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01)
EP.601 601화 – 도둑맞은 세계 (16)
601화 – 도둑맞은 세계 (16)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228일 차
현재 위치 : 서울시 영등포구 딜라이트 호텔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오늘, 나는 기억을 잃은 당신을 바른길로 이끌고자 왔습니다. 우리와 함께 싸워주세요. 과거, 당신이 왕자님을 관리국의 손에서 해방했을 때처럼!”
같이 싸워달라는 말에 동료들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이은솔 : 아리, 얘에 대해 몰랐어?
김아리 : 전혀. 달의 성모 같은 정보는 없었는데.
아리와 관리국조차 달의 성모, 에이디아에 대해선 전혀 몰랐다.
성모의 강림 등은 통상 방주가 떠난 후에 벌어졌기 때문이겠지.
그때, 에이디아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최초로 절 봉인한 건 관리국이었답니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죠.”
동료들의 반응을 보고 무언가 읽은 걸까?
딱히 특별한 초능력은 아니라고 본다.
긴 세월을 살아오며 쌓인 경험인데, 이 기술이 극한에 달해 거의 독심술이 된 것.
207호의 에이디아도 이 비슷한 면이 있었다.
아리가 솔직히 물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며 우리도 널 잊은 건가?”
“여러분이 잊은 정보가 어디 한둘이던가요? 스페인 지하에서 처음 거울을 발견한 사람이 저랍니다.”
“…”
미묘하게 관리국을 비웃는 듯한 태도.
207호의 에이디아는 본인이 관리국 수장 격 위치였음을 생각하니 실로 미묘한 기분이 든다.
명심하자.
207호의 에이디아와 눈앞의 에이디아는 사실상 다른 사람이다.
최초로 스페인에서 거울을 발굴했다면, 사실상 최초의 방주 시절부터 살아온 사람이라는 뜻.
언제 관리국에 의해 봉인되었고, 언제 달이 거두었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몇 번의 루프를 반복했는지 알 수 없으며, 억겁의 시간 속에서 선대 지혜조차 꺼릴 만큼의 저력을 쌓은 존재다.
— 짝!
가볍게 손뼉 치며 다시 이목을 내게 집중시켰다.
“같이 싸워달라는 말, 약탈자와 싸워달라는 의미지?”
“그렇답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그 순간, 에이디아는 다소 불길한 표정을 지으며 하늘을 보았다.
“이런 탁 트인 장소에선 무리랍니다.”
“…”
“사특한 지혜를 얻은 자…. 그는 정말 귀가 밝죠.”
선대 지혜를 말한다.
그자는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사람에게 접근할 수 있는 자.
“안전한 곳으로 가야 해요.”
“달의 영향이 더 강한 그런 장소?”
“그렇죠.”
달의 영향이 더 큰 장소로 가는 게 맞나?
하긴, 이 시점에서 위험하다고 빼는 게 더 말이 안 된다.
“차도 준비했답니다.”
이번에도 할아버지와 엘레나, 미로를 딜라이트 호텔에 남기기로 했다.
“하하! 여러분, 진짜 제가 저 금발 아가씨를 죽일까 봐 걱정하시는 건가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 반응에 에이디아는 살짝 섭섭한 표정을 지으며 차로 걸어갔는데, 미묘하게 진짜 실망한 것 같았다.
본인 딴에는 우리가 ‘성자 세력’이니 아군이라고 생각 중인 게 아닐까?
*
에이디아가 준비한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졌다.
「현재 위치 : 서울시 영등포구 딜라이트 호텔 -> 검색 중….」
“조심하세요. 아무래도 요 일대는 약탈자가 침식 중인 것 같으니까. 아침만 해도 멀쩡했는데.”
“… 이게 그 의미였나?”
“네?”
“이게 약탈자의 침식 현상이야?”
“그렇죠. 아직 초기니까 -”
“물리적으로 벗어날 수 있지. 한 100m만 벗어나면 될 것 같네.”
“잘 아시는군요?”
“네가 깨어나기 전에 많이 겪었어.”
상태창의 현재 위치가 갑자기 ‘검색 중….’으로 바뀌더니, 정체 모를 이계가 나타나는 현상.
평범한 건물인 줄 알았는데, 내부엔 살아있는 피에로가 잠복하며 사람을 죽이려 든다.
