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09)
EP.609 609화 – 도둑맞은 세계 (24)
609화 – 도둑맞은 세계 (24)
– 미로
신기한 액체가 거품처럼 끓더니 갑자기 불투명한 연기로 변했다.
잠시 후엔 단단한 돌처럼 변했고, 더 시간이 흐르니 다시 액체로 변하기 시작했다.
쉼 없이 내용물이 액체, 기체, 고체 상태를 오가는 희한한 도구, 모래시계.
“생각해 보니, 우리 아직도 모래시계를 쓰지 않았네요?”
엘레나의 말에 묵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저거 원래 종말을 부르는 빛을 버티는 데 쓰는 것 아니었나?”
아리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그건 우리 추측이지, 호텔이 어떻게 쓰라고 설명한 적은 없어.”
“그럼 어떻게 쓰냐?”
가인이가 알지 않을까?
“들고 있는 사람이 알겠지. 그래, 이제 어떻게 할 셈?”
아리 생각이 나랑 똑같아!
모래시계를 든 채 깊은 고민에 빠져 있던 가인이가 우리를 보았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해하셨지요?”
“성모를 풀어주고, 선대 지혜의 죽음을 명분으로 달과의 관계를 회복하겠다고?”
“그 후, 달의 영역 내부로 들어가 가장 큰 비밀을 알아내고 시간을 돌리면 됩니다.”
“너 혼자 갈 거냐?”
다음 말은 나를 엄청나게 놀라게 했다.
“미로만 데려갈 겁니다.”
“히이익!”
나만 데려가?
무, 물론 가인이랑 둘이서만 뭘 하는 건 환영이지만….
달은 무슨 놀이동산이 아니잖아!
세상에서 가장 지옥 같은 곳에 굳이! 나만 데려가겠다고?
은솔이가 즉시 되물었다.
“달은 강력한 세뇌 능력이 있던데, 피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맞아! 은솔이 피리가 있어야 하잖아?
“피리는 불어야 효과가 있죠?”
“그렇지.”
“지금 난 달의 충신으로서 접근하려는 건데, 옆에서 누나가 피리를 불고 있으면 곤란합니다.”
그, 그런가?
곧이어 아리가 되물었다.
“난?”
“달은 기본적으로 관리국을 좋아하지 않아.”
“요원인 건 미로도 마찬가지 아니야?”
맞아!
“직급이 다르잖아. 넌 왕족이고, 미로는 그 정도는 아니고.”
“…”
“사실 미로도 위험한 건 맞아. 달이 죽일지도 모르지. 그래도 하나만 고른다면, 미로야.”
“히이익!”
나도 모르게 신음 소리가 나왔어.
가인이는 내 쪽을 보더니, 살짝 웃으면서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미로, 걱정하지 마.”
“노, 놀랐잖아! 달이 날 죽인다는 건 농담이었지? 난 가인이 동료니깐…. 무서운 농담 하지 마.”
“…”
“성자의 동료니까 괜찮은 거 맞지?”
이 와중에 아리는 혼자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 침식 등 문제로 여럿을 데려갈 수는 없다? 나는 관리국 수뇌부니까 빼고, 엘레나는 죽는 즉시 성모가 파워업이니 안 되겠네.”
난 무서워 죽겠는데 아리는 무슨 말이래!
“불변도 있고, 시간대여기 덕에 여러 동료를 뭉쳐놓은 느낌이기도 하고. 확실히 미로가 최적이구나.”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니 아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시선을 피했고, 가인이가 말을 이어갔다.
“자, 다들 집중하세요. 특히 할아버지?”
“오냐.”
“207호에서 아리가 기억을 잃었죠? 원 모어 찬스로 시간을 돌리면 기억을 잃습니다. 딱 한 명, 할아버지만 빼고 말입니다.”
“내가 중요한 건 다 기억해야 한다는 말이지?”
“물론, 저도 상태창에 핵심 키워드는 적어놨습니다.”
은근슬쩍 ‘괜찮은 것 맞냐?’라는 내 질문에 답하지 않고 넘어갔어!
이 정도는 이제 나도 알아.
은솔이가 걱정스러운 투로 말했다.
“달이나 약탈자가 시간을 돌렸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않을까?”
