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93)
EP.593 593화 – 도둑맞은 세계 (8)
593화 – 도둑맞은 세계 (8)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225일 차
현재 위치 : 호주 노던 준주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방주에 ‘거울’이 있다는 정보를 마지막으로 추가적인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상태창을 통해 방주 쪽 동료들이 죽지는 않았다는 정도만 알 수 있을 뿐.
방주 쪽 파티는 이미 관리국에 의해 제압당한 걸까?
여기까진 확신할 수 없다.
…
현실로 돌아올 당시, 상인은 우리에게 처음 6개월은 얌전히 있고 그 후에 활동을 시작하라고 충고했다.
이후, 라이언 일행과 한 차례 충돌했을 때 선대 지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지.
알고보니 6개월이란 곧 ‘방주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시점’을 뜻했다.
호텔과 선대 지혜 둘 다 관리국이 방주 제작을 시작하기 전에는 얌전히 있으라고 한 셈이다.
어째서?
오랜만에 작동한 ‘시나리오 이해’에 그 답이 적혀있다.
「시나리오 : 도둑맞은 세계
구원을 위한 관리국의 선택, 방주.
방주를 완성하기 위해 관리국의 저력이 대부분 소진되었습니다.
뒤집어서 말하면, 지금이야말로 제3의 목적을 가진 이들에겐 기회가 열린 셈이지요.
다음 내용은 ‘달의 봉인지’에서 확인하세요.」
“…”
인류사를 통틀어 관리국이 가장 무력해지는 순간이 지금이다.
침묵하는 자들을 비롯한 수뇌부 상당수는 방주로 떠났고, 떠나고 있다.
심지어 개중 상당수는 이미 일종의 동면 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반면, 남은 세상은 대혼란에 빠진 지 오래.
일반인은 물론이고 자신들이 선택받지 못했음을 인지한 관리국 말단들도 이미 맛이 갔다.
관리국은 더 이상 세상을 통제할 수 없다.
우리가 호주 지하로 잠입하는 걸 막아낼 저력도 충분치 않았다.
*
— 쿠르릉!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호주 사막지대의 울룰루 – 호주의 유명한 바위라는데, 이번에 처음 봤다 – 인근의 제압이 끝났다.
관리국이 마지막까지 남겨둔 소규모 부대가 무력화된 셈이다.
관리국에게는 안타깝게도 전투는 대단히 일방적이었다.
암석 위에서 옷을 털고 있자 라이언이 다가왔다.
“이야~ 요전에도 느꼈지만, 대단한데?”
“…”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날아다니면서 휘리릭 지이익! 하니까 군인들이 손도 못 쓰고 다 죽지 뭔가? 감탄이 나오는 솜씨야.”
“무슨 말을 하려고 왔습니까?”
“그, 아름다운 아가씨가 정의 맞지?”
이젠 피차 그 정도는 안다.
“그렇습니다만.”
“그 아가씨는 밖에서 대기하는 게 낫지 않나?”
극단적인 전투에 부적합한 송이, 묵성 할아버지는 후방에 배치했지만, 엘레나와 상현 형은 나와 함께인 상황이다.
라이언은 이 중 엘레나가 빠지는 게 어떻냐고 제안하는 것.
“기억하지? 자네 선배, 지혜 노친네가 말했잖나. 정의 아가씨가 죽으면 상황이 이상하게 변한다고. 아직 힘이 온전치 못하다고 들었는데.”
근처에 있던 엘레나가 발끈했다.
“그렇다고 가인 씨만 보낼 수는 -”
“괜찮습니다.”
가볍게 손가락으로 허공을 툭 툭 치자 라이언은 즉시 알았다는 듯 물러섰다.
정작 내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건 엘레나였다.
“괘, 괜찮은 건가요? 저도 사실 불안했는데.”
“조언 써서 물어봤습니다.”
“아! 뭐라고 했어요?”
“… 엘레나가 내 옆에 있는 게 낫다네요.”
