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12)
EP.612 612화 – 도둑맞은 세계 (27)
612화 – 도둑맞은 세계 (27)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242일 차
현재 위치 : 검색 중….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242일 차.
연구실에 틀어박힌 지 이틀이 흘렀다.
통찰이 처음으로 ‘제어 및 관리’ 항목의 존재를 알아냈을 때, 잘하면 몇 시간 내로 큰 성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틀렸다.
「4. 제어 및 관리」
이게 여태까지 내가 찾아낸 전부야.
정황상 영혼 결집체의 제어/관리를 다룬 자료들은 달이 전부 삭제했겠지.
나는 아직 남아있는 자료들을 통해서 삭제된 자료의 내용을 추측 중인 셈이다.
이러니 작업 진행은 1~3번 항목을 찾을 때보다 훨씬 느려졌다.
제어 및 관리 관련 내용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달을 계속 속이려면 ‘성장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찾아내야 한다.
계속 성과가 없으면 달이 인내심을 잃고 다시 뇌 둥둥 또는 영혼 뽑기 가능성을 염두에 둘지도 모르니 시간이 촉박해.
따지고 보면 약점 중 하나는 이미 알아.
영혼 결집체는 태생적으로 거울에 취약하고, 달 역시 예외는 아니리라.
여기에 착안해서 나온 방법론이 관리국 방주의 거울을 뽑아내고, 약탈자와 함께 달을 파괴하는 것이다.
선대 지혜의 방법론이자 내가 달에 오기 전에 떠올렸던 소위 30점짜리 답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정도로 괜찮다면 선대 지혜를 위한 3층 호텔 혹은 학교가 나타나지 않았을까?
“…”
방주들이 거울에 취약한 이유는, 처음부터 거울로 쪼개기 위해 만들었기 때문이다.
쪼개기 위해 만들었으니 쪼개는 수단에 취약하다는 단순한 이치.
달은?
연구실 자료를 읽으며 맨 처음 알아낸 사실!
어떤 자료에도 거울 혹은 유사한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달은 쪼개기 위해 만든 게 아니다.
신을 만드는 연구의 과정에서 태어났다.
따라서 달은 다른 방주만큼 거울에 취약하지 않다.
예지가 본 미래에서 결국은 달이 최종 승자가 되는 이유가 이것일지도 모르지.
「2단계 영혼 결집체의 가장 큰 특징은 통제의 까다로움이다.」
거울이 답이 아니라면, 대체 무슨 수단으로 2단계 이상의 영혼 결집체를 통제하지?
— 탁!
뒤적이던 서류 더미를 내려놓았다.
아예 몸까지 뒤로 젖히며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방향성을 바꿔보자.”
연구의 진척이 멈춘 건, 자료 자체가 달에 의해 편집되었기 때문이다.
원본 자료를 구할 방법은 현시점에선 없다.
“…”
테이블 위에는 복잡한 숫자가 적힌 서류가 몇 장 있었다.
누군가는 내가 저 숫자에 주목하고 있는 줄 알겠지만, 아니야.
숫자 옆 공백, 내 눈에만 보이는 흐릿한 환영이 핵심이다.
「벌레로 시작한 삶, 벌레로 끝나지 않으리라 맹세했다.」
먼 과거의 내가 끄적인 낙서.
그 위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있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격리구역 C-213 지하에서 태고의 연구자료를 살피며 깨달았다.」
과거의 나 역시 이 자료를 연구했다는 것.
과거의 나는 달이 편집하지 않은 ‘원본’을 보았겠지.
원본 자료를 다시 구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원본을 본 사람이 내린 판단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어.
과거의 나는 어떤 결정을 내렸지?
관리국이 격리했던 첫 번째 세상의 왕자, 소년을 해방했다.
왕자를 해방한 이유?
내가 남긴 저 낙서만 봐도 과거의 내가 어떤 인간상이었을지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불쌍해서 따위는 절대 아니야.
나를 관측했던 예지도 비슷하게 말했었지.
당시 내가 떠올린 계획에 왕자의 존재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
그런데, 왕자는 결국 어떻게 된 거지?
성모는 달과 왕자를 구분하지 않고 있지만, 생각해 보면 이건 좀 이상하다.
최초의 인류 사회는 회귀자를 ‘왕족’이라 부르며 섬겼다고 한다.
모든 회귀자가 곧 왕족은 아니었으리라.
요즘도 관리국 고위층은 침묵하는 자라 불리며 그 이하와 구분하니 과거에도 비슷했겠지.
왕자는 과거에 실존했던 한 명의 인간이다.
달은 셀 수 없이 많은 영혼이 모이며 형성된 영혼 결집체다.
왕자는 영혼 결집체와 합일한 상태?
달을 구성하는 영혼 중 하나가 왕자의 혼이라면, 달과 왕자를 동일시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으음….”
성모에겐 자연스러운 결론일지 모르지만, 신성한 태양의 소유자인 내가 보기엔 조금 이상하다.
달이 집어삼킨 영혼의 총량은 수백도 아니고, 수백만도 아니고, 최소 수백억이다.
