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04)
EP.604 604화 – 도둑맞은 세계 (19)
604화 – 도둑맞은 세계 (19)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229일 차
현재 위치 : 경기도 부천시 중동 중앙3길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 펄럭!
한 폭의 그림, 꿈의 왕국을 펼치며 기도했다.
제발 작동해라!
석판의 공격에 의해 꿈의 왕국은 완전히 너덜너덜한 상태로 변했는데, 이게 고작 3일 전의 일이다.
여전히 그림 위에 시꺼먼 선이 여기저기 그어진 것이 정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3일 전에 비하면 선의 숫자가 줄어든 것 같긴 했다.
이 정도면 억지로라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억지로라도 꿈의 왕국을 사용하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첫째, 에이디아의 눈을 피해 동료들과 의견을 나누고 싶다.
둘째, 딜라이트 호텔에 남은 동료들의 상황을 체크하고 싶다.
어제, 달의 악마와 선대 지혜 그리고 약탈자 간의 격렬한 충돌이 서울 하늘에서 벌어졌지.
전투 여파는 서울 한 복판에서 인류 역사에 남을 대지진이 발생한 것처럼 참혹했다.
최소 몇백만 명은 당일 즉사했으리라.
서울은 거대한 공동묘지로 변하고 말았다.
기괴한 이야기긴 한데, 서울 시민의 죽음은 비극이라기보다는 희극이다.
죽은 자의 혼은 달에게 먹힐 일 없으니, 이승보다 저승이 안전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딜라이트 호텔에 남은 동료들은 다행히 모두 살아있지만, 멀쩡한지는 알 수 없다.
충돌 이후 연락할 방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
「조언 : 3 -> 2」
‘이 정도면 꿈의 왕국을 쓸 수 있을까?’
「단순 회의장 용도라면 가능하나, 그 이상은 불가. 주의를 기울일 것.」
꿈 속에서 만나서 대화 정도는 가능한데, 이동은 불가능하다는 말인가?
이 정도면 충분하다.
눈을 감으며 의식을 가라앉혔다.
*
처음으로 깨달은 것은 딜라이트 호텔의 동료들이 깨어있다는 점.
꿈의 왕국은 사용자는 물론 대상자 역시 꿈을 꾸는 상태여야 한다.
묵성 할아버지와 엘레나, 미로 세 사람이 모두 깨어있으니 접근할 도리가 없다.
어쩔 수 없이 다음으로 접근한 곳은 아리의 꿈이었다.
아리는 희뿌연 거품에 들어간 채 꿈틀거리는 살덩이로 가득한 장소를 부유하고 있었는데, 무슨 동물의 내장 속을 탐험 중인 것 같았다.
힘겹게 접근해 물거품을 잡고 마구 흔들자 아리의 흐릿한 눈동자가 맑아졌다.
“아?”
“대체 꿈 상태가 왜 이렇게 지옥이야?”
“… 내 꿈은 자주 이래. 그보다 꿈의 왕국 망가지지 않았어?”
“지금도 정상 아니야. 빨리 움직이자.”
다음으로 도착한 장소는 진철 형의 꿈.
형은 극도로 긴장한 채 낡은 병원을 탐색 중이었고, 고통에 가득한 환자들의 비명을 들으며 –
“아니, 형 꿈 상태도 장난 아닌데?”
“요원 일 하면서 이것저것 많이 봤나 보네.”
“관리국에서 일하면 악몽이 일상이 되는 거야?”
“뭐, 우리 나름의 복지라고나 할까?”
“…”
“농담이야.”
전혀 웃기지 않았다.
어쨌든, 우리에게 자꾸 총을 쏘려고 하는 진철 형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끌고 나왔다.
“으윽! 어? 어! 꿈의 왕국이냐?”
“네.”
마지막으로 은솔 누나는 깔끔한 사무실에 커피 한잔 마시며 앉아있었다.
“자, 다들 여기 앉아. 여기서 대화하자.”
마치 내가 올 줄 알고 있었다는 느낌이네.
“내가 올 줄 알았어요?”
“오늘이 아니더라도 한번은 꿈의 왕국 쓸 것 같았어.”
자유롭게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을 은솔 누나도 느낀 모양이다.
“커피 한 잔씩 할래? 진짜가 아니라 꿈속 커피긴 하지만.”
가볍게 숨을 돌린 후, 비밀회의가 시작되었다.
“에이디아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상했던 점부터 말해봅시다.”
흔치 않게도 진철 형이 바로 입을 열었다.
“그 여자 말에 따르면 반역자 세력이 첫 번째 방주의 왕족을 영구히 죽였다잖냐?”
“그랬죠.”
“영구히 죽였다는 건 곧 회귀할 수 없게 영혼을 파괴했다는 의미 맞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고, 형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날 보았다.
“그럼, 가인이 얘는 어떻게 살아있는 거냐?”
“…”
“왕족을 해방한 대역죄인이니 당연히 영혼을 없애야 하는 것 아닌가?”
은솔 누나가 뺨을 긁으며 아리를 보았다.
