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91)
EP.591 591화 – 도둑맞은 세계 (6)
591화 – 도둑맞은 세계 (6)
– 엘레나
본격적으로 방주가 지구 곳곳에서 휴거 현상을 일으킨 이래, 현실의 질서는 완전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참회하라! 참회하라!”
“나는 죄인입니다!”
“주여…. 부디 우리를 버리지 마소서!”
창문만 열면 온 사방에서 통곡이 들려온다.
누군가는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며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신에게 사죄하느라 바빴다.
전대미문의 혼돈 속에서 몇몇 사람들은 관리국을 찾았지만, 관리국이야말로 방주를 만든 집단이니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야말로 말세 그 자체!
“가인 씨, 괜찮아요?”
“네?”
“익투스 씨가 운영 중인 선라이즈 말이에요. 그곳의 도움으로 태양을 채우고 있었잖아요? 세상이 반쯤 망했으니, 회사도 -”
“오히려 더 흥하고 있죠.”
“네?”
“종말의 위기인데 종교단체가 왜 망해요? 익투스는 요즘 대놓고 집회까지 열고 있다던데?”
“…”
종교단체에서 다단계 회사로 바뀌었다더니, 시국이 이렇게 되자 다시 종말론을 설파하는 종교단체로 변했나 보네.
참 유연한 교리요, 자유분방한 교주가 아닐 수 없다.
“라이언과 손잡기를 잘했습니다. 그놈 도움 아니었으면 비행기 타기도 힘들어서 태양의 힘으로 날아가야 하나 했을 텐데.”
“덕분에 호주까진 쉽게 왔네요.”
묵시적인 분위기가 역병처럼 퍼져나가는 세상.
비행기 기장이나 스튜어디스들도 죄다 일 그만두고 구원을 찾는 판이니, 비행기 한 번 타는 일도 쉽지 않았다.
라이언 세력은 마치 이 모든 일을 예견한 듯 준비가 끝나 있었다.
하긴, 회귀자들이고, 방주와 관련한 일도 이미 몇 번 겪었을 테니 준비하는 게 정상이긴 해.
그 덕에 호주까진 쉽게 왔다.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하니 머리가 좀 아프군요….”
“천리안으로 석판 위치는 거의 알아냈잖아요? 석판을 어떻게 하고 아리를 구하면 되죠!”
앞으로의 계획은 결국 세 가지가 핵심 아닐까?
1. 아리를 어떻게 구한다.
2. 방주를 어떻게 해서 관리국도 어떻게 한다.
3. 최종적으로 달을 어떻게 한다.
4. 해피엔딩!
가인 씨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 ‘어떻게’를 어떻게 할지 생각해야겠죠.”
‘어떻게’를 어떻게 하는가의 문제?
가인 씨는 고민이 많은 모양인데, 나는 걱정하지 않아.
“전 가인 씨를 믿어요.”
어차피 내가 생각한다고 답 나와?
답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을 믿으면 되는 문제라고!
“… 고맙습니다.”
이렇듯, 모두가 기세를 다지며 호주에서 한바탕 하려는 순간!
“앗, 아앗!”
“엘레나?”
“정지! 바, 반나절 – 아니, 하루 이틀만 있다가 들어가요!”
내 다급한 외침에 가인 씨는 물론이고 멀찍이서 폼 잡던 라이언이나 패트릭까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 가인 씨!”
“엘레나? 이게 무슨 -”
“저, 정의의 힘이 어디선가 -”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인 씨가 내 어깨를 짚었다.
“지금 상태창도 아주 바쁘군요.”
“그 말은?”
“미로가 멀리서 뭔가 하는 모양입니다. 엘레나도 소환했고, 잠시 후 나도 소환했고, 그쪽의 나는 열심히 뭔가 쓰고 있고.”
*
– 미로
“세 번째 이야기를 들려줄게. 이건, 네 짝사랑에 관한 이야기야.”
“…”
‘짝사랑’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움찔했다.
예, 예지야! 이건 지금 시점의 이야기 맞지?
아직은 짝사랑에 가깝긴 해!
설마 미래를 보고 왔는데 내 마음이 통한 경우의 수가 전혀 없었다거나 –
“미안해.”
“으악! 왜, 왜 사과하는데!”
“내가 인지한 영역에선 글쎄?”
“글쎄는 무슨 글쎄!”
