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599)
EP.599 599화 – 도둑맞은 세계 (14)
599화 – 도둑맞은 세계 (14)
– 차진철
서초 푸른 데미안 아파트 8동 203호.
집값 비싸기로 유명한 서울에서도 알아주는 고급 아파트라고 들었다.
— 띠리링!
그런 것 치고는 전화가 잘 걸리지 않았다.
뭐, 이건 아파트 문제라기보다 세상이 망가졌기 때문이겠지만.
“아, 국제전화가 계속 와서 누군가 했네. 차 신입!”
“오랜만입니다. 요전에 선배님하고 부산에서 일 한번 했었죠? 그 후에 연락드리려 했는데 -”
“인사는 됐다, 됐어! 뭔데? 뭐 부탁이라도 있어?”
잠깐의 대화, 상대의 말투에서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요즈음의 세상에선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난데없이 하늘에 나타난 방주가 휴거를 일으키는 시기가 아니던가?
누가 봐도 창작물에서나 봤던 종말론의 실현이었기에 세상 전체가 환란에 빠진지 오래다.
그러나 대화 상대는 나처럼 요원이며 회귀자다.
세상이 망하든 말든, 방주에 타든 말든 ‘다음 삶’이 있음을 믿기에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선배님, 제가 보낸 문자 보셨습니까?”
“어! 텍사스에 사는 일반인들 주소 아니야?”
“그 사람들, 오늘 내로 전부 죽여주세요.”
“…”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상대가 되물었다.
“어려운 일은 아닌데…. 이유 물어봐도 되냐?”
“최근에 한국 지부에서 침묵하는 자 나온 것 아시죠?”
“실종됐다는 소문이 -”
“돌아오셨습니다. 제가 ‘그분’과 친밀한 관계인 것 아시죠?”
“… ‘그분’의 명령인가? 알겠다. 더 해줄 말은?”
“이건 개인적인 충고입니다. 일 끝내는 대로 선배님도 자살하시지요.”
“… 뭔지 모르겠지만 고맙다.”
“아닙니다.”
— 틱!
전화가 끊겼다.
“큭!”
이것 참, 아리보고 ‘그분’ 어쩌고 하는 거 미묘하게 웃기는데?
조금 전의 통화 상대는 이석현 요원으로, 관리국에서 일하며 만났던 여러 요원 중 한 명이다.
솔직히 그리 친하지 않아.
내가 아는 요원 중 지금 미국에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 전화했을 뿐이지.
그런 사람에게 뜬금없이 전화해서 누구누구 죽여달라고 하는 나도 웃기지만, 즉시 들어주는 상대도 만만치 않다.
아마 신입 요원 차진철을 믿어서는 아닐 것 같다.
나와 친분이 있다고 알려진 ‘침묵하는 자, 김아리’의 명령이라 생각했겠지?
이런 때는 아리가 진짜 높으신 분임을 체감하곤 한다.
어쨌든, 이 정도면 상현 형님과 묵성 요원의 가족까지 ‘피난’ 시키는 데 성공한 것 같네.
밖에서 볼 일은 대충 끝냈으니 이젠 돌아가야 –
— 치지직!
음? 리모컨 건드린 적도 없는데 갑자기 TV가 –
「긴급 재난 경보!
…
그 외 따라야 하는 지침은 -」
— 치지직!
「긴급 재난 경보!
…
그 외 따라야 하는 지침은 -」
“…”
정신없이 터져 나오는 정체불명의 경보를 보는 순간 깨달았다.
본격적인 종말 이벤트가 시작됐구나!
“하필 이 타이밍에 난리냐?”
조만간 달이 온 세상 영혼을 호로록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한다고 가인이가 말했었지?
이게 그거 같다.
이변을 느낀 관리국 잔여 세력이 나름대로 경고하는데, 그걸 달이 뭐 오염시킨 상황 아닌가?
밖에 나가면 하늘에서 달이 일반인의 정신을 뒤흔드는 상황 같은데?
“인마! 나도 어, 이 정도는 척하면 척이야! 내가 속아서 나갈 것 같냐?”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자신감 있게 말은 했지만, 벌써 머리가 띵 하다.
나가지 않으면?
설마 이 징글징글한 아파트에 나 혼자 갇힌 건가?
하필 동료들과 떨어진 타이밍에 이 지랄이 나다니!
하긴, 밖에 있을 때 일 터져서 세뇌당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
재수가 없긴 하지만, 재수 없는 상황치고는 운이 좋은 셈 치자.
어쨌든 힘이 쭉 빠져서 끈적이는 침대 위에 앉았다.
— 삐걱!
“어~ 참. 아파트도 비싸다면서 좋은 침대 좀 사시지 – 죄송합니다. 나도 참 별소리를.”
침대가 아니라 내 체중이 너무 무거운 게 문제인가?
한숨 쉬며 앞으로의 일을 천천히 생각했다.
그 순간.
— 쿵!
“…”
— 쿵쿵쿵쿵쿵쿵!