“뭔가 알아?”
아리는 잠시 고민하더니 곧 입을 열었다.
“영멸(靈滅). 관리국이 반역자에게 내리는 최악의 처분.”
“영혼 소멸?”
“우선 이건 알아둬. 영멸은 관리국에게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야. 푹 찔러서 즉시 영혼을 파괴하는 그런 물건은 극히 드물어.”
“있긴 있어?”
“대표적으로 필멸의 창.”
지금은 괴담으로 변한 심해 호텔의 미로가 소유한 유산, 필멸의 창.
그 정도 유산이라면 푹 찌르는 것만으로 회귀자의 영혼을 으스러트릴 수 있다.
은솔 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공격적인 능력에 치중한 극단적인 유산 정도가 아니면 영혼 파괴는 쉽지 않다?”
“어렵고, 횟수 제한이 있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영멸 대신 봉인 처분이 훨씬 자주 내려졌어. 요게 그 수단으로 자주 쓰였지.”
아리의 품에서 ‘살아있는 카메라’가 튀어나왔다.
“찰칵하면 많은 경우 문제 해결!”
이래서 아리가 207호에서 힘겹게 카메라를 챙겼구나.
“아니면 탈출 불가능에 가까운 이계에 가두기도 하고.”
“아리 네 말은, 영멸을 위한 무기 같은 게 부족해서 가인이에게 쓰지 못했다는 거야?”
“가능성 중 하나. 근데, 이럴 확률은 낮아.”
“아?”
길게 말해놓고 정작 이럴 확률은 낮다니?
“아무리 희귀한 무기여도 쓸 때는 써야지. 인류 역사에 남을 대역죄인에게 안 쓰면 언제 써?”
“…”
“설령 영멸 수단이 딱 하나 남아있어도 그 하나를 가인이에게 썼을 것 같아.”
“으음….”
미묘한 기분이다.
“심지어 왕족 다수를 처형했다? 영멸 수단이 여럿이었네. 이러면 당연히 연구원 가인이 영혼도 파괴했어야 맞아.”
“그러면 가인이는 어떻게 멀쩡한 거야?”
“왜 멀쩡하다고 생각해?”
“아?”
누나는 물론 진철 형까지 눈을 크게 떴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호텔에 오기 전의 나는 상현 형이 미국에서 만난 마마가 그랬듯이 ‘불완전한 회귀자’였다.
덕분에 과거의 기억이 마구 뒤섞여 있었고, 여러 삶을 한 번의 삶이라 착각했어.
원래 이랬을까?
불완전한 회귀자가 관리국 서열 3위 내의 고위층이 될 수 있을까?
아리가 확신에 찬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 과거, 왕족을 해방하던 연구원 씨는 본인을 지키기 위한 안배를 했을 거야.”
왕족을 해방하면 관리국이 자신을 처벌한다는 정도의 예측은 충분히 할 수 있다.
“그 안배가 뭐였는지 모르겠지만, 효과는 있었어. 관리국조차 연구원 씨의 영혼을 소멸할 수 없었지. 하지만, 연구원 씨도 상당한 타격을 받았어.”
“… 영혼의 격이 떨어졌다? 불완전한 회귀자가 되어 자아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그거야. 어때? 그럴듯하지?”
설득력 있는 이야기다.
다만, 검증할 방법이 없었기에 이 이야기는 이쯤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다음 이야기로 넘어갑시다. 사실, 이 이야기 하려고 모두를 모았거든요.”
모두의 시선이 내게 모여들었다.
“앞으로의 계획! 기억하시겠지만, 얼마 전 올빼미가 의미심장한 조언을 줬습니다.”
아리가 즉시 답했다.
“대적이 하나가 아님을 기뻐하라. 하나라면 절대 이길 수 없다. 오히려 여럿이기에 틈이 있다.”
“정확해. 이게 무슨 의미인가? 양자구도가 아닌 3자 구도임을 적극 활용하라는 말이죠.”
은솔 누나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3자 구도라…. 정석적으로 가면, 상대적으로 약한 둘이 힘을 모아 가장 강한 상대를 막는다?”
진철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센 놈부터 다구리하자?”
“무식한 단어 좀 쓰지 마.”
“… 같은 의미잖습니까.”
다시 입을 열었다.
“자, 3대 세력을 찬찬히 비교해 봅시다. 첫째, 관리국. 다른 세력과 비교하면 힘과 지략 모두 가장 부족합니다.”
한 사람이 눈에 띄게 움찔했다.
평생 몸담은 조직을 낮게 평가하니 아리로선 불편하겠지만, 진실을 받아들여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은솔 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도 부족하고, 힘은 더 부족하고…. 제일 약한 세력이네.”
“두 번째는 약탈자. 관리국에 비하면 정보도 많고, 모두가 뭉치면 달을 위협할 정도니까 힘도 강합니다.”
“으음….”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약탈자들끼리는 과연 사이가 좋을까요?”
아리가 같은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리가. 그냥, 공동의 적이 있어서 같이 다닐 뿐이지.”
