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84)
EP.584 584화 – 폭풍전야 – 신년 모임 (3)
584화 – 폭풍전야 – 신년 모임 (3)
– 이은솔
돌이켜보면, 가인이의 제주도 여행이 일종의 기점 아니었을까?
‘나대지 말고 쉬라’는 호텔의 권고를 반쯤 무시할 만큼 행동력이 강했던 가인이가 쓰러지자 남은 사람들은 순한 양처럼 진짜 쉬었으니까.
진짜 백수처럼 놀았다는 말은 아니야.
나는 호텔 경영에 매진했고, 엘레나는 다시 에스퍼 호의 주인으로 돌아갔고, 진철이는 요원 일에 최선을 다했잖아?
물론, 이런 건 말하자면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셈이니 조금 다르긴 하지만.
…
시간은 쏜살같이 흐르며 해를 넘겼고, 어느새 1월 중순이다.
호텔 탈출 시점부터 세면 아마 172일 차?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6개월 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
조만간 본격적인 환란이 시작되지 않을까?
이제부터는 개인 활동을 접고 모여있기로 했다.
그래서 나와 진철이는 리무진을 타고 동료들을 데리러 가고 있다.
*
“이야~ 진철이 너, 운전 실력 많이 늘었다? 솔직히 몇 달 전엔 진짜 별로였는데.”
“… 운전을 두고 지랄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아닙니까.”
“누구야? 그, 네 사수였다는 다른 요원?”
“말도 마십쇼. 그나저나, 여기가 송이 학교입니까?”
“맞아. 저기에 -”
“…”
송이 학교 쪽을 보는 순간, 나와 진철이의 말문이 동시에 막혔다.
운동장부터 시작해 온 사방에 노점이 가득하다.
노점을 운영하는 건 학생들이었는데, 다들 행복하게 웃으며 붕어빵을 만든다, 파전을 굽는다며 야단이었다.
여기저기엔 주사위 놀이를 하는 장소와 카드놀이를 위한 장소도 보였다.
지역 주민들도 다들 추운 날씨를 이겨내고 나타나 활기차게 웃고 있네.
멍하니 그 광경을 보던 진철이가 중얼거렸다.
“저거, 무슨 겨울 문화제 행사 이런 겁니까? 히야! 한국이 좋아지긴 했네요. 나 어릴 때는 문화제를 저렇게 지역 축제처럼 요란하게 하는 건 대학에서나 가능했거든요. 고등학교 축제는 완전 형식적이어서 -”
“요즘도 그래.”
“…”
“보통 한국 고등학교에서 저 난리 칠 돈도 없고, 학부모들도 죄다 입시에 목매다는데 무슨 축제는 축제야? 저런 짓 하면 난리나. 이럴 시간에 수능 특강 한 번 더 돌려야지.”
“…”
직접 본 건 처음이지만, 송이 학교에 찾아간 다른 동료들에게 말은 몇 번 들었다.
송이의 삶이 마치 ‘일본 만화 주인공’처럼 변했다던가?
나야 그런 만화를 본 적은 없지만, 창작물 속의 일본 고등학교는 문화제를 어마어마하게 거창하게 한다고 들었다.
“아니, 저래도 다들 위화감을 못 느낍니까?”
“들어보니 부잣집 애들만 모여있는 학교라 대학 따위 신경 안 쓴다더라.”
“아~ 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학교군요? 그래서 -”
“말도 안 되는 설정이지.”
“…”
부잣집 애들만 모인 학교는 입시에 신경 쓰지 않는다?
전직 재벌 3세로서 말하건대, 위 이미지는 창작물에서나 나올법한 이상한 환상이다.
실제로는 기부입학이든 해외 유학이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애들 학벌을 알아주는 명문대로 만들려고 한다.
루프 속에서 으스러진 돌아가신 내 아버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마 송이가 본 드라마 혹은 만화에 그런 설정이 있었나 봐.”
“… 데리러 갑시다.”
“밖에 있으라던데?”
“나오지 않으니 데리러 가야죠.”
송이를 데리러 교내에 진입한 후, 나와 진철이는 더 어처구니없는 장면을 보았다.