오전, 이 답을 얻는 순간 조언 스택 3개가 한 번에 소모되었다.
평범한 답변이 아니라는 의미!
“찾았습니다!”
군인의 목소리.
관리국 잔여 병력 진압에 참여한 사병 집단인데, 선대 지혜가 부리는 세력이었다.
지칭하는 장소를 바라보자 무슨 외계 엘리베이터 같은 시설이 보였다.
“아마 자네 동료는 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갔을걸세.”
“우리는?”
“이미 박살 났지. 우리가 손쓰기 전에 상대가 이미 부쉈더군. 편안한 길은 사라진 셈이야.”
“…”
“엘리베이터는 망가졌지만,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던 통로는 남았네. 출발하자고.”
*
서로를 단단한 와이어로 묶은 채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하자마자 엘레나가 쿡 찌르듯 질문했다.
“저 군인들은 왜 당신들을 따르는 거죠?”
“무슨 말인지?”
“관리국도 더 이상 세상을 수습하지 못하는데, 저 군인들이 당신들 명령을 따르는 게 신기하니까요.”
“그야, 우리가 저들에게 구원을 약속했기 때문이지.”
“… 방주에 자리를 만들어 주겠다?”
“똑똑하시군.”
“거, 거짓말 아니에요? 만들어 줄 생각 없는 것 같은 -”
뒤편의 패트릭이 라이언 대신 답했는데, 제법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이봐! 그런 질문은 네 옆의 동료에게나 하라고! 그쪽 젊은 지혜의 ‘교단’은 지금도 서울에서 집회 중이던데, 살려줄 방법은 있고?”
엘레나는 조용해졌고, 내가 대신 답했다.
“있지.”
“뭐?”
“그러니까 닥치고 움직입시다. 아직도 다리 하나 없는 분이 말이 참 많네.”
패트릭은 은솔 누나에게 된통 당하며 사라진 다리를 아직도 다 재생하지 못했다.
용기의 축복을 진철 형이랑 나눠 가지며 재생력이 약해진 게 아닐까?
“이 새끼가 -”
“자, 자, 패트릭. 쓸데없이 흥분하지 말자고.”
살려줄 방법이 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내 최종 목표는 종말 자체를 막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보다 확실한 구원이 있겠는가?
*
미묘한 신경전도 처음 5분 정도의 이야기.
시간이 지날수록 모두가 점점 조용해졌다.
다른 사람들은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압도적인 우울감에 짓눌리는 듯했다.
“… 속이 답답해요.”
“발밑에서 괴물이 꿈틀거리는 느낌입니다.”
엘레나와 상현 형이 한마디씩 하자 패트릭과 라이언도 비슷한 말을 보탰다.
“옛날 생각이 나는군…. 예전에, 105호였나? 배경이 사막이었는데.”
“아들을 처음으로 잃은 날, 그날이 아침부터 딱 이 기분이었지….”
듣기만 해도 우울증 걸릴듯한 이야기들.
…
느껴진다.
바로 우리 발밑에서 꿈틀거리는 흉물스러운 무언가의 존재감이 쉼 없이 느껴졌다.
어느 순간부터 식은땀을 엄청나게 흘리던 상현 형이 중얼거렸다.
“이게…. 달이군요.”
“…”
“마음 같아선, 내 힘을 지하에 쏟아붓고 싶습니다.”
최후의 섬광을 달에 쏘고 싶다는 충동적인 말.
내가 답하기 전에 근처의 라이언이 먼저 놀라서 끼어들었다.
“어이쿠! 이봐,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겠다면 차라리 올라가라고! 여기서 저 괴물이 깨어나면 전원 숨 한번 못 쉬고 죽을 것 같으니까.”
“당연히 농담입니다.”
“그런 재미없는 농담을….”
— 쿵!
갑자기 패트릭이 주먹으로 벽면을 후려쳤다.
덕분에 와이어가 요동치며 모두가 잠시 균형을 잃을 뻔했는데, 상현 형이 표정을 구기자 라이언이 대신 사과했다.
