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97)
EP.597 597화 – 도둑맞은 세계 (12)
597화 – 도둑맞은 세계 (12)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226일 차
현재 위치 : 검색 중….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 쿠궁!
바닥을 울리는 진동!
지금도 방주 중심부에서 전투가 진행 중이라는 증거다.
지친 표정을 짓던 아리도 몸을 일으켰다.
“이제 출발하자. 은솔이는 -”
수면 가스의 효력이 상당했는지 은솔 누나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럴 때마다 누나가 신체적으로 일반인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곤 한다.
“두고 가는 게 나아.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으니, 데려가는 게 더 위험해.”
“… 좋아.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할 거야?’ 라는 말을 듣고 생각했다.
현실로 나온 후 언제나 내 마음 한편을 떠나지 않은 답답함.
정체 모를 악의가 다가옴은 느껴지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허우적거렸던 순간들이 스쳐갔다.
뭔가 말해주려던 아리는 유폐당했지.
선대 지혜 세력은 자신들만 아는 정보로 장난치는 일이 일상이다.
관리국은 선역인지 악역인지부터 불확실하기 짝이 없다.
…
이 숨 막히는 흐름을 끊어야 한다!
“가인아?”
“혹시, 방주 내에서 바깥에 연락할 방법 있어?”
“침묵하는 자에겐 있어.”
아리가 고개를 까딱하더니, 보랏빛 살점이 묻은 스마트폰을 보여주었다.
“바실리오의 몸에서 챙겼어.”
“…”
“바깥 동료에게 연락하게? 이것도 시간 좀 지나면 못 써. 방주가 완성될수록 -”
“할아버지에게 연락해서 지금 ‘준비’하시라고 해.”
아리에게 말하며 동전을 튕기는 동작을 보였다.
선대 지혜가 그간 신출귀몰한 능력을 보인 만큼, ‘원 모어 찬스’라는 명확한 단어는 피하는 게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 아직은 괜찮겠네. 방주가 완성 전이니까.”
아리는 내 손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했다.
— 띠리링!
“묵성아.”
“어엇! 아리! 마침내 탈출 -”
“팅~!”
혀를 튕기는 소리.
아리와 할아버지가 만든 암구호 같은 걸까?
할아버지는 두말없이 답했다.
“했다.”
지금, 원 모어 찬스의 회귀 시점이 지정되었다.
*
방주의 중심에 도착했을 때, 침묵하는 자 두 명과 동료들의 싸움은 이미 소강상태였다.
우리가 이쪽의 싸움을 느꼈듯이, 이쪽에서도 나와 아리가 바실리오와 싸우고 있음을 느꼈겠지.
서로 승자가 나타나길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형!”
“가인아!”
우리를 보자마자 밝게 웃는 진철 형과 승엽이.
서슬 퍼런 기세를 뿜어내는 괴담 미로의 눈썹도 슬쩍 호선을 그렸다.
“승엽아, 각성은?”
“아직 남아있어요.”
“생각보다 여유 있었어?”
“저기, 저 미로가 엄청 강해서….”
웃는 자가 있으면 우는 자가 있음이 세상의 이치.
동료들과 싸우고 있던 후드를 입은 남자가 표정을 굳혔고, 꿈틀거리는 살덩이가 벽 쪽으로 붙었다.
아리가 담담히 손을 뻗어 둘을 가리켰다.
“저 사람은 오스왈드, 축복은 지배. 저 괴물은 오스도르크, 저건 참가자 아니야.”
후드를 입은 남자가 즉시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아리!”
“안녕! 첫 회의 이후 처음이지?”
“어떻게…! 침묵하는 자의 위치까지 올랐으면서 반역이라니, 부끄럽지도 않으냐?”
“반역?”
아리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고, 그걸 본 지배의 눈이 불타올랐다.
“뻔뻔하게 -!”
“잠깐!”
— 짝!
중앙으로 나아가 모두의 시선을 모았다.
“상황 한 번만 정리합시다.”
