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85)
EP.585 585화 – 폭풍전야 – 휴거 (4) Fin
585화 – 폭풍전야 – 휴거 (4) Fin
– 박승엽
— 타닥! 타다닥!
“아 진짜! 물리지 말라고 했잖아!”
“…”
— 타다닥!
“와! 더럽게 못 하는 주제에 입까지 털어? 너네 오늘 뒤졌다!”
EE 미드 병신아!
Q 니가 생각이 있으면 –
W 타워 옆에서 나가지 말고
R –
– 덥석!
근처에서 커피를 마시던 은솔 누나가 다가오더니, 갑자기 내 손을 잡았다.
“어? 누나?”
“… 그만하렴.”
“네?”
“소피아를 배려해 줘. 가끔 호텔에 오잖니.”
“예?”
내가 롤하는 것과 소피아 배려가 무슨 상관임?
“끄면 안 돼?”
“지, 지금 겜 하고 있어서 -”
“항복 투표가 나온 상태 아닙니까? 승엽 군이 찬성하면 4표군요.”
“이, 이길 수 있는데 왜 항복해요!”
“내 생각에 그 파티는 이미 내분이 심해서 못 이깁니다.”
“아니 -”
“승엽 군 채팅 때문에 못 이깁니다.”
“…”
의사 선생님은 요즘 진솔이 때문에 은근히 게임 지식이 늘어서 성가시네.
곧, 누나가 말없이 마우스를 움직여서 항복 버튼을 눌렀다.
아~! 짜증 나!
오늘도 마스터를 향한 내 꿈에서 한 걸음 멀어졌다.
이 광경을 실실 웃으면서 보던 송이 누나가 말했다.
“승엽이 너, 바보 아냐?”
“뭐가요.”
“무슨 무공까지 익힌 애가 아직도 게임을 못해?”
“와~! 못하는 거 아니거든요? 내 점수면 상위 1.3%고 -”
“무공까지 익히고 일반인 사이에서 상위 1%가 잘하는 거야?”
말문이 탁 막혔다.
그러자 옆에 있던 짜증 나는 의사 선생님이 한마디 거들었다.
“여러 번 말하지만, 지금의 승엽 군은 신체 능력이 문제가 아닙니다. 반사신경 등은 인간 이상이죠.”
“그럼, 뭐가 문제에요?”
“괴상한 고집과 부족한 이론에서 오는 형편없는 판단력, 키보드로 남들과 싸우는 -”
와! 저 아저씨 진짜 왜 저래?
천하제일고수의 정의의 주먹 한번 보여줘?
“승엽아, 어차피 꿈 썼잖아?”
“썼죠.”
“소원으로 빌지 그랬어. 세상에서 제일 게임을 잘하게 해주세요~ 하고.”
하!
이제 내가 반격할 차례다.
“제국고 아이돌 송이 누나처럼?”
“… 그, 그래!”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뭐?”
“내가 직접 노력해서, 실력으로 올라가야 의미가 있지 꿈 써서 가는 건 반칙이잖아요.”
“어 -”
“중국산 치트가 호텔산 치트로 바뀔 뿐인데.”
“…”
“오히려 누나에게 묻고 싶어요. 춤을 추든 노래를 부르든 최소한의 뭔가가 있어야지, 꿈으로 다짜고짜 제국고 아이돌?”
“으윽!”
“와~ 이런 유치한 스토리는 초등학생도 웩 -”
“후유….”
옆에 있던 은솔 누나가 크게 한숨 쉬면서 내 입을 막았다.
“둘 다 서로에게 상처는 그만 주는 게 좋겠어. 상현 씨도 거들지 마시고요.”
“거든 건 아닙니다. 다만, 승엽 군이 진솔이를 적극적으로 유혹해서 게임 중독에 빠트렸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았을 뿐입니다.”
“…”
그건 사실이긴 해.
진솔이랑 게임을 하는 건 꽤 재밌었으니깐.
