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00)
EP.600 600화 – 도둑맞은 세계 (15)
600화 – 도둑맞은 세계 (15)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227일 차
현재 위치 : 서울시 영등포구 딜라이트 호텔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옥상에서 소환체가 알아낸 사실을 전달하자 은솔 누나가 현기증이 난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뭔가 추가됐어? 약탈자? 세상을 도둑질하는 존재? 이건 또 뭐야?”
화이트보드의 내용도 한 줄 추가됐다.
「1. 달의 악마를 저지할 방법 알아내기
달의 악마가 생존자의 혼을 집어삼키는 과정 이해
과거의 나와 달의 관계
2. 선대 지혜의 목적 알아내기
비정상적일 정도로 강한 힘의 근원과 해법
3. 선대 정의의 행방
4. 약탈자의 정체」
화이트보드를 재차 살핀 아리가 담담한 투로 질문했다.
“달이 널 반쯤 아군으로 대하는 것 같다고?”
“맞아.”
“그러면 달에게 물어볼 수는 없어?”
“이젠 무리야. 완전히 미쳐서 정체 모를 무언가, 아마도 약탈자에 대한 저주만 토해내기 시작했어.”
창밖을 내다보며 달과의 소통을 다시 시도했지만, 전부 실패했다.
“밖에서 정보를 더 얻어야겠네. 어차피 진철이도 구해와야 할 것 같으니까.”
진철 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주변이 잠시 조용해졌다.
“진철이 위치는?”
형이 외출한 후 주기적으로 위치를 확인했다.
“똑같아. 서초 푸른 데미안 아파트 8동 203호.”
“송이 집이네.”
“…”
“송이 부모님을 죽이러 간 건가?”
“아마. 이미 승엽이 집도 들렀어.”
듣고 있던 할아버지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다면, 텍사스에 있는 나랑 상현이 가족에게도 손을 썼겠구나.”
“미국에 있을 텐데 가능합니까?”
“굳이 진철이 본인이 갈 필요 없지. 요원 일 몇 달 하면서 미국에 아는 사람 하나 없겠냐.”
동료가 가족을 죽이는 끔찍한 상황인데, 아무도 진철 형을 타박하지 않았다.
“고 녀석이 어려운 일을 대신 해주는구나. 고마울 따름이다.”
도리어 고마워하고 있으니, 참 기묘한 세상이 아닐 수 없다.
은솔 누나가 아리에게 물었다.
“아깐 정신이 몽롱해서 생각하지 못했는데, 아리 넌 이제 이렇게 쏘다녀도 괜찮아? 석판은 -”
아리가 살짝 복잡한 표정으로 날 보며 중얼거렸다.
“진작 부서졌겠지.”
아리가 유폐된 후, 나는 석판의 파괴까지 염두에 두었다.
석판 자체는 절대로 파괴할 수 없는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총이나 미사일 따위로 부술 수는 없지만, 최후의 섬광 정도면 가능하다.
달 정도면 석판을 길가의 돌멩이 취급할 수 있겠지.
“아?”
“최후의 섬광에 쓸렸을 수도 있고, 달이 깨어나며 심연에 처박았을 수도 있고.”
“그래?”
“… 석판은 세상을 위해 꼭 필요한 물건이야.”
석판에 의해 몇 번이나 죽을뻔한 사람답지 않은 의견이네.
하긴, 석판은 질서유지를 위한 도구에 가까우니 원한을 품을만한 대상은 아니다.
“괜찮아. 할아버지가 시간 돌리면 다시 생기지 않겠어?”
“확실해? 소멸한 영혼은 되돌릴 수 없듯이 원 모어 찬스도 한계는 있어.”
“모르지.”
내 답변이 다소 무책임하게 들렸는지, 아리는 슬쩍 눈썹을 찌푸렸다.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따져서 어쩌겠어?
— 탁!
아리는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탁자를 쳤다.
“딜라이트 호텔에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나, 가인, 은솔. 이렇게 셋이 나가서 진철이도 찾고 정보도 얻자.”
피곤한 표정으로 졸던 미로가 화들짝 놀랐다.
“어? 나는? 엘레나랑 묵성이는?”
아리는 순서대로 손짓하며 간단히 설명했다.
“묵성이는 원 모어 찬스. 후방에 남아야지. 엘레나는 선대 정의의 행방을 파악하기 전엔 행동에 주의하고. 존재 자체가 선대 정의의 디버프 같은 느낌이니까.”
“으음, 그렇게 할게.”
“나는! 내가 은솔이보다 훨씬 센데!”
그 말에 은솔 누나가 미묘하게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미로…. 대놓고 말하니까 기분 나쁘잖아.”
아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달이 온 세상 사람들을 홀리고 있다며? 은솔이 피리는 무조건 필요해.”
우리를 위해서든, 달에 홀린 사람을 되돌리기 위해서든 피리는 필요하다.
은솔 누나의 무력함을 고려하더라도 데리고 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미로 너는 두 사람을 지켜. 끝! 출발!”