“그래,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지.”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라면 애초에 시작하지 말라고!
그리고 이 이야기도 엄청 중요해!
“달과 관련한 문제는 결국, 가인의 죄와 연결되어 있어.”
가인이는 호텔에 들어가기 전부터 회귀자였다고 한다.
또, 가인이가 아주 오래전에 큰 죄를 지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있다.
예지는 이 부분을 설명하는 걸까?
“자세히 좀 말해봐!”
“현재 진행 중인 일은 과거에 가인이 저지른 죄의 속죄 혹은 수습 과정이지.”
과거에 가인이가 친 사고의 속죄 혹은 수습 과정이 바로 현재?
“아 진짜! 이해하기 쉽게 말해달라고! 예전에 이상한 일이 있었다는 건 나도 알아. 그게 무슨 일인지는 말해줘야지!”
예지의 눈동자가 다시 혼탁하게 변했다.
“여러 번 봤지만…. 잘 모르겠어.”
“장난쳐?”
“네가 이해할 수 있는 범주에서 이야기하면, 그는 오래전 관리국의 고위 연구원 비슷한 위치였어.”
“아?”
이제야 뭔가 ‘그럴듯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관리국이 격리하던 혼돈체 하나를 세상에 풀어 모든 일의 방아쇠를 당겼지.”
“호, 혹시 가인이가 해방한 게 달이야?”
“아니, 그 시기의 달은 평범했어.”
참, 가인이의 기억 속 달은 평범한 지구 위성이라고 했지?
“그러면 -”
“하지만, 달이 악마로 변하는 원인을 제공했다고 봐도 틀리지 않아.”
“…”
가인이는 본인도 잊어버린 과거의 삶에서 관리국 고위직이었다?
그런 위치에서 엄청나게 위험한 혼돈체를 해방해 달이 악마로 변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 정도면 솔직히 관리국에게 300번 정도 죽을죄가 맞는 것 같긴 해….
…
뭔가 알 듯 말 듯 하다.
예전에 들은 정보들과 연결되는 것 같기도 하고, 미묘하게 충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미래의 예지가 ‘태고 시절’로 가면 달을 억제할 수 있다는 말의 의미도 이제 알 것 같다.
가인이가 사고를 치기 전으로 가면 달이 악마로 변하는 현상 자체를 막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지금은 이미 늦었다.
문득, 한 가지가 궁금해졌다.
“왜? 왜 풀어준 거야?”
오래전의 가인이는 왜 혼돈체를 해방했지?
“… 예전에는, 동정심 혹은 윤리적인 이유라고 생각했다. 갇혀있는 존재의 사연을 이해하고 가련하게 여긴 게 아닐지.”
“사연을 이해하고 어쩌고 하는 것 보면 불쌍한 존재였나 보네?”
“그래. 분명 가련한 존재였어.”
“…”
“시간이 흐르면서, 더 많은 것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엔 미로 네가 답해봐.”
“어?”
“네가 사랑하는 청년은 어떤 사람이지?”
“무슨 -”
“악마의 사연을 듣고 불쌍해, 안타까워! 하면서 풀어줄 사람 같아?”
“…”
말문이 막혔다.
저주의 방에서 여러 번 보고 들었던 가인이의 행적들을 떠올려 보자.
필요하다면, 일말의 가책 없이 신성한 태양에 영혼을 그득그득 채웠었지?
현실에선 자제한다고 했지만, 결국 위기가 오니 다시 하수인을 부려 교단을 세웠어.
난 가인이를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거고, 객관적으로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착한 성격은 솔직히 아닌 듯!
그런 사람이 동정심에 흔들려서 대재앙의 근원을 풀어준다?
왜 예지가 혼란스러워하는지 알 것 같다.
역시 내가 가인이를 착하게 만들어줘야 해.
“내가 관측한 바에 따르면, 그의 성품은 여러 삶 속에서 유사했다. 정당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과정의 악독함은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
“…”
“이룰 수 없는 꿈에 영원히 매달리며, 도중의 지옥을 개의치 않는 존귀한 분의 성정과 닮았구나….”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 사람에겐 동정심이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었을 것 같다. 관찰자로서는 알 수 없는, 본인만 알 수 있는 이유. 그래, 이 정도면 되었어.”
— 쿠궁!
그때, 다시금 하늘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예지와의 세 번째 대화이자 마지막 대화가 끝나가는 것.