가인이가 간단히 답했다.
“알아챕니다.”
“으읏! 확실해?”
“달이나 약탈자만 알아채는 게 아니라 관리국도 알아챕니다. 잊지 마세요. 원 모어 찬스는 영혼의 소멸은 되돌리지 못합니다.”
“…”
“지구 전체에서 갑자기 수백만 아니 수천만 명이 사라지는데 모를 리 없죠. 달 입장에선, 삼킨 적 없는 영혼이 배에 가득한데 어떻게 모르겠습니까.”
“…”
“시간을 돌리기 전에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까진 모를 겁니다.”
묵성이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확실하냐?”
가인이가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내가 바보 같은 질문을 했구나.”
“원 모어 찬스도 그렇고 모래시계도 그렇고 호텔이 준 힘이니까요. 이 정도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하며 줬으니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가인이는 한참 동안 지금까지 얻은 정보와 앞으로 벌어질 일에 관해 설명했다.
예전에 통찰을 처음 얻었을 때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았는데, 지금의 행동은 그때와 달라.
이유가 뭘까?
“이 정도면 드릴 말씀은 다 드린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 -”
“다 외웠다!”
“다행입니다. 미로, 잠깐 둘이 조용한 곳으로 갈까?”
평소 같으면 이런 말에 굉장히 두근거렸을 것 같아.
지금은 조금 무서웠다.
“그, 그랭.”
*
매캐한 먼지로 가득한 현실.
어느새 호텔보다도 더 지옥같이 변한 장소.
가인이는 불길하게 빛나는 진홍빛 구체를 지그시 올려다보더니, 갑자기 시선을 내려서 날 살폈다.
“…”
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훑어본다.
마치, 나라는 인간에게 속한 모든 가능성을 읽어내려는 것 같았다.
30분 가까이 불편한 시간이 흐른 후, 가인이가 입을 열었다.
“미안.”
“…”
“불편했지? 나도 생각할 게 많아서 -”
“나, 경찰에게 신고할 거야. 이거 몬가 범죄 아니야?”
성추행이라든가!
가인이가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 방금 네가 한 말은 내가 본 어떤 가능성에도 없었는데.”
“그랭? 그러면 개구리랑 올챙이 관계는 알아?”
“뭐?”
“승엽이가 그랬는데, 올챙이가 개구리 적 일을 모른대! 그래서 올챙이는 수조에 있으면 -”
“아니, 아니. 미로. 그냥 조용히 있어봐. 이상한 정보를 추가하면 헷갈리니까.”
하! 이거지!
통찰이든 뭐든 내 창의적인 사고력은 따라갈 수 없다니깐?
이렇게 생각하니 가인이와 통찰에 대한 본능적인 꺼림칙함이 사라졌다.
“후후…!”
이런 내 반응을 본 가인이가 아주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 뭔지 몰라도 기분 좋아 보이니 다행이네. 그래, 그 상태가 달에 겁먹은 것보단 나아.”
“훗! 이게 나 -”
“입은 열지 말고. 네가 입을 열 때마다 내가 헷갈려.”
“…”
다시 기분이 안 좋아질 것 같아.
“미로.”
“…”
“미로?”
“말하지 말라며.”
“… 자, 이거 보이지?”
한 손에는 아까 호텔에서 본 모래시계다.
다른 손에는 생체와 기계가 섞인 주먹만 한 물건?
“앗! 이거 살아있는 카메라지? 아리 물건 아니야?”
“맞아. 사용법을 알려줄게.”
이 시점에선 나도 뭔가 깨달았어.
“서, 설마 둘 다 내가 써야 해?”
“그래.”
“가인아! 치, 침착하게 생각해 봐!”
“난 지금 아주 침착해.”
“나, 날 너무 믿는 것 아니야? 무지무지 위험한 곳에 나만 데려가는 것도 그렇고, 제일 중요한 도구를 내게 맡기는 것도 그렇고!”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억누르며 가인의 눈을 보았을 때,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선대 지혜의 차이.”
“어?”
“사실, 하나 더 있지.”
“무슨 -”
“나는 널 믿어. 동료를 믿지 않으면 누구를 믿겠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
“네가 성공하는 가능성을 통찰로 봤어. 이제 믿음이 가지?”
