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86)
EP.586 586화 – 도둑맞은 세계 (1)
586화 – 도둑맞은 세계 (1)
– 이은솔
이해할 수 없는 힘이 내 몸을 붙들고 하늘로 끌어당긴다.
내 휴거를 막으려던 진철이까지 나와 함께 떠오르는 상황!
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나는, 참지 못하고 웃을 뻔했다.
할아버님, 설마 무슨 콩트 하는 것 아니죠?
순발력 있게 모래시계를 꺼낸 것까진 좋았어.
근데, 갑자기 균형을 잃고 쓰러지면서 모래시계를 놓쳐?
놀라서 허우적거리며 모래시계에 다가가더니, 이번엔 탁자 위의 꽃병이 떨어지며 모래시계를 더 멀리 튕겼다.
이게 말이 되나 싶을 정도로 불운에 불운이 겹친 순간 – 벼락같은 깨달음이 모두의 머리를 내리쳤다.
박승엽 : 천운! 천운!
모래시계로 휴거를 막으려고 하니 즉시 천운이 할아버지를 방해한다?
불운에 불운이 아니라 행운에 행운이었다!
이은솔 : 정지! 가만 있 –
김묵성 : 이해했다!
이 순간, 행운이 우리에게 속삭였다.
잡혀가는 게 이득이라고!
왜? 모른다.
행운은 원래 이유를 설명해 주는 힘이 아니니까!
저항하지 않으니 금세 창문이 깨지며 순식간에 네 사람의 몸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이 상황을 견디기 힘들었던 걸까?
찰나의 순간, 엘레나의 눈동자가 시퍼렇게 빛났다.
불길한 상상인가?
그 힘을 쓸 때 눈동자 색이 바뀌었나?
그보다 뭘 하려는 거야?
설마 뭐, 비행 괴물을 불러서 따라오려고?
미로 : 올 필요 없어! 필요하면 너는 내가 부를 수 있으니깐!
미로가 엘레나를 부를 수 있다?
아하, 미로의 시간대여기에 엘레나가 있는 모양이지?
그렇다면 미로 말마따나 엘레나가 따라올 필요는 없다.
미로의 말이 지상에 남은 동료들과의 마지막 소통이었다.
휴거가 진행되며 대화창의 범위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으아…!”
이미 지상의 사람들이 꾸물거리는 개미처럼 보이는 상황.
딱히 고소공포증이 있는 게 아닌데도 토할 것 같은 어지러움이 느껴진다.
어떻게든 양손으로 피리를 잡은 채 바람을 불어넣으려 애쓴 덕에 내 정신은 아직 멀쩡하다고 생각하지만….
나와 함께 끌려가고 있는 세 명의 동료는 그새 멀어져서 보이지 않아.
이 정도 거리라면 피리의 보호 영역에서 벗어난 지 오래야.
“흐으….”
문득, 휴거 중인 네 명의 공통점을 깨달았다.
이은솔, 박승엽, 미로, 차진철.
이 넷은 모두 관리국과 연관이 있는 사람이다.
이게 선별 조건인가?
*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181일 차
현재 위치 : 서울시 영등포구 딜라이트 호텔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
상시 몽롱했던 의식이 정명하게 깨어난다.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던 몸이 자유롭게 움직인다!
「참가자 한가인의 징계가 해제되었습니다!」
진짜 더럽게 길었네!
끝나서 말이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고통받은 건 아무리 봐도 반 이상 올빼미 책임이다!
얌전히 있길 바랐는데 내가 너무 이리저리 움직이니까 강제로 눕힌 것 맞지?
그럴 거면 그냥 얌전히 있으라고 말하든가!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의식을 집중하니, 드디어 시나리오 이해가 정상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시나리오 : 도둑맞은 세계
종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는, 모든 이의 원죄로부터 비롯된 참극이지요.
영속을 갈망하는 이들이 간절함을 담아 방주를 빚어내었습니다.
깨어난 방주가 선별을 시작했고, 네 명의 참가자가 선택받았습니다.
당신은 선택받지 못했습니다.
다음 내용은 병실 밖에서 확인하세요!」
“…”
종말.
모든 이의 원죄.
방주와 선별.
네 명이 선택받았으나 나는 선택받지 못했다.
이 정도가 키워드인가?
일단 밖으로 나가자.
*
혼란에 빠진 동료들과 다시 만나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가인 씨!”
“오빠!”
“이놈아! 이제야 일어났냐?”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은솔 누나, 진철 형, 승엽이와 미로까지 네 명이 끌려간 상황.
흥미롭게도 행운이 모래시계를 돌리려는 할아버지를 방해했다고 한다.
할아버지와 엘레나가 의견을 나누었다.
“끌려가는 게 이득이라는 거냐?”
“그런 것 같네요. 꿈의 왕국 때문일까요? 우리가 음, 꿈의 왕국을 쓰면 납치당한 동료들과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
“그 꿈의 왕국이 지금 없긴 한데….”
꿈의 왕국은 본래 아리에게 있었는데, 아리는 내 꿈에 찾아온 후 실종되었다.
