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07)
EP.607 607화 – 도둑맞은 세계 (22)
607화 – 도둑맞은 세계 (22)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229일 차
현재 위치 : 검색 중….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딜라이트 호텔이 ‘파이오니어’로 변하고 있다?
당황한 은솔 누나가 중얼거렸다.
“그게 뭔 말이야?”
“미로나 묵성이도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 주변이 무척 혼란스러운지 자기 말만 하고 탁 끊더라.”
“… 파이오니어 호텔이라면, 매분 매초 혼란스러운 게 당연할지도.”
침묵이 흐른 후, 진철 형이 머리를 긁적이며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할 거냐?”
“…”
“거울은 얻었고, 성모도 일단은 제압했고…. 답 비슷한 것도 구했고.”
“그렇네요.”
“앞으로의 계획은 있냐?”
“…”
일을 크게 벌일 때만 해도 금방 풀릴 것 같았다.
파멸 이후에 깨어난 달과 접촉해 약점 및 공략법을 알아내고, 시간을 돌리면 끝날 줄 알았지.
약탈자의 도움을 받아 달을 제압한다?
잘 쳐줘야 30점이다.
세상은 하나인데 방주만 넘쳐난다는 심각한 문제가 그대로니까.
은솔 누나도 조심스레 물었다.
“정보를 더 찾은 후에 원래 시간으로 돌아갈 거야?”
“…”
뭔가 속이 답답했다.
저주의 방을 진행하다 보면, 후반에 거의 매번 겪어온 그 느낌.
파편화된 정보는 많은데, 이걸 엮을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일단, 딜라이트로 돌아갑시다.”
*
돌아가는 길은 더 이상 약탈자의 방해가 없었다.
우리가 성모를 제압한 시점에서 누가 누구 편인지 헷갈리기 때문이리라.
또 다른 한 축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으읏…! 이게 대체 -”
“내 쪽에 바짝 붙어! 이제부터 계속 피리 부를 테니까!”
“은솔이 옆으로 뭉쳐!”
해가 지고 밤하늘에 진홍색 광원이 떠오르는 순간, 견디기 힘들 정도의 악독한 압력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느껴진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달의 옥좌가 위치한 머나먼 영역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배신자」
「아둔하고 어리석은 이」
「타락한 성자」
「반역자의 목소리에 홀렸는가?」
나를 비난하고, 모욕하고, 지탄하는 의지의 덩어리가 오롯이 느껴졌다.
“은솔이 옆으로 와!”
“그래 인마! 뭘 듣고 있는 거야?”
“괜찮아.”
“무슨!”
정말 괜찮았다.
207호에서 얻은 후 처음으로 쓰는 ‘세레나의 깨달음’ 덕분이다.
“전에도 느꼈는데, 다시 들으니 확실하네.”
“뭐가?”
“목소리가 하나가 아니야.”
“무슨 의미야?”
“…”
여러 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는 점.
중요한 것 같은데,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아리가 질문을 바꾸었다.
“달이 거울을 가져가기 위해 강림할까?”
“에이디아가 말했잖아? 그렇게 쉽게 개입할 수 있으면 애초에 우릴 보내지도 않았을 거라고.”
“그건 그래.”
“준비 시간이 필요할 거야.”
“언젠가 오긴 온다는 이야기네.”
“그 전에 수를 써야지.”
정 안되면 그 전에 시간을 돌려야겠지.
“엇! 저기, 딜라이트 호텔 보인다!”
머리 위에 천근 돌이 얹어진 것만 같은 압력을 견디며 시선을 올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야…! 엄청나네. 누나, 축하해요!”
초월자들의 충돌 여파로 전쟁 후 폐허처럼 변한 서울.
그 지옥도 한가운데 딱 하나의 건물만 아무 일 없었다.
박살 나는 와중에 건물 뼈대는 어떻게 버텼다 같은 개념이 아니다.
누가 보면 전후 복구 과정에서 새로 지어진 건물이라 착각할 만큼 멀끔했다!
“이야~! 이 정도면 한국 1위가 아니라 지구 1위 호텔이네. 은솔아, 축하해.”
누나는 멋쩍게 웃어넘겼다.
저녁 무렵, 우리는 딜라이트 호텔로 돌아왔다.
*
「현재 위치 : 계층 3 연결 통로, 공사 중….」
딜라이트의 문을 여는 순간, 혼란스럽던 머리가 즉시 가라앉았다.
