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89)
EP.589 589화 – 도둑맞은 세계 (4)
(이번 화의 ‘진여화’의 말은 첫 문장 이후로도 전부 중국어이며 가인이는 번역기를 통해 이해하고 있습니다.)
589화 – 도둑맞은 세계 (4)
– 한가인
인간이라는 생물은 참으로 복잡해서 단편적인 모습만으로는 전부를 알 수 없다.
송이는 더 이상 평범한 인간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으며, 그런 태도를 감추지도 않는다.
그러나 우리를 대하는 태도는 진실하며, 호텔 파티를 사실상 진짜 가족으로 여긴다.
최근, 나는 라이언 레이놀드와 송이의 성향이 제법 비슷함을 알게 되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송이에게 한 적은 없다.
라이언 역시 일반인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으며, 아들 내외조차도 거점 관리용 도구처럼 여긴다고 본다.
하지만, 송이에게 우리가 있듯이 라이언에게도 ‘진실한 동료’가 있었다.
*
— 스르륵!
“도착했다.”
“삐이이이~!”
“…”
장난으로 새 소리를 내자 라이언이 다소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까지 데려왔는데 설마 평범한 앵무새로 돌아간 건 아니겠지?’ 하는 표정이다.
동료들이라면 내 장난에 속지 않았겠지만, 라이언은 나에 대해 정확히 모르니까.
“삐이익~!”
“… 장난치지 말게.”
더 장난치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이쯤 하자.
“그럽시다. 숨겨둔 애인이 요 근처에 있는 겁니까?”
“애인이 아니라니까? 말했지만, 여화는 과거에 결혼도 한 사람이니 이상한 말 하지 않길 바라네.”
“하하! 그렇게 불안합니까?”
“불안은!”
평소의 라이언은 꽤 능글능글했는데, 지금은 여유가 사라진 모습이다.
천리안의 주인, ‘진여화’이라는 전 참가자가 전투력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라이언은 그녀의 위치를 숨기고 싶어 했고, 지금처럼 페로의 몸을 빌려 새장에 담긴 채로 와야 했다.
— 푸드득!
“날개 털지 말게.”
“몸이 좀 간지러워서 -”
“깃털을 주변에 뿌리고 나중에 깃털을 추적할 생각은 아니고?”
“…”
와! 의심 대박!
그런 일도 겪어본 모양이지?
내가 어이없어하는 사이, 라이언은 바닥에 떨어진 페로의 털을 하나하나 집어서 가방에 도로 넣기까지 했다.
— 탁!
“여화! 내가 왔네.”
— 푸드득!
“이 자식이 -”
“别做没用的事 进来吧.(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들어와.)”
*
당연한 이야기지만, 현실에는 호텔처럼 자동 번역 시스템 따위가 없다.
라이언이야 거점인 ‘기억할 수 없는 세상’이 한국에 있어서 한국말에 능숙했으나 진여화는 아니었다.
다행히 관리국의 고성능 ai 번역기를 챙겨왔기에 소통에 큰 문제는 없다.
곧 새장이 열렸다.
“아? 나가도 됩니까? 아까는 뭐, 깃털 떨어트리지 말라면서?”
“… 그냥 나오란다. 호들갑 떨지 말라는군.”
나오자마자 슬쩍 주변을 살폈다.
도시는 아니고, 중국 대도시 인근의 단독 주택인 것 같다.
진여화는 외견상 30대 중반 정도에 흑갈색 머리를 땋아 올린 제법 아름다운 여성이었는데, 다소 신경질적인 눈빛이 느껴졌다.
“쉴 새 없이 눈치 보는 꼴이 라이언과 똑같군.”
“하하! 안녕하십니까? 얼굴 한번 뵙기가 쉽지 않네요.”
“말재주를 보니 유튜브에 나오면 구독자 1억은 거뜬하겠네. 호텔보다는 동물원에 더 어울려.”
“지금 뭐라고 하시는 겁니까?”
“… 네가 참 신비한 새라고 한다.”
“절대 아닌 것 같은데? 유튜브 어쩌고 했는데? 말이 너무 빨라서 번역기가 따라가지 못합니다.”
“여화, 좀 느리게 말해라. 그리고 넌 네 기억을 다시 한번 구체적으로 설명해라.”
살짝 거북하긴 한데, 어쨌든 아리를 구하긴 해야 하니 순순히 석판이 아리와 나를 죽이려고 하던 당시의 기억을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진여화는 잠시 내 머리를 건드리더니 집중하기 시작했다.
“앵무새 머리를 으깨면 어떻게 되는 거야? 죽어?”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말게. 그는 대단한 강자야.”
“이젠 들리니까 적당히들 하시죠.”
진짜 이런 설명만 들으면 석판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는 거야?
아니지, 설명만 필요했다면 라이언이 불안해하면서도 날 굳이 데려올 이유가 없어.
