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15)
EP.615 615화 – 도둑맞은 세계 (30)
615화 – 도둑맞은 세계 (30)
– 미로
…
아주 긴 꿈을 꾼 것 같아.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정말이지 무한한 꿈.
영원의 감옥.
깨어나기 직전, 흐릿한 심상 속에서 또 다른 나를 보았다.
영혼 혹은 정신에도 실체라는 게 있다면, 괴담 미로는 마치 슬라임처럼 변해 있었다.
눈코입도, 얼굴도, 팔다리도 없는 꿈틀거리는 살덩이.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애초에 나와 괴담 미로는 완전한 타인이 아니기 때문이리라.
또 다른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어마어마한 고통을 감내했으며, 다시 그녀를 불러낼 수 있기까진 긴 시간이 필요할 것임을 알았다.
보는 것만으로 슬프고 고통스러워서 살덩이를 껴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가서 네 일을 해’라는 말과 함께 깨어났다.
“…”
눈을 뜨니 바로 앞에 아리가 있었다.
또 다른 내가 그러하듯, 역시 영겁 속에서 닳아버린 내 유일한 가족.
아리는 그새 죽은 상태였다.
너무나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뇌사한 걸까?
아니면, 오래된 피의 힘을 사용해 자살했을지도 몰라.
괴담 미로와 아리가 다 이 꼴이 되었다면, 성모 에이디아도 완전히 망가졌겠구나….
다시 눈물 흘리며 아리 손을 꼭 잡으려는 순간.
— 우르릉!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달이 나를 죽이려고 한다!
숨이 멎을듯한 공포를 느끼며 제일 먼저 한 행동은 가인이를 소환하는 것.
— 철컹!
송이에게 중요한 순간을 위해 가인이 시간을 아끼겠다고 했지?
지금이 그 순간이다!
가인이가 나타나자마자 외쳤다.
“달이 곧 와서 우릴 죽일 거야!”
“뭐?”
“어떻게 해?”
“너, 너무 갑작스러운데!”
나오자마자 이게 뭔 난리냐는 표정을 보니 정신이 확 들었다.
그래, 아무리 가인이라고 해도 갑자기 달에게 곧 죽는다고 하면 대책이 있겠어?
내가 해야 해!
그러니까 가인이가 내게 모래시계를 맡긴 거잖아?
눈을 부릅뜨며 모래시계를 꺼내는 순간 – 가인이가 내 손을 잡았다.
“아직, 아직 아니야.”
“뭐?”
말없이 허공을 가리키는 손.
“무슨 – 아, 상태창?”
“달이 여기보다 내 쪽으로 먼저 간 모양이야.”
달은 나를 죽이기 전에 연구실의 가인이부터 죽이러 갔다!
“그, 그럼?”
“시간 끌겠다는데.”
“가능해?”
“방법이 있나 보네. 역시 나야!”
가인이는 은근히 나르시시스트야.
“이쪽 일에 집중하자.”
이후, 가인이는 잠시 주변 상황을 파악했다.
상태창에 뭔가 엄청난 내용이 적혀있는지 한참 읽기도 하고, 쓰기도 했다.
또, 멍하니 바닥에 주저앉은 에이디아의 상세를 살피기도 했다.
— 쿠궁!
“꺄악! 여, 역시 지금 모래시계를 -”
“가만히 있어. 약간의 여유시간은 있는 모양이니까.”
여유시간씩이나 있어?
이 시간대의 가인이는 어떻게 달을 상대로 이렇게 시간을 오래 끌 수 있지?
나는 심장이 콩닥거려 미칠 것 같은데, 내 앞의 소환체 가인이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무, 무섭지도 않아?”
“무섭지.”
“그런데 -”
“조용히 좀 해봐.”
“…”
“어렵네.”
“뭐가?”
“여기서 너와 내가 해야 할 일.”
“…”
“내가 널 데려온 이유 중 하나.”
가인이가 날 데려온 이유 중 하나?
“너, 꿈 남아있지?”
“응.”
“소원 빌어.”
“뭐, 뭐라고?”
“에이디아의 정신을 회복시켜 달라고.”