생각이나 고민 따위를 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으어! 이게 대체 뭐야!”
“이, 이래서 애들이 전화를 못 받은 -”
“꺄아! 호텔 이 자식들! 내 호텔에 무슨 짓이야!”
분명 겉으로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멀쩡한 건물이었는데, 문 열고 들어오자마자 이런 난장판이라니!
콘크리트들이 살아있는 블록처럼 둥둥 떠다니며 실시간으로 재건축 중이다?
모든 객실이 해체와 재조립을 반복하며 전혀 다른 무언가로 변해간다?
이러니까 딜라이트에 남은 동료들이 연락이고 뭐고 못 받았구나!
“핫, 하하하!”
“웃음이 나와!”
— 콰르르! 우당탕!
“꺅!”
“하하! 진철 형, 누나 좀 챙겨주세요!”
살다 살다 이런 황당한 경험을 할 줄이야!
예전에 꿈을 소재로 한 유명한 영화를 봤었는데, 그 영화에 나왔던 연출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현재 위치가 ‘공사 중’으로 바뀌었 – 으악!”
순식간에 내 몸통보다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날아왔다!
순간 날 노리고 공격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냥 주변에 사람이 있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무지막지하게 복잡한 공사를 진행 중인 것!
모두가 혼란에 빠져서 어어어만 외치던 시점, 대화창이 정신없이 깜빡였다.
김묵성 : 엘리베이터 쪽으로! 당장!
*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 띵!
“…”
익숙한, 너무나 익숙한 파이오니어 호텔 1층 전경.
“가인아~! 아리야앙~!”
“앙앙거리지 좀 마.”
말은 툴툴대면서도 아리는 미로를 가볍게 포옹했다.
— 삐이익!
심지어 페로도 여기 있었다.
익투스랑 같이 회사에 있었을 텐데, 서울이 박살 나기 전에 이곳에 들어온 건가?
평화롭기까지 한 1층 풍경을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았다.
“어머! 가인 씨!”
엘레나의 목소리도 되게 오랜만에 듣는 느낌이네.
곧 은솔 누나와 아리, 진철 형까지 지친 표정으로 주저앉았다.
그 광경을 보던 할아버지가 조심스레 말했다.
“어…. 얘들아. 일단 저녁부터 먹는 게 좋겠다.”
*
“참깨 빵 위에 순 쇠고기 패티 두 장 특별한 소스 양상추!”
“무슨 노래야~?”
진철 형이 대신 답했다.
“치즈 피클 양파 까~지!”
“아니, 후렴구까지 외우고 계세요?”
“인마! 내가 돈 없을 때 주식이 빅맥이었어.”
시커먼 남자 둘이 호텔 제 햄버거를 먹으며 빅맥 송을 부르는 풍경.
웃기다기보다는 어처구니없는 광경 아닐까?
덕분에 미로는 으~ 하는 표정을 지으며 벽에 기댔고 아리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아, 상황 자체가 기가 막혀서 그래.”
“왜?”
“바깥 현실은 달이 전 인류를 집어삼킨다는 둥, 안전한 세상을 차지하기 위해 방주 열대가 대기 중이라는 둥 이런 지옥이 따로 없는데….”
“…”
“호텔 들어오니까 완전히 다른 세상이야. 버거 맛 미쳤는데?”
“육즙이 그냥 좔좔 흐른다.”
듣고 있던 할아버지가 쓴웃음을 지었다.
“본래는 지옥 같은 호텔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가는 게 목표 아니었냐?”
“…”
“정신 차려보니 호텔이 현실보다 낫다는 소리가 나오는구나.”
블랙 코미디 같긴 한데, 진짜다.
“최소한 호텔은 기회가 다섯 번이잖아요.”
“그러게 말이다.”
은솔 누나가 한숨 쉬며 중얼거렸다.
“소원의 결과로 딜라이트가 파이오니어로 변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세계 1위 호텔이긴 하네요.”
“딜라이트가 파이오니어 3층으로 변하는 중인가?”
기괴한 이야기지만, 호텔 기준으론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1층은 하늘에 있고 2층은 가정집 스노 글로브 내부에 있잖아?
3층이 다른 호텔 내부에 있는 정도는 별일 아니지.
할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어, 그것과는 좀 다르다더라.”
“예?”
“일종의 중간 지대, 혹은 통로가 된다던데? 크게 보면 3층이 나타나는 과정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딜라이트 자체가 파이오니어 3층이 되는 게 아니다.
