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18)
EP.618 618화 – 도둑맞은 세계 (33)
618화 – 도둑맞은 세계 (33)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226일 차
현재 위치 : 검색 중….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아름답기 그지없던 어린 방주의 노래가 멈추었다.
방주의 일부였던 거울이 나뉘기 시작했다는 것.
다만, 거울의 크기가 어지간한 건물보다도 훨씬 큰 게 문제였다.
사라진 시간대의 성모는 거울을 소형화해서 손거울 크기로 만들었다고 한다.
관리국 역시 비슷한 일을 할 수 있었는데, 이 절차 때문에 모두가 잠시 대기해야 했다.
잠깐의 소강상태.
사람의 두뇌가 컴퓨터라면, 지금쯤 사방에서 ‘위이잉!’하는 쿨러 소리가 날 것 같은데?
그만큼 모두가 최선을 다해 머리를 굴리고 있으며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다음으로 끌어들일 세력은 약탈자!
침착하게 정보를 정리하는 시점, 기묘한 소리가 들렸다.
— 찰칵!
뒤늦게 은솔 누나와 함께 합류한 아리가 내는 소리.
그녀가 다시 혀를 튕기며 ‘찰칵!’하자 주변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동작의 의미는 간단했다.
‘사진기가 없어졌어!’를 내게 전하는 것.
본인 품에 있던 사진기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챈 모양이네.
사진기는 사라진 게 아니라 미로와 함께 달 내부에 있다.
사라진 시간대의 내가 미로에게 모래시계를 돌리도록 지시했기 때문이다.
왜?
“…”
상태창에도 제대로 된 기록이 없고, 급하게 끄적인 낙서 같은 글씨체만 보인다.
정황상 모래시계를 돌리는 판단은 최후의 순간에 내린 즉흥적인 판단이야.
때문에 ‘왜 모래시계를 돌렸나?’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없어.
목적은 미로와 사진기를 ‘달 내부’에 남아있게 하는 것 같긴 한데….
우선 혼란에 빠진 아리를 진정시키자.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아’라고 하니 아리도 더 이상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대신, 무너지는 방주를 보며 다소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방주가 무너지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알지?”
아리의 말에 지배는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석판이 그대와 나를 응징하겠구나.”
“너도 무슨 짓 했어?”
아리는 뒤늦게 합류해서 지배가 오스도르크를 뒤통수치는 장면을 보지 못한 모양이네.
지배는 어깨를 까딱하며 답했는데, 일말의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스도르크 그 머저리가 말귀를 워낙 알아듣지 못해서 말이지. 별수 없이 추방했다.”
그 말에 아리가 빙그레 웃으며 숨겨두었던 무언가를 은근슬쩍 내밀었다.
“이, 이건 바실리오의 머리!”
“나도 어쩔 수 없었어.”
“…”
지배는 잠시 뭔가 한 마디 하고 싶은 표정을 짓더니, 체념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석판이 너와 내 삶을 끝내겠구나. 괜찮다. 영원처럼 길었던 삶도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지. 그게 설령 -”
아리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즉시 말을 끊었다.
“야! 오스왈드! 혼자 인생 정리하지 말라고 좀! 진짜 죽고 싶어서 이래?”
“특별한 수라도 있나?”
아리와 지배가 아직 석판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이유.
석판의 심판 범위는 단일 루프인데, 방주는 루프에서 반쯤 이탈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린 방주의 해체 작업이 끝나면 지배와 아리는 석판에 의해 죽는다.
물론, 그 전에 안전한 장소에 피해 있으면 된다.
“…”
지그시 선대 지혜를 바라보자, 선대 지혜도 내 쪽을 보았다.
「동료를 살리기 위해 내 도움이 필요한가?」
선대 지혜는 방주와 합일한 존재.
따라서, 지배와 아리가 일시적으로 선대 지혜에 탑승하면 석판을 피할 수 있다.
“그렇습니다.”
직후, 지배와 아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 쪽을 보았다.