즉시 무릎 꿇고 ‘꿈을 사용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희끄무레한 아지랑이 같은 빛의 덩어리가 내 앞에 나타났다.
호텔에서 탈출할 때 주어진 2층 돌파 보상, ‘꿈’!
“지금 에이디아의 정신은 죽은 것과 다름없어.”
영원의 감옥에서 벗어나자마자 아리는 죽었다.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에이디아 역시 뇌사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
“이미 죽었어야 정상인데, 유산의 무지막지한 생명력으로 억지로 살아있지.”
클리포트 크리스털.
주인에게 불멸에 가까운 생명력을 부여하는 에이디아의 유산.
“소원 빌게! 에이디아의 무너진 마음을 완전히 회복 -”
말이 끝나기 전에 가인이가 다시 내 어깨를 짚었다.
“완전히는 말고.”
“… 뭐?”
“딱, 대화가 가능한 수준으로만 고쳐 달라고 해.”
“…”
“그래야 설득할 수 있어.”
목적을 위해 성모를 완전히 치유하지 말라는 것.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그 판단의 냉혹함에 섬뜩함을 느꼈다.
난 어쩌다가 이런 사람을 좋아하게 된 걸까?
“… 에이디아의 정신을 대화가 가능한 수준으로만 살짝 고쳐주세요.”
아홉 번째 꿈이 빛난다.
삼천세계를 위해 눈물 흘리는 자의 붓이 다가옴을 느꼈다.
*
성모의 몸이 꿈틀거리기 시작했을 때, 그녀의 손을 잡고 눈을 보았다.
어설프게 봉합된 정신.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의 기억.
담담하기 그지없는 가인이의 목소리.
“성모, 정신이 들었습니까?”
“… 성자님.”
“이제 알았지요? 달이 집어삼킨 영혼에게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
“…”
“아직도 왕자님의 약속을 믿습니까? 구원을 믿습니까?”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요.”
“당신의 영혼은 이미 달에게 저당 잡혔습니다.”
“…”
“언젠가 당신이 죽는다면, 혹은 달이 당신을 필요 없다고 느끼게 된다면.”
“그, 그럴 리 없 -”
“확신합니까?”
“…”
“오늘 당신이 겪은 고통은 언젠가 도래할 지옥의 예습에 불과합니다. 다음에는…. ‘겨우’ 5초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타락한 성자가 성모에게 말했다.
네가 섬기는 신이 신도에게 약속하는 건 지옥뿐이라고.
너는 교단의 가장 위에 있는 자이니, 지옥의 가장 깊은 곳에 떨어지리라고.
나는 에이디아의 파들거리는 눈에서 숨길 수 없는 공포를 보았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하죠?”
가인이는 내 ‘시간 대여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말하십시오. ‘미로, 널 위해 한 시간을 빌려줄게’라고.”
*
에이디아는 내게 1시간을 빌려주며 사라졌다.
시간 대여기에 동료가 아닌 사람을 담은 건 이번이 처음 같아.
“이제 어떻게 해?”
“다 한 것 같은데.”
“뭐?”
가인이는 다시 상태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미 정보를 많이 알아냈어. 성모만 어떻게 설득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미로 네가 사실상 했네.”
“으엣?”
“잘했어. 역시 널 데려오길 잘했네.”
내가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여기까지 데려온 송이.
피리를 사용한 은솔이.
필멸의 창으로 균열을 내고, 고통을 견딘 괴담 미로.
고통을 끝낸 아리.
마지막에 상황을 정리한 가인이까지!
사실상 동료들이 다 한 거 아니야?
내가 한 건 송이 손을 문 정도?
가인이는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말했다.
“여러 사람의 힘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는 건 시간 대여기 뿐이야.”
“… 고마워.”
“…”
“이제 뭐 해? 자살해? 달 속에서 자살했다가 우리 음, 영혼이 먹히거나 하면 -”
고개를 갸웃거리는 가인이.
“두 가지가 이상하네.”
“응?”
“첫째, 이대로 끝낼 거면 모래시계나 사진기는 왜 챙겨왔지?”
“… 네가 가져오라고 했잖아.”
“필요할 것 같았거든. 왜 필요할까?”