분명 추가적인 조건이 있어.
탐색 대상인 석판과 직접적인 연이 닿아있는 누군가, 예컨대 내가 필요하다?
아니면 –
“찾은 것 같은데.”
벌써?
놀라는 것도 잠시, 진여화가 종이에 알 수 없는 숫자를 휘리릭 적었다.
일종의 좌표 같았고 그걸 본 라이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위치가 지상이 아닌 모양이지?”
“입구는 호주 중심부 대사막 분지 근처. 자연스러운 방법으로는 찾아갈 수 없을 거야.”
“그 말은?”
“다음은 알아서 해. 대단한 강자라는 앵무새 씨가 사막 일대의 지표를 뒤집어엎든가.”
석판으로 향하는 길의 입구는 호주 사막에 있다!
구체적인 좌표가 적힌 걸 보니까 정확한 위치까지 알아낸 것 같은데?
우리 중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기가 막힌 탐색 능력에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그 정도면 됐습니다. 라이언, 나는 빙의를 풀고 한국으로 돌아갈 테니, 당신은 페로를 데리고 -”
그때, 진여화가 갑자기 내 쪽으로 다가왔다.
“할 말이 더 있습니까?”
“…”
기묘하게 빙글빙글 돌아가는 눈동자.
필시 그놈의 ‘천리안’으로 뭔가 보려는 것 같은데….
“라이언, 나가.”
“뭐? 여화! 잊은 모양인데, 저 녀석은 -”
— 짝!
진여화는 귀찮다는 듯 가볍게 손뼉 쳤다.
그러자 라이언의 몸이 거짓말처럼 어디론가 사라졌다.
“…”
라이언을 쫓아낸 건가?
전투력이 없다면서 이건 무슨 재주야?
“나에게만 할 말이 있습니까?”
“라이언은 내 동료야.”
“들었습니다.”
“어디에도 없는 자는 아니고.”
“어디에도 없는 자?”
“언젠가부터 라이언이 따르는 놈. 아주 오랫동안 현실에서 이상한 장난질을 쳐온 노인네지.”
“… 선대 지혜?”
“그래. 나는 그가 탐탁지 않아.”
“그래서 이런 곳에 은거하고 계십니까?”
“라이언에게 네 이야기를 들었다. 같이 탈출한 동료가 침묵하는 자로 승진했는데, 비밀 유지 의무를 어겨서 석판에 추격당하고 있지?”
“맞습니다. 그래서 석판을 찾아달라고 한 거고.”
그녀는 잠깐 깊이 생각하더니, 의외의 말을 내뱉었다.
“난 오래전에 침묵하는 자 중 한 명과 결혼했다.”
“그렇습 -”
“그는 이전 루프에서 죽었지. 영혼의 정수 자체가 으스러지며 영원히 사멸하고 말았다.”
“유감입니다.”
“이 다음부터는 유료야.”
“…”
“네게 도움이 될 정보라고 장담하지.”
내게만 전해줄 추가적인 정보가 있다.
하지만 별도의 대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
“바라는 게 뭡니까?”
“네가 만일 어디에도 없는 자와 충돌하게 된다면….”
“된다면?”
“그는 라이언을 졸개로 부려서 널 죽이려 할지도 모르지.”
“그럴 것 같군요.”
“그때, 라이언을 한 번 살려줘.”
“…”
“선대 지혜, 그 노인네는 삶아 먹든 구워 먹든 상관없어. 라이언을 한 번 살려달라고.”
새삼 느꼈다.
인간성이라고는 없을 것 같았던 라이언은 내가 진여화에게 접근하는 상황을 경계했었지?
진여화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이 여자 역시 라이언을 아끼고 있다.
결혼은 다른 사람과 했다는 걸 보니 이성에 대한 사랑보다는 동료애에 가깝겠지만.
“들어보고 결정하죠.”
“…”
“상품을 봐야 가격을 매길 것 아닙니까.”
“관리국 수뇌, 침묵하는 자의 수는 9인 고정이다.”
“9인 고정?”
“이전 루프에서 내 남편이 죽으며 한 자리 공석이 생겼지. 그 자리를 네 여자친구가 채운 거야.”
“이해했습니다.”
“… 남편이 죽는 과정에서 한 가지 기묘한 사실을 알았어. 그들의 의사결정은 철저한 다수결로 이루어진다.”
“그거야 뭐…. 당연한 것 아닙니까?”
“아주 강력한 강제력이 가해지는 다수결이야. 5명이 찬성하고 4명이 반대하면, 4명은 설령 다수의 뜻에 결사반대한다 해도 명시적으로 거부할 수 없다. 대놓고 거부하면 응징당해 죽어.”
죽는 과정에서 이 사실을 알았다라….
진여화의 남편이 다수의 뜻에 반대하다가 석판에 응징당해 죽은 모양이다.