*
늦은 시각, 진철 형이 고립된 데미안 아파트에 도착했다.
“이야~! 누님, 오셨군요!”
“내가 반가운 거야? 아니면 피리?”
“하하! 누님이 곧 피리죠!”
“이 말도 뭔가 미묘하게 불쾌해….”
“어엇?”
“냄새가 독하네.”
“…”
“고생했어.”
누나 말마따나 아파트 전체에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형이 피로한 표정으로 내 쪽을 보았다.
“상당수는 내가 대피시켰는데,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밖에 모여서 이상한 노래를 부르더라. 들었냐?”
“지금도 들립니다.”
난간에서 서초동의 밤거리를 내려다보자 대법원 앞 공터에 최소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광경이 보였다.
무슨, 강강술래라도 하는 것처럼 빙빙 돌면서 노래를 부른다.
“가인아, 밖에서 뭐라고 하냐? 나는 실내에 있느라 정확히 못 들었 -”
“조용히 해. 지금 가인이 집중 중이잖아.”
정신을 집중하니 어렴풋이 가사가 들렸다.
…
기뻐하라.
진실한 구주께서 버림받은 양들을 구하러 오셨네.
찬양하라.
종말과 죽음으로부터 모두를 인도하러 오셨네.
웃어라.
달의 왕자께서 성모와 성자를 내려 우리를 영광의 길로 이끄시도다!
달이여! 우리를 삼키소서.
당신은 우리를 삼켜 영광을 얻고, 우리는 당신 속에 하나 되어 영원을 얻으리다!
“어때?”
“달이 진실한 구세주다 뭐 이런 노래야. 자기들끼리는 달의 왕자라고 부르는 것 같네.”
“달의 왕자?”
“성모와 성자….”
“뭐?”
“달이 성모와 성자를 내릴 거라는데.”
“…”
“마지막엔 모두가 달과 하나 되어 영광을 얻고 영원을 얻는다고 해.”
“적나라한 내용이네.”
“수십억 인류가 그 운명을 받아들여야 삼킬 수 있을 테니까.”
달과 선대 지혜, 선대 정의, 약탈자.
이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팠는데 이번엔 성모와 성자?
갈수록 늘어가는 정보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래서 조언을 썼다.
말투를 좀 공손하게 하면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을까?
‘키워드는 많은데, 해석이 어렵습니다. 여러 키워드를 묶을 수 있는 힌트가 있습니까?’
[조언 : 3 -> 0] [정상적인 시나리오라면, 후반에 구체적인 복선 없이 새로운 무언가가 나오지 않는다.]“아?”
“뭐야? 시선 허공에 고정한 거 보니까 조언 쓴 거 맞지?”
“…”
조언 3 스택을 전부 소모한 것 치고는 다소 추상적인 답변.
해석에 따라 ‘선대 지혜, 선대 정의’에 관한 질문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리라.
선대 참가자에 대한 직접적인 질문과 답변은 금지다.
그래서 이런 돌려 말하기 화법이 나온 것.
동료들에게 조언을 전달했다.
은솔 누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상적인 시나리오? 현실 말하는 건가?”
이 부분은 쉽게 이해했다.
“호텔은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도 일종의 시나리오 취급합니다. 시나리오 이해도 몇 차례 작동했죠.”
안타깝게도 지금은 정보 갱신이 멈췄다.
내가 너무 지나치게 막 나가는 바람에 호텔이 준비한 내용이 없는 것 아닐까?
아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후반에 구체적인 복선 없이 새로운 무언가가 나오지 않는다. 즉, 구체적인 복선이 있었다는 말이야.”
현재 우리가 ‘새로운 정보’라고 생각 중인 키워드들은 다음과 같다.
선대 정의, 약탈자, 성모와 성자.
올빼미의 힌트에 따르면, 이것들은 ‘이 시점에서 갑자기 등장한 무언가’가 아니다.
“이미 알고 있는 무언가야.”
“…”
“선대 정의도, 약탈자도, 성모와 성자도. 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무언가들이야.”
이미 아는 사람.
이미 아는 괴물.
이미 아는 혼돈체.
단지, 이것들이 정의, 약탈자, 성모, 성자임을 몰랐을 뿐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 나는, 한 가지 어처구니 없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하나 깨달았어.”
“뭔데?”
“달이 내린 성자. 이거, 나 같은데?”
아리가 침음성을 토했다.
“원래도 너 보고 선생님 어쩌고 했었지…. 심지어 이번에 달을 풀어준 것도 너잖아!”
내가 달의 성자다.
그렇다면 성모는 누구인가?
*
다음 날 아침, 딜라이트 호텔에 한 손님이 왔다.
모두가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다시 만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사람이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
“교인들을 보낼까도 생각했지만, 역시 이런 중요한 일은 직접 해야겠다 싶어 왔답니다.”
“…”
“저기요~! 제 인사가 들리지 않으시나요?”