요즘은 대충 이런 느낌으로 슬슬 쉬면서 지냈다.
딜라이트 호텔 지하 피시방에서 롤하다가 인터넷이 끊겨서 짜증 낸 기억.
텍사스의 진솔이랑 통화하면서 요즘 유행하는 FPS 게임 이야기하다가 의사 선생님 눈총을 받은 기억.
겨울인데 지하 수영장에 따뜻한 물 채워서 수영한 기억도 난다.
모두가 딱 하나의 원칙만 지켰다.
가능하면 여럿이서 모여 다니면서 혹시 모를 위협에 대비하기!
“가인 씨가 곧 정신 차릴 것 같아요!”
엘레나 누나는 다른 동료들보다 이틀 늦게 합류했는데, 다행히 그사이 별일이 생기진 않았다.
“으음…. 가인 군에겐 미안한 말인데, 마냥 기쁜 이야기는 아니군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모두가 내심 공감했다.
형은 혼수상태에 빠지면서 ‘큰일이 벌어질 때 징계가 끝날 것 같다’라고 했으니까.
*
저녁 무렵.
진철 형, 묵성 할아버지와 함께 가볍게 야외 운동장에서 몸을 풀었다.
“이야~ 은솔 누나 호텔은 대단한 것 같네요. 운동장까지 있다니!”
진철 형이 무슨 말이냐는 듯 날 보았다.
“운동장?”
“여기 운동장 아니에요?”
“운동장이 아니라 주차장이다. 아무리 5성 호텔이라 해도 서울 한복판에 야외 운동장은 못 만들지. 페인트가 눈으로 덮여서 헷갈렸구나.”
“주차장?”
내가 주차장 이런 걸 잘 모르긴 하지만, 주변에 차가 한 대도 없는데? 하다가 깨달았다.
며칠 전부터 이 호텔에 손님은 우리뿐이니 차가 있을 리 없다.
“아! 페인트가 안 보여서 헷갈렸네!”
“그렇지.”
“…”
“…”
주차장으로 다가오는 흐릿한 인영을 보는 순간, 넋이 살짝 나갔다.
어깨 아래에서 찰랑이는 고동색 머리카락, 가녀리면서도 볼륨 있는 –
내 태도를 본 할아버지가 고개를 까딱였다.
“뭐야? 왜 그러냐? 저거 – 송이잖아?”
“아.”
아오! 진짜 송이 누나네?
이 사실을 깨닫자마자 크게 실망하며 정신이 확 들었다.
다시 보니 머리 색이 고동색보다는 검은색에 가까웠고 체형도 좀 다르다.
내가 보고 싶었던 사람은, 인정하자, 솔직히 저렇게 볼륨감 있진 않았어.
“으음, 혹시 유미라고 착각한 게냐?”
“…”
“오~ 멀리서 보니까 머리 길이도 비슷하고 해서 헷갈릴 법 하구만!”
“… 아니에요.”
“아니긴 뭘 아냐!”
속내가 들켰다는 사실보다 놀릴 거리 하나 찾았다는 할아버지의 눈빛이 더 신경 쓰였다.
여기에 내심 감동한 표정을 짓는 진철 형을 보니,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어졌다.
“다들 들어오래! 전화했는데 왜 안 받아~!”
“인마! 거기까지 왔으면 목 아프게 고함치지 말고 대화창 써라!”
“어머! 하도 안 써서 까먹었어요~! 할아버지 능력 존재감이 너무 없어요~!”
“와…! 송이 저거! 매운맛을 보여주마!”
할아버지가 어이없다는 듯 눈을 부릅뜨는 순간.
“꺄악!”
“어떠냐!”
“꺅! 꺅! 하, 할아버지! 이, 이게 대체 뭐냐고요!”
개인 메시지로 이상한 영상을 보낸 것 아니야?
저런 놈들 인터넷에서 맨날 봤는데, 비슷한 짓을 할아버지가 하고 있네.