“석판의 응징?”
“아마도.”
“으음….”
“내 말 이해했어?”
“…”
“네가 관리국의 방향성을 꺾고 싶다면, 딱 다섯의 표가 필요하다.”
“…”
“네 여자친구는 네 편일 테니, 한 표는 이미 확보했지?”
여자친구라니….
어쨌든, 무슨 말 하려는지는 알았다.
“네 명만 설득하든 협박하든 하면 관리국을 내 뜻대로 할 수 있다 이 말이군요.”
“다른 방법도 있지. 정원을 줄이든가.”
“…”
“어때?”
“더 없습니까? 이 정도면 라이언의 목숨 0.7개 정도입니다.”
“… 네 여자친구를 구하려면 석판을 어떻게 해야 하잖아?”
“그렇죠. 그게 꽤 골치입니다. 동료 말로는 석판을 부수면 곤란하다던데. 아, 혹시 남편분이 죽기 전에 석판의 응징을 피하는 법을 알아내신 겁니까?”
“알아냈으면 살았겠지.”
“그렇네요.”
“다만….”
“다만?”
“이 부분은 나도 장담 못 해. 남편도 실패한 방법이니까.”
“뭐, 틀려도 라이언 0.3개분은 쳐 드리죠. 할인인 셈 치고.”
“… 종말 이후.”
“네?”
“종말의 시기까지 버티면 된다고 했어. 거기까지만 버티면, 석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도 몰라.”
대화가 끝날 무렵, 진여화가 날 지그시 보았다.
라이언에 대한 내 확답을 듣고 싶은 모양이다.
“0.99999 라이언인 셈 치겠습니다.”
“무슨 -”
진여화의 집 밖으로 날아가며 생각했다.
0.99999999~ 는 1일까 아닐까?
정답은 내 마음대로다!
*
– 미로
‘지배’의 인도에 따라 도착한 장소에는 투명한 유리 벽이 있었다.
벽 너머에는 흐리멍덩한 눈의 여자애가 있었는데, 외모는 잘 쳐줘야 12~13세 정도로 보였다.
나보다도 훨씬 어려 보이네.
뭐, 호텔 참가자니까 실제론 1,200살일 수도 있겠지만.
“예지는 아주 오래전부터 정상적으로 소통할 수 없게 되었다.”
“저 유리 벽하고 기계들은 뭐야?”
“내부에 있는 존재와 의식을 공유하기 위한 장치지.”
“예지와 대화할 수 없어서 이런 장비를 쓰는 거야?”
“정확하다.”
정신이 나가서 말할 수 없게 된 예지, 그런 예지와 소통하기 위한 설비.
“나, 이제 어떻게 해?”
“예지에게 다가가라.”
“… 다가가면 위험해?”
“너는 괜찮을 터. 다가가라.”
목소리를 듣는 순간, 기묘한 압박감을 느꼈다.
마치, 이 말을 어기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아.
“소용없어.”
“…”
“방금 그거, 네 능력이야?”
“실례했다. 생각하면, 내 말에는 저절로 힘이 실리곤 한다. 의도는 아니다. 다만, 이 대화에서 더욱 확신했다. 너는 예지의 광기를 견딜 수 있다.”
“… 뭘 물어봐야 하는데?”
“그녀가 알아서 대답하리라 본다. 이미 우리가 무수히 질문했으니까.”
불안하긴 한데, 지금은 내 불변의 힘을 믿자.
무엇보다 나도 궁금해.
예지 능력을 일종의 ‘보너스’로 얻은 가인이만 해도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위대함의 조각을 보여줬는데, 진짜 예지 능력자는 어느 정도일까?
이렇게 생각하며 유리관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
“…!”
불변조차 온전히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 이해할 수 없는 정보가 쏟아졌다!
문자를 보았다.
목소리를 들었다.
의식의 전이를 느꼈다.
오래전에 예언자를 만났음을 알았다.
지금 예언자와 대화 중이다.
훗날 예언자와 만날 운명이 확정되었다.
지금 대화 중이니, 과거의 예언자는 미래에 날 만날 것임을 알았다.
과거의 예언자가 미래의 나와 대화하는 광경을 보았으니, 지금 대화할 운명이 확정되었다.
그렇다면, 나와 그녀의 대화는 현재와 과거, 미래 중 언제 이루어진 것일까?
지금 대화 중인 거야?
과거에 예언자의 꿈속에서 대화한 거야?
아니면 미래에 –
아아…!
이래서 얘가 미쳤구나!
이건 근본적으로 사람의 뇌가 감당할 수 없는 능력이다!
“드디어 네가 왔구나. 나는 너를 무수히 보았고, 보고 있고, 볼 것이다. 오랜 기다림의 시작과 끝을 알았다.”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소녀의 말을 과거에 들었는지 현재 듣고 있는지 미래에 들을 예정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