이 엄청난 영혼 속에 왕자의 혼이 섞였다고 치자.
바다에 검은 물감 한 방울 떨어트렸다고 바다가 검어질까?
완성된 달의 자아‘들’ 어디에도 왕자라는 인격은 흔적조차 남지 않아야 정상이다.
그런데 왕자의 자아는 기이할 정도로 선명하다.
날 대하는 태도만 봐도 그렇고, 성모가 느끼기에도 그렇다.
생각이 여기까지 닿았을 때.
— 우르릉!
마음속에서 천둥소리가 들렸다.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치는 듯한 깨달음이 뒤통수를 후려치는 이 감각!
파편화된 정보들이 단숨에 제 자리를 찾으며 한 가지 충격적인 결론이 툭 튀어나왔다.
“…!”
최초로 영혼 결집체를 만들어낸 문명이 준비한 2단계 방주의 제어 수단!
이런 것을 평범한 인간이 손댈 수 있게 할 리가 없지.
왕족이다.
오직 첫 번째 세상의 왕족만 2단계 방주의 제어 수단을 손에 넣고 통제할 수 있다.
과거의 나는 이 사실을 알았기에 왕족을 해방했다.
그리고!
왕자는 달과 합일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 명의 단일한 인간으로 존재한다.
침묵하는 자들이 방주를 제어하듯이 왕자가 달을 제어하고 있다!
생각이 여기에 닿았을 때, 마침내 통찰이 다음 문장을 얻어냈다.
「4. 제어 및 관리
T 앨버트의 AS 4731년 연구에 따르면, ‘왕관’을 통해 2단계 방주 또한 통제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가설은 AS 4738년, 화성 실험을 통해 검증되었으며 -」
왕관.
마침내 내가 이곳에서 얻어야 할 최종 목표를 알아냈다.
*
– 미로
이틀이 흘렀다.
그 사이, 가인이는 집에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다.
덕분에 엄청나게 우울해졌어.
혹시나 해서 말이지만, 가인이가 옆에 없어서 우울한 건 아니야!
난 어린애가 아니라고?
지금 우리가 무슨 데이트 중인 것도 아니고, 달과 싸우는 중이니까 바쁘면 오지 않을 수도 있지.
그니까 내가 불안한 건 다른 이유야.
난 여기서 대체 뭘 해야 해?
방에서 빈둥빈둥 놀면서 과자만 먹으면 되는 거야?
상식적으로 이러려고 날 데려온 건 아니잖아!
“어떻게 생각해? 이상하지?”
내 고민을 들은 ‘소환체 송이’는 아까부터 멍한 상태다.
“이상하지 않냐고!”
“… 나는 미래의 내가 이미 죽어있다는 사실이 더 이상해.”
“에잇! 그런 사소한 문제에 집착하지 마!”
어차피 시간 돌리면 살아나잖아!
“사람은 소우주라 했으니, 지금 ‘유송이’의 우주가 파괴됐구나….”
얘는 왜 이런 사소한 문제에 집착하는 거야?
“으! 도움 안 돼!”
“애초에 왜 날 소환한 거야? 아리나 가인 오빠 시간도 담았다며.”
“아리는 달에서 함부로 소환하면 위험하다고 했어. 또, 가인이 시간은 낭비하면 안 돼.”
“아리는 위험하고, 오빠 시간은 아껴야 하니까 남은 게 나야?”
“응. 너 다음엔 은솔이!”
“그렇게 말해도 잘 모르겠어. 애초에 지금의 난 꽤 오래전 사람이잖아?”
“그건 그래….”
“신년 모임 도중이었다고? 눈 한번 감았다 뜨니까 갑자기 달 내부에 있다고 하니 당황스러워.”
“휴…. 하긴, 너처럼 평범한 여고생이 세상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에 도움이 될 리가 – 아악!”
갑자기 송이가 내 볼을 잡고 양쪽으로 당겼다!
“얘는 틈만 나면 다 이런 식이네.”
“으읍! 너 자꾸 이러면 -”
“어쩌게? 근처에 가인 오빠도 없고 아리도 없지?”
“…”
“와~ 볼이 모짜렐라 치즈처럼 쭉 쭉 늘어나요!”
“…”
“어머! 설마 우는 거 아니지?”
송이가 당황한 듯 손을 내리며 진지한 이야기를 꺼냈다.
“으흠! 오빠가 널 여기서 와플이나 먹으라고 데려오진 않았겠지.”
“… 그럼 어떻게 해?”
“가인 오빠가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지 않았어?”
“그냥 이 방에 가만히 있으래. 나가면 위험한가 봐.”
송이는 한참 동안 벽에 기대서 고민하더니, 의외의 이야기를 꺼냈다.
“내 생각에.”
“응!”
“오빠는 통찰로 미로 네가 뭔가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는 건 알았어.”
그러니깐 살아있는 카메라와 모래시계를 줬겠지!
여기까진 나도 안다고.
“알아.”
“근데 그 중요한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 오빠도 몰라.”