“사랑하는 언니께 인사!”
“소, 송이야! 진짜 내년엔 학교 안 다니는 거야?”
무슨 학교 내 아이돌처럼 주변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송이.
송이는 어느새 어깨 아래까지 내려온 머리카락을 나풀거리며 포즈를 취하며 주변 애들과 눈을 맞췄다.
“… 쟤 뭐합니까?”
“감동의 이별 중이잖아.”
“아니…. 저 쇼는 뭐냐는 말이죠.”
“학생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아이돌이라고 생각해. 은퇴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니까, 팬들이 슬퍼하는 셈이지.”
“하, 학교에 아이돌이 있어요?”
“그냥 그런가 보다 해.”
보면 볼수록 은근히 웃기면서도 부러웠다.
정말, 송이는 남들 눈치 보지 않고 6개월간 재밌게 살았구나!
말 그대로 만화 주인공 같은 삶이잖아?
나도 저런 소원 빌어볼 걸 그랬나?
“아이고~! 송이도 참, 무슨 저런 -”
“너, 꿈 남았지?”
“…”
“평화가 찾아오면, 송이처럼 꿈 써보든가.”
“무슨 말입니까?”
“혼탁한 세상 속에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요원 차진철, 차가운 도시를 거닐던 중 진실한 사랑을 맞이한다.”
“누, 누님!”
“운명의 상대는 연예계의 스캔들에 심신이 지친 아름다운 20대 여배우, 그녀는 든든한 요원 차진철을 만나 마음의 평온을 찾는데 -”
“으아악!”
농담 따먹기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곧 살짝 볼이 상기된 송이가 리무진으로 들어왔다.
“아이, 참~! 운동장 밖에 있으라고 했잖아요!”
“진철이가 들어가자고 했어.”
“오빠!”
“… 그, 그렇게 요란하게 놀고 있을 줄은 몰랐지.”
“송이야, 왜 그래? 설마 네 꿈이 부끄럽니?”
“언니!”
“항상 당당해야지. 나는 제국고 아이돌 유송이다.”
“꺄악!”
재미있는 것과 별개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송이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진지하지 않아.
주변 일반인을 사람보다는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소품처럼 대하는 것 같다.
그때, 진철이가 다소 불편한 질문을 던졌다.
“송이야. 지금 네가 저 사람들을 대하는 게, 어, 우리를 대하는 것과 너무 다른 것 같다.”
“당연하지 않아요?”
“…”
“오빠나 언니, 그리고 동료들은 모두가 제 가족이에요. 저 사람들은 아니고.”
가족이라는 표현에 마음이 뭉클하면서도 동시에 궁금했다.
일반인은 ‘가족’이 아니라는 걸까?
아니면 ‘사람’이 아니라는 걸까?
…
타박할 생각은 없다.
‘겨우’ 이런 문제로 송이를 지적하기엔, 아직도 병실에 누워있는 우리의 리더 – 대부분 동의하리라 본다 –께서는 유산을 충전한답시고 무려 물신 숭배 교까지 만드시지 않았는가.
*
“아이고~! 은솔아, 네 덕에 팔자에도 없는 리무진을 다 타는구나.”
“관리국에서 일하시면서 리무진 탄 적 없으세요?”
“우리 특별한 사람이라고 광고할 일 있냐? 거의 안 탔지.”
“아하~!”
앞서 태운 승엽이와 미로에 이어서 상현 씨와 묵성 할아버님까지 탑승하니, 리무진이 제법 복작복작해졌다.
“미로 너, 학교에서 소란을 피웠다면서?”
“무슨 소란?”
“인마! 승엽이에게 다 들었다. 학교에서 뭐? 괴물을 소환해?”
“와~! 승엽이 얘 완전 치사하네? 별일도 아니었는데 묵성이에게 일렀어?”
“… 별일 아니라니. 그날 괴담 미로에게 내 팔이 잘려 나갈 뻔했는데.”
“멀쩡한데?”
“내, 내가 잘 피한 거지!”
“그럼 된 거지!”
뒤에서 들려오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실종된 아리에 이어서 가인이까지 병실에 입원한 후, 미로는 정말이지 하늘 아래 무서울 게 없는 소녀가 되고 말았으니까.
