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96)
EP.596 596화 – 도둑맞은 세계 (11)
596화 – 도둑맞은 세계 (11)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226일 차
현재 위치 : 검색 중….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아리를 은솔 누나의 꿈으로 집어넣으려는 순간, 천지가 으스러지는 듯한 굉음을 들었다.
— 우르릉!
석판의 압력을 견디지 못한 꿈의 왕국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
“꺄악!”
장기간 가혹한 환경에서 버티느라 약해졌기 때문일까?
아리가 어울리지 않게 비명 지르며 균형을 잃고 휘청였다.
“들어가!”
“너, 너는 -”
“들어가기나 해!”
다급하게 아리를 은솔 누나 쪽으로 보낸 후, 뒤로 돌아서자 터무니없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회색 안개로 가득한 꿈의 왕국 전역이 칠흑빛 사슬에 의해 찢기는 상황!
흡사, 마귀가 시꺼먼 사인펜을 휘둘러 그림 한 폭을 망쳐버리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내 꿈으로 멀쩡히 돌아갈 수 있을까?
애초에, 내가 내부에 있는 상태에서 꿈의 왕국이 파괴되면 난 어떻게 되는 거지?
이를 꽉 깨물며 신성한 태양을 소환했다.
여차하면 빌어먹을 석판과 한 판 붙어서라도 나가고 말겠다!
“아?”
불가해한 눈동자가 내 앞에 나타났다.
…
빛으로 가득한 순백의 공간에서 깨어났다.
*
“그러니까, 날 은솔이에게 보낸 다음에 또 그 눈을 만났다고?”
“아마 꿈의 왕국의 자아가 아닐까?”
“그 녀석이 너까지 방주로 보내준 거야?”
“아마도.”
아리가 품속에서 ‘꿈의 왕국’을 꺼냈다.
“상태가 안 좋네.”
석판의 공격 때문일까?
아니면 사용자인 아리 외에 나까지 방주로 보내주느라 힘을 써서?
둘 다일지도 모르지.
어쨌든, 그 결과 꿈의 왕국은 반쯤 망가진 상태다.
그림 위에 시꺼먼 선이 가득했다.
“다시 쓸 수 있을까?”
“아마도. 다만, 회복 시간이 필요하겠지.”
아리는 그림을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까딱했다.
“감사합니다.”
“…”
“너도 해.”
“고마워.”
“몸 상태는 괜찮아?”
“… 5분만 더 쉬자. 그 정도면 오래된 피가 기운을 차릴 거야.”
“그래. 어차피 서로 할 말도 많으니까.”
새하얀 순백으로 가득한 빛의 성.
처음으로 방주 내부에 도착하고 떠올린 생각이다.
종말로부터 인류를 보존한다는 숭고한 목적까지 생각하면, 인간이 어설픈 솜씨로 만든 천국처럼 느껴지는 면도 있었다.
최초로 방주를 만들어 낸 사람들 역시 방주가 순수하고 아름다운 인류의 구원이길 바랐으리라.
— 꼼지락!
“가만히 좀 있어라.”
“그거, 죽지 않게 조심해.”
슬프게도 방주야말로 인류가 품은 최초의 타락이다.
이 사실을 알고 다시 보니 방주의 존재 자체가 블랙 코미디처럼 느껴졌다.
“아리, 이젠 석판의 압력에선 벗어난 것 맞지?”
아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완전히는 아니야. 방주가 100% 완성되면 석판 또한 이쪽으로 넘어오니까.”
과거, 천리안의 남편이었던 침묵하는 자는 종말의 시기까지 버티면 석판으로부터 자유를 얻는다고 말했지.
아리의 말을 듣고 다시 떠올리니 간단한 이야기였다.
방주가 출발한 후엔 석판도 다음 루프로 사라지니, 멸망 중인 세계에 남은 자신은 자유를 얻는다는 간단한 이야기다.
“당장은 안전하다는 말 아니야?”
“그건 맞아.”
“그러면 됐어.”
— 꿈틀!
“또 이러네.”
“죽지 않게 관리해. 쓸모가 있으니까.”
오랫동안 내 머리를 혼란케 했던 의문들이 하나하나 풀리고 있다.
