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90)
EP.590 590화 – 도둑맞은 세계 (5)
590화 – 도둑맞은 세계 (5)
– 미로
바닷가, 모래사장의 모래들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학교에서 배운 지식에 따르면, 본래는 커다란 돌과 암석이었다고 한다.
적게는 수만 년, 길게는 수억 년에 걸쳐 파도의 힘이 돌과 암석을 끝없이 내리쳤다.
그 끝에 쪼개지고, 또 쪼개지고, 갈리고, 또 갈린 결과 광대한 모래사장이 만들어진 것.
정보의 파도가 나를 끝없이 내리친다.
끝없이, 영원히,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 지식의 폭풍이 몰아친다.
이곳에서 인간의 나약한 정신은 부드러운 진흙과도 같다.
수억 년은커녕 불과 수개월이면 잘게 쪼개진 모래알로 변하겠지.
…
나를 보호하는 단단한 벽을 느꼈다.
위태롭기 그지없는 ‘미로’라는 내용물과 달리, 내가 담겨있는 그릇은 돌이나 암석 따위와는 비할 수 없이 견고했다.
그야말로 심해에서도 꺼지지 않는 불꽃이요, 용암 속에서도 녹지 않는 얼음이다.
불변의 힘이 나를 지키고 있다!
— 파아앗!
시야가 밝아짐을 느꼈다.
*
“… 아?”
비어있는 교실 같은 장소에서 깨어났다.
솔직히 학교 같은 건 좋아하지 않는데….
두리번거리며 걷던 중, 뒤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누구니?”
뒤로 돌아서자, 허리 아래에서 찰랑이는 흑발이 매력적인 여자애가 보였다.
대충 16, 17세쯤 되어 보였는데, 뭔가 익숙한 –
“예, 예지!”
유리관 속에 있던 그 애잖아!
조금 전에는 12살 정도의 외모여서 바로 알아보지 못했어.
그녀는 재밌다는 듯 살짝 웃으며 답했다.
“예지? 내 축복을 알아? 으음…. 알 듯 모를듯하네. 참고로 내 이름은 예지가 아니야. 나는 ○■☆라고?”
“…”
딱 이름 부분만 알아들을 수 없다.
당황스러운 내 표정을 본 소녀가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엔 네 이름을 말해볼래?”
“미, 미로! 미로야!”
미묘한 쓴웃음과 함께 답변이 돌아왔다.
“못 알아듣겠네.”
“어? 내 이름은 -”
“아니, 됐어. 그냥 날 예지라고 불러. 네 축복은 뭐야?”
“… 불변.”
“나는 너를 불변이라고 부를게. 잠깐만 여기 있어.”
곧, 예지는 잠시 교실 밖으로 나가더니 크게 외쳤다.
“들어오지 마!”
다른 사람도 있어?
예지가 돌아오자마자 물었다.
“여, 여기에 나랑 너 말고도 있어?”
“당연하지. 여러 명이 더 있지.”
“여기가 어디길래 -”
“그만. 불변, 널 위해 하는 이야기인데, 불필요한 호기심을 품지 마.”
“…”
“이유가 있잖아? 날 보러 온 이유가 뭐야?”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예지를 보러 온 것은 사실이야.
“질문이 있어서….”
“질문이 뭔데?”
“네, 네가 이미 알 거라고 했는데?!”
예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질문을 하려는 주체가 네가 아니구나? 다른 사람이 널 대신 보낸 거야?”
“맞아.”
“질문 내용은 내가 알 거라고 했어?”
“응.”
지배가 내게 했던 말은 이랬지.
“… 뭘 물어봐야 하는데?”
“그녀가 알아서 대답하리라 본다. 이미 우리가 무수히 질문했으니까.”
지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예지가 재밌다는 듯 웃었다.
“지배는 그러니까, 학교에서 탈출한 사람이구나? 그 사람은 나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는 모양이네. 겁쟁이처럼 다른 사람을 대신 보내는 사람이니 당연한가?”
학교?
“학교? 음, 지배는 침묵하는 자이기도 해.”
“침묵하는 자? 그게 뭔데?”
침묵하는 자에 대해 모르나?
“관리국의 수뇌부!”
“관리국은 뭔데?”
“어…. 그니까, 루프를 반복하는 세상을 지키는 수호자? 이건 너무 좋게 말한 -”
“으에엣!”