“아리를 구하고 꿈의 왕국을 되찾으면 된다는 것 아닐까요?”
엘레나의 말을 들은 상현 형이 답했다.
“잡혀간 동료들이 당장 죽거나 하진 않겠군요.”
“그렇죠!”
내 생각도 비슷하다.
‘깨어난 방주가 선별을 시작했고, 네 명의 참가자가 선택받았습니다.’
이 문구는 어떻게 봐도 참가자를 죽이려고 납치했다는 느낌이 아니었으니까!
마지막, 동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확인차 조언을 썼다.
「조언 : 3 -> 2」
‘납치당한 동료들은 안전합니까?’
「다급한 상황이 아니니 침착하게 행동할 것.」
오랜만에 써서 그런가 친절하네?
하긴, 다른 근거를 통해 이미 답을 반쯤 확신한 상황에서 질문 중이니까.
“모두 진정합시다. 후원자도 큰 위기는 아니랍니다.”
덕분에 당장 누가 죽을 상황은 아니다 싶어 모두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시나리오 내용을 동료들에게 전달한 후, 질문을 던졌다.
“방주 제작자는 관리국일까요?”
“뭐?”
“납치당한 사람들, 곰곰이 생각하면 다 관리국 관련자들이니까요.”
요원인 진철 형과 명목상 요원인 은솔 누나, 기억 잃은 요원 취급인 미로.
여기에 시작부터 미로 옆에 있었기에 관리국의 손길이 닿았던 승엽이까지 전부 관리국과 연이 있다.
상현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종말의 위기가 닥치니 관리국이 방주를 제작했고, 자신들과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는 네 명을 데려갔다?”
“종말의 위기. 종말 하면 크게 두 가지가 떠오르는군요.”
“두 가지? 하나는 지구 중심부에 있는 달의 악마를 말하는 것 맞지요?”
아리가 알려준 정보다.
“또 하나는 뭡니까?”
“형, 잊으셨군요. 본래 현실 하면 ‘종말을 부르는 빛’이었잖아요?”
아리와 할아버지가 꾸준히 말해왔던 현실의 가장 큰 위험 요소다.
207호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종말을 부르는 빛’은 거울과 깊은 연관이 있다.
“달의 악마, 종말을 부르는 빛, 방주…. 여러 가지가 얽혀서 머리가 혼란스럽습니다. 뭔가, 파편은 많은데 연결고리를 찾지 못한 느낌인데.”
그때, 할아버지가 한숨 쉬듯 중얼거렸다.
“듣다 보니 한숨이 나오는구나.”
“할아버지?”
“두 사람 말대로면 종말을 부르는 빛 혹은 달의 악마를 피하려고 관리국이 방주를 만들었다는 말인데…. 왜 나는 요원인데도 전혀 모르는 게냐?”
일개 요원의 보안 등급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정보였겠지.
침묵하는 자로 승진한 아리는 방주에 대해 알고 있었으니까.
다만, 할아버지 말을 들으니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아리와 할아버지는 본래 종말을 부르는 빛을 몇 번 경험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한번, 아리는 더 많이.”
“그때는 이번처럼 ‘휴거’가 없었나요?”
“있었으면 말했지.”
“…”
아리와 할아버지가 기억하는 과거와 전개가 다르다?
여기에 생각이 닿자, 동료들의 눈이 자연히 서로를 스쳤다.
“저기 -”
“아무래도 -”
“우리가 원인 같군요.”
“…”
호텔에서 무려 10명의 참가자가 탈출해 이런저런 이유로 세상에 개입한 결과, 뭔가가 바뀌었다?
그때, 말없이 핸드폰을 다다닥 하던 송이가 입을 열었다.
“지금 인터넷도 난리네요. 종말이 시작됐다, 하나님이 선한 사람만 데려가고 있다 뭐 이러고 있어요. 휴거 현상 잠시 멈춘 것 같고요.”
“잠시 멈췄다….”
“조만간 다시 시작할 것 같지 않나요?”
“내 느낌도 그렇네.”
방주가 선별한 사람을 데려가는 현상, 생각보다 길게 이어질 것 같다.
“정확히는 6개월 정도 이어질 것 같아.”
“상인이 6개월 후부터 정보 모으고, 1년 후에 난리라고 했으니깐?”
“그렇지.”
여태 모인 정보를 해석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종말이 다가오고 있으며 관리국은 방주를 만들었다.
방주는 구원받을 자격 있는 사람을 선별 중이고, 이 과정은 지금부터 6개월간 주기적으로 진행된다.
바로 그 순간, 시나리오 이해의 다음 내용이 떴다!
「시나리오 : 도둑맞은 세계
첫 번째 선별이 끝났습니다.
진실한 기적을 영접한 세계 전체가 혼란으로 들끓고 있습니다.
탐욕스러운 도적들이 당신에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다음 내용은 ‘협상 후’에 공개됩니다.」
“탐욕스러운 도적?”