“…”
“둘째, 지금 미로 네가 깨어난 지 얼마나 됐지?”
“5분 정도 아닐까아? 정확히는 모르겠어.”
“그 말은, 어딘가의 내가 달 상대로 무려 5분씩이나 끌고 있다는 소리네.”
“어?”
연구실의 가인이는 달을 무슨 수로 이렇게 오래 붙잡고 있는 걸까?
*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242일 차
현재 위치 : 검색 중….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 동료 위치 정보
이은솔 : —
김아리 : —」
두 사람의 죽음에 충격받는 것도 잠시, 곧 무슨 일인지 깨달았다.
달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파이오니어 호텔이라는 ‘절대 안전 구역’에 숨어있는 동료들을 해칠 수 있을 리 없어!
미로가 뭔가 하고 있구나?
위기에 처해 은솔 누나와 아리를 소환했다가 순식간에 죽은 모양인데, 미로 본인은 살아있는 상황!
생각이 여기까지 닿았을 때, 갑자기 연구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며 하늘이 쪼개지기 시작했다.
— 우르릉!
그야말로 파멸적인 기세가 단숨에 일대를 휩쓴다.
이는, 귀중한 무기가 파괴되었음을 깨달은 미친 신의 분노이리라.
감히 시선을 마주치는 것조차 두려운 시선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 눈에 더 이상 ‘선생님’에 대한 호의는 없었다.
배신을 깨달은 왕자의 한없는 악의(惡意)만 남아있을 뿐!
「나는 그대에게 호의를 베풀어 귀중한 정보를 아낌없이 주었을 텐데.」
아 진짜!
사고를 친 건 미로인데 왜 내 쪽으로 먼저 오냐고!
짐작은 간다.
달이 생각하기엔 내가 머리고 미로는 하수인이겠지.
하수인에 시선이 끌린 사이 머리인 내가 무슨 짓을 벌일지 몰라서 나부터 죽이려는 것!
“…”
미로의 다음 소환 대상은 아무래도 나겠지?
내가 아직 살아있는 걸 보면, ‘소환체 가인’ 역시 아직 살아있다!
상태창에 일단 내가 시간을 끌어보겠다며 정신없이 끄적였다.
— 콰지직!
“크으읏!”
저항할 수 없는 압력이 날 단박에 으스러트릴 듯 눌러왔다.
씨발, 너무하잖아!
「과거의 정과 네 공을 생각해 한번 기회를 주지.」
“… 기회라 하심은?”
「내가 널 살려야 하는 이유를 말해라.」
즉시 죽이지 않고 뜬금없이 기회?
무슨, 만화에서나 보던 방심하는 빌런 클리셰도 아니고 –
달 이 자식, 미련이 남았구나!
내가 3단계 성장과 관련한 정보를 얻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야!
“… 본래는 더 정리하고 보고할 생각이었습니다만 -”
「본론부터 말하라.」
“으윽…!”
조금 말을 늘린다 싶으니 가차 없이 압력이 강해진다.
시답잖은 수작 부리지 말고 연구 결과부터 바로 말하라는 것.
“…”
병신 새끼야!
연구 결과가 벌써 있겠냐?
달 네가 수천수만 년 연구해도 모르는 문제를 내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알아내냐고!
그게 가능하면 내가 우주 최고의 천재거나 네가 저능아 –
상태창에 새로이 나타나는 정보들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소환체 가인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달은 집어삼킨 영혼을 ‘정화’하고 있다.
대충 말을 만들자.
예전에 올빼미가 했던 물감 비유도 섞으면 그럴듯한 말이 나오겠지.
“영혼 결집체의 본질은 셀 수 없이 많은 물방울이 모여 만들어진 바다와 같습니다. 왕자님께서는 집어삼킨 영혼을 공들여 정화하고 계시는데, 이는 곧 물방울을 깨끗하게 -”
「이미 아는 내용이로다.」
다시금 사지를 으스러트릴 듯한 압박.
난 지금 알았다고!
“ – 결과적으로 바다를 정화하지요. 왕자님은 이를 통해 바다를 ‘투명함’이라는 하나의 색으로 통일하려 합니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았지요.”