말은 잘 들린다.
그냥 모두가 넋이 나가 있을 뿐.
“통성명부터 하는 게 어떨까요? 후배 참가자분들! 몇몇 분 성함은 이미 알고 있답니다. 교인 중에 관리국 출신이 제법 되거든요.”
거창하게 교라고 해봐야 어제 생겼을 텐데, 하루 만에 동료 여럿의 이름을 알아내다니!
“예쁜 아가씨는 아리 양 맞죠?”
“… 나는 미로야.”
“아, 닮았다더니 역시 그렇네. 하얀 분이 미로 양, 검은 분이 아리 양?”
“맞아.”
“덩치 큰 분은 진철 씨, 뒤에서 입 벌리고 있는 분은 은솔 양?”
“응.”
“맨 앞의 잘생긴 분은 모르겠네요. 신기하게 아무도 이름을 모르던데…. 하지만, 전 당신을 보는 순간 알았답니다.”
“…”
“왕자님께서 계시를 내리셨거든요. 당신이 우리를 영광으로 이끌 분이시라고.”
“…”
“너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어색해요. 참, 제 이름은 -”
“에이디아.”
“어? 내 이름을 아세요? 아하! 왕자님께서 성자님께 알려주셨군요?”
성모 에이디아가 현실에서 우리 앞에 나타났다!
207호가 현실의 모의고사임은 알고 있었지만, 기껏해야 ‘거울’ 정도가 공통 요소인 줄 알았는데!
에이디아도 현실에 있었어?
즉시 통찰의 힘이 예리하게 번뜩였다.
207호에서 알아낸 에이디아와 거울에 관한 정보를 근거로 통찰이 추가적인 정보를 알아낸 것.
이 여자는 207호의 그 에이디아가 맞지만, 또한 다른 사람이기도 하다.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나 현실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그녀의 또 다른 가능성이다.
…
현실에서 거울을 처음 발견한 사람도 에이디아였다?
거울에 의해 뒤틀려서 이번에도 인간의 편에 섰다?
어느 시점, 모종의 이유로 달을 섬기게 되었고 –
“으읏!”
“자제하세요.”
“…”
“전 아주, 아주 오래 살아왔답니다. 한 번에 다 읽어내려고 하면 머리가 좀 아프죠.”
“…”
“네가, 네가….”
“제가?”
“… 선대 정의구나.”
현실의 에이디아는 심지어 호텔 탈출자이기까지 하다!
아니, 저주의 방 속에 있는 NPC는 호텔에 의해 수집된 존재 아닌가?
어떻게 현실에도 있을 수 있지?
무슨 수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
“당신, 안 좋은 습관이 있군요.”
“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눈 앞에 타인이 있어도 갑자기 고민에 빠지는 습관. 통찰이 당신에게 감당할 수 없는 정보를 때려 붓기 때문이죠.”
“… 통찰에 대해 잘 아네.”
“무엇을 궁금해하시는지 알 것 같네요.”
“…”
“3층, 3층에서 누군가가….”
“누군가가?”
“부처님께 절 위한 소원을 빌었답니다.”
3층에서 부처에게 비는 소원.
아주 오래전부터 가끔 나왔던 이야기다.
“무슨 이야기지?”
“저도 몰라요. 누가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도. 다만 성자님!”
“듣고 있어.”
“눈앞의 일에 집중해 주세요. 호텔이란 참으로 신비해서, 그쪽의 비밀을 고민하다 보면 현실의 모든 것은 덧없게 느껴지죠.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결국 이 장소랍니다.”
곧, 성모의 입이 호선을 그었다.
207호에서 그랬듯이, 그녀는 이번에도 ‘정의로운’ 존재였다.
“누군가 내 축복을 나눠 가지고 있는 것 같네요. 그쪽 아름다운 금발 아가씨 맞죠?”
“히끅!”
엘레나가 숨 한번 크게 쉬지 못하고 딸꾹질했다.
“왜 그러세요? 마치, 제가 당신을 죽여서 힘을 회복하기라도 할 것처럼?”
긴장한 표정의 엘레나를 보며 에이디아는 픽 웃더니 다시 내 쪽을 보았다.
“오늘, 나는 기억을 잃은 당신을 바른길로 이끌고자 왔습니다. 우리와 함께 싸워주세요. 과거, 당신이 왕자님을 관리국의 손에서 해방했을 때처럼!”
나는 에이디아를 안다.
에이디아 역시 나를 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에이디아는 이 에이디아가 아니었다.
에이디아가 아는 나도 지금의 내가 아니었다.
문득, 어제 얻은 조언이 다시금 뇌리를 스쳤다.
달의 정체.
성자와 성모의 정체.
선대 지혜와 선대 정의.
최소한 누가 누군지는 어렴풋이 알아가고 있다.
딱 하나, 약탈자만 빼고.
조언에 따르면 약탈자 역시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무언가다.
설마 호텔에서 본 죄수 중 하나?
그게 아니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