“이게 무슨 -”
“가능해?”
선대 지혜는 두 사람의 말을 개의치 않으며 말했다.
「어렵지 않다. 하지만, 슬슬 그대에게 설명을 들어야겠구나.」
“…”
「마침, 거울이 작아지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있다.」
청옥 빛 반신이 담담히 손을 내밀었다.
나를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는 것.
이 자를 더 이용하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한 만큼, 저항하지 않았다.
— 팅!
맑은 종소리와 함께 주변 풍경이 변화해 간다.
*
시야에 들어온 것은 황금빛 밀밭으로 가득한 거대한 평원.
흡사 천국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름다워서 절로 눈이 갔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대 지혜는 더 이상 청옥 빛 반신이 아니라 평범한 옷을 입은 중년 남성으로 변해 있었다.
“아름답지 않은가?”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코카소이드 계통의 남성.
외견으로 미뤄볼 때 아나톨리아 반도 태생 같다.
“천국을 닮았군요.”
“그렇게까지야….”
“지금 모습이 당신의 원래 모습입니까?”
“그렇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와 선대 지혜는 사라진 시간대 속에서도 이런 느낌의 첫인사를 나누지 않았을까?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경청하겠네. 오늘, 내가 대단한 후배에게 한 수 배우지.”
사라진 시간대의 내가 세운 계획의 골자는 간단하다.
“첫째, 당신은 이제부터 약탈자를 설득하셔야 합니다. 곧 손에 들어올 거울에 더해 약탈자 방주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거든요.”
“어떤 도움을 말하나?”
“달을 억제해 주십시오. 지금, 달은 지구 지하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만두어도 몇 달 내로 깨어나겠지만, 아직은 손발이 묶여 있지요.”
“더 강하게 억눌러달라?”
“가능합니까?”
“가능이야 한데…. 시공을 떠도는 방주들이 섣불리 지구권에 개입하지 않는 이유를 아는가?”
“섣불리 전력을 소모했다가 달에 당하는 상황을 두려워하겠지요.”
“잘 아는군. 명심하게. 약탈자, 자기들끼리는 ‘연합’이라고 자칭하는 존재들은 본질적으로 겁이 아주 많아.”
“…”
“종말을 피해 도망친 피난민 무리네. 무슨 용맹한 전사가 아니야. 그들이 숨겨둔 밑천을 까게 하려면, 자네가 확실한 길을 알려줘야 하네.”
“달을 쓰러트릴 수 있는 확실한 방법 말입니까?”
“그거지.”
약탈자는 용맹한 전사라기보다 겁 많은 피난민 무리다.
달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없으면 섣불리 전력을 소모하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달을 ‘확실히’ 이길 수 있음을 알려야 한다.
“… 이 대화, 나와 당신만 듣고 있지요?”
“물론이네.”
“지금 이 정보는 너무 퍼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연합에는 적절히 필터링해서 전하겠네.”
“영혼 결집체 1단계.”
“음?”
“이게 모든 방주의 정체입니다.”
“…”
“2단계가 달이고.”
상태창에 적혀있던 태고의 기록을 적절히 편집해서 전달했다.
내 말을 듣던 선대 지혜는 어느 순간 크게 감탄했다.
“허…! 최초의 방주 이전에도 무수히 많은 실험체가 있었다고?”
“그렇습니다.”
영혼 결집체 관련 자료를 훑어보며 알아낸 사실.
소위 최초의 방주 혹은 달은 사실 최초의 영혼 결집체가 아니며, 2단계만 따져도 마찬가지다.
기록에 따르면 ‘TX-135(AS 4694, 아틀란티스)’라는 개체가 최초의 2단계 영혼 결집체라고 한다.
TX – 135는 현시점에선 흔적조차 없다.
태고의 문명이 처음 발견한 2단계 영혼 결집체의 정신병적인 모습을 보고 당황해 파괴했을지도 모르지.