“뭐?”
“엄밀히 말해 우리는 방주를 부수겠다고 결정한 게 아닙니다.”
내 추측대로라면, 승엽이와 진철 형은 아직 방주가 무엇인지도 잘 모른다.
일단 싸움이 벌어지니까 휩쓸렸을 뿐이다.
싸움을 벌인 것은 ‘괴담 미로’인데, 혼돈체면서 관리국 정점에 위치한 오스도르크를 보는 순간 문답 무용으로 달려들었겠지.
애초에 괴물이 득실거리는 관리국 수뇌부를 다 죽여버리겠다는 미친 생각을 품고 호텔에 들어온 사람이 미로니까.
내 말에서 무언가를 느꼈는지, 지배가 눈빛을 빛내며 답했다.
“보아하니 그대에게 의사 결정권이 있는 모양이로군?”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대의 생각은 저 은발 아가씨와 다르다?”
“우리는 속아왔습니다.”
“무어라?”
“선대 지혜의 간교하고 교활한 속삭임에 당했지요. 그는 끊임없이 방주가 함정이고 세상을 타락으로 물들여 왔다고 했으니까요.”
“…”
“아리를 만난 후에야 진실을 알았습니다. 방주야말로 세상의 단 하나뿐인 구원이었음을….”
당연하게도 아리는 그런 말 한 적 없지만, 당황하지 않고 내 거짓말을 받아주었다.
마치, 자신이 정말 방주를 부수면 안 된다고 날 설득한 것처럼!
“오스왈드. 반역이라는 표현, 이제 사과해야 할 것 같지 않아?”
진철 형과 승엽이는 표정 가득히 ‘?’를 띄웠지만, 어찌 됐든 내가 하는 말이니 따른다는 분위기로 얌전히 한 걸음 물러섰다.
이 시점에서 분위기의 반전을 느낀 지배가 답했다.
“사과하지. 내 어리석었다. 오스도르크!”
“끙…. 이런 식으로 싸움이 끝날 줄은 몰랐는걸?”
꿈틀거리는 살덩이 또한 쉭쉭 거리는 말투로 중얼거리며 천천히 배불뚝이 남자의 형상으로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남은 단 한 사람.
“미로.”
“…”
요괴처럼 빛나는 섬뜩한 눈동자가 날 향한다.
지금 대체 무슨 개수작이냐는 눈빛.
그러자 아리가 한 걸음 나아갔다.
“어머니.”
“… 아리야.”
“날 믿으세요.”
“…”
추억여행 당시 괴담 미로가 보였던 태도를 생각하자.
이제 미로는 본인의 판단보다 아리의 판단을 더 신뢰한다.
자신이 만들어 냈고, 자신과 닮았고, 자신보다 더 멀리 나아간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리가 미로를 사랑하는 만큼 미로 역시 아리를 신뢰한다는 뜻.
두 사람의 미묘한 시선이 교차한다.
동료들은 물론, 지배와 오스도르크조차 침묵하며 상황을 주시했다.
“하!”
미로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아리야. 네 뜻대로 하자꾸나.”
그 말을 끝으로 새하얀 공간을 탁하게 물들였던 검푸른 안개가 사그라들었다.
— 짝!
기다렸다는 듯, 지배가 손뼉 치며 말했다.
“젊은 지혜! 현명한 판단이다! 선대 지혜의 모략을 눈치채다니? 과연, 지혜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구나!”
“…”
“조금 전까지의 충돌은 모두 불문에 부치겠다.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선 종종 오판할 수 있는 법! 그대들은 실로 용사이니, 다음 세상에서 인류의 수호자가 될 것이고 -”
“…”
혼자 반색하며 떠드는 지배와 달리, 아리를 비롯한 동료들은 이제 어떻게 할 셈이냐는 듯 날 바라본다.
나는 기다렸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할 선대 지혜의 목소리를!
애초에 이 작자는 내가 어디 있어도 대화할 수 있잖아?
‘그대…. 정녕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가?’