“오빠?”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 설마 하는 순간, 팟-! 하며 누군가가 허공에서 나타났다.
“여! 젊은 친구, 오랜만이지?”
“… 라이언.”
화들짝 놀란 송이와 엘레나는 물론, 상현 형도 표정을 굳히며 손을 뻗어 언제든 섬광을 발사할 준비를 했다.
할아버지 역시 침중한 표정을 지으며 품속으로 손을 넣었다.
“하하~! 진정들 하시게. 따지고 보면 내가 선배 아닌가? 존중하라는 것까진 아니지만, 말 정도는 나눌 수 있잖아?”
“…”
“거기, 묵성이라고 했나? 요전의 일은 내가 사과하지.”
“닥쳐라.”
“너무 그러지 말라고. 따지고 보면, 그, 무서운 여자애가 내 몸을 도륙 냈으니 내가 본 손해가 훨씬 컸잖아?”
한번 부딪혔던 사이라 친절한 말이 오가긴 쉽지 않았다.
“라이언,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친구, 헤어질 때 ‘늙은이’가 말했잖아? 5개월 후에 다시 보자고. 그게 지금이야.”
“할 이야기가 있으면 바로 하시길.”
대화가 시작되자 엘레나가 슬며시 거짓말 탐지기를 발동해 눈을 빛내며 할아버지 뒤로 숨었고, 라이언은 입을 열었다.
“좋지. 본론으로 바로 가자고. 자네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나?”
“종말을 피해서 관리국이 방주를 만들고 있죠.”
라이언이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 으흠, 제일 중요한 건 이미 알고 있었군. 그렇다면, 방주를 만드는 이유가 뭔지 아나?”
“종말을 넘기기 위해서?”
“잊지 말라고? 요원은 방주 따위 없어도 다음 삶이 있어.”
오래전, 할아버지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요원들만 살아남으면 관리국을 재건하기 힘드니까.”
요원 1,000명을 한 자리에 모은다 한들 자동차 한 대나 만들 수 있을까?
심지어 이런 가정은 요원이 같은 시간대에 깨어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데, 실제로는 서로 다른 시간대에 깨어나니 더더욱 불가능하다.
“이미 꽤 알고 있잖아? 덕분에 대화가 편해서 좋군. 자네 말대로 요원만 가지고선 관리국을 재건할 수 없어. 훨씬 많은 설비와 전문가의 생존이 필요하지.”
“…”
“이걸 위해서 관리국은 몇몇 이계를 정보 보존 목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 지극히 불완전하네. 방주는 이를 위한 가장 완벽한 답이지.”
극소수의 요원, 이계에 숨겨둔 약간의 서적 따위로는 부족하다.
관리국의 영속성을 위해서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과 대규모 공장 수준의 설비를 보존해야 한다.
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방주다.
“모종의 이유로 방주 제작에 실패하면, 구시대의 문명을 거의 잃는다네. 최악의 경우, 루프 후 인류가 21세기에 도착했는데 아직도 중세 시대일 수도 있지.”
“그런 일이 실제 있었습니까?”
“있지. 몇 번이나 있어. 덕분에 현 문명은 정점기에 비하면 크게 쇠퇴한 상태라고?”
“…”
방주에 대해 유의미한 정보를 많이 얻었다.
그런데, 위 정보와 별개로 이 사람이 우리에게 온 이유를 모르겠다.
“방주 이야기는 알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가 궁금하군요. 라이언, 우리에게 온 이유가 뭡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친구들! 우리는 버림받았어. 알고 있지?”
시나리오는 내게 ‘당신은 선택받지 못했습니다.’라고 알려주었다.
“무슨 상관입니까? 애초에 우리는 방주 없이도 자의식을 유지할 수 있을 텐데요.”
“너랑 나, 이 자리의 사람들은 그렇지.”
“그러면 -”
그리고, 라이언 레이놀드가 동료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하나 묻자. 여기, 꿈으로 가족 되살린 사람?”
모두의 침묵 속에서 라이언이 다시금 속삭였다.
“연락해 보라고. 혹시 알겠어? 운 좋으면 방주에 선택받았을지? 하지만…. 운이 없다면 어떨까? 종말은 이미 코 앞까지 닥쳤는데.”
“…”
“거기 의사 친구! 아내와 아들이 있다던데, 아닌가?”
“…”
“소통 후배! 요전의 일은 다시 한번 사과하지. 그런데, 아들 내외와 손자들은 지금 잘 있는가?”
“…”
“거기 귀여운 아가씨! 부모님에게 연락은 했고?”
나는 라이언이 우리에게 온 이유를 이해하고 말았다!
“여러분이 말할 수 없는 속마음, 내가 말하지. 난 내 아들과 며느리, 손자를 반드시 살릴 생각이네.”
“…”
“그걸 위해선 방주의 자리를 얻어내야 하고.”
자리가 없다면 다른 사람을 쫓아내서라도!
“참 그렇지! 꿈으로 만든 가짜 가족따위 죽어도 상관 없다면, 빠져도 좋네.”
대답하는 동료는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