3층과 2층을 연결하는 중간 지대 혹은 통로로 변하고 있다?
“할아버님, 그게 무슨 말이죠.”
“나도 몰라.”
“애초에 그 설명을 누가 들려줬어요?”
엘레나가 대신 답했다.
“언니, 누가 말해준 게 아니라 책자가 있어요.”
— 탁!
책자엔 좀 전에 할아버지가 말한 내용을 비롯한 몇 가지 안내 사항이 적혀 있었다.
“공사 구역에 들어갈 경우, 호텔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얘네 뭐 언제는 책임진 적 있어?”
“딜라이트 구역에 갈 때는 조심하라 그런 거지.”
“이건 뭐야? 떡 대신입니다? 무슨 말이지? 이건 달력 – 앗? 가인아! 이거 봐!”
달력을 보자마자 눈이 번쩍 뜨였다.
“이거, 언제부터 그려져 있었죠?”
엘레나가 당황했다.
“어라? 어제 볼 때만 해도 달력 같은 건 없었는데….”
미로가 맹한 표정으로 물었다.
“떡 대신이라는 말은 뭐야?”
“… 보통 이사하면서 공사할 때 이웃에게 떡을 나눠주거든.”
“시끄러우니까?”
“그래.”
현재 날짜엔 체크 표시가 있고, 10일 후엔 ‘빨간색 달’이 그려져 있다.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확했다.
“… 열흘 후에 달이 현실에 온다. 이런 말인가?”
“달이 현실에 와? 그게 무슨 말이야?”
갸웃거리는 미로 등을 보며 아리가 현재까지의 상황을 찬찬히 설명했다.
곧, 상황을 이해한 할아버지가 요약했다.
“오호! 그러니까, 가인이 네가 난장판을 벌인 끝에 30점짜리 답은 찾았다 이거지?”
“네.”
“관리국 방주의 거울도 얻었고, 너희를 감시하던 성모인지 뭐시기인지 하는 위험인물은 봉인했고?”
“맞아요.”
“덕분에 달과 적대관계가 되었는데, 달이 네 거울을 빼앗으려 열흘 후 현실에 나타난다?”
“그런 것 같네요.”
다시금, 주변이 조용해졌다.
아리가 중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열흘이면 여유가 좀 있네. 각자 좀 쉬면서 내일부터 어떻게 지낼지 생각하자.”
*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230일 차
현재 위치 : 현재 위치 : 계층 1, 105호 – ‘휴식의 방’
현자의 조언 : 3」
늦은 밤.
날짜가 넘어가며 조언 횟수가 갱신되었다.
멍하니 침대에 누워서 생각했다.
내일 아침부턴 어떻게 해야 할까?
또 정보 수집?
상식적인 선에서 얻을만한 정보는 다 얻었다.
그 결과물이 30점 수준의 답 아니던가.
올빼미는 ‘모두가 이득 볼 수 있는 판을 짜라’고 했지.
의자 뺏기 싸움의 본질에서 벗어난다?
의자 하나에 여럿을 강제로 앉혀?
의자를 늘려?
“뭔가 답답한데.”
혼란스러운 판을 시원하게 쓸어버리는 그런 거 없어?
아니, 고구마 200개를 입에 처넣은 느낌이잖아.
한 방에 쓸어버리는 콜라 어디 갔냐고!
「조언 : 3 -> 2」
‘이 상황,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손하게 물어봤다.
내가 봐도 뜬구름 잡는 질문이니, 찰떡같은 답을 얻으려면 이래야 할 것 같았다.
「우리가 너희에게 주기적인 휴식을 주는 이유를 아는가?」
“… 알죠.”
호텔에서 105호를 만들고, 저주의 방 시도 사이마다 파티 타임 등으로 휴식을 부여하는 이유.
쉬어야 좋은 판단이 나오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 판단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올빼미의 조언은 ‘쉬면서 생각하라’가 아닐지.
*
이른 아침.
동료들과 만나자마자 새벽에 들은 조언 내용을 전했다.
아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했다.
“올빼미가 쉬면서 생각하라고 한 것 같아?”
“내 생각에, 지금 현실로 돌아가면 분명 이상한 일이 생길 거야.”
“그렇겠지.”
“그니까 그냥 며칠은 호텔에 머무르자.”
“… 언제까지?”
