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06)
EP.606 606화 – 도둑맞은 세계 (21)
606화 – 도둑맞은 세계 (21)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229일 차
현재 위치 : 검색 중….
현자의 조언 : 1」
– 한가인
투명하게 빛나는 거울을 관찰하며 생각한다.
아까 전, 에이디아가 우리를 기습했던 일에 대하여.
“뭔가 찾으셨나요?”
“성모님,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앗, 채근하는 건 아니랍니다.”
우리와 에이디아가 4대 1로 싸우면 누가 이길까?
정공법으로 충돌하면 아무래도 우리가 이기겠지.
하지만, 아까는 숨 한번 쉬지 못하고 패할 뻔했다.
에이디아가 유산, ‘태극도(太極圖)’의 힘으로 단박에 다른 동료를 쫓아냈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서 나와 성모가 1대1로 충돌했다면?
에이디아의 전력을 모르니 장담할 수는 없지만, 질 확률이 더 높았다고 본다.
날 쓰러트린 성모가 다른 동료들을 공격하면?
아리 말고는 제대로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죽었겠지.
에이디아가 우리와 싸울 생각이 없었을 뿐, 엄청난 위기였다.
어째서 이렇게 허무하게 위기에 몰렸을까?
에이디아의 유산, ‘태극도(太極圖)’의 존재 자체를 몰랐기 때문이다.
몰라서 처음 한 번은 숨도 못 쉬고 당한 셈이다.
비슷한 경험은 또 있다.
라이언 레이몬드가 소통의 힘으로 날 농락했을 때, 처음 한 번은 손 한번 쓰지 못하고 당했다.
역시 이유는 같다.
상대의 능력에 대해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참가자 간의 싸움에서 승패를 결정하는 건 절대적인 힘의 강약이 아니다.
서로의 능력과 유산을 아냐 모르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
성모에겐 분명, 아직도 숨기는 전력이 더 있겠지.
우리에게도 있다.
우리끼리는 알지만 성모는 모르는 힘!
여기에 ‘인질’을 더한다면….
그래, 지금이다.
“아?”
“뭔가 이상한 점을 찾으셨나요?”
머리를 긁적이며 에이디아를 보았다.
“관리국 쪽 친구들이 오고 있군요.”
“… 아까 전의 일은 죄송 -”
“괜찮습니다. 제가 친구들에게 잘 설명할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심 아리 등과 싸우는 상황을 걱정했는지, 내 말을 들은 에이디아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곧, 눈에서 분노의 빔이라도 쏠 듯한 기세로 아리와 진철 형이 접근해 왔다.
“에이디아! 네가 감히 -”
“자, 자, 진정들 해!”
내가 웃으면서 손을 흔들자, 아리와 진철 형이 당황한 듯 멈춰 섰다.
“가인아, 괜찮은 거냐?”
“그럼요. 은솔 누나는?”
“멀리 있다. 아무래도 나랑 아리가 빠르니까.”
“에이디아와 약간의 오해가 있었습니다. 이젠 다 풀었어요. 성모님, 그렇지요?”
에이디아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조금 전의 일은 사과드리겠습니다.”
“…”
아리가 눈살을 찌푸리는 시점, 다급한 기색으로 소리쳤다.
“으아악!”
“뭐, 뭐야?”
“성자님?”
“무슨 일 -”
“베르니케 – 타르시코프 배열을 확인! 37번 거울 유사 동조체의 시공 좌표 붕괴!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성모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 무슨 말씀 -”
그녀의 눈에 숨길 수 없는 당황스러움이 가득 차는 순간 –
— 펄럭!
마도서가 펼쳐졌다.
“어라? 이런 책도 있으셨 -”
화신의 힘에 억제당한 성모의 움직임이 느려진다.
이변을 깨달은 에이디아의 눈빛이 즉시 살기 넘치게 변했다!
“너 -!”
화신의 힘을 예상치 못한 성모가 정지한 찰나의 순간!
뒤늦게 싸움이 시작했음을 깨달은 동료들이 참전했다.
불길하게 빛나는 다면체가 공간을 일그러트렸다.
새하얗게 타오르는 태양의 열선이 성모의 몸을 불살랐다.
불온한 파동을 뿜어내는 별조각이 위세를 드러냈다.
그리고 –
— 파지직!
성모가 이 모든 공격을 받아냈다!
태극도(太極圖)가 빙그르르 원을 그리는 순간, 신성한 태양과 다면체의 공세가 동시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으읏! 이게 무슨!”
유일하게 태극도를 무시하고 위력을 발휘한 건 이계의 별 조각인가?
하지만 성모는 육신 자체가 평범한 인간과 완전히 다르다!