정신없이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
“누구요!”
기다렸다는 듯 들려오는 혼란스러운 목소리들.
“하하! 203호 아저씨! 나와요!”
“이 사람들, 답답하게 안에서 뭐 하는 거야?”
“나오라는 긴급 재난 경보 못 들었냐고!”
재난 경보가 나오고 10분도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다 홀린 건가?
— 쿵쿵쿵!
“203호! 203호! 나오라니까!”
“답답한 사람들이네! 다른 사람들은 금방금방 나왔는데!”
“203호에 사는 사람이 누구였죠?”
“거, 의사 선생님 부부랑 고등학생 딸인데 -”
“의사 선생님이 아니고 수의사!”
“근데, 수의사 양반 목소리가 저리 굵었나?”
엄청 시끄러운 데다가 목소리가 다양한 것이, 문밖에 모여있는 사람이 족히 10명은 넘는 것 같았다.
— 치지직!
그때, TV에 다시금 불이 들어왔다.
“뭐냐? 코드까지 뽑았는데 -”
부자 동네 아니랄까 봐 무려 100인치 사이즈를 자랑하는 TV 화면에 뉴스 데스크가 나타났는데, 중심에는 섬뜩한 눈빛을 빛내는 아나운서가 있었다.
「서초 푸른 데미안 아파트 8동 203호.」
“이야, 주소도 알아? 대단한데?”
「당신을 위해 하는 말입니다. 밖으로 나오세요. 나와서 구원을 받아들이고 -」
뭐라 뭐라 떠들던 아나운서가 갑자기 흠칫하며 입을 다물었다.
“왜 그래?”
분명 무슨 괴담 속 존재 같았는데, 침묵한 채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린다.
“뭐 말하려고 하지 않았냐?”
「…」
“아, 집 내부 상태가 좀 더러워서? 원래는 깨끗했어.”
「…」
— 쿵! 콰직!
문 쪽에서 엄청난 소리가 들려온다.
망치나 둔기 따위를 가져와서 문짝을 때려 부수는 모양인데?
“아니, 저놈들은 나 하나 끌어내는 일에 왜 이리 진심이냐?”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게 요즈음 도시 풍경인데 왜 이러냐고.
어이없음을 느끼며 문 쪽으로 가니 정말로 문에 굵직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하하하! 203호, 203호! 곧 들어갑니다!”
“그 안에 답답하게 박혀있지 말라고 했지?”
“우리가 -”
— 띠리링!
그래서 그냥 문을 열어줬다.
갑자기 문이 열릴 줄은 몰랐는지, 이상한 공구로 문짝을 뜯어내던 사람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 어 -”
“들어오쇼. 집 구경이 엄청 하고 싶은 모양인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들어오는 사람들.
문이 열리자 바깥소리가 들렸는데, 지금 203호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파트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쉽게 말해, 홀린 놈들이 홀리지 않은 사람을 억지로 끌어내고 있다는 소리다.
“그래, 집 상태가 어떻습니까?”
“어, 어, 이, 이게…!”
조금 전까지 광기 어린 목소리를 내던 사람들이 죄다 넋 나간 듯 203호의 풍경을 돌아본다.
“아, 바닥에 시체가 좀 있어서 그렇습니까?”
서초 푸른 데미안 아파트 8동 203호.
예전에 들은 ‘송이’의 집 주소.
바닥에 누운 시체는 송이의 부모님 되신다.
나는 승엽이 부모님 쪽을 먼저 피난시킨 후, 송이의 부모님도 안전한 곳으로 보내드렸다.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지금의 내가 연쇄살인범처럼 보이겠지.
하지만, 아까 전에 가인이의 설명을 들으며 깨달았다.
아아…!
태양이 지고 달이 떴으니, 올바름과 그름의 기준이 뒤집어졌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는 저승이요, 살인(殺人)은 곧 구명(救命)이다.
“흐억!”
“아니, 뭘 그렇게 놀라? 시체 처음 봐요? 사람이 사람 좀 죽일 수도 있지, 그런 것 가지고 왜 이리 놀랍니까?”
“사, 살인이다!”
“살인?”
“미, 미친 살인마가 203호 수의사 부부를 죽였 -”
— 탕!
맨 앞에 있던 남자의 머리가 터졌다.
“하, 한국에 무슨 총이 -”
“내 직업이 좀 특이해서.”
— 탕! 탕!
뒤에 있던 사람들의 머리도 연거푸 터졌다.
곧, 203호의 시체가 일곱으로 불어났다.
“…”
본능적인 죄책감을 느낀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반면, 내 머리는 끊임없이 차가운 진실을 속삭였다.
나는 사람들을 죽인 게 아니라 안전한 곳으로 보내고 있을 뿐이라고.
“…”
아파트단지 내부 위주로 다니며 조심하면 달에 홀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은데.
— 끼익!
“어? 누구 -”
— 탕!
이제부터 총알은 아끼자.