평범한 가정집인 줄 알았는데, 들어가 보니 꿈틀거리는 고치로 가득하다.
현실로 돌아온 후 종종 겪은 특이한 일이다.
올빼미의 말마따나 약탈자가 일으키는 전조 현상은 현실에 도착한 순간부터 있었다.
단지, 이런 현상들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을 뿐.
이 시점이 되어서야 원인이 약탈자의 침입이었음을 알았다.
“…”
방주가 반쯤 붕괴하고, 침묵하는 자는 자살로 도주했으며, 달이 깨어난다.
이 시점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마수를 드러내는 세 번째 세력, 약탈자.
게임에 비유하면 마치 2 페이즈가 시작한 것 같다.
옆에 앉아있던 아리가 내 귀에 작게 속삭였다.
“크게 세 가지 세력이 있는 것 같아.”
“관리국, 달, 약탈자?”
“선대 지혜가 뭔지 이해하기 힘들었어. 관리국 편은 확실히 아닌데, 그런 것 치고는 달의 편에 선 것도 아니었거든.”
달이 깨어나기 시작하자 경악하며 도주한 것도 그렇고, 성모의 반응만 봐도 느껴진다.
관리국 편도 아니고 달의 편도 아니라면, 선대 지혜는 대체 어디에 속해 있단 말인가?
“이제 알았어.”
“나도.”
선대 지혜는 약탈자 쪽 세력이다!
그렇다면 약탈자는 또 뭐 하는 놈인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기다렸다는 듯, 앞 좌석의 에이디아가 답했다.
“별것 아니랍니다.”
“…”
“달의 왕자님께서 대업을 이루신다면, 얼마든지 몰아낼 수 있는 패배자들이죠. 본인들이 신이라고 착각하는 반푼이들….”
입으로는 별것 아니다, 패배자들이라 하는데 태도는 달랐다.
숨길 수 없는 몸의 떨림이 말하는 진실.
에이디아는 약탈자‘들’을 두려워한다.
아리가 콕 찌르듯 물었다.
“약탈자라는 거, 하나가 아닌 모양이지?”
“… 네. 여럿입니다.”
어렴풋이 느낌이 왔다.
하나하나는 달 입장에선 별것 아닌 존재다.
그러나 수가 여럿이며 모이면 달로서도 감당하기 쉽지 않다.
“…”
수가 여럿이고, 모이면 달조차 감당하기 힘든 반신적 존재.
올빼미에 따르면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존재.
슬슬 약탈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듯 말 듯했다.
“전 그놈들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두려워하니까 나오는 말이다.
“언젠가는 내 신께서 모두 몰아내시리라 믿습니다. 그런 반푼이들 따위는 -”
어떤 의미에선 독실하게까지 느껴지는 에이디아의 신앙 고백.
이런 면은 207호에서 보인 모습과 신기할 정도로 비슷하다.
그때는 내 목소리를 섬겼고, 지금은 달을 섬기고 있을 뿐.
여기까지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다음 말이 나왔다.
“그렇게 돼.”
“네?”
— 드르륵!
앞좌석의 에이디아가 무슨 말이냐는 듯,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끝까지 가면 결국 달이 이겨.”
근거 없는 말이 아니다.
나는 미로로부터 예지가 보았다는 음울한 미래를 전해 들었으니까.
관리국이 패배하고 진홍빛 달이 떠오른 세상.
예지가 본 미래에 달을 제외한 무언가는 없었다.
달과 약탈자 간의 2 페이즈 역시 끝까지 가면 결국 달이 이긴다는 것.
“과연! 성자님답게 뭔가 아시는군요? 말해줘서 고마워요. 안심되네요.”
이 지점에서 참기 힘들었는지, 아리가 슬며시 나섰다.
“에이디아, ‘성자’가 본 미래에서 -”
아리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안다.
예지가 본 달이 승리한 미래는 그 어떤 생명과 희망이 없는 우주적인 종말에 가까웠다.
아리는 그 점을 강조하며 너 역시 달에 홀린 게 아니냐고 하려는 것.
“됐어.”
“…”
“왜 그러세요?”
“아니야. 속도를 더 내자.”
무의미한 시도다.