뭐, 그래도 선을 넘는 일은 아직 없었다고 봐.
어쨌든 승엽이 팔이 잘리진 않았잖아?
“야! 사과 한번을 안 하냐!”
“왜? 내가 네 무공 수련 도와준 것 아니야?”
미로야, 이 말은 좀 뻔뻔하다….
“자, 자, 진정들 합시다. 호텔에 도착하는 대로 가인 군을 만나야 할 것 아닙니까?”
“…”
과연, ‘가인’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미로가 얌전해졌다.
여러 가지 의미로 참 순수한 사랑이다.
“가인 군은 미로 양이 사과할 일은 사과하길 바랄 것 같군요.”
“…”
“어떻게 생각합니까?”
“… 미안해.”
상현 씨는 그 순수함을 이용할 줄 알았다.
“요원님.”
“선생, 이젠 전직 요원이라니까?”
“자녀 분들은 어떻게, 텍사스에 잘 도착했습니까?”
“저번 주에 연락받았지. 선생 덕이니,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할아버지답지 않게 공손한 말투에 고개까지 숙이는 걸 보니 정말 고마웠던 모양이다.
동료 중 몇몇은 꿈으로 가족을 만들었는데, 이들은 회의 끝에 가족을 전부 미국에 보내기로 했다.
가족이 안전한 장소에 있길 바라는 마음은 이해하긴 해.
하지만, 미국이 정말 안전하긴 할까?
모르겠다.
할아버님이나 상현 씨도 확신할 수 없겠지만, 막연한 희망을 품은 게 아닐지.
“…”
종종 이런 생각이 든다.
동료들이 일반인을 언제까지 진실한 가족이라 여길 수 있을까?
요원 경력 있는 할아버님도 요원치고는 경력이 짧다고 들었으니 아직은 자식과 손자를 ‘진실하게’ 여기지만….
머나먼 미래, 우리가 루프를 연거푸 거친 후라면 어떨까?
그때의 우리는 더 이상 일반인 가족을 만들려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각자 뭐, 비장의 수 같은 것 없냐?”
“나는 꿈이 남았습니다. 미로도 남았지?”
“응.”
“진철이랑 미로는 꿈? 나머지는?”
“하하~! 전 ‘천하제일고수 각성’이 있습니다! 일회용이지만요.”
승엽이의 천하제일고수 각성이라….
나쁘지 않네.
한번 정도는 모두를 구해줄지도?
참고로 나에겐 탐욕의 손이 있다.
주변에 동료가 있다면 쓰기 어려운 게 문제긴 해.
“도착! 다 내려.”
이제부터는 모두가 같이 지낸다고 생각하니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정말, 다시 모두가 저주의 방에 도전하는 느낌이잖아?
*
– 한가인
— 스으으…!
심연과도 같은 정신세계 속에서 바깥을 느낀다.
“…”
어릴 때 좋아했던 슈퍼 히어로 중 시각 장애인 히어로가 있었다.
그는 시각을 잃었으나, 뇌가 시각의 부재를 메꾸기 위해 초인적인 청각을 발전시켜 그 힘을 바탕으로 공간을 3차원으로 지각할 수 있었지.
당시엔 만화적인 과장이라고 생각했는데….
한 달 넘게 반 혼수상태로 지내보니, 아주 틀린 이론은 또 아니었다.
시각을 잃은 사람들이 청각을 발전시키는 것처럼, 몸 전체를 놓아버린 나는 일종의 영성(靈性) 혹은 육감이 예민해졌으니까.
현실로 나오며 약해진 축복으로 인한 손해를 조금이나마 메꾸고 있다.
어쩌면, 이 또한 올빼미의 바람이었을지도 모르지.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174일 차
현재 위치 : 서울시 영등포구 딜라이트 호텔
현자의 조언 : X」
약 3일 전부터 상태창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징계가 끝나가고 있다는 것, 회복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
즉, 환란의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는 의미.
그리고….
「시나리오 이해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시나리오 : 도둑맞은 세계
구체적인 내용은 징계 종료 후 공개됩니다.」
도둑맞은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