아리를 데리고 방주로 넘어온 건 다시 생각해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어.
“예쁘네.”
살짝 멍한 표정으로 방주 내벽을 쓰다듬는 아리.
침묵하는 자로 승진한 후 방주에 대한 진실을 알았지만, 실제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첫 번째 의문.
아리를 비롯한 요원들은 왜 방주의 존재를 몰랐던 걸까?
“호텔에 들어가기 전에는 방주의 존재도 몰랐어?”
“반반.”
“무슨 소리야?”
“종말을 대비한 뭔가가 있지 않을까? 정도 생각은 했지. 누가 꼭 말해줘서 알았다기보다, 관리국 같은 데서 일하다 보면 이 정도 생각은 누구나 해.”
전근대의 일반인들도 겨울을 대비해 식량을 보존하는 정도의 대응은 했다.
관리국쯤 되는 조직이 종말을 대비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직무 유기겠지.
“일반인을 모아 유사 신을 만든다는 둥, 다시 쪼개서 어마어마한 수의 사람을 만든다는 둥 하는 구체적인 건 몰랐어.”
뭔가 있을 줄은 알았는데, 방주라는 구체적인 개념은 몰랐다는 것.
“그 부분이 헷갈리는데, 방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요란한 현상이 마구 벌어지잖아?”
난데없이 휴거가 일어나며 대량의 사람이 잡혀갔는데, 이런 기괴한 일이 한 번 벌어지는 게 아니라 세계를 순회하며 수십번 벌어진다.
이걸 어떻게 몰랐을까?
“원래는 방주를 이렇게 요란하게 만들지 않아.”
“아?”
“2030년에 종말이 온다고 치자. 이러면 보통 2020년부터 시작해서 장기간에 걸쳐 천천히 선별해. 생각해 봐. 이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
“달의 각성이 점점 빨라지고 있어. 이번에는 특히 심했지.”
이번에는 종말의 시기가 과도하게 당겨졌기에 방주를 요란하게 만들었을 뿐, 본래는 장기에 걸쳐 천천히 완성했다는 이야기다.
세계를 순회하는 방주 덕에 벌어진 어마어마한 소동을 생각하니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그래도 혼란은 생겨. 실종자가 너무 많으니까. 알아챈 몇몇 사람의 기억은 지워. 어쩌면 내 기억도…. 이 부분은 모르겠네. 여기까지 기록이 남진 않아서.”
“왜 지우지?”
“방주의 존재 자체가 침묵하는 자가 관리국을 통제하는 수단이니까.”
“관리국을 통제하는 수단?”
“관리국은 회귀자와 회귀자를 지원하는 일반인으로 구성되어 있어.”
회귀자인 요원과 이들을 서포팅하는 직원.
“후자, 즉 일반인 집단은 요원들을 제법 질투하지.”
“…”
관리국에 반쯤 몸담은 은솔 누나나 진철 형이 종종 했던 이야기다.
직원으로서 최상위 직급에 오른 한국지부장 박현민 같은 사람도 때로는 요원에 대한 질투심을 숨기지 못했다.
“관리국 수뇌부 입장에서 보면, 요원이란 훌륭한 무기지만 부담스러운 존재들이기도 해. 루프를 반복하며 관리국이 통제하기 힘들 만큼 강해지곤 하니까.”
선대 지혜 세력이 좋은 예시다.
“그래서 일반인 집단의 철저한 충성을 바라고, 그들에게 은근슬쩍 정보를 뿌리지.”
“…”
“너희같이 평범한 자들도 종말 이후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 있다. 그러므로 충성을 바쳐라.”
실제 역사에 비유하면, 왕족이 고위 귀족을 견제하기 위해 출세한 평민을 이용했던 것과 유사하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건 제아무리 스케일이 커져도 결국 비슷한 게 아닐까?
“요컨대, 과거의 나처럼 일반 요원들은 방주의 존재도 모르다가 죽었어. 그냥 민간인 대량 실종이 벌어지네? 뭐지? 하다가 종말을 부르는 빛에 당했지.”
“종말을 부르는 빛….”
두 번째 의문.
종말을 부르는 빛은 대체 무슨 현상일까?