“아, 이제야 끼어드는군요?”
나와 선대 지혜의 대화를 인지한 지배가 즉시 끼어들려 했다.
“젊은이! 마귀의 목소리를 듣지 말고 -”
“조용히 합시다. 선대, 할 말이 있습니까?”
‘방주야말로 타락의 원인이라고 그렇게 일렀거늘!’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네 동료도 인정했을 텐데! 방주가 곧 타락의 원인이라고!’
이 부분은 아리도 인정한 사실이다.
관리국 역시 방주에 문제가 있음을 알지만, 더 나은 답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서 대충 답했다.
“아, 몰라.”
‘무슨 -’
“꼬우면 힘 한번 제대로 쓰시든가.”
‘…’
한동안 선대 지혜 세력과 합을 맞추며 품었던 의문.
이 자식들, 우리랑 별개로 방주를 공략하며 관리국과 한 판 붙을 생각 아니었어?
그런데 세력을 보자.
별 의미도 없는 일반인 사병 따위를 제외하면, 전면에 나서는 제대로 된 강자가 라이언과 패트릭 둘뿐이야.
겨우 이 두 사람으로 방주를 어떻게 공략하지?
방주 내에 침묵하는 자만 최소 셋인데?
답은 간단하다.
선대 지혜에게는 숨겨둔 비장의 수가 더 있다!
본인의 패를 아끼고 우리를 대신 쓰려고 했을 뿐이다.
“지배! 이름이 오스왈드라고 했나?”
“그렇네.”
“방주는 언제 완성됩니까?”
“한참 남았네. 4개월 이상 버텨야….”
지금도 상황을 보고 있을 누군가에게 보란 듯이 말했다.
“남은 기간, 우리가 철두철미하게 보호하겠습니다.”
그리고 –
— 두두두두…!
“으앗!”
“크으윽!”
“이건…!”
기오막측한 마력(魔力)이 폭발적인 기세로 주변을 휩쓴다.
결국, 가능하면 힘을 아끼려 했던 선대 지혜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것!
방주 내의 공간이 이지러지며 사방의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내, 너에게 바른길을 권했거늘…. 어찌 이리 어리석은가?」
“이게 네놈의 수였냐? 한 번 정도는 현실에서 개지랄할 수 있다? 아니면 몇 번 더?”
「잔머리를 굴리는구나. 그렇다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으리라.」
어슴푸레한 그림자.
사람과 영의 경계.
지금까지 접해온 다른 참가자 ‘따위’와 비교할 수 없는 위압감!
오랜 세월 웅크렸던 선대 지혜의 형상이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저, 저런 게 사람 맞아요?”
“으어억! 가, 가인아! 새, 생각 있는 거지!”
경악하는 승엽이와 입을 쩍 벌리며 당황하는 진철 형.
지배와 오스도르크는 황급히 선대 지혜의 현현을 막으려 했으나,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래, 이거지.
선대 지혜에게 이런 힘이 있었구나?
이 정도는 할 수 있으니 방주를 점령하니 어쩌니 했겠지!
— 덥썩!
아리가 다급한 표정으로 날 잡았다.
“저것까지 봤으면 됐지?”
“응?”
“선대 지혜의 숨겨둔 수를 보는 게 목적 아니었어?”
아리는 ‘원 모어 찬스’의 회귀 시점이 조금 전으로 지정되었음을 안다.
내가 시간을 돌릴 생각으로 막 나가고 있음을 짐작하고 있다.
그러니까 ‘여기까지 봤으면 시간을 돌리자’고 하는 것.
“위험해! 저, 저 괴물은 반쯤 죄수 아니야?”
“신기하네.”
“뭐?”
“어떻게 저렇게까지 강하지?”
“무슨 -”
— 우르릉!
실시간으로 치솟는 선대 지혜의 압박감을 느끼며 생각한다.
정말 강하다.
이 정도면 참가자의 한계는 훨씬 넘어섰고, 내가 강림이 있던 시절에나 비벼볼 만한 정도!