성모씩이나 되는 사람을 말 몇 마디로 설득할 수 있겠어?
달이 수천수만 년을 세뇌했을 텐데?
괜한 말을 해서 에이디아가 우릴 경계하기 시작하면 그게 더 골치 아프다.
다만, 명심하자.
달의 승리 역시 세상의 파멸 –
— 두두두두…!
“아?”
“어?”
“아 개 미친!”
반사적으로 욕부터 튀어나왔다!
이 소리 이미 두 번이나 들어봤잖아!
“당장 차 밖으로 -”
뒷말은 필요 없었다.
나와 아리는 물론이고, 에이디아까지 진즉 차 밖으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진철 형 역시 벼락같이 은솔 누나를 한 팔에 낀 채 달리기 시작했다.
허공에서 선대 지혜의 형상이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달이 깨어나면서 자기 일하러 떠난 것 아니었어?”
에이디아가 악을 쓰듯 외쳤다.
“했잖아요! 약탈자들에게 신호 보냈으니까 -”
“급한 일은 처리했으니,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우리 죽이려고 -”
— 두두두두…!
특유의 위압적인 진동음이 점점 더 거세진다.
선대 지혜의 현현이 코앞이라는 의미!
에이디아가 새파랗게 질린 채 날 보았다.
“성자님! 당장 전화해서!”
“뭐?”
“엘레나! 그 아가씨 자살 시켜요!”
이거 봐라!
엘레나 죽여서 본인의 힘을 회복하겠다는 소리 절대 하지 않을 것처럼 굴더니 역시 거짓말이었네!
“미쳤냐!”
“아! 답답해! 이 상태론 저 늙은이에게 우리 다 뒤진다고!”
“다 같이 힘을 모으면 -”
“멍청아!”
“아까는 성자라며!”
“빡대가리 성자 새끼! 이러다가 다 죽는다고!”
점잖은 모습은 싹 사라지고 순식간에 험해지는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207호 에이디아는 마지막까지 기품 있었는데!
— 우르릉!
마침내 선대 지혜의 아득한 형상이 현실을 비집고 튀어나온다!
「악연을 끊을 때가 되었도다.」
“아 진짜 선배님! 자꾸 죽이려고만 하지 마시고 -”
「나는 장막 너머의 혼돈을 보았느니라….」
청옥색 기운이 허공으로 모여들며 하나의 구체를 형성한다.
「이 작디작은 세계의 인형극이 얼마나 우스운고?」
마치, 주문과도 같은 속삭임 끝에 구체가 요동치는 순간!
압도적인 힘의 물결이 서울 한복판을 내리쳤다.
— 삐이익!
거대한 고주파 음이 고막을 파고드는 듯한 착란!
너무나 큰 소리가 터지자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너무나 강렬한 빛이 주변을 채우며 시야 전체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신성한 태양이 뿜어내는 온후한 빛이 선봉에 섰고, 아리는 그 뒤에서 부등변다면체의 힘으로 벽을 겹겹이 세웠다.
나도, 아리도 실핏줄이 터질 정도로 온 힘을 다 때려 넣었다!
이 정도로 무식한 싸움이 있을 줄 알았다면 무리수를 써서라도 신성한 태양을 꽉 채우고 왔을 텐데!
“으드득!”
정신이 아찔해질 때쯤, 비로소 충격파가 가라앉았다.
다행히 첫 번째 공세는 어떻게 막아낸 상황!
아리가 숨을 헐떡이며 외쳤다.
“에, 에이디아는!”
설마 선대 지혜의 공격 한 방에 죽은 건 아니겠지?
다행히 자욱한 연기가 사라지며 허공에 떠오른 황금빛 인영이 나타났다.
“…”
산발이 된 머리, 반쯤 찢어진 옷, 입가에 흐르는 피.
다른 위치에서 혼자 공격을 받아냈기 때문인지, 우리보다도 훨씬 상태가 좋지 않다.
「성모, 오랜만에 보는구료.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모양이오.」
“이…. 마귀 같은 놈! 내 힘만 멀쩡했다면 -”
성모와 선대 지혜가 적개심을 드러내는 시점.
나는, 하늘에 떠올라 주변 풍경을 돌아보며 넋을 잃었다.