「충분하지 않다. 충분하지 않았도다….」
왜 충분하지 않지?
그 답은 자연스레 튀어나왔다.
마치, 내가 정말로 이런 지고한 이치의 전문가인 것처럼.
“영혼이 일정 이상 모이면, 자연스레 새로운 의식이 깨어나기 때문입니다. 설령 개개의 영혼이 정화된 상태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달은 체내에 1단계 영혼 결집체 여럿이 깨어있는 것과 같다.
「그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는가?」
이 답 또한 자연히 알았다.
“불가능합니다. 영혼이 모이면 위대한 의지가 깨어남은 우주의 섭리와도 같으니, 왕자님이 빅뱅이라도 일으키시지 않고는 극복할 도리가 없습니다.”
생명의 위기 앞에서 평소보다도 더 밝아진 지혜가 속삭인다.
지금 내가 말하는 내용들은 연구실 자료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나는 어떻게 알았지?
「그렇다…. 영혼이 결집하면 고차원적인 의지가 깨어남은 우주의 섭리다. 벗어날 방법이 없다.」
여기까지는 달 역시 오랜 세월 연구한 끝에 알아냈다.
달은 그다음을 모른다.
「나는 영원히 3단계에 도달할 수 없는가?」
“…”
「네가 호텔에서 본 존재는 벽을 넘었다. 넘을 방법 또한 있으리라.」
문득, 네 몸을 짓누르던 압력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이런 ‘사소한’ 힘에 방해받지 않는 것 같았다.
불현듯, 강렬한 기지감을 느꼈다.
지금 달이 막힌 벽, 달이 품은 의문.
이 과정을 아주 오래전에 지나친 위대한 존재의 기억.
곧, 이전까지의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말이 흘러나왔다.
“힘만 강한 바보로구나. 이토록 많은 혼을 모으고, 억겁의 시간을 보냈으면서도 여태 열반에 도달하지 못했는가?”
공손하긴커녕 조롱에 가까운 문장들.
기이하게도 달은 화내지 않았다.
「상고(上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구나. 너는 유산에 남은 위대함의 편린인가? 아니면 미몽에 휩싸인 연구원의 흔적인가?」
“하하! 왕자여! 네 재능은 본디 1,000만 년이 지나도 열반에 도달할 수 없다. 한데, 운 좋게 왕관을 얻어 신이 될 기회를 얻었구나.”
목소리의 주인이 보기에 왕자에겐 진정으로 드높은 위치에 도달할 자질이 없다.
왕자는 일말의 흔들림 없이 답했다.
「내가 그대보다 자질은 모자랄지 모르나, 기회는 나에게 있다. 조악한 도구에 갇힌 그대가 아니고.」
대놓고 왕관을 언급했는데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도 않았다.
겨우 이런 조롱에 흔들리기엔, 3단계 성장을 갈망해 온 고통이 아득히 컸기 때문이리라.
「말하라. 지고한 이치를 알려준다면, 네 주인의 탈출을 막지 않으리라.」
내 손에서 한 권의 책이 펼쳐졌다.
책의 끝에는 비어있는 공간이 있었다.
첫 번째 문장, 변하지 않는 자아가 실존하지 않음을 받아들여라.
두 번째 문장, 타자의 것이 네 것일 수 있다면, 너 또한 타자일 수 있지 않겠는가.
다음 말을 내뱉으며 알았다.
우습게도, 마도서를 최초로 잉태한 존재조차 이 영역을 온전히 소화하지 못하고 ‘제물’이라는 다른 영역으로 옮겨갔음을.
태어나지 못한 자의 그림자가 본인조차 소화하지 못한 깨달음으로 달에게 블러핑을 하는 기이한 상황.
세 번째 문장.
“하늘 아래 너뿐임을 알라.”
태어나지 못한 자가 그랬듯, 나 역시 이 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또한, 이해할 수 있었다.
나에겐 태어나지 못한 자에게 없던 신성한 태양이 있고, 호텔이 준 지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우주에는 오직 나 하나뿐이다.
그것만이 진실이다.
오피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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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호텔 탈출기-61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