강렬한 직감을 느꼈다.
지금 이 말은 거짓말?
아니야, 거짓말보다는 일부만 말한 거에 가까워.
내가 뭔가를 잘 해내는 가능성을 봤지만, 동시에 제대로 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가능성도 봤을 거야.
하지만, 이 시점에서 불길한 이야기를 떠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믿어!”
가인이가 빙그레 웃었다.
나도 화답하듯 방긋 웃었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238일 차
현재 위치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1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238일 차, 달의 강림까지 하루 남은 시점.
봉인되었던 성모를 해방했다.
에이디아는 깨어남과 동시에 광포한 기세를 뿜어내며 내 멱살을 틀어쥐었다.
“네 살점을 산채로 씹어서 -”
“설명 좀 들으시죠! 제 살은 맛이 별로 없을 겁니다.”
불타오르는 성모를 바라보며 차근차근 준비한 거짓말을 했다.
성모가 경악하기까진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뭐, 뭐라고요? 선대 지혜 – 그 노친네를 죽였다고?”
“여기, 시체가 보이시죠?”
선대 지혜는 평소 현실에 잘 나타나지 않았지.
이 때문에 성모가 시체를 알아보지 못할까봐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성모가 얼굴 가득히 복잡한 감정을 담은 채 선대 지혜의 잘린 머리를 쓰다듬었기 때문이다.
“정말이군요. 정말 이 징그러운 노친네를 죽였어!”
징그럽다는 말과 달리, 성모는 다소 슬픈 표정을 지으며 선대 지혜의 부릅뜬 눈을 감기고 양손 모아 합장했다.
“가혹한 삶의 끝에서 안식을 찾았기를….”
내 생각보다 서로 잘 아는 사이였나?
달의 성모와 약탈자의 일원이라는 공적인 이유로 다투었을 뿐, 사적인 원한은 없는 느낌이다.
혹은, 죽은 사람이니 자비를 베푸는 것일 수도 있고.
“죄송합니다. 선대 지혜와 사투를 벌이는 일은 지극히 위험하니, 성모께서 반대하실 것 같아 -”
“됐습니다. 지나간 일은 더 언급할 필요 없어요. 이 괴물을 죽인 건 정말이지 엄청난 공입니다. 왕자님께서도 당신을 너그러이 포용하실 겁니다.”
이미 달을 몇 차례 관측하며 깨달았다.
달은 더 이상 내게 분노를 표하지 않았다.
“왕자님께서는 아마도…. 내일 내려오시겠군요.”
호텔이 준 날짜는 역시 정확했다.
“준비하시길. 이제, 승리의 때가 다가왔습니다.”
*
「날짜 : 239일 차」
이른 아침부터 하늘의 색이 변화했다.
불길하게 빛나는 진홍빛 달이 대낮부터 태양을 몰아낼 기세였기 때문이다.
성모의 지시대로 목욕재계한 채 무릎 꿇고 기다리니, 갑자기 공간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성모는 지극히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성자님, 마침내 승리의 때가 왔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제가 축하받을 일이 아니라 모두가 기뻐할 일이죠!”
모두가 기뻐할 일이라….
성모가 말하는 ‘모두’의 개념은 보편적인 ‘모두’의 뜻과 다르겠지.
어쨌든, 나 역시 최대한 행복한 표정을 가장했다.
“으음…. 성자님.”
“네?”
“… 꼭 이 여자애를 데려가셔야 할까요? 호텔 동료를 수행원으로 데려가는 것까진 괜찮은데, 이 여자애는 -”
성모가 노려보자, 미로가 겁먹은 듯 내 뒤로 숨었다.
“관리국 출신이라 그렇습니까?”
“… 왕자님은 관리국을 탐탁지 않게 여기십니다.”
“부탁드립니다. 제법 유용한 동료입니다. 왕자님께 도움이 될 겁니다.”
“후….”
에이디아가 작게 한숨 쉬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달의 뜻을 묻는 모양이다.
“성자의 공을 생각해 너그러이 받아주시겠답니다.”
즉시 무릎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멍하니 서 있던 미로도 뒤늦게 내 옆에 무릎 꿇었다.
“성자님, 이만하면 됐답니다. 들어가시죠.”