“그, 그래?”
“그니까 오빠 지시 신경 쓰지 마.”
지, 진짜 이래도 되는 거야?
송이가 말하니까 왠지 불안해!
“그 눈 뭐야? 아리나 오빠가 아니라 내가 말해서 불안해?”
“…”
“야! 말해줘도 무시할 거면 애초에 소환하지 말든가!”
“…”
“어쨌든, 난 가끔 오빠랑 아리를 보면서 답답할 때가 있었어.”
이거 몬가 뒷담화 같아….
“둘 다 은근히 비밀주의가 심하잖아. 솔직히 말하면 쉽게 풀릴 문제를 가끔 어렵게 돌아가는 것 같지 않아?”
“…”
“너도 그래.”
“엣?”
“정확히는 예전에 그랬어. 앗! 이렇게 생각하니 네가 제일 문제네.”
“어엇?”
“네 음침한 비밀주의를 아리가 이어받았고, 오빠에게 넘어간 거 아니냐고! 네가 문제야.”
“…”
잠깐 사이에 느꼈는데, 송이 얘는 은근히 생각의 흐름대로 말하는 것 같아….
꼭 필요한 말 위주로 전달하던 아리나 가인이랑 대화하다가 송이랑 말하니까 차이가 심해.
“이 말이랑 지금 내 상황이 무슨 상황이야?”
“참 그렇지! 성모!”
“갑자기 성모?”
“난 성모라는 사람을 오늘 처음 들었거든.”
“응.”
“근데, 너한테 설명 들으니까 이상하더라고.”
“뭐가?”
“네 말대로면, 이 장소는 달이 만든 ‘천국’ 비슷한 장소야? 성모는 천국의 실현을 꿈꾸면서 달을 섬기고?”
“응.”
“절대 아니야.”
“무슨 -”
그때, 처음으로 송이 입에서 ‘그럴듯한’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다양한 관점을 얻은 후, 난 환각이나 꿈, 망상 등 정보 교란을 극복할 수 있어.”
“아?”
“미로, 주변이 진짜 어떤 상태인지 알아?”
“…”
“지금 성모를 만나러 가자.”
“…”
“됐지? 쉽지?”
“그, 그건 좀….”
“뭐가 문제인데?”
“가인이가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했다니깐!”
송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안한데, 이 공간은 네가 철석같이 신뢰하는 ‘가인 오빠’보다 내가 더 잘 아는 것 같아.”
“내, 내가 언제 가인 오빠라고 했는 -”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송이가 내 쪽으로 휙 다가와서 날 당겼다!
“꺅!”
“가벼워~! 이건 좀 부럽네.”
송이와 함께 출입문 앞에 서니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그, 그만해!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
“왜?”
“어 -”
“뭐, 악몽 같은 일이라도 생긴데? 아니면 다른 사람의 상상이 뒤섞인다?”
다른 사람의 상상이 섞인다.
이런 이상한 말은 들은 적도 없어.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어.
“그 정도 설명도 안 해줬구나. 역시 비밀주의! 한번 내 생각대로 해봐. 어차피 방에서 와플만 먹고 있었잖아?”
— 콰당!
숨 한번 쉴 틈도 없이 문이 활짝 열렸다!
문밖에는 –
“아?”
— 철컹! 철컹!
“지, 지하철?”
무슨 출입문을 열었는데 지하철이 나와?
입을 쩍 벌리며 혼란에 빠지는 것도 잠시, 지하철 내에 있던 수많은 사람의 시선이 내 쪽으로 모여들었다!
“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섬뜩함.
억겁의 소용돌이, 무한한 고통 끝에 한없이 닳아버린 망령들의 –
“미로 넌 왜 이럴 때만 생각이 많아?”
“아?”
“지하철은 별로였나? 그냥 눈 감아.”
송이가 손을 휙 뻗는 순간 –
— 쿠궁!
갑자기 지하철 천장이 날아가며 하늘이 열렸다.
불길한 분위기로 다가오던 망령들조차 놀란 채 하늘을 바라본다.
“아, 아, 아…!”
이젠 아예 뭐가 뭔지도 모르겠어!
“이, 이게 대체 뭐냐고!”
송이의 간단한 답.
“여긴 일종의 상상 속 세계야.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그럼, 지금 내가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생각하면 커피가 생겨?”
“넌 못해.”
“왜?”
“커피를 그런 식으로 만들어 본 적 없으니까. 마음 깊숙한 곳에서 이런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니까.”
“… 넌 어떻게 가능해?”
그 순간, 송이의 등 뒤에서 날개가 나타났다.
송이는 간단히 답했다.
“나는 언제나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느끼고 싶은 걸 느끼면서 살았어.”
천사가 내 손을 잡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어, 어디로 가!”
“아까 말했잖아.”
“무슨 -”
“성모에게 가자. 나, 그 여자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뭐, 뭘?”
“여기를 정말 천국이라고 생각하는지.”
“이곳이 어떤데!”
“거대한….”
“거대한?”
“인간 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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