“헛! 미안, 미안하네. 이봐 패트릭! 진정하라고!”
“… 실수했군. 모두에게 사과하지.”
패트릭의 표정을 보니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곧, 우리 쪽에서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 철컥!
“아직도 네놈이 지껄였던 말이 생생하구나!”
“어! 어! 이, 이봐, 의사 선생 -”
“뭐가 어째? 바람이와 진솔이를 살리려면 순순히 협조하라고? 너 따위가 -”
라이언과 처음 만났을 때 가족을 가지고 상현 형의 마음을 흔들었는데, 그 감정이 남아있던 걸까?
설령 그렇다 해도 지금 여기서 따질 문제가 아니다.
“형, 진정하시죠.”
“이 자식이 -”
눈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 내 멱살까지 잡으려는 모습에 순간, 상현 형을 여기서 기절시켜야 하나 고민했다.
“상현 형, 접니다.”
“… 이런.”
“괜찮으세요?”
“가인 군, 죄송, 죄송합니다. 이상한 생각을 계속하다가…. 라이언, 당신에게도 -”
“됐네. 나도 몇 번이고 자네들을 죽이고 싶었 – 미안하네.”
돌아서서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다들 말없이 이동합시다.”
“…”
엘레나는 아까 전부터 아예 말이 없었는데, 이 태도가 더 불안했다.
속으로 무슨 생각 중인지 짐작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라이언, 패트릭, 김상현, 엘레나.
넷 다 불변이나 안식의 피리처럼 정신 저항에 특화한 힘이 있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호텔 탈출자들이다.
일반인과 비교할 수 없는 정신력을 갖춘 사람들인데 이토록 견디기 힘들어한다?
이들이 약한 게 아니라, 달의 악마적인 존재감이 너무나 강렬하다.
“아리라고 했나? 그 여자애를 이 고생 하면서까지 구해야 하는 거냐?”
패트릭의 불만.
그 말대로, 지금 우리가 호주 지하에서 고생 중인 건 아리를 구하기 위해서다.
“패트릭, 이건 지혜 노인네의 지시이기도 하다. 그 여자애 표가 있으면, 방주를 쉽게 제압할 수 있는 -”
짐작은 했지만 역시 그렇네.
아리는 우리의 동료인 동시에 침묵하는 자고, 침묵하는 자는 철저하게 다수결 원칙을 지킨다.
즉, 아리의 ‘표’를 얻으면, 방주를 생각보다 쉽게 제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상대는 이걸 노리고 아리를 구하는 데 협조 중이다.
“ – 조용히 하자고 패트릭. 제발.”
“…”
딱히 화나진 않았다.
아리는 우리 동료지, 저쪽 동료가 아니니 저쪽 나름의 셈법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대놓고 말할만한 이야기는 또 아니다.
라이언 역시 달의 압박 때문에 정신상태가 온전치 못하니 속마음이 그대로 튀어나오는 것.
방금의 실수가 겸연쩍었는지, 바위를 짚으며 내려오던 라이언이 내게 말했다.
“젊은 친구, 자네는 -”
“조용히 하면서 가죠.”
“- 정말 멀쩡하군. 신기할 정도야.”
“…”
그 말대로 나는 비교적 멀쩡했다.
나머지 네 사람이 반쯤 미쳐가고 있음을 고려하면, 도리어 내가 특이하다고 봐야겠지.
내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신력이 강하기 때문일까?
아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강할지도 모르지만, 지금 멀쩡한 것은 내 강함과 무관한 이유다.
나는 애초에 공격을 받지 않고 있다.
“…”
마음은 편안하고, 공기는 상쾌하다.
바깥에 있을 때보다 달에 가까이 있는 지금이 더 편했다.
더없이 거대한 존재가 내게 보내는 무궁한 ‘호감’이 계속해서 느껴졌다.
달은 나를 반가워하고 있다.
“아으…! 이거, 길이 여러 갈래인데? 이봐 선생! 뭐 아는 것 없어?”