과연, 성모의 몸 전체에서 클리포트 크리스탈이 보랏빛 광휘를 드러내며 육신의 붕괴가 멈추었다.
성모가 계속 버틸 수 있을까?
싸움을 길게 끌면 결국 별조각이 크리스탈의 보호도 뚫지 않을까?
하지만, 이미 화신의 힘으로는 도무지 성모를 억누를 수 없었다!
“성자! 믿어보려고 했더니 이런 수작을…! 해보자는 거냐!”
“으악! 얘 진짜 사람 맞아?”
“도, 도마뱀이지 무슨 사람이냐!”
“성자! 넌 몰라도 이 벌레들은 한 명도 살려두지 않겠다!”
“너무해! 가인이가 싸움 시작했는데 왜 우리만?”
아리 쟤는 이 와중에 농담을 해?
찰나, 성모조차 어처구니없다는 듯 아리를 노려보았다.
“심판의 빛이 거악을 으깨리라….”
이윽고 성모의 눈에서 황금의 물결이 뿜어져 나오는 시점!
나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에이디아 얘 진짜 징그럽게 강하네.
솔직히 인정하자.
신성한 태양을 꽉 채워왔어도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 것 같다.
하긴, 이러니까 선대 지혜가 미리부터 엘레나 죽지 않게 하라고 경고했겠지.
아무리 그래도 기습했는데, 이렇게 힘들 줄이야….
공방 양면으로 지극히 강하니 정공법으로 계속 싸우면 손해가 막심한 상대다.
…
물론, 정공법 이런 단어처럼 의미 없는 게 없다.
이런 싸움에 무슨 심판이 있어서 꼼수 쓰면 감점하는 것도 아니고!
“성모 -”
“성자! 네 머리를 산채로 썰어서 -”
“여길 보시죠.”
새하얗게 타오르는 열선이 거울을 조준했다.
“너….”
에이디아는 아예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이 순간 성모 또한 깨달은 것이다.
여기서 더 요란히 싸우면, 승패를 떠나서 거울은 박살 난다는 사실을!
그녀가 넋 나간 표정으로 멈춰 선 순간.
— 찰칵!
아리가 벼락같이 꺼내든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으악! 얘, 카메라의 힘에도 저항하잖아?”
“성모, 진짜 끝까지 해볼 셈입니까?”
“… 성자. 대체 무슨 생각이죠?”
“나는 단지 해피엔딩을 노릴 뿐입니다.”
“…”
“성모님, 아까 내 동료를 다 쫓아냈잖아요? 우리가 한번 손해 봤으니, 이번엔 당신이 손해 본다고 생각하시죠.”
“…”
“잊지 마시길. 달을 깨운 사람이 누굽니까? 나 역시 달의 왕자님을 위한 판을 짜고 있습니다. 단지, 그 방식이 당신과 좀 다를 뿐.”
“…”
— 찰칵!
두 번째 셔터음.
성모는 이번에는 저항하지 않았다.
*
삽시간에 미사일이라도 여러 방 떨어진 것처럼 박살이 난 해변.
동료들은 잠시 멍하니 선 채 중얼거렸다.
“진짜 성모 이 인간 말도 안 되네.”
“태극도? 그건 방어 특화 유산 그런 건가?”
나도 한 마디 얹었다.
“클리포트 크리스탈, 태극도. 유산 둘 다 방어적인 능력이 상당한 것 같네. 정의의 축복은 철저히 공격용으로 쓰는 모양인데?”
“… 무섭네.”
진철 형은 아예 혀를 내둘렀다.
“나는 참가자 중에 가인이 너 정도면 무지하게 셀 줄 알았거든?”
“…”
“선대 지혜? 그 미친놈을 보고 너보다 몇 배 강한 놈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
“…”
“성모도 장난 아니구나.”
듣다 보니 한숨 나왔다.
“알고 보면 유산 두 개 이상의 강자가 탈출자 평균 아닐까요? 피라미드의 중간층인 거죠.”
진철 형이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렸다.
“… 그럼 나는?”
아리가 코웃음 치며 답했다.
“피라미드 바닥이지 뭘 물어봐? 가인아.”
“그래.”
“아까 그, 베르니케 어쩌고는 뭐야?”
“뭐?”
“베르니케 – 타르시코프 배열을 확인! 37번 거울 유사 동조체의 시공 좌표 붕괴! 이거 뭐냐고.”
“아무 의미 없어. 헛소리 한 거야. 그보다 사진 멀쩡해? 정말 그걸로 성모 봉인할 수 있어?”
“… 한동안은 잠잠할 거야. 길진 않아. 워낙 괴물이니, 일주일 내로 사진 찢고 나올 것 같은데.”