*
입구 너머에 기다리고 있던 것은 끝없는 추락.
금방이라도 비명 지를듯한 미로의 입을 막은 채 하염없이 떨어졌다.
온전한 통찰을 회복하며 지혜가 더 없이 날카로워졌기 때문일까?
한 가지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아….
하늘의 어슴푸레한 달 형상은 달의 진체가 아니었다.
요전에 선대 지혜를 상대하며 혀를 뻗었던 건 신체 일부만 끄집어냈을 뿐이다.
달은 지금껏 한 번도 지구 밖으로 나온 적이 없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한가?
달처럼 거대한 것이 지하에서 밖으로 나가면 지구가 물리적으로 박살 날지도 모른다!
즉시 인류 멸망이며, 생존자의 혼을 삼키고자 하는 달로서도 큰 손해다.
하하!
상식, 상식이라….
상식 따질 거면 지구 속에 달이 들어간 것부터가 문제다!
애초에 어떻게 집어넣은 거야?
태고의 인류 문명이 아무리 발달했다 해도 이런 과학 씹어먹는 짓이 어떻게 –
“…”
불현듯 찾아온 또 하나의 깨달음.
달을 지구 속에 가둔 존재는 태고의 참가자였구나!
과학을 과자처럼 씹어먹는 일?
호텔에서 얻어낸 힘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들은 인류에게 수십번 혹은 수백 번의 루프를 벌어준 대가로 승천 자격을 얻어 현실을 영원히 떠났다.
선대 지혜는?
그도 꽤 많은 공을 세운 것 아닌가?
선대의 방법론이 ‘절대’ 불가능한 이유가 있나?
더 없이 맑아진 이성이 단 하나의 답을 얻기 위해서 끝 없이 뻗어나간다.
– 우르릉!
천둥소리를 들었다.
또한, 이것이 물리적인 소리가 아님을 알았다.
살아있는 태풍이 오랜 친구를 맞이하며 발하는 반가움이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전쟁의 승기를 잡은 것에 대한 기쁨이다.
위대한 자의 감정이다.
위대한 자의 현실이다.
생각하는 바를 즉시 현실로 끌어낼 수 있으니, 두 영역은 곧 하나다.
깨달음.
깨달음.
깨달음.
…
이런 지식을 바라는 게 아니야.
달이 나보다 얼마나 대단하고 강한지를 알고 싶어서 온 게 아니라고!
죄수의 압도적인 힘 따위는 호텔에서 질리도록 경험했다.
다른 깨달음이 필요하다.
내가 정답에 도달할 수 있게 도와줄 –
그 순간.
「왔구나」
「구원자」
「연구원」
「마법사」
「선생님」
「배신자」
「돌아온 성자」
셀 수 없이 많은 목소리가 한꺼번에 들려왔다.
대화이자, 대화가 아니었다.
살아있는 별이 뿜어내는 의지였고, 생각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진 영역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흐으읏!”
불변으로도 견디는 데 한계가 있었는지, 신음하는 미로의 손을 꼭 잡은 채 내 정신을 한 점으로 집중했다.
…
한 가지 기이한 깨달음을 얻었다.
방주가 삼킬 수 있는 혼의 숫자에는 제한이 있다.
제한이 없었다면, 달의 성장을 막는다는 이유로 생존자를 사전에 제거할 필요 없다.
모든 인류를 전부 방주에 태우면 그만이니 선별 절차 따위가 있을 이유도 없다.
관리국이 만든 방주는 물론, 약탈자 방주조차 용량 제한이 있다.
심지어 신성한 태양에도 용량 제한이 있다.
그런데, 왜 달에게는 이런 한계가 없을까?
나는 달과 비슷한 존재를 안다.
달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필멸자의 혼이 응축된 존재를 호텔에서 보았다!
아찔한 기분을 느끼며 의식이 흐려지는 순간.
아주 오랜만에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들아」
「이제 알았느냐? 내가 일찍이 네게 길을 내렸음을.」
「마침내 네가 깨치기 시작했으니 내 한이 없다. 확장하고 또 확장하라. 생물의 진화가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이루어졌음을 이해하라.」
환청일까?
아니면, 신성한 태양에 남아있는 마지막 목소리일까?
구분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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