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03)
EP.603 603화 – 도둑맞은 세계 (18)
603화 – 도둑맞은 세계 (18)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229일 차
현재 위치 : 경기도 부천시 중동 중앙3길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방주랑 약탈자는 다 알았어. 그러면 달은?”
“그건 또 아주 긴 이야기랍니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죠.”
심호흡하며 물 한 모금 마신 후 에이디아는 설명을 이어갔다.
“시간 순서대로 말씀드리죠. 최초의 방주는 회귀자를 연구한 끝에 만들어졌습니다. 회귀자는 방주 이전부터 있었어요.”
“그렇겠지.”
“당시의 세계는 강고한 신분제 사회였다고 합니다. 당시, 회귀자는 하늘의 선택을 받은 왕족으로 여겨졌죠.”
회귀자가 하늘의 선택을 받은 왕족 취급을 받았다?
흥미로운 이야기인데,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이야 관리국이 정보를 통제해 일반인은 회귀자의 존재조차 모르니 왕족이 되긴 어렵지만, 통제가 없다면?
일반인이 보기에 회귀자는 영생불멸의 반신 그 자체다.
“방주의 통제 권한 역시 왕족들에게 있었습니다. 이후의 방주 통제 권한이 침묵하는 자에게 있듯이.”
“이해했어.”
“처음 몇 번은 큰 문제 없이 방주가 다음 세상과 융화했다고 하죠. 그러다가 처음으로 사고가 터졌어요.”
“사고?”
“반란이 일어났거든요.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전쟁이 벌어지고, 많은 기록이 사라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
에이디아의 설명을 듣고 있으니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느 날 하늘에서 SF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인류 집단이 내려와서 세상 전체를 정복했다.
저항할 힘이 없을 때야 순순히 고개를 숙였겠지만, 정말 마음 깊이 충성했을까?
방주 세력과 토착 세력의 충돌을 ‘반란’이라고 표현하는 건 순전히 방주 세력의 관점이다.
토착 세력이 보기엔 ‘독립운동’이라고 불러야 맞겠지.
“정황상, 반역자들은 방주와 관련한 기술을 손에 넣고 싶었던 것 같아요.”
방주 세력이 싫은 것과 별개로, 방주의 기술력은 탐냈다.
역사 속 제국의 침략에 시달리던 식민지들도 제국의 무기는 탐냈으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들은 대다수 왕족의 영혼을 소멸시켰고, 딱 한 명의 어린 소년만 남겼습니다.”
“… 방주를 통제하려고?”
“그거죠. 그리고 방주를 역설계하기 시작 – ”
“잠깐, 잠깐!”
에이디아의 말을 여기까지 들었을 때, 몇 달 전에 제주도에서 보았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갔다.
통찰이 내게 ‘두 정보’를 연결하라고 속삭이는 것!
*
‘세상의 명맥을 잇기 위해 방주를 만들었어.’
‘뒤늦게 나타난 사람들이 있었거든.’
‘이미 탑승한 자들을 전부 죽이고, 빈자리에 자기들이 대신 탔어.’
‘방주를 빼앗은 사람들은 악인일까?’
‘이런 일이 앞으로도 반복될 것 같다면 어떨까?’
‘마지막 생존자가 있다고 치자.’
‘그 생존자는 어린 시절의 일을 전혀 모른 채 성장했어.’
‘성인이 되어서야 과거의 일을 알았지. 어떻게 행동할까?’
*
“성자님? 괜찮으세요?”
“… 1분만.”
“네.”
제주도에서 얻은 정보가 바로 이 일에 대한 비유였구나!
최초의 방주와 다음 세상의 사람들.
다음 세상의 사람들이 방주 세력을 몰살하고, 방주를 역설계했다.
다음 세상 사람들을 악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들 입장에선 ‘독립운동’이었을 뿐이니까!
이전 세계의 침략자와 토착 세력의 충돌은 이후로도 무수히 벌어졌으리라.
최초의 방주에 마지막 생존자이자 왕족이 있었다.
그는 과거의 일을 세뇌 등으로 전부 망각한 채 원수들에게 이용당했다.
어느 시점, 그가 기억을 되찾았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이제 괜찮으니까 계속 설명해 줘.”
“반역자들은 어린 왕족을 통해 방주의 설계도를 손에 넣는 데 성공했고, 왕족을 격리했습니다. 죽이지 않은 건 만약을 대비해서였겠죠.”
“그리고?”
“풋!”
“왜 웃어?”
“이 부분을 당신이 내게 묻는 게 웃기니까요.”
“…”
“반역 세력은 ‘관리국’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내세웠어요. 당시, 관리국 서열 3위 내에 속해있던 연구원이 있었거든요?”
“…”
“그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왕족을 해방했어요.”
“…”
“풀려난 왕족은 결국 방주를 되찾았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방주와 달을 합일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때부터 최초의 방주는 곧 달이 되었다.