“약탈자는 자기들끼리도 얼마든지 내분이 날 수 있는 세력입니다.”
애초에 약탈자들은 한 팀이 아니며 한 팀일 수 없는 집단이다.
공동의 적에 맞서 일시적으로 뭉쳤을 뿐이다.
이게 약탈자 세력의 근본적인 약점이다.
“세 번째는 달. 가장 역사가 오래된 존재라 정보도 많고, 힘도 강합니다. 내분 위험도 없죠.”
이러니까 마지막까지 가면 달이 이길 수밖에 없다.
은솔 누나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달만 약점이 없는데?”
“그래서 다음 이야기가 나와야 하죠.”
“다음 이야기?”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아리가 듣기엔 불쾌할 수 있는데 -”
“그냥 말해.”
“- 내 솔직한 생각이야.”
“말하라고.”
“내 생각에, 관리국이 승리하면 최소한 현상 유지는 가능해.”
“그렇지.”
“약탈자가 이겨도 그렇게까지 나쁜 결말은 아니야.”
“…”
침묵하는 아리.
반면, 은솔 누나와 진철 형은 내심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약탈자의 정체, 따지고 보면 다른 루프에서 온 관리국 유사 집단이잖아?”
“…”
“걔네가 이긴다? 그냥 약탈자 중 먼저 도착한 하나가 다음 세상에서 문명 재건 하겠지.”
“…”
“딱히 대단한 비극도 아니야. 이번 회차의 관리국이 오래전에 했던 일을 비슷한 다른 놈이 와서 할 뿐이지.”
지금의 관리국에 몸담아 온 아리나 할아버지에겐 괴로운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차피 가족이고 뭐고 없는 현실에 떨어진 사람들에겐 관리국이 이기나 약탈자가 이기나 크게 다르지 않다.
절대 이기면 안 되는 놈은 하나다.
“달이 승리하는 건 절대 안 돼.”
침묵하던 아리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의자에 앉아있는 집단, 의자를 뺏으려는 집단. 그리고….”
“의자를 부수려는 놈.”
의자에 앉아있던 사람이 계속 앉아있어도 된다.
다른 사람이 빼앗아도 그렇게까지 큰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의자를 부수면 안된다.
“… 그래, 가인이 네 말이 뭔지 알겠어.”
다른 사람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3자 구도에서 달은 가장 약점이 없고 강합니다. 그런데, 절대 이기면 안 되는 놈이기까지 하죠.”
이 시점에서 다른 동료들도 내가 하려는 말을 짐작했으리라.
나는 엄숙한 표정으로 모두에게 선언했다.
“이제부터 우리는 다른 모든 세력의 힘을 모아 달을 무너트릴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목표는 정해졌다.
어떻게 해야 하냐의 문제가 남았을 뿐!
*
회의가 끝날 무렵, 딜라이트 쪽 동료들에 관한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왔다.
“엘레나랑 미로, 할아버님은 괜찮아?”
나는 세 사람의 꿈이 존재하지 않음을 가리키며 말했다.
“상태창에 따르면 셋 다 살아있어요. 꿈이 없는 것 보이시죠?”
“무슨 의미야?”
“셋 다 깨어있다는 의미죠.”
셋 다 깨어있다.
단순하면서도 이상한 상황이다.
“이 시간에? 셋 다 깨어있어?”
지금은 새벽 3~4시 경이니까.
“그게 이상한 점이죠.”
아리가 슬쩍 눈썹을 찌푸렸다.
“딜라이트 쪽과 이렇게까지 연락이 끊길 줄은 몰랐는데. 전화도 막힐 줄이야….”
진철 형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서울이 박살 났으니, 전화가 막히는 건 당연하지 않나? 기지국이 멀쩡할 리가 없잖냐.”
상식적인 생각이긴 한데, 아리가 가지고 있는 핸드폰은 상식을 벗어나는 물건이다.
“이거, 삶은 감자가 가지고 있던 핸드폰이거든.”
“삶은 감자?”
“아, 바실리오. 방주에서 도망칠 때 머리를 떨어트렸는데 매쉬드 포테이토처럼 으깨졌어.”
“… 침묵하는 자의 핸드폰이라는 말이지?”
“맞아.”
아리 – 엄밀히는 바실리오 – 의 핸드폰은 방주 내부에서도 바깥의 할아버지와 통화할 수 있던 엄청난 물건이다.
이 정도면 평범한 기지국 따위에 의존할 리 없고, 서울이 증발해도 통화할 수 있어야 정상 아닐까?
“딜라이트 쪽에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 모양인데….”
“조언 써보는 게 어때?”
“으음…. 새벽에 두 개 써버리면 내일이 불안하긴 한데. 그래도 쓰죠.”
「조언 : 2 -> 1」
‘딜라이트 쪽 동료들은 괜찮습니까?’
대답은 정말로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네 동료가 빈 소원의 인과가 실현되고 있노라.」
“아?”
멍하니 은솔 누나를 보았다.
누나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인아? 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