“…”
희뿌연 먼지가 서서히 사라지며 반쯤 폐허가 된 서울의 풍경이 드러난다.
달을 찬양하던 사람들은 죄다 흙먼지 속에 묻혔고, 시야에 보이는 모든 빌딩이 무너지며 흉측한 콘크리트 덩어리로 변했다.
서울 한복판에 핵이라도 떨어졌냐?
무슨 지진이라도 난 것 아니야?
마찬가지로 넋이 나간 듯한 아리의 중얼거림.
“말이 안 돼…. 이런 강함은 말이 안 된다고!”
비슷한 위력이라면 최후의 섬광이나 정의 정도가 있겠지.
최후의 섬광은 단발성 유산이다.
정의는 발동 조건도 까다롭고, 이 정도 위력을 내려면 모든 힘을 한방에 사용해야 한다.
반면, 선대 지혜에게 이 공격은 ‘조금 강한 기술’ 정도인 것 같았다.
— 우르릉!
다시금 청옥 빛 기운이 하늘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모, 모래시계 있지? 지금 써서 -”
“아직 아니야.”
아리를 제지하며 에이디아에게 다가갔다.
“뭔가 수 없어?”
에이디아는 멍하니 답했다.
“… 엘레나를 죽이라니까요.”
“그것 말고!”
“다 같이 여기서 죽죠.”
“아 진짜!”
— 파지직!
이번엔 더 거대한 힘이 모여든다!
압도적인 에너지가 구체에 응축되자 그 여파만으로 머리카락이 쭈뼛 설 지경이었다.
“제발! 성자 님! 내 힘을 온전히 회복하면 저놈이 저런 큰 기술을 쓰지 못하게 막을 수 -”
“성자, 성모.”
“네?”
“넌 성모고 난 성자네.”
“그게 뭔 -”
“자, 자 무릎 꿇자.”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에이디아의 어깨를 잡았다.
“네?”
“성경도 안 봤냐? 이런 건 그냥 기도로 이겨내는 거야.”
“뭔 -”
주저 없이 무릎 꿇고 기도했다.
“하늘에 계신 달의 왕자님. 여기 성자 성모가 모였습니다!”
“지, 진짜 기도?”
아리가 황급히 에이디아의 무릎도 꿇렸다.
“너도 해! 이 멍청아!”
“아가리로만 성자 성모 하지 마시고 도와주소서! 이대로면 산채로 튀겨지게 생겼습니다!”
“… 살려주세요.”
— 우르릉!
그렇게, 선대 지혜의 두 번째 공세가 지상을 내리치는 시점.
…
하늘이 어두워졌다.
나는 – 장막 너머에서 뻗어오는 거대한 혓바닥을 보았다.
“왕자님!”
“네 눈엔 저게 왕자님으로 보이냐?”
거대한 혀가 도시를 휩쓰는 순간, 선대 지혜는 숨 한번 쉬지 못하고 황급히 몸을 피한다.
조금 전까지 자연재해를 부르는 신이라도 된 것처럼 당당했던 모습은 한 줌도 남아있지 않았다.
“하, 하하!”
넋 나간 듯 웃는 아리.
그 옆에서 나도 같이 웃어버렸다.
지상을 걷는 비루한 이들은 나 정도만 되어도 신을 보았다며 무릎 꿇는다.
그런 내가 주먹 한 방을 받아내기 힘든 반신이 계략을 꾸미며 세상을 횡행하며,
그 반신이 눈 한번 마주치기 두려워하는 마신이 당장이라도 강림하려 한다.
한데, 그토록 강대한 달이 왜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나와 성모를 돕지 않았겠는가?
본인 역시 약탈자와 신경전을 벌이느라 여력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그래, 아득한 마신조차 제 뜻을 온전히 펼칠 수 없는 세상이다.
아아….
오늘처럼 아득함을 느낀 건 참으로 오랜만이다.
“…”
아찔했다.
아무리 우리에게 시간을 돌리는 힘이 있다고 해도.
이런 터무니없는 존재들 사이에서 내 뜻대로 상황을 만들 수 있을까?
‘내가 정말 저 괴물들을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조언 : 3 -> 0」
「대적이 하나가 아님을 기뻐하라. 하나라면 절대 이길 수 없다. 오히려 여럿이기에 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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