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92)
EP.592 592화 – 도둑맞은 세계 (7)
592화 – 도둑맞은 세계 (7)
– 미로
엘레나의 눈이 시퍼렇게 달아오르는 순간, ‘지배’의 옷자락이 펄럭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순간!
— 라아아!
선공은 엘레나가 날려 보낸 황금의 물결.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뻗어간 힘의 파도가 지배를 후려치는 순간, 지배가 입고 있던 후드가 다시금 펄럭였다!
“아?”
정의의 힘에 직격당했으면서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어?
직격당한 게 아니라 몸 전체가 불투명한 환영으로 변한 것처럼!
저, 저게 저놈의 유산이야?
“진정, 진정하게! 오해가 있어!”
지배가 다급히 변명하려 했지만, 엘레나는 문답 무용으로 연거푸 힘을 쏟아내며 지배가 황급히 도망 다니게 했다.
지배는 펄럭이는 로브로 정의의 힘을 받아내는 와중에도 쉼 없이 자기 자신을 변호했다.
“그대, 이성이 있다면 생각하게. 정말 내가 미로를 추행했다 여기는가?”
“조용히 해!”
“이곳은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니, 과도한 물리력을 사용하지 말게. 그대의 정의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런 식은 아닐 터….”
지배 저거 진짜!
격렬한 전투 와중에 갑자기 본인 행동을 해명한다고?
정의의 특성을 알기에 나오는 대응이야.
자신이 무고함을 밝히는 것 자체가 정의를 약하게 만들 수 있으니깐!
그때, 갑자기 엘레나가 날 안고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다!
예지의 유리관이 있던 격리 구역에서 벗어날 무렵, 엘레나는 날 내려놓았다.
그녀에겐 더 이상 정의의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미로, 꼼수를 썼구나.”
“꼼수?”
“옷을 벗기려고 했다는데, 네 옷이 너무 멀쩡하잖니. 애초에 이런 장소에서 상대가 갑자기 욕정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도 이상하고.”
에잇!
엘레나는 왜 이럴 때만 쓸데없이 눈치가 빠른 거야!
“다음엔 좀 더 잘 속여봐.”
“응?”
“상의를 아예 좀 벗든지. 아니면 자해하고 폭행당했다고 해.”
“…”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라, 쉽게 알아챌 수 없도록 잘하라고?
에, 엘레나도 꽤 많이 변했구나!
“흐으으….”
“엘레나?”
엘레나는 대답 대신, 약하게 신음하며 무릎 꿇었다.
정의의 보호 없이 방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불과 10초도 견디기 힘들어하는 모양새!
그녀는 숨까지 헐떡이며 속삭였다.
“정의가 평소보다 많이 약했어. 네 꼼수와 별개로 지구전으로 가면 상대가 이겼을지도….”
“엘레나!”
“뛰어. 30초 정도 뛰다가 가인 씨를 불러.”
그 말을 끝으로 엘레나는 몸을 웅크리더니, 이상한 말을 시작했다.
“좁고 답답해. 왜 나는 이런 장소에 갇힌 걸까? 아무도 이런 괴로움은 이해하지 못 -”
불길한 상상!
듣기만 해도 우울증 걸릴 것 같은 목소리와 분위기가 사방을 역병처럼 퍼져나간다.
나까지 휩쓸리기 전에 재빨리 달려가며 초를 세었다.
1, 2, 3 … 30!
— 철컥!
시곗바늘이 돌아가며 이번엔 가인이가 등장!
황급히 상황을 전하니,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인이가 신성한 태양을 소환하더니, 날 한 손으로 잡은 채 날아올랐다.
“꺅!”
“빨리 가자. 이런 곳에 전투원이 저 사람 하나일 리 없지.”
한 손으로는 날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정신없이 허공에 휘적거리는 모습!
“상태창에 뭔가 쓰는 거야?”
“밖에 알려야지. 지금 방주에서 한 판 하고 있다고.”
“지, 지금은 어디로 가?”
“은솔 누나. 다음은 진철 형이랑 승엽이.”
이해했어!
은솔이부터 찾아서 피리를 확보한 후, 그 힘으로 진철이랑 승엽이를 보호하며 뭔가 할 생각이지?
역시 가인이 마음을 읽는 건 나뿐이야!
— 부우웅!
그야말로 공기가 요란하게 떨리는 엄청난 속도!
덕분에 방주가 진짜 무지하게 크다는 사실은 확실히 알았다.