“뭐, 최소한 달이 강림하기 전엔 나가야겠지. 하루 지났으니 9일 남았네.”
자연스럽게 며칠은 호텔에 머무르기로 결정되었다.
점심 무렵, 다과 테이블에 앉아있다가 은솔 누나를 만났다.
“신기하지 않아?”
“네?”
“하필 지금 타이밍에 딜라이트가 파이오니어로 변한 이유가 뭘까?”
“누나가 소원을 빌었으니까 -”
“아니, 아니! 타이밍 말이야.”
“타이밍?”
탐욕의 손을 사용하는 당사자다 보니 남들은 느끼지 못한 차이를 깨달은 모양이다.
“탐욕의 손은 몇 달 후에 소원을 이루어 주는 그런 힘이 아니야.”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누나 말대로 탐욕의 손은 소원을 비는 즉시 변화가 발생한다.
즉시 이루어 주거나, 최소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이벤트라도 열어주거나.
“네 조언으로 물어볼 수 있을까? 의미 없는 질문일 수 있지만….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다른 참가자의 축복 관련 질문은 ‘기여도’를 소모한다.
하지만, 이미 4 단계 강화까지 얻었는데 기여도 소모 따위가 무슨 상관이겠어?
「조언 : 2 -> 1」
‘이은솔 참가자가 탐욕의 손을 쓴 건 몇 달 전입니다. 이제야 딜라이트가 변화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3층 연결 통로는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형성된다. 탐욕의 손은 통로의 위치를 지정했을 뿐이다.」
“뭐래?”
“3층 연결 통로는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생기고, 탐욕의 손은 그 위치를 지정했을 뿐이라네요.”
근처에서 듣던 아리가 답했다.
“탐욕의 손과 별개로 조건이 충족되었기에 3층 연결 통로가 생기고 있다는 말이네.”
은솔 누나가 되물었다.
“그러면 내 소원은, 언젠가 생길 3층 연결 통로의 위치를 딜라이트로 지정한 건가?”
“그런 것 같은데.”
나는 조금 다른 부분이 궁금해졌다.
“이제야 딜라이트가 변화하는 건, 얼마 전에 조건이 충족됐다는 이야기죠?”
“그렇겠네.”
“조건이 뭐죠?”
“… 그것도 물어봐.”
“으음, 이거 사실상 두 개짜리 질문이었네.”
그럴 가치가 있길 바랐다.
「조언 : 1 -> 0 」
‘3층 형성 조건은 무엇입니까?’
「너희가 3층에 도전할 자격이 있어 보일 때.」
“…”
의미심장한 이야기였다.
1, 2층과 3층의 차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1, 2층이 참가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살고 싶다면 이겨내야 하는 장소라면….
3층은 원하는 참가자가 자격을 입증해야만 도전할 수 있는 장소다.
“이번엔 뭐래?”
“… 자격이 있어 보일 때 형성된다.”
“이야~ 지금 우리가 뭔가 잘하고 있다. 그런 거야?”
“그런가 보네요.”
어이없다는 듯 웃는 은솔 누나를 보며 생각했다.
새삼스럽지만, 정말 새삼스러운 질문이지만….
3층은 왜 있는 걸까?
*
「날짜 : 231일 차」
오전 내내 설원에 누워서 설경을 감상했다.
문득, 스노 글로브 바깥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저녁 무렵, 확인차 공사 중인 딜라이트로 올라갔다가 기묘한 물체를 보았다.
“조각?”
온 정신을 집중해 주변을 살피던 진철 형이 무슨 말이냐는 반응을 보였다.
“뭔 소리냐?”
“저거 안보이세요?”
“그냥 돌덩이 아니야?”
형의 시력이 나빠진 것 같아 농담 한마디 하려던 차, 조각이 다시 돌덩이로 돌아갔다.
“…”
그제야 아직은 돌덩이 상태임을 깨달았다.
무의식중 발현한 통찰이 돌덩이가 추후 조각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읽은 것.
기이하게도 조각의 모양은 ‘누군가’를 닮아 있었다.
또한, 그 ‘누군가’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임을 알았다.
“아직 하기 나름이군요.”
“뭐?”
“아닙니다.”
“인마, 그럴 거면 말을 하지 마.”
*
「날짜 : 232일 차」
저녁 무렵, 은솔 누나가 살짝 불안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가인아, 뭔가 실마리는 잡았어? 나는 잘 모르겠어….”