“예, 예지?”
“갑자기! 아무렇지도 않게 폭탄 발언하지 마! 뭐라고? 루프를 반복하는 세상? 그걸 관리하는 비밀조직?!”
“…”
이상하다.
지배의 말에 따르면, 예지는 아주 오랫동안 현실에 있었을 텐데….
왜 루프도 모르고 관리국도 모르지?
호텔에 들어오기 전의 가인이조차 관리국의 존재 정도는 알았다고 들었는데.
설마 가인이보다 더 오래 전 사람?
관리국이 일반인에게 자신들의 존재 자체를 완전히 숨기던 그런 시절?
“하! 정신 나갈 것 같아. 어쨌든, 알아서 대답하라고 했으니까 내 마음대로 말할게. 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
예지 본인에 대한 이야기.
“이곳에서 나는 그리 착한 학생이 아닌 것 같아. 계속 내 능력 밖의 영역을 보려고 하거든.”
“무슨 말이야?”
“내 축복, 예지는 아주 위험한 힘이야. 사용하기에 따라선 그야말로 전지한 자에 다가갈 수 있지만….”
“있지만?”
“사람은커녕, 내 후원자조차 그 모든 지식을 감당할 수 없으니까.”
“…”
“후원자는 내게 몇 번이고 충고했어. 과유불급이다, 감당할 수 있는 영역에 머물러라.”
“그 말대로 해야 하지 않아?”
“그러려고 했지. 조금 전, 너랑 대화하기 전까지는.”
“어?”
예지는 어딘가 몽롱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허공에 뻗었다.
그 손동작만 보았는데도 어렴풋이 느껴졌다.
예지가 위험한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이젠 불가능해. 어떻게 멈출 수 있겠어? 딱 한 걸음만 넘어가면 세상의 모든 비밀이 있는데!”
“아니 -”
“지금 네 말을 들으니까 미칠 것 같아. 세상이 루프 해? 루프 하는 세상을 관리하는 비밀조직이 있어? 이런 놀라운 이야기를 듣고 참으라고?”
“그, 그러지 말고 -”
“어쩌면 이 길의 끝에 완전히 미쳐버린 내가 있을지도 모르겠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어쩔 수 없고말고! 먼 훗날의 대가를 두려워하는 겁쟁이가 될 생각은 없으니까!”
— 쿠궁!
천둥소리를 들었다.
‘이 시점’의 대화가 끝났음을 알리는 소리였다.
또한, 참가자의 파멸이 확정되었음을 인지한 후원자의 비통한 통곡이었다.
…
무궁한 정보로 가득한 소용돌이 속으로 돌아가며 지금 벌어지는 일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나는 호텔이 ‘학교’라고 불리던 시절, 친구들과 학교의 시련을 돌파하던 예지를 만났다.
예지가 관리국의 질문을 모르는 것은 물론이고, 현실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던 이유는 간단하다.
‘이 시점’의 예지는 아직 2층에서 탈출도 하지 못한 상태니까!
또한, 후원자의 충고를 받아들여 인내하려던 예지의 호기심을 ‘내가’ 자극해 광기의 길로 나아가게 했다!
극한을 추구한 끝에 미친 신이 되어버린 예지를 만났는데, 그 예지가 미쳐버린 이유는 과거에 나를 만났기 때문이다?
예지는 아주 오래 전에 돌아버렸는데, 그녀가 미친 원인을 제공한 건 미래의 나?
이해할 수 없었다.
또한, 이해하지 말아야 함을 알았다.
*
다음으로 깨어난 장소는 이상한 기계와 검은 전선으로 가득한 동굴 같은 장소.
두어 걸음을 채 걷기도 전에 이번에는 옆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오랜만이야.”
“… 예지야?”
“그래. 모습이 좀 다르지?”
이번에는 20대 후반 혹은 30대는 되어 보이는 모습.
상황의 유사함이 아니었다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나, 나 이제 상황을 알았어!”
“상황?”
“지금 내, 내 앞에 여러 시간대의 네가 나타나고 있는 것 맞지? 처음엔 과거의 너였고 -”
“그건 관점의 차이지.”
“뭐?”
“불변, 네가 생각하기엔 여러 시간대의 내가 네 앞에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내 관점에선 오랜 시간에 걸쳐 갑자기 유령처럼 나타나는 널 보고 있거든.”