“초기 연구자료에 거울은 언급조차 없었습니다. 거울 발견 이전일 수도 있고, 발견은 했는데 영혼 결집체와 연결 짓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
“나눌 생각이 없었군. 방주로서 만든 게 아니야.”
초기 영혼 결집체가 거울과 무관하게 설계되었다는 말의 의미.
처음에는 나눌 생각이 없었다.
방주로 쓰기 위해 만든 게 아니다.
선대 지혜는 잠시 고민하더니, 상식적인 가설을 세웠다.
“나눌 생각도 없고, 방주로 쓰려고 만든 것도 아니야. 그러면 무기로 쓰려고 만들었나?”
“…”
태고의 문명이 영혼 결집체를 연구한 이유는 무엇일까?
강력한 무기?
선대 지혜는 이미 그쪽으로 확신하는 것 같은데, 나는 잘 모르겠다.
“이제 자네가 하려는 말을 이해했네. 영혼 결집체란 말하자면 ‘자아를 가진 무기’야. 맞지?”
“그렇죠.”
“자아를 가진 무기는 통제 수단이 있어야 해. 논리상 당연한 귀결이지.”
“물론입니다.”
“자네는 그 통제 수단을 알아냈어. 맞나?”
“‘왕관’이라고 합니다.”
왕관.
안타깝게도 더 자세한 설명은 불가능했다.
과거의 나 역시 왕관이 어떻게 생겼고, 어떤 원리로 영혼 결집체를 통제할 수 있는지는 알아내지 못한 모양이다.
“왕관의 위치는 성모가 알 겁니다.”
“그렇겠지! 당연히 그렇겠지!”
“그 성모를 설득했고, 그 상태로 보존했습니다.”
“자네 계획을 요약해 볼 테니, 틀린 부분 있으면 지적하게.”
“말하시죠.”
“첫째, 관리국과 연합의 힘을 모아 달을 지금보다 더 강하게 억제한다. 둘째, 그 사이 자네를 비롯한 소수 정예가 달 내부에 잠입한다. 셋째, 달 내부에서 성모의 도움을 받아 ‘왕관’을 차지한다. 맞나?”
“비슷합니다.”
1. 일시적으로 달을 더 강하게 억제한다.
2. 달 내부에 잠입한다.
3. 왕관을 차지해 달의 통제권을 왕자로부터 빼앗는다.
“한 가지가 걱정스럽군. 아무리 달을 억제한다 해도 달 내부 잠입이 쉬울지 모르겠네만….”
2번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과거의 내가 달 내부에 미로를 남긴 이유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 달 내부에 동료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쪽에서 도와주면 잠입이 편할 겁니다.”
“아하! 거기까지 준비를 끝냈나? 대단해! 대단해!”
선대 지혜, 노인의 얼굴에 승리의 미소가 나타났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이 정도면 달을 상대할 수 있어 보였기 때문이리라.
“정말 수고했네. 이 내용을 적절히 편집해서 전달하지. 연합 측도 이 정도면 자네 말을 받아들일 거야. 다만….”
“다만?”
선대 지혜가 날카로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자네의 모든 계획은 ‘달의 공략’에 치중되어 있군.”
“더 필요합니까?”
“알고 있을 텐데? 관리국과 연합은 결코 함께할 수 없어. 지금은 달이라는 공동의 적이 있을 뿐이지. 그 후엔 어쩔 셈이지?”
달이라는 공동의 적을 치우면, 다시 약탈자라는 문제가 보인다.
하나의 의자, 10명의 참가자.
하나의 세상을 노리는 열 개체 이상의 방주들.
담담히 답했다.
“그 뒤의 문제는 아무래도 좋습니다.”
“뭐?”
“잊으셨습니까? 어차피 이 세상 역시 우리에겐 진실한 세상이 아닌 것을….”
과거, 은솔 누나와 진철 형이 내심 동의했던 이야기.
약탈자는 결국 관리국 유사 집단이며 그들의 목적 역시 자신들의 문명 재건이다.