“좋게 생각하세요. 수천수만 년을 썩어 문드러진 회귀자들도 해법을 찾지 못했는데, 우리가 바로 찾으면 그게 더 이상하죠.”
“… 조언은 쓰고 있지?”
“매일요.”
“진짜 아무것도 모르겠어?”
“하나 알았어요.”
“역시 가인이! 뭔데?”
“늙은 참가자의 진실한 목적.”
“늙은 참가자라니? 아, 선대 지혜? 걔 목적은 약탈자의 승리 -”
“그것조차 수단입니다.”
선대 지혜의 진실한 목적은 어떤 의미에선 대단히 단순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그 녀석의 진실한 목적을 아는 게 의미 있어?”
“의미 있게 만들어야죠.”
*
「날짜 : 233일 차」
다과 테이블에서 콜라를 마시던 중, 아리의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몰라~!”
“으엣?”
당황하는 미로에게 아리가 별일 아니라는 듯 간단히 답했다.
“최악이래 봐야 세상 한번 망하는 정도지 뭐! 그게 뭐 큰일이야?”
“…”
“응~! 현실 작살나도 호텔은 멀쩡할 거야!”
“… 시간 돌린 후에 다 같이 호텔에나 있을까?”
호텔에서 우릴 쫓아낼까 무섭다.
그보다, 말은 편히 쉬면서 생각하자고 했지만 다들 스트레스가 엄청난 모양이다.
*
「날짜 : 234일 차」
시간은 바람같이 흘러서 벌써 5일 차 저녁.
짜장면을 먹다가 주변이 하도 조용해서 고개를 드니, 모두 죽상이었다.
5일 내내 고민도 하고 회의도 했지만, 다른 방법을 전혀 찾지 못한 모양이다.
30점짜리 답이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냐는 우울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리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내게 물었다.
“… 네 생각은 어때.”
“음?”
“정말 전혀 모르겠어?”
“내 나름대로 결론은 내렸지.”
“결론?”
“엊그제 누나에게 했던 말인데, 다들 생각해 봐. 현실에서 수십번 혹은 그 이상의 루프를 거친 괴물들도 답을 찾지 못했어.”
“… 그랬지.”
“이런 어려운 문제를 단박에 푸는 게 말이 될까?”
“…”
“사람 머리론 못 풀어. 무리지.”
할아버지가 한숨을 쉬었다.
“아이고 이놈아! 첫날 쉬자고 했다고 진짜 넋 놓고 쉰 거냐? 편안한 환경에서 고민해 보자는 -”
“내일입니다.”
“뭐?”
“올빼미에게 날짜 확인했습니다. 내일, 밖으로 나갈 겁니다.”
당황한 엘레나가 답했다.
“어? 그, 달이 현실에 나타난다는 날은 내일이 아니잖아요? 열흘 차라고 했으니 아직 5일 남은 -”
“달을 만나러 가는 게 아닙니다.”
“네?”
빙그레 웃으며 모두에게 답했다.
“말했죠? 사람 머리론 못 푸는 문제 같다고?”
“그게 무슨 -”
“인간 이상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늘 아래 가장 똑똑한 인간이 1,000년을 고민해도 얻을 수 없는 답을 단박에 얻을 정도의 지혜가!”
진철 형이 벙찐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런 게 있냐?”
지혜를 넘어서 광기의 끝자락에 닿은 영역!
나는, 과거 한번 그 영역의 말단을 붙잡은 적 있다.
현실로 돌아오며 그 영역에서 멀어졌을 뿐.
*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235일 차
현재 위치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1
현자의 조언 : 3」
천국과 같았던 호텔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매캐한 연기로 가득한 국회의사당 인근을 걷고 있으니, 현실이 문자 그대로 멸망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과거로 돌아가면 무너진 건물 등은 원래대로 돌아오겠지.
하지만, 이미 달이 집어삼켰을 수천만 이상의 영혼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
무지막지한 죄책감에 짓눌려 숨을 못 쉴 정도….
는 솔직히 전혀 아니네.
재미로 사람 죽인 것도 아니고 더 많은 사람을 구하는 과정인데 별수 없잖아?
아무래도 나에 대한 ‘예지’의 평가는 꽤 정확한 것 같았다.
그렇게, 탁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하늘을 바라보길 30분.
— 두두두두…!
익숙한 진동음이 들려왔다.
오늘.
선대 지혜는 죽고, 나는 완전한 통찰을 되찾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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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호텔 탈출기-60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