“송이 이놈! 아직도 내 능력이 존재감 없어 보이냐?”
“에잇!”
이번엔 팔찌가 번쩍 했고, 할아버지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보아라! 이게 바로 다양한 관점의 힘이다!”
“… 제, 제발 거둬다오.”
“할아버지도 이거 좀 지우라고요!”
딱 초등학생 수준의 싸움에 위대한 후원자의 축복과 SF 급 문명에 도달한 외계 마도구가 쓰이고 있어….
“하…. 이 사람들 진짜 너무 유치하네.”
진철 형은 입을 꾹 다물었다.
“진짜 같이 있으면 정신 나갈 것 같아요. 형도 그렇죠?”
형은 말없이 내 쪽을 지그시 보았다.
“… 호텔로 돌아가자. 밥 먹으라는 것 같다.”
*
딜라이트 호텔 뷔페를 즐기던 중, 은솔 누나와 할아버지, 엘레나 누나가 접시를 들고 내 앞에 앉았다.
누나의 첫 말은 다음과 같았다.
“할아버지에게 들었어.”
그 말을 듣자마자 할아버지를 노려보았다.
뭘 말했는지 뻔하잖아!
“유미를 보고 싶니?”
“할아버지….”
“아이고~ 거 눈빛이 왜 이리 날카롭냐? 이게 뭐, 말로만 듣던 심즉살(心卽殺)의 지고한 경지냐?”
엘레나 누나는 살짝 감동한 표정까지 지으면서 말했다.
“207호에서 완전히 연인이 되었다며! 부끄러워할 것 없어.”
그 말이 날 더 부끄럽게 했다.
“티켓도 있으니까.”
207호 최종 보상으로 탈출, 꿈과 함께 받은 보상이 바로 티켓이지.
은솔 누나가 문제점을 지적했다.
“티켓을 쓰려면 호텔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문제네.”
티켓으로 부활이든 추가 유산이든 얻으려면 호텔 파이오니어로 돌아가야 한다.
“언니, 그러려면 최소한 호텔이 어디 있는지는 알아야 하잖아요?”
“그렇지.”
“1층은 한국 하늘 어딘가, 2층은 무슨, 스노 글로브 내부에 있다고 했죠.”
“스노 글로브는 누구였지? 민승이? 그 애 집에 있다고 들었어.”
“민승이가 아니라 민영이 아니었나요?”
할아버지가 끼어들었다.
“이건 아리가 실종되기 전에 들은 이야기다. 아리가 관리국에 지시해서 호텔 1층을 찾으라고 했었거든. 위치를 미리 알아두는 게 편할 테니까.”
“오?”
“실패했다.”
“네?”
“생각해 봐라. 일반인이 찾을 수 있었으면 한국 하늘을 매일 날아다니는 비행기들이 호텔을 찾지 않았겠냐?”
“아…. 일반인은 찾을 수 없다? 일반인을 부리는 방식으로는 안 되는 건가?”
“우리가 직접 찾으면 다를지도 모르지.”
나도 슬쩍 의견을 냈다.
“돌아갈 방법이 있는 건 확정 아닌가요? 3층이 있으니깐.”
“그렇지. 다만, 하나 묻고 싶구나. 호텔로 돌아갈 생각이냐?”
“…”
삽시간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네 사람만 모인 자리긴 하지만, 열 사람이 모두 있어도 반응은 비슷하겠지.
우리는 회귀자가 된 시점에서 불멸의 삶과 부귀영화를 모두 얻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 모든 걸 내던지고 살 떨리는 호텔에 다시 도전하기 위해선, ‘3층을 오를 확실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 우리 중 몇 명이나 있을까?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우리가 현실의 위기를 극복하고 3층에 도전하게 된다면….
그때는 예전처럼 모두 함께 오를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하지만, 언제까지고 모두가 함께일 수 있기를 소망했다.