나는 달조차 접근할 수 없는 절대적인 안전 구역 – 저승으로 민간인을 피난시키고 있다.
여덟.
아홉.
열.
어느 시점부턴 굳이 세지 않았다.
…
달의 광기가 침식 중인 세상을 거닐기 위해선 정신 보호 능력이 필수다.
딜라이트에 남은 동료들이야 은솔 누님 피리도 있고, 상태창이나 불변, 명경지수 등이 있으니 문제없겠지?
나는 당장 이 아파트단지에서 벗어나긴 좀 곤란해.
어떻게 할까?
— 끼익!
다시 203호로 돌아와 여전히 밝게 빛나는 스크린 앞으로 움직였다.
괴이한 아나운서가 질린 듯한 눈으로 날 보았다.
“야, 아파트에 사람 더 있냐?”
「…」
“너, TV 안팎으로 쏘다닐 수 있지? 나한테 다 보내라.”
「…」
“내 말 안 들려? 이 새끼 이거! 내가 너 있는 장소로 가서 시켜야겠냐? 여자같이 생겼으면 내가 못 때릴 줄 알아?”
이렇듯, TV 너머의 괴담 아나운서와 평화롭게 대화하던 차.
「이 마귀 같은 – 캬악!」
“어, 어? 뭐야?”
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이게 무슨 -”
아나운서, 달의 하수인이 무언가에 공격받고 있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227일 차
현재 위치 : 서울시 영등포구 딜라이트 호텔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본격적으로 미쳐가기 시작한 세상.
달의 광기에 홀려 거리를 점령한 사람들의 열띤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구원이 왔다! 구원이 왔다!”
“미륵께서 우리를 구하러 오셨습니다!”
현재, 나는 혼자 딜라이트 호텔 옥상으로 올라왔다.
어둑한 밤하늘, 어슴푸레하게 빛나는 진홍빛 광원.
아직, 달이 완벽히 강림하진 않았다.
“…”
상태창으로 시야를 가린 채 달을 보는 중인데, 흡사 편광 필름 너머로 태양을 보는 느낌이다.
필름이 태양 빛을 다 막아낼 수 없듯, 상태창도 달의 마력을 전부 막아내지 못했다.
뭐, 그걸 노리고 나오긴 했지만.
요전에 들었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선생님」
「연구원」
「마법사」
달이 내게 말을 걸고 있다.
「겁쟁이」
이번에는 전에 없던 단어 하나가 추가됐다.
“겁쟁이? 왜?”
「나는 알아. 진짜 당신은 건물 안에 있어.」
나는 미로가 시간대여기로 불러낸 소환체다.
견디기 힘들다 싶을 때 상태창에 ‘!’만 적으면 즉시 미로가 역 소환하기로 한 상태.
“인정할게. 내가 겁이 좀 많아. 그렇다고는 해도, 딱 보면 소환체인 걸 알아?”
「배신자」
「오만한 자」
전에도 어렴풋이 느꼈지만, 다시 들으며 확신했다.
달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는 하나가 아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목소리가 마구잡이로 섞여서 혼란스럽게 들려왔다.
게다가 꽤 많은 목소리는 미숙한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느껴졌다.
의식이 제대로 합쳐지지 못했다?
「선생님」
“…”
미로에게 전달받은 이야기.
오래전, ‘연구원’이 관리국에 격리되어 있던 모종의 혼돈체를 해방했다.
그 혼돈체가 모든 재앙의 씨앗이 되었다고 한다.
…
이 목소리는 아마도 나를 가장 믿는 무언가가 아닐까?
“네가 무슨 말 하는지 잘 모르겠구나.”
최대한 ‘선생님’이라는 단어가 연상하는 이미지에 걸맞게 보이려 노력했다.
「선생님, 당신을 의심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나는 언제나 선생님을 믿었답니다.」
처음으로 들려오는 구체적인 이야기.
“고맙구나. 가능하면 네가 더 말해보겠니?”
「선생님….」
“내게 할 말이 있다면, 전부 말 -”
「오고 있어요.」
“뭐?”
「예전처럼, 이번에도 약탈자들이 오고 있어요!」
“야, 약탈자라니, 그게 무슨 -”
「아아…. 오는구나! 도적의 손에서 세상을 되찾았건만, 또 다른 도적이 오는구나!」
말투가 바뀌었다.
또한, 달에서 내려오는 목소리의 세기가 엄청나게 강해졌다!
달이 흥분하고 있다!
「내가 바로 이 세상의 장자니라. 누구도 내 것을 빼앗을 수 없음이야. 두 번 다시 세상을 도둑맞지 않으리라!」
뇌가 녹아내릴 듯한 격렬한 고통 속에서 나는, 정신없이 상태창에 끄적였다.
그 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문장이 내 눈에 들어왔다.
시나리오 이해가 처음부터 보여줬던 시련의 제목이!
‘도둑맞은 세계’
「!」
즉시 역소환이 시작되며 내 몸이 흐릿해졌다.
이것이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오피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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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호텔 탈출기-59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