그때, 방주의 새하얀 천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지하라. 그대들은 방주의 보호를 위해 선택받았거늘, 왜 이런 난폭한 일을 벌이는가?」
“닥쳐! 마음대로 납치했으면서 무슨 -”
「그대들은 구원받았도다. 종말 이후의 삶이 보장되었으니, 반대편에 설 이유가 없다. 올바른 길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지금까지의 난폭한 행동은 문제 삼지 않겠다.」
“거짓말하지 마! 방주의 목소리로 날 세뇌해서 부릴 생각 -”
“미로, 일일이 반응할 것 없어. 그보다 앞을 봐.”
가인이의 말에 정면을 바라보니, 복도가 말 그대로 가득 찬 상황임을 알았다.
“아?”
“방주 탑승객들이 문을 막고 있네.”
“문?”
“저 문 너머에 동료들이 있어.”
“…”
방주를 점령하기 위해선 시간 대여기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이은솔, 차진철, 박승엽 등 동료도 깨워야 해.
특히, 1회 한정 ‘포르투나’의 힘을 재현할 수 있는 승엽이는 꼭 필요한 상황!
그런데, 동료들이 잠든 공간의 입구를 다른 탑승객들이 막고 있다.
“…”
죄다 눈빛이 몽롱한 것이 방주의 목소리에 홀린 것 같다.
비키라고 설득해 봐야 듣지도 않을 것이고, 내가 ‘목소리’를 써도 의미 없겠지.
가인이가 마도서를 쓰면?
평범한 사람이라면 몇 명이든 금방 치울 수 있겠지만, 지금은 ‘방주의 목소리’와 마도서의 힘이 대결하는 상황이니 쉽게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그러니까, 저 ‘인의 장막’을 쉽게 벗겨낼 방법은 하나.
“…”
말없이 뻗은 가인이의 손끝에 아찔할 정도의 에너지가 깃든다!
「그대, 선을 넘지 말라. 전쟁에도 도가 있는 법이니라.」
“도를 말할 거면, 인간 방패를 세우지 말아야지.”
「내가 세운 게 아니다. 너희의 난폭함을 경계한 방주의 생존 본능이니, 이는 곧 모두의 뜻이다.」
방주의 본능이든 뭐든!
내가 가는 길에 너희가 인질을 배치했으면서 착한 체하기는!
“가인아! 그냥 다 태워! 쓸데없이 시간 끌리지 말고 -”
– 번쩍!
– 파지직!
기묘한 힘의 충돌.
정체 모를 불투명한 벽이 나타나 가인이의 레이저를 막았다.
그러나 레이저의 경로는 처음부터 인질을 향해있지 않았다!
당황하는 순간, 가인이가 중얼거렸다.
“역시 블러핑이구나.”
“어?”
“인질을 세운 건 우리를 협박하려고 한 거야. 정말 승객이 대량으로 죽는 건 상대도 바라지 않아.”
곧, 가인이가 또렷한 눈으로 날 보았다.
“미로.”
“응?”
“인질로 입구 막기 따위는 처음부터 내게 아무 의미 없어.”
그 말과 함께 어깨를 툭 툭 치는 동작을 보고 떠올렸다.
앗! 평소에 가인이가 잘 쓰지 않아서 ‘순간이동 문신’의 존재를 잊었어!
“레이저는 그냥 상대의 반응을 보고 싶었을 뿐이야. 잠깐만 기다려. 그리고….”
인질을 무시하고 동료들이 있는 장소로 순간 이동하기 직전, 가인이가 내게 속삭였다.
“방금 그 말은 네가 한 것 같지 않았어. 또 다른 너를 항상 의식하도록 해.”
*
허세가 들킨 후, 정체 모를 상대는 더 이상 탑승객을 인질로 쓰지 않았다.
덕분에 다른 동료를 구하는 건 금방이었으나 방주 점령의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두두두두…!
사방에서 들려오는 격렬한 진동!
격렬한 진동에 휘청이는 것도 잠시, 조금 전에 깨어난 진철이가 날 들어 올렸다.
“으읏! 이건 뭐야?”
이리저리 통통 튀며 버티던 승엽이가 외쳤다.
“진동 느껴지세요? 뭐, 뭔가 아주 커다란 게 접근 중인 것 같은데!”
“한판 해야 하나? 누님 -!”
“입 아프니까 부르지 마! 가인아! 나 좀 들어줘!”
은솔이는 이 와중에도 양팔을 파들거리며 주기적으로 피리에 공기를 집어넣었는데, 솔직히 제대로 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진철이와 승엽이가 멀쩡한 걸 보면, 안식의 피리도 참 이상한 물건이야.
“으윽! 이, 이제 멈췄나?”
“멈춘 게 아니라 도착한 것 같은데요!”
불행하게도 승엽이의 말은 진실이었다!
복도 너머에서 느껴지는 살 떨리는 움직임, 빛으로 가득한 방주를 삽시간에 어둡게 물들이는 꿈틀거리는 형상!