“까다롭네. 사진을 아예 심해나 용암 속에 넣을까?”
“…”
“아니면, 사진을 우주로 보내는 건 어때?”
“나도 비슷한 생각 중이긴 한데, 일단 넌 지금까지 무슨 일 있었는지나 말해봐.”
어느새 나타난 은솔 누나까지 포함한 동료들에게 지금까지의 일을 설명하며 생각했다.
현 상황은 어떠한가?
달이 깨어나며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세상.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답을 찾을 수 없었기에 회귀 시점을 지정하고 달을 깨워버렸다.
그 결과, 파멸 이후에 드러나는 많은 비밀을 알아냈다.
달과 대립하는 약탈자의 실체.
삼자 구도의 균형을 깨트릴 수 있는 거대한 거울.
약탈자가 방주이듯, 달 역시 방주다.
따라서 거울에 취약하다는 약점 역시 같으리라.
시간을 돌렸다고 치자.
관리국 방주는 원래대로 돌아가고 달은 다시 지구 지하에 갇힌다.
그 시점에서 우리가 침묵하는 자를 몰살하고, 선대 지혜와 함께 관리국 방주를 손에 넣으면?
거울을 손에 넣은 약탈자가 달을 무력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정도면, 달의 공략법을 대략 알아낸 것 아닐까?
“어때? 이 정도면 해법 같아?”
설명을 듣던 동료들이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은솔 누나가 답했다.
“그니까, 약탈자와 손잡고 봉인 당한 달을 무력화한다는 그런 거지?”
“네.”
“… 답은 답인데, 호텔식으로 치면 30점짜리 답 같지 않아?”
“으음….”
달은 파멸의 원인인 동시에 약탈자를 막아내는 방파제다.
달이 사라지면, 다음엔 약탈자 – 즉, 다른 방주들이 이제 안전해진 세상을 집어삼키겠다며 들이닥칠 뿐이다.
이는 곧 새로운 거대한 전쟁의 시작이리라.
물론, 누가 이기든 달의 승리보다는 낫다.
약탈자는 결국 또 다른 관리국, 또 다른 교황청이니 누가 이기든 인류 문명을 이어가긴 할 테니까.
그러니 30점일지언정 답은 답이다.
“누나 생각엔 더 나은 방법이 떠올라요?”
“미안. 아리는 알지도?”
“… 어려운데.”
다시금 조용해진 동료들.
더 나은 가능성은 없나?
달을 몰아내고, 약탈자의 문제도 끊어낼 묘수가 없을까?
100점까진 아니더라도 한 80점 정도 되는 그런 답을 얻고 싶다.
「조언 : 1 -> 0」
‘더 나은 가능성이 있을까?’
「진실로 지혜로운 자는 모두가 이길 수 있는 판을 짠다.」
“모두가 이길 수 있는 판이라니….”
“조언 쓴 거야?”
“음. 진실로 지혜로운 자는 모두가 이길 수 있는 판을 짠다네.”
“그거, 예전에 한 번 들은 이야긴데.”
“똑같은 게 또 나왔어.”
진철 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착각했나? 지금 돌아가는 꼬라지는 일종의 의자 뺏기 싸움이잖냐?”
“그렇죠.”
모든 문제를 아주 거칠게 요약하면 이거다.
의자에 앉은 자.
의자를 빼앗으려는 자.
의자를 부수려는 자.
30점짜리 답을 위 비유에 대입하면, 의자를 부수려는 자를 일단 판에서 쫓아내는 것.
“의자 뺏기 싸움에서 어떻게 모두가 이겨? 말이 되냐? 아, 의자 하나에서 다 같이 평화롭게 살기?”
아리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게 가능하면 처음부터 싸우지 않았겠지.”
“그럼 어쩌라는 거야?”
“… 그러게.”
30점 정도의 답은 얻었는데, 그 이상을 모르겠다.
모두가 혼란에 빠진 시점.
— 띠리링!
전화벨이 울렸다.
“음? 내 건 아니고 -”
“내 폰이야. 누가 지금 전화를 – 으앗! 딜라이트잖아?”
이 타이밍에 딜라이트 호텔에서 걸려 온 전화?
아리가 화들짝 놀라서 즉시 전화를 받았다.
“미로니? 괜찮아? 상황은?”
잠시 후.
아리가 넋 나간 표정으로 우리 쪽을 보았다.
은솔 누나가 다급히 물었다.
“뭐래? 그동안 왜 연락 안 된 거야?”
“… 은솔아.”
“응?”
“지금, 묵성이가 한 말인데.”
“어.”
다음 이야기는 모두를 침묵하게 했다.
“… 딜라이트 호텔이 ‘파이오니어’로 변하고 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