아무리 현실에서 억겁의 시간을 보냈다 해도 이 정도가 말이 되나?
“유산을 설령 서너 개 얻었어도 말이 안 되는 힘. 호텔에서 얻을 수 있는 선을 넘었으니, 저 강함에는 분명 특수한 비밀이 -”
“닥치고! 지금 묵성이에게 연락해서 -”
“할아버지 말고 상현 형에게 연락해. 빨리!”
아리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내 부탁대로 했다.
그 사이, 마지막으로 한 번 물었다.
「조언 : 3 -> 0」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일, 진짜 미친 짓 같지 않습니까?’
「그러면 해야지.」
“풋!”
하라는 거 보면 최소한 하자마자 망하진 않는다는 말이겠지!
“왜, 왜 웃는 건데!”
— 띠리링!
“형!”
“가인 군?”
“저 믿죠?”
밑도 끝도 없는 말.
한 점 의심 없이 돌아오는 답.
“물론입니다.”
과거, 지배가 호주 지하에서 아리에게 했던 이야기.
「이 구조물은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졌네. 관리국이 지금보다 훨씬 위대했던 시절의 산물일세. 다시는 재현할 수 없지.」
얼마 전, 상현 형이 최후의 섬광을 지하에 쏘고 싶다고 하니 라이언 등이 보였던 격렬한 반응.
위 정보를 합치면 한 가지 결론이 나온다.
호주 지하의 건축물은 지금보다 훨씬 강력했던 태고의 관리국이 설계한 달의 봉인 중 일부이리라.
동시에 떠오른 생각.
206호에서 확인했듯, 원 모어 찬스의 시공 회귀로도 영혼을 잃은 자는 되살릴 수 없다.
아리의 말에 따르면 달은 영혼을 집어삼킨다.
따라서 달에 먹힌 사람들은 시간을 돌려도 부활할 수 없으리라.
마지막, 방주가 종말을 부르는 빛으로 생존자를 몰살하는 행위의 의미.
제아무리 달이라 해도 죽은 자의 영혼은 흡수할 수 없다는 것.
그러니까….
“우리가 있던 통로, 거기서 달 쪽으로 쏘세요. 그리고 바로 자살하세요.”
“…”
“저 믿으시죠?”
충격적인 말에 주변 동료들까지 놀란 시점.
짤막한 목소리가 전화 저편에서 들려왔다.
“…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핸드폰이 터져나갈 듯한 폭음.
곧, 상현 형의 위치가 — 로 바뀌었다.
— 우르릉!
아마도 지금, 섬광이 호주 지하를 꿰뚫고 달에 닿았으리라.
…
머나먼 지하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아득한 존재감.
진홍색으로 빛나는 음울한 구체의 환영.
이 시점에서 장내의 모든 이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달았다.
달이 ‘즉시’ 깨어나고 있다!
— 고오오!
지배와 오스도르크가 영혼이 다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 광인이…!”
마침내 방주에 나타난 선대 지혜 또한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대…!”
순식간에 이어진 폭풍 같은 흐름!
아리 또한 넋 나간 듯 중얼거렸다.
“너….”
“아리야, 이번에 한번 끝까지 가자.”
여러 가지 정보가 연거푸 전해온 사실.
정답으로 향하는 길은 ‘종말 이후’에 숨겨져 있다.
그래서 나는 세상을 한번 조져보기로 했다.
망한 후에 답이 나온다는데, 이것 말고 무슨 수가 있겠는가?
— 쿠궁!
“하하하! 한번 다 같이 끝을 봅시다!”
“이 애미애비 없는 호로 새끼!”
누군데 이렇게 품위 없이 굴어?
높으신 분들끼리 모였는데, 아무리 종말이 다가온다 해도 예의는 지켜야지!
“말은 바로 합시다! 여기 애미애비 있는 사람 누가 있다고!”
— 고오오오…!
마침내 달이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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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호텔 탈출기-59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