“당시 관리국은 지금보다 훨씬 강했고, 달은 지금보다 훨씬 약했죠. 그래서 당대 관리국은 어떻게든 달을 지구 속에 봉인하는 데 성공했어요.”
“…”
“당연한 말이지만, 왕족을 해방한 연구원은 관리국의 영구 척살 대상이 되었답니다.”
영구 척살 대상.
수없이 많은 삶에서 성인이 되기 전에 살해당한 나에 대한 이야기다.
“이후, 많은 루프가 지나간 게 지금입니다. 관리국은 끝없이 쇠퇴했고, 달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해졌죠.”
“…”
“여기에 아까 말했던 약탈자 이야기까지 추가하면 고대사 강의 끝! 궁금하신 점 있나요?”
은솔 누나가 제일 먼저 손을 들었다.
“내용보다는 네 말투 때문에 궁금해졌어.”
“말투?”
“경험이 아니라 어디서 본 정보를 말하는 것 같은데, 태고의 기억은 다 잊은 거야?”
“…”
“최초로 거울을 발견한 사람이 에이디아 너라며? 반란이 일어나고 할 때 너도 이미 있었을 텐데….”
들어보니 일리 있는 지적이다.
에이디아는 본인 경험이 아니라 역사 기록을 말하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관리국이 최초의 방주 세력을 영혼 채 소멸시켰다는데, 에이디아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에이디아가 쓰게 웃으며 ‘나’를 가리켰다.
“당신이 관리국의 공격을 피한 것과 같은 방식이죠.”
“내가 쓴 방법이라니 – 아.”
깨달았다.
“그 시기에 호텔에 있었구나.”
“호텔에 잡혀갔다가 돌아오니까 제가 여태 말한 모든 일이 끝난 후였어요. 사라진 역사를 알아내기까지 아주 많은 노력이 필요했죠.”
“…”
“다음 질문!”
다음엔 아리가 물었다.
“침묵하는 자가 된 후로 항상 궁금했던 게 있어. 네 설명을 듣고도 풀리지 않은 의문점.”
“뭔가요?”
“최초로 방주를 만든 이유가 뭘까?”
이후의 방주는 달의 악마 혹은 약탈자의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달과 약탈자 역시 방주의 일종임을 고려하면, 사실상 앞에 만들어진 방주를 피하려고 이후의 방주가 만들어진 셈이다.
1번이 2번의 원인이고, 2번이 3번의 원인이다.
그렇다면 1번의 원인은 무엇일까?
에이디아는 어렵지 않다는 듯 답했다.
“쉽지 않아요? 달이나 약탈자 말고도 종말의 위협은 많이 있죠. 상당수는 여러분이 격리했잖아요?”
“그건 맞아.”
세상에는 방주랑 상관없는 종말의 원인이 많다.
호텔의 죄수만 생각해 봐도, 104호의 ‘주’를 제외하면 다른 죄수들은 방주 따위 언급조차 없었다.
“그런 걸 피하려고 했겠죠.”
“에이디아, 그 정도는 나도 알아. 내 의문은 그 첫 번째 원인의 행방이지.”
“…”
처음으로 방주를 만들게 된 제1 원인이 있다.
이제는 원리조차 이해할 수 없는 방주를 설계했을 정도로 압도적인 영역에 도달했던 문명조차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도망간 인류조차 방주를 만들어서 루프를 견딜 수 있는데, 제1 원인이 사라졌을리 없지.
에이디아는 솔직히 답했다.
“모르겠네요.”
“… 답해줘서 고마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제1 원인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정보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그 연결고리가 무엇인지 모를 뿐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입을 열었다.
“나도 하나 물을게.”
“기꺼이.”
“… 연구원이 마지막 왕족을 해방한 이유가 뭘까?”
“풋!”
에이디아가 즐겁게 웃으며 되물었다.
“제가 물어도 되나요? 성자님. 어떤 마음으로 왕족을 해방하셨죠?”
자연스럽게 다른 동료의 시선도 내게 모였다.
“그러게. 과거의 나는 대체 왜 관리국이 격리한 왕족을 풀어줬을까.”
아리가 끄덕였다.
“왜 달의 악마가 태어나게 한 거야?”
진철 형도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왜 세상을 말아먹었냐?”
아직 말아먹진 않았어.
말아먹기 직전일 뿐이지….
은솔 누나가 의견을 냈다.
“결과론이긴 한데, 지금 달이 약탈자를 막고 있잖아?”
틀린 말은 아니다.
“또, 이번 루프의 약탈자들은 관리국이 무너진 후에야 공격해 왔어.”
“그렇죠.”
“내 생각엔, 약탈자들도 달의 각성이 임박했음을 느낀 거야.”
“그 말은?”
“괜히 관리국을 공격했다가 달이 더 일찍 깨어나면 곤란하니 사린 거지. 관리국과 싸우며 힘을 빼면 달에게 쓸려나갈 수도 있고”
“…”
“이 모든 계산은 3자 구도이기에 성립해. 달이 없고 약탈자와 관리국만 있다고 생각해 봐. 관리국이 버텼을까?”