“…”
“예전에는 답답했겠네. 질문의 답을 얻으라는 지시를 듣고 왔지? 그런데 정작 나는 질문이 무엇인지도 몰랐으니까.”
“이젠 질문이 뭔지 알아?”
“알지. 관리국이 내게 궁금해하는 건 간단해. 달의 각성을 늦추는 방법이야.”
현실에 나온 후 우리가 알아낸 정보.
지구 지하에는 달이 있으며 달은 마왕과 같은 존재다.
저주의 방에 빗대면, 달이 곧 현실의 죄수에 대응한다.
관리국이 예지에게 얻고자 하는 정보는 바로 달의 각성을 늦추는 방법이었다!
“관리국은 달의 악마가 깨어나려는 징조를 느낄 때마다 방주를 만들어서 다음 루프로 도망쳐 왔지. 하지만, 관리국은 한 가지 두려운 사실을 알았어.”
“뭐, 뭔데?”
“달의 각성 시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아?”
“아주 오래전의 루프에선 25세기 이후였다고 하지. 그런데 점점 빨라지더니, 네 시점에선 21세기네.”
“…”
“더 앞당겨지면 어떨까?”
“그, 그러면….”
“그게 관리국이 생각하는 최악의 배드 엔딩이야. 방주를 타고 다음 루프로 탈출했는데, 탈출 시점에선 이미 달의 악마가 깨어있는 거지.”
“…”
“방주가 죄수 앞에 도착하는 거야. 도착과 동시에 아그작! 관리국의 역사는 거기서 끝.”
숨이 턱 막혔다.
“너, 너는 알아? 달이 깨어나는 시기를 늦추는 방법?”
예지는 어딘가 허무한 표정을 지었다.
“… 하나.”
“하나?”
“훨씬 더 태고로 가면 모를까 네가 온 시점에선 이미 늦었어. 방법 없어.”
“어 -”
“둘.”
“둘?”
“관리국이라기보다는 너희를 위한 조언. 그냥, 세상을 망하게 둬.”
“무슨 -”
“망한 이후에 무슨 일이 생기는지 봐. 거기에 아마 답이 있을지도….”
“‘있을지도’는 뭐야! 더 자세히는 몰라?”
그때, 예지가 쓰게 웃었다.
“미안. 나도 해답은 몰라. 왜냐하면….”
“왜냐하면?”
“여기는 답을 찾지 못해서 배드엔딩이 완성된 영역이거든.”
무슨 –
예지가 빙그레 웃으며 벽면의 기계를 조작하는 순간, 푸쉬-! 하는 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기계음과 함께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우, 울음소리? 이건 마치 -”
“아기가 우는 소리야.”
“아기?”
“마지막 생존자라고나 할까….”
마지막 생존자?
그때, 동굴의 천장이 열렸다.
아아…!
보았다.
보고야 말았다.
암흑 하늘을 밝히는 단 하나의 광원, 진홍색 달을 보았다.
이곳은 완전한 침묵의 세계다.
고통과 슬픔, 절망을 느낄 지성의 흔적조차 사라진 공허한 땅이다.
달이 가하는 압도적인 위압감에 짓눌려 무릎 꿇었을 때 – 예지가 속삭였다.
“나는 이곳에서 마지막 손길을 기다리고 있어.”
“… 손길?”
“삼천 세계를 위해 우는 자의 마지막 자비.”
삼천 세계를 위해 우는 자?
“우리는 곧 그의 손에 의해 수집될 거야. 그 전에, 넌 이 자리를 떠나는 게 좋겠구나.”
— 우르릉!
마지막 순간, 나는 공허한 하늘 너머에서 뻗어온 거대한 손을 보았다.
그 손을 본 예지가 무릎 꿇은 채 우는 광경을 보았다.
최악의 최악 – 인류의 모든 시도가 실패한 순간에조차 마지막 기회는 있는 모양이다.
…
다시금 하늘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의식이 흐릿해졌다.
아직, 한 번의 여행이 더 남았다.
*
“…”
익숙한 유리관 앞에서 깨어났다.
눈 앞에는 흐리멍텅한 눈의 12세 소녀가 있었다.
나는 다시금 ‘현재’에 도착한 걸까?
“미로.”
예지는 이제 내 이름을 안다.
“세 번째 이야기를 들려줄게. 이건, 네 짝사랑에 관한 이야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