따라서 약탈자의 승리는 우리에게 있어서 대단한 비극도 아니다.
머나먼 과거, 관리국이 했던 일을 비슷한 다른 놈이 대신 할 뿐이지.
지금의 관리국에 평생 몸담은 아리나 할아버지에겐 괴로운 이야기겠지만, 가족이고 뭐고 없는 세상에 떨어진 다른 동료들에겐 어떨까?
관리국이나 약탈자나 그게 그거다.
나는 위와 같은 논리를 선대 지혜가 깨닫길 바랐다.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선대 지혜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중얼거렸다.
“허…. 자네들에겐 관리국이나 연합이나 별 차이 없겠군?”
“승자가 달이 아니기만 하면 됩니다.”
“이해했네.”
“그렇다면, 달이 사라진 후의 2차전은 어떻게?”
“글쎄, 우린 우리끼리 파이오니어에 들어가서 쉴까요?”
“관리국과 약탈자의 싸움, 약탈자들 사이의 싸움에는 끼어들 생각 없다?”
“그렇습니다.”
“그 말을 우리가 믿을 수 있겠나?”
“패트릭.”
“음?”
“맹약의 서 말입니다. 내일 가져오시죠. 적으면 됩니까? 한가인은 관리국과 약탈자 사이의 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
“그렇게까지야…. 나는 자네를 믿네.”
이 말은 좀 웃겼다.
단언컨대 우리 같은 사람들 사이에 가장 웃기는 단어가 ‘믿음’이 아닌가!
“정말입니까? 그러면 뭐, 서로 믿는 셈 치고 -”
“내일 맹약의 서를 가져오지.”
이 인간도 참, 이럴 거면서 헛소리는 왜 하는 거야?
이렇게 약탈자 세력과의 협상도 마무리되었다.
*
— 짝!
“자, 이게 내가 약탈자 녀석들과 맺은 협상입니다.”
첫째, 달 공략이 끝날 때까지 약탈자 세력은 우리에게 적극 협조한다.
둘째, 이후, 관리국과 약탈자 혹은 약탈자 사이의 충돌에 호텔 파티는 개입하지 않는다.
셋째, 이상의 내용을 맹약의 서에 적시한다. 어길 경우 대가는 죽음으로 치른다.
화이트 보드에 적힌 내용을 본 동료들이 일제히 침묵했다.
모두가 말문을 잃은 이유는 필시 두 번째 항목, 관리국과 약탈자 사이의 충돌에 우리는 손 뗀다는 내용 때문이겠지?
평생 관리국에 충성해 온 아리와 할아버지의 표정은 무어라 표현이 어려울 만큼 창백하게 굳었다.
다른 동료, 예컨대 은솔 누나나 진철 형의 표정도 과히 좋지 않았다.
그야, 과거에 했던 말의 뜻은 ‘약탈자의 승리가 달의 승리보다는 낫다.’ 정도지, ‘약탈자의 승리를 바란다’가 아닐 테니까.
변화 없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송이 정도?
승엽이는 생각 자체가 없는 표정으로 맹하니 있었다.
주변을 힐끔힐끔 살피던 은솔 누나가 총대를 멘 듯 질문했다.
“저기….”
“말하시죠.”
“우리가 끼어들지 않으면, 관리국 패배가 확정 아닐까.”
“거의 그렇죠?”
“… 약탈자 중 하나가 정체불명의 괴상한 문명을 세울 것 같은데.”
“그렇겠죠.”
“지, 진짜 이렇게 협상했다고? 심지어 맹약의 서에 도장까지 찍었어?”
“자!”
— 찌이익!
협상 내용에 줄을 그었다.
모두가 화들짝 놀라서 내 쪽을 본다.
“이제, ‘진짜 계획’을 적겠습니다.”
“으앗!”
“하하! 설마하니 약탈자와 관리국이 최후의 순간까지 서로 물어뜯고 싸우는 게 해피엔딩일 리가 없잖아요?”
“맹약의 서는!”
“그것도 지킬 겁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