“알다니…. 내가 길을 어떻게 찾습니까?”
“여기 달 근처잖아. 선생은 우주 비행사였다며?”
“… 달 근처지만 우주가 아니지 않습 – 설마 농담이었습니까?”
라이언과 상현 형이 와이어를 타고 내려가 이리저리 갸웃거리고, 패트릭이 용기의 축복을 얻은 참가자답게 괴력으로 바위를 치워보기도 했지만….
어디가 맞는 길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가인 씨, 조언 없어요?”
조언의 잔여분은 0이지만, 조언이 없어도 될 것 같았다.
“조언은 없습니다. 그냥 길을 물어보죠.”
“네?”
“조언이 없는데 누구에게 물어본다는 겁니까?”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당황하는 동료들.
나는 지하로 내려온 순간부터 쉼 없이 느껴왔던 시선을 의식하며 말했다.
“석판의 위치를 알고 싶구나. 알려주겠니?”
“지금 누구에게 말하는 겁니까?”
— 우르릉!
기다렸다는 듯, 우리가 발견한 통로 중 하나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라이언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이 길로 가도 되는 거냐? 젊은 친구, 혹시나 해서 말인데, 달에 홀린 것 아니지?”
“내가 당신보다 멀쩡할 겁니다.”
“…”
“갑시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려갈 때마다 아찔한 기분이 든다.
그동안 모아온 단편적인 정보들이 서서히 하나로 조립되어 감을 느낀다.
…
어제, 방주에 거울이 있음을 알았을 때….
나는 벼락이 내리치는 듯한 충격 속에서 방주의 원리를 이해하고 말았다.
이해하기 쉽게 비유하면, 방주란 곧 신성한 태양과 거울의 결합이다.
유사 방주라는 신성한 태양에게 불가능한 일이 방주에게 가능한 이유?
신성한 태양 자체에는 거울과 같은 힘이 없기 때문이다.
…
태양은 필멸자의 혼을 모아 신이 되기 위한 도구.
태양의 원리만으로는 사람의 혼을 한데 모을 뿐, 정상적으로 나눌 수 없다.
나누기 위한 이치가 아니라 합쳐서 신이 되기 위한 이치니까 당연한 일이다.
다시 인간이 되기 위해선, 나누기 위한 힘이 필요하다.
207호에서, 거울은 ‘나’를 쪼개어 온 세상에 흩뿌렸다.
…
루프를 견딜 수 없는 범속한 자의 무수한 영혼을 한데 모아 신과 같은 위대한 자를 빚어낸다.
모두가 위대한 자의 일부가 되어 루프를 견딘다.
마지막으로 거울의 힘으로 위대한 자를 쪼개서 인간으로 돌아가는 일련의 과정.
이것을 관리국은 ‘방주’라고 칭한다.
…
방주의 원리를 이해했으나 여전히 비밀은 많이 남아있다.
예컨대, 아리나 할아버지가 말했던 ‘종말을 부르는 빛’은 어떤 과정에서 발생하지?
또, 제주도에서 얻어낸 태고의 정보를 생각하자.
종말을 피해 방주를 만든 사람들.
그 사람들을 내쫓고 방주를 빼앗은 찬탈자들.
그리고, 찬탈자들을 피해 살아남은 마지막 생존자.
아직 이 이야기는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그다음 이야기와 연결하니 어렴풋이 떠오르는 바가 있었다.
상태창을 통해 전달받은 정보에 따르면, 나는 오래전에 관리국이 격리한 정체 모를 혼돈체를 해방해 모든 재앙의 원인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왔구나!」
「돌아왔군요?」
「마침내 당신이 이곳에!」
지하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수록, 나를 환영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마침내 멀리서 석판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달’에게 질문했다.
“너는…. 나와 무슨 관계지? 네가 아는 나는 누구지?”
「선생님」
「마법사」
「연구원」
「배신자」
「독선적인 사람」
「이해할 수 없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