이 순간, 내게 떠오른 생각은 가인이의 죄가 어쩌고저쩌고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예지!”
“할 말이 있 -”
“너, 너도 잘 모르잖아!”
“음?”
“너도 모든 걸 아는 게 아니잖아! 그래서 실패했잖아.”
종말의 순간, 절망적인 표정으로 기도하던 예지를 난 봤어.
“그래. 그렇지.”
“네가 못한 일을 우리가 하길 바라면서, 우리 일을 멋대로 단정하지 말라고!”
“… 미로,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 -”
“짝사랑 아니야! 나는, 내가 원하는 건 전부 이룰 거야!”
그 순간, 예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상황에서 내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는 태도!
“봐! 지금 내가 이런 말 할 줄도 몰랐지?”
붕어처럼 뻐끔거리던 소녀가 어느 순간, 빙그레 웃었다.
“그래, 미로 네 말이 다 맞아. 네가 원하는 일을 전부 이루길 바랄게.”
— 우르릉!
삽시간에 어둠이 주변을 덮었다.
일시적으로 총명함을 되찾았던 예지의 의식도 다시금 머나먼 혼돈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예지와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 파아앗!
하는 느낌으로 깨어났다.
이곳은 그러니까 방주의 –
“겁내지 말고 다가가라.”
“…”
“미로, 너는 예지의 광기를 견딜 수 있을 터. 겁낼 이유가 없다.”
놀랍게도 현실의 나는 아직 예지의 유리관에 진입조차 하지 않았다!
아닌가?
진입해서 모든 걸 봤지만, 진입 전 시점으로 돌아온 거야?
“…”
새삼스레 궁금해진 건데, 유리관 속에 있는 예지와 종말 시점의 예지 중 누가 더 미래의 존재일까?
언뜻 생각하면 종말 시점이 미래인 것 같지만, 세상이 반복 중인 이상 꼭 그렇게 단정할 수는 –
그만두자.
그냥, 이런 생각을 더 하는 것 자체가 내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아.
— 삑!
갑자기 유리관에서 들려오는 기계음.
“어? 어엇! 이, 이게 무슨 일이지!”
경악한 채 주변 기기를 살피는 지배.
“예, 예지가 죽었다! 미로,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대답 대신 유리관을 바라보며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이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신의 영역에 가까이 다가간 전 참가자에 대한 예의야.
“미로!”
“죽지 않았어.”
“무슨 -”
예지는 죽지 않았다.
그녀는 진작에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선 어딘가로 떠났으니까.
이 시점까지 현실에 흔적을 남긴 건 날 만나기 위해서였을 뿐이야.
“미로, 대체 무슨 짓을 했지? 설마…. 이미 예지로부터 무언가 들었느냐? 그렇다면 우리에게 -”
지배, 이 자는 내가 막 깨어났을 때부터 괴상할 정도로 친한 체했어.
처음엔 정말 요원 시절 기억을 잃기 전의 나와 친했던 건가 생각했었지.
정작 과거의 나는 ‘침묵하는 자’를 죄다 죽일 생각이었다!
거짓말이다.
본인은 예지의 광기를 견딜 자신이 없으니, 나에게 본인 대신 위험한 일을 시키려고 친한 체했을 뿐이야!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뭐지? 동료 소환?
잊지 말자!
이곳은 방주, 쉴 새 없이 들려오는 목소리가 사람들을 기도하게 만드는 장소.
정신 저항력이 없는 동료는 불러봐야 의미가 없다.
가인이나 송이 혹은….
정의가 발동한 후의 엘레나!
“이얍!”
로케트 박치기!
다짜고짜 달려가서 지배에게 들이받자 상대가 크게 당황했다.
“갑자기 왜 이런 짓을! 설마 예지에 의해 너도 미친 -”
“아각! 앙!”
사정없이 지배의 손을 물어뜯었다!
“개 같은!”
지배가 어처구니없어하며 내 멱살을 움켜쥐는 그 순간!
— 철컥!
바늘이 반 바퀴 돌았다.
정오에 저장된 엘레나가 등장했다!
“으읏, 이 소리는 뭐죠? 주변에서 -”
“엘레나! 살려줘!”
“아? 미로?”
“이 남자가 내 옷을 벗기려고 해!”
일단 거머리 같은 놈부터 떼어내자.
내가 이제부터 방주 선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