승엽이는 그새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있었지만, 나름대로 이를 꽉 깨물며 앞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
마침내 누군가가 나타났다.
뜬금없이 양복을 입은 괴인.
그런데, 체구가 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한 데다가 옷이 끊임없이 꿈틀거렸다.
마치 옷 아래의 무언가가 쉼 없이 빠져나오려는 것 같아!
“이해하기 어렵구나.”
조금 전까지 천장에서 들리던 목소리!
인질을 부리려다가 안 되니까 직접 나왔구나?
누구야?
지배는 아니다.
또 다른 침묵하는 자인가?
“선택받지 못한 이들이 망둥이처럼 날뛰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헌데, 그대들은 이미 새로운 땅의 주민 될 자격을 얻었으면서도 이리 난폭하게 굴다니?”
“새로운 땅 갈 생각 없다니까!”
“가지 않겠다면 어쩌겠다는 말인고?”
“무슨 -”
“소리치지 말고 들으라. 생각건대, 그대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모르고 있다.”
쉼 없이 피리를 부르던 은솔이가 눈살을 찌푸리며 잠시 피리를 내렸다.
“모르긴 뭘 몰라? 난데없이 하늘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서 납치당했는데?”
“납치가 아니라 구원이다.”
은솔이를 지탱하던 가인이가 담담히 말했다.
“구원이 아니라 함정이지.”
“함정?”
“또한, 무의미한 탈출의 반복일 뿐이다.”
상대는 기묘하게 뒤틀린 얼굴을 좌우로 흔들며 가인에게 중얼거렸다.
“이미 방주에 대해 꽤 많이 아는 것 같긴 한데, 진실로 궁금하구나. 어째서 그런 판단을 내린 것이지?”
“…”
미묘한 딜레이.
상대는 가인이가 고민중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어렴풋이 느껴졌다.
지금 가인이는 ‘상태창’으로 바깥의 가인이와 소통 중이다!
“넌 우릴 설득하려고 하는군.”
“방주에는 그대들이 필요하니까. 그대들은 인류의 수호자로서 선택되었도다. 다시 물으마. 왜 방주가 함정이라 여기는가?”
“첫째, 방주로 도망친다고 해서 종말의 근원이 사라지지 않아. 기회가 무한한 게 아니라면, 언젠가 한계가 올 수밖에 없지.”
“아주 틀린 말은 아니로다. 두 번째는?”
가인이의 다음 표정은 순수한 호기심에 가까웠다.
“이해가 안 가서.”
“뭐?”
“내가 지금까지 알아낸 바에 따르면, 방주는 신에 준하는 존재거든.”
“그렇다.”
“관리국이 무슨 수로 신을 만들었지?”
“…”
“내게는 방주와 유사한 힘이 있어. 사람들의 영혼을 모을 수 있는, 호텔에서 얻은 힘. 그 힘으로도 방주처럼 할 수는 없어.”
가인이의 두 번째 의문.
신성한 태양으로도 불가능한 일이 방주에겐 가능하다.
이런 신적인 존재를 어떻게 관리국이 만들 수 있는가?
그리고 –
꿈틀거리는 자가 팔 혹은 ‘덩어리’를 위로 뻗었다.
“이것이 그대의 의문에 충분한 답이 되길 바랄 뿐이다.”
— 티이잉!
귓가를 울리는 맑은소리.
무지하게 거대한 유리가 진동하며 나는 소리!
우리는 이 소리를 ‘207호’에서 여러 번 들었다.
“방주의 근간이 되는 기술은 이미 잊혔다. 우리 또한 원리를 알지 못하고 반복할 뿐이다. 허나, 그 기술의 근본 원리를 구성하는 위대한 보물이 있나니….”
— 사아아!
불쾌할 정도로 밝았던 광원이 사그라들며 방주의 비밀 중 한 가지가 밝혀졌다.
“이것은, 태고의 인류가 이베리아 반도 지하에서 발굴한 -”
“얄다바오트의 거울!”
“- 어떻게 알았지?”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거울이 방주 천장 전체를 구성하고 있었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224일 차
현재 위치 : 호주 노던 준주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쉴 새 없이 어딘가의 나와 ‘상태창 소통’을 하던 중, 놀라운 정보가 들어왔다.
“아…!”
“뭐냐? 뭐여?”
채근하는 할아버지를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방주에 거울이 있답니다.”
“뭐?”
“에이디아가 달에 만들었던 것보다도 훨씬 더 거대하다고 합니다.”
“거울은 우리도 대충 알지 않냐? 그걸로 어떻게 방주를 만들었지?”
“…”
신성한 태양과 거울.
이 둘을 연결 지으니 어렴풋이 방주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또한, 왜 신성한 태양에겐 불가능한 일이 방주에겐 가능한지도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