“207호에서 종말을 부르는 빛에 대한 정보를 얻었어. 그 빛의 발생 원인은 거울이었지.”
“그래.”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봐.”
“맞아.”
“정보를 모아보니 ‘가장 큰 거울 조각’은 관리국이 가지고 있다가 방주 제작에 쓰더라.”
“207호에서도 그랬잖아? 거울의 주인은 에이디아였어.”
아리 말대로 207호에서도 그랬다.
거울의 주인은 교황청이고, 종말을 부르는 빛은 에이디아가 만들어 낸 현상이다.
“…”
“가인이 네 생각이 반은 맞을 거야.”
담담하게 긍정하는 아리를 보며 나는 결국, 한 가지 끔찍한 가설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종말을 부르는 빛은 침묵하는 자들이 만들어 낸 현상이야?”
“조금 달라. 정확히는 ‘방주’가 일으키는 현상.”
“…”
“완성 후의 방주는 일종의 자의식이 생겨나거든.”
종말을 부르는 빛의 원인은 거울이며, 가장 큰 거울은 방주에 있다.
따라서 종말을 부르는 빛은 곧 방주에서 발생한다.
“… 왜 방주가 종말을 부르는 빛을 만들어 내지?”
“달의 성장을 막기 위해서.”
완성된 방주가 종말을 부르는 빛을 만들어 내는 이유는 달의 성장을 막기 위해서다.
…
선대 지혜를 비롯한 방주 파괴를 주도하는 집단은, 방주의 존재 자체가 인류가 타락하는 원인이라고 역설했다.
이 주장 자체는 아리도 사실임을 인정했다.
그렇다면, 방주를 지켜야 한다는 쪽에서도 대안을 찾아야 할 것 아닌가?
방주로 인한 가장 큰 문제 – 달을 억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답이 바로 ‘종말을 부르는 빛’이었다.
세 번째 의문.
“그러면, 달은 대체 뭐야?”
“이쯤이면 너도 어렴풋이 짐작했을 것 같아.”
“짐작은 하지만 정확한 답을 얻고 싶어서.”
아리는 음울한 표정을 지은 채 답했다.
“전에, 내가 네 꿈에 나와서 선문답했던 것 기억해?”
“어제 일처럼 생생하지.”
아리가 했던 세 가지 이야기.
첫째, 마왕에 대응하는 존재가 현실에 있다.
둘째, 창작물에서 종종 생략하곤 하는 회귀물의 문제.
셋째, 신전 속의 액자, 태양을 등진 채 나아가는 방주.
이미 많은 해석이 이루어졌다.
“대부분 달에 관한 이야기였어.”
“…”
“마왕에 대응하며, 지구 지하에 있는 달.”
“다음은?”
“많은 회귀물은 회귀자가 회귀한 후의 세상을 보여주지 않아.”
“…”
“주인공이 회귀한 후에 남은 세상은 어떻게 되는 거야? 주인공이 사라졌으니 즉시 사라져? 아니면, 세상 자체의 시간이 돌아간다?”
“…”
“작품마다 다르겠지. 사실, 대부분의 회귀물에선 생략하는 내용이고.”
“…”
“방주가 떠난 후에도 세상에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이 남아있어. 그야, 방주는 종말에 맞서는 존재가 아니라 종말 전에 도망치는 존재니까.”
회귀자가 회귀한 후의 세상의 문제.
방주가 종말을 피해 떠난 후에도 세상에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이 남아있다.
이들은 어떻게 되는가?
“여기서부터는 전부 추정이야. 방주가 떠난 후에 벌어지는 일이니, 관리국도 관련 기록이 있을 수가 없지.”
“…”
“이해할 수 없는 조화가 벌어져서….”
“…”
“종말 후에 버려진 사람들의 혼을 전부 집어삼키고 있어.”
“…”
“이해가 안 가지? 한두 명도 아니고, 버림받은 수십억 인류의 혼을 한데 모은다는 건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
“근데,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어. 그런 것 같아. 버림받은 수십억 인류의 혼이 달이라는 구심점을 향해 한 점으로 모여들었어.”
방주가 그러하듯, 달의 악마 역시 수많은 인간의 영혼이 모이며 태어났다.