다섯 대, 열 대의 약탈자가 수백 년에 걸쳐 나타나며 현 세상을 공략했다 생각해 보자.
관리국이 이 모든 침입을 막을 수 있었을까?
무리다.
이번 회차, 혹은 최근 몇 회차에서 약탈자들이 자제했기에 관리국 체제가 유지되었다.
왜 자제했는가?
양자구도가 아니라 3자 구도니까.
관리국 이상으로 달이 두려우니까!
그럴듯한 논리다.
하지만, 결과론으로 만들어 낸 논리이기도 했다.
에이디아가 먼저 반박했다.
“말이 안 돼. 성자님이 왕족을 해방한 건 최근의 일이 아니야. 아주 오래전이잖아?”
“그렇지?”
과거의 내가 왕족을 해방하며 달이 만들어졌으니, 달의 악마가 태어나기도 전 이야기다.
또한, 약탈자 대부분이 존재하기도 전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약탈자를 대비해 미리부터 3자 구도를 만든다고? 무슨, 우주적인 예지 능력자도 아니고.”
“… 예지 능력이 있었을 수도 있지.”
움츠러든 은솔 누나에겐 미안한데, 내 생각도 에이디아와 비슷해.
유사 예지력인 통찰이 있는 만큼 확실히 말할 수 있다.
100년 후의 미래도 아니고 세상이 수십번 종말과 재시작을 반복한 끝에 생길 문제를 예측해서 대비한다고?
통찰 정도가 아니라 올빼미를 내 옆에 앉히고 직접 시켜도 못한다.
예지의 신이 와도 불가능한 영역이다.
결과적으로 3자 구도가 된 것이지, 이 상황 자체가 의도일 수는 없다.
아리 역시 미묘한 반응을 보였다.
“설령 다 알았다 쳐도, 약탈자가 두려워서 달을 만들었다? 이건 마치….”
아리가 에이디아 눈치를 보며 뒷말은 아꼈지만, 생략된 말은 짐작했다.
이미 예지가 미로를 통해 알려주지 않았는가?
관리국, 약탈자, 달의 3자 구도의 결말!
특별한 변화가 없다면 최종 승자는 달이며 이는 곧 희망 없는 미래다.
따라서 약탈자가 두려워서 달을 안배하는 건 여우가 무서워서 호랑이를 기르는 것과 같다.
“알겠어. 이건 아닌가 보네.”
은솔 누나가 한숨 쉬며 고개 숙이니 이번엔 에이디아가 살짝 감성적인 말을 꺼냈다.
“제겐 믿음이 있답니다.”
“무슨 믿음?”
“성자님께서 올곧은 마음으로 정의를 택하셨다는 믿음!”
“…”
“과거, 당신은 반역자의 기록을 살펴 태고의 진실을 알아내신 거죠.”
“…”
“세상의 장자, 올바른 주인에게 운명을 돌려주기 위한 정의로운 결단임이 틀림없어요. 전 그렇게 믿는답니다.”
“그, 그럴 수도 있겠네.”
이게 진짜가 아니라는 데 손모가지 하나와 내 돈 전부를 걸 수 있어.
예지가 미로에게 해줬다는 이야기를 다시 생각하자.
*
‘처음엔 동정심 혹은 윤리적인 이유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며 생각이 바뀌었다.’
‘그의 성품은 여러 삶 속에서 유사했다. 정당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과정의 악독함을 개의치 않는 사람.’
‘동정심이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었다. 관찰자로서는 알 수 없는, 본인만 알 수 있는 이유.’
*
내 성품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했다고 한다.
따라서 과거의 내가 했던 생각은 지금의 나도 할 수 있는 생각이리라.
…
한 가지, 두려운 가능성이 어렴풋이 뇌리를 스쳤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생각.
지금의 내가 이미 한 번 했던 생각.
지금의 내가 –
아리가 내게 물었다.
“뭐 같아?”
“…”
“모르겠나 보네.”
“내일 또 출발해야 하니까 슬슬 잡시다.”
모르겠다.
혹은, 알고 싶지 않았다.
*
나를 제외한 모두가 잠든 늦은 시각.
슬며시 몸을 일으키자 바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자님, 아직 주무시지 않았어요?”
“… 생각할 게 많아서.”
얘는 무슨 잠도 안 자고 우릴 감시하는 거야?
입으로만 성자 성자 하지 말고 좀 믿음을 주라고.
“잠깐 바깥 상황 좀 살필게.”
“네? 이 시간에요? 멀리 가면 약탈자의 침식에 휘말릴 수 -”
“나 못 믿어?”
“…”
“성자 못 믿어? 네 신앙심 그 정도야?”
“아, 아니에요.”
“갈게.”
믿으라고 좀!
집 밖으로 나오자마자 태양을 소환해 하늘로 쭉 올랐다.
이 정도면 에이디아도 감시하기 힘들겠지?
— 펄럭!
한 폭의 그림이 펼쳐졌다.
제발 작동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