 방주를 강탈했다는 이야기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다.
“고대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고대라….”
“아주 오래전. 우리 중 가장 앞선 루프의 존재가 아마 가인 군일 텐데, 그 가인 군보다도 훨씬 앞선 일인 거죠.”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오래된 일.
“일종의 고대 역사입니다.”
“… 그러면, 그 이야기에서 나오는 ‘마지막 생존자’는 누구냐?”
“처음에는 가인 군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면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마지막 생존자의 정체는 누구일까?
나?
그렇게 보기엔, 그 앞의 이야기와 아귀가 들어맞지 않아.
그 앞의 이야기에선 내가 또 뭐, 아기 히틀러라며?
마지막 생존자가 일족의 원한을 갚는 일은 나름대로 명분이 있는 복수 아닌가?
이걸 가지고 지옥도에 떨어질 죄라는 둥, 아기 히틀러라는 둥 하는 건 다소 어색하다.
물론, 설령 명분 있는 복수라 해도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다면, 지옥에 떨어질 일이 맞을지도?
잘 모르겠다.
“한데, 가인 군이 얻은 정보와 아리 양이 준 정보를 비교하면 기묘한 차이점이 있군요.”
제주도에서 얻은 정보와 아리에게 얻은 정보의 차이점.
“회귀에 관한 이야기, 방주에 관한 이야기. 이렇게 둘은 대충 겹친다고 칩시다. 하나가 완전히 다르지 않습니까?”
아리가 강조한 ‘현실의 마왕’에 대한 이야기가 제주도 쪽 정보에선 완전히 빠져 있다.
반면, 아리는 언급조차 하지 않은 ‘천국’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뭐…. 정보 소스가 다를 테니.”
그때, 송이가 예리한 의견을 냈다.
“제주도에서 가인 오빠가 얻은 정보는 아주 오래된 정보잖아요? 고대사!”
“그렇지요.”
“아리가 준 건 최신 정보죠. 그니까, 현실의 마왕 혹은 달의 악마는!”
“가인 군이 호텔에 들어오기 전엔 없었다?”
일리 있다.
내가 기억하는 달은 밤하늘을 빛내는 지구의 위성이지, 무슨 태고의 악마니, 우주의 재해니 하는 게 아니었다.
이후, 동료들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흥미로우면서도 이게 맞나 싶은 부분이 적지 않았다.
어떤 해석이 정확한지는 시간이 지나며 차차 밝혀지리라.
의식이 다시 붕 떠오른다.
올빼미 생각에 이 뒤의 회의에는 별 가치가 없었던 모양이다.
*
다음으로 도착한 장소는 밤의 학교였다.
핸드폰 조명을 뒤로 하고 미로, 승엽, 진철 형 세 사람이 있었다.
은솔 누나는 혼자 있나?
“다들 내 말 이해했지!”
기세등등한 미로의 말에 승엽이와 진철 형이 어색하게 웃었다.
“이해는 했다. 그니까, 네 몸에 깃든 괴담 미로가 -”
“다크사이드 미로가 위기야!”
“…”
“송이에게 들었는데, 다크사이드 -”
“미안한데, 차라리 괴담 미로라고 해라….”
“싫어! 흑룡 미로가 마지막에 사라질 때 ‘슬슬 나도 견디기 힘들었거든!’이라고 했대.”
“들었다.”
“무슨 말인지 그때는 이해 못했는데, 이제 알았어. 흑룡 미로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짧아!”
“…”
“그 시간을 가인이랑 대화하는 데 거의 썼거든? 그래서 흑룡 미로가 정신이 좀 나간 것 같아.”
승엽이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 말을 왜 날 불러놓고 하는 거야?”
미로가 당당한 표정으로 답했다.
“흑룡 미로는 위험하니까!”
“위, 위험하니까 날 불렀어?”
“위험한 일은 너희가 처리해야지. 한 차례 날뛰고 나면 흑룡도 얌전해질 거야. 이제 부른 -”
“으아앗!”
“어어! 지, 진정 좀 해라!”
승엽이와 진철 형이 뭐라고 하든, 미로는 코털만큼도 신경 쓰지 않은 채 교탁 위의 종이 위에 손을 올렸다.
종이에는 O, X가 그려져 있었다.
“시작! 분신사바!”
“진정 좀 하라고 이 멍청아!”
“아오! 요즘 중학생은 다 이러냐?”
“형! 전 저런 짓 한 적 없 -”
요즘 중학생이 다 미로 같았으면 세상이 다섯 번은 망했지.
“분신사바! 분신사바! 오잇테 구다사이 -”
…
진짜 미로는 재밌게 사네.
종종 느끼는데, 나랑 아리가 없으면 그 누구도 미로를 통제할 수 없다.
뭐, 지금 미로의 행동이 틀렸냐 하면 애매하다.
진철 형과 승엽이로선 황당하겠지만, 내가 미로였어도 이렇게 동료들 불러서 해결했을 것 같네.
의식이 다시 붕 떠오른다.
아하, 은솔 누나다.
혼자 어디 있나 했더니 여기 있었네?
누나는 혼자 있지 않았다.
“어머니, 오랜만이에요.”
“…”
누나는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한 채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