*
날짜가 하루하루 지날수록 모두가 말이 없어지며 각자 마음의 준비를 시작했다.
호텔이 예고한 시기가 정확히 무슨 날 무슨 시인지는 몰라도 대충의 감은 있으니깐.
어제부로 6개월이 지났고, 가인 형도 거의 깨어났으니 이제 진짜 곧이야.
“도둑맞은 세계….”
가인 형이 모두에게 알린 시나리오의 명칭!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모른다.
“단어만 들어도 섬뜩하네.”
“제목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은솔 양, 도둑질이란 주인 아닌 자가 주인의 물건을 빼앗음을 뜻합니다.”
“그렇죠.”
“누가 세계의 주인이고, 누가 빼앗는 겁니까?”
그게 시나리오의 핵심 아닐까?
그 순간.
— 라아아아!
그야말로 천국에서나 들려올 법한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 벌컥!
모여있던 동료들이 즉시 몸을 일으키며 주변을 살폈다.
“바깥! 밖에서 들립니다!”
“나가서 -”
“정지! 정지!”
은솔 누나가 황급히 성급한 몇몇 동료를 제지하며 ‘안식의 피리’를 소환했다.
이게 맞네!
밖에 뭐가 있을 줄 알고 다짜고짜 나가?
“내 옆으로 붙어!”
은은한 피리 소리를 들으며 모두가 발맞추어 바깥으로 나갔다.
“…”
한순간도 쉬지 않고 들려오는 천상의 노랫소리.
정말, 너무나….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엘레나 누나가 중얼거렸다.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는 처음 들어요.”
“… 은솔이가 피리를 불고 있으니 초자연적인 힘은 아닐 텐데.”
“그냥, 순수하게 아름다운 노래 같네요.”
“7층! 거기 식당에서 밖을 볼 수 있어!”
7층에서 도착해 여의도 전경을 내려다본 순간, 모두가 말문을 잃었다.
“이게…. 뭐지?”
천상의 노래를 들은 사람들이 죄다 눈물 흘리며 거리로 나오고 있다.
간절한 기도.
하나로 모인 목소리.
하늘을 향한 부르짖음.
그야말로 구세주를 영접한 순한 양들과 같은 모습!
그때, 진철 형이 창가로 다가갔다.
설마 저 아래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나? 여기 7층인데?
곧, 진철 형이 어딘가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때가 되었도다. 구원이 도래했노라.”
밖에서 들리는 말소리?
“두 사람이 한 침상에 누워있다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이게 무슨 –
“진철 군, 그거 성경 아닙니까?”
“천상의 외침을 들어라. 천사의 목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를 들어라. 계시의 때가 왔나니, 너희는 구름 속으로 들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하리라.”
그 순간, 의사 선생님이 미친 듯이 고함쳤다.
“저기! 야자수 옆 사람!
떠오른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서서히 하늘로 떠오른다!
이은솔 : 휴거, 휴거야! 개신교의 종말론 중 하나인데 –
은솔 누나의 메시지가 멈췄다.
동시에, 쉼 없이 들려오던 누나의 피리 소리도 멈췄다.
“어엇!”
“은솔아!”
은솔 누나의 몸이 하늘로 떠오른다!
“이게 뭔-!”
진철 형이 누나에게 다가가는 순간 – 진철 형도 같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
나도 느끼고 말았다.
거부할 수 없는 위대한 손길이 나를 구원으로 이끌고 있음을!
“스, 승엽아!”
은솔 누나, 진철 형, 나, 미로.
딱 이렇게 네 명만 떠오르고 있다?
나머지와 우리가 무슨 차이지?
할아버지가 눈을 부릅뜨며 ‘모래시계’를 꺼냈다.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모래시계를 돌려서 우리에게 가해지는 ‘휴거’를 막으려는 것!
그리고 –
「천운 발동!」
「이제부터 우주의 기운이 당신을 가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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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호텔 탈출기-58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