방주가 태양을 피해 나아가는 그림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달의 본질 역시 104호의 주와 유사하다는 것!
“우습지만 이 정보는 우리가 알아낸 게 아니야. 자의식을 얻은 방주의 대응을 보고 침묵하는 자들이 떠올린 추측이지.”
“무슨 말이지?”
“언젠가부터 완성된 방주가 떠나기 직전에, 지구 전체에 종말을 부르는 빛을 뿜어냈거든.”
“…”
“관리국이 만든 신이 태어나자마자 깨달은 거야. 자신이 떠난 후에 버림받은 사람들이, 또 다른 재앙을 키우는 양분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달이 집어삼키기 전에 자기 손으로 다 죽인다?”
“그거지.”
머리가 아파진다.
방주는 종말을 피하려고 만들어졌는데, 그 방주에 버림받은 사람들이 모여 달이 태어났다.
그러자 방주는 달을 피하고자 연거푸 만들어졌고, 피하는 과정에서 다시금 많은 사람이 버려졌다.
그렇게 버려진 사람들을 집어삼키며 달은 점점 더 강해진다.
여기까지 깨달은 방주는, 달의 성장을 막기 위해 종말을 부르는 빛으로 지구에 남게 될 사람들을 몰살하기 시작했다.
성장이 느려진 달은, 이제 승부를 봐야함을 알고 각성 시기를 앞으로 당기기 시작했다.
“…”
방주는 달을 피하려고 만들어졌다.
달은 방주 때문에 태어났다.
대체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가?
“말이 안 되는 -”
“인과가 이상하지? 뭔가 빠져있다는 느낌이 강하지?”
“그래.”
“그게 바로 관리국 최고의 수수께끼지.”
“…”
“모두가 모순이 있음을 느끼지만, 아무도 답을 찾지 못했어. 다만 이런 생각은 해볼 수 있지.”
“…”
“최초로 방주를 만든 원인은 따로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달의 악마는 방주가 태어난 후에 생겼을 테니까.”
아리를 되찾으며 많은 의문의 답을 얻었다.
방주와 종말을 부르는 빛에 숨겨진 비밀.
달의 비극적이면서도 기괴한 실체.
하지만, 의문의 답은 새로운 의문을 낳는다.
달이 방주의 원인인가?
아니면 방주가 달의 원인인가?
혹은, 모두가 잊은 최초의 원인이 따로 있었는가.
마지막으로 질문했다.
“진실을 정확히 모르는 요원들을 호텔에 집어넣은 건 뭐야?”
“개떡같이 말하면서 찰떡같이 알아듣길 바라는 거지.”
“뭐?”
“들어가는 요원은 뭐가 진짜 문제인 줄도 모르고 들어가지만, 호텔은 진실을 아니까 제대로 된 답을 줄 거라고 믿는 거야.”
“… 호텔을 그렇게까지 믿어?”
“믿지. 과거에도 많은 문제를 이렇게 해결해 왔으니까.”
관리국이 찾지 못한 답.
호텔이 제시해왔던 제대로 된 답.
그 어느 때보다 정명해진 정신이 한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문제가 복잡해질수록 최초로 돌아가자.
호텔이 우리에게 힌트를 주지 않았던가?
모래시계와 원 모어 찬스의 힘을 빌리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두 도구의 사용법은 진작부터 모두가 짐작했다.
파멸의 순간을 모래시계로 버티고, 그 후의 상황을 본 후 원 모어 찬스를 써서 과거로 돌아가는 것.
따라서, 문제의 답은 ‘종말 이후’에 있다.
그러니까 관리국이 이토록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답을 찾지 못했다.
방주는 매번 종말 전에 떠났는데, 답은 종말 이후에 숨겨져 있으니까.
관리국으로선 회귀를 영겁토록 반복해도 답을 찾을 수 없다.
오직, 모래시계와 원 모어 찬스가 있는 우리만 정답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현실에 나타났으리라.
— 꿈틀!
“이 녀석, 머리만 남은 주제에 되게 꿈틀꿈틀하네.”
“조심해. 바실리오가 엄청난 생명력을 가진 놈이긴 해도, 뇌까지 녹으면 그때는 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