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20)
EP.620 620화 – 도둑맞은 세계 (35) -> □□ □□□ □□ (1)
620화 – 도둑맞은 세계 (35) -> □□ □□□ □□ (1)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229일 차
현재 위치 : 서울시 관리국 특별회의실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3일 전, 어린 방주를 해체하고 관리국을 복원하는 결정이 내려졌다.
이틀 전, 호텔 파티와 약탈자 간의 협약이 맺어졌다.
그리고 오늘.
마침내 아리가 긴 고통에서 해방되었다.
동면 중이던 침묵하는 자들이 깨어나며 회의의 최소 정족수가 채워졌는데, 이들이 첫 번째로 통과시킨 안건이 다음과 같았기 때문이다.
‘침묵하는 자, 김아리와 오스왈드에 대한 심판을 중지한다.’
석판은 침묵하는 자의 일탈을 감시 및 응징하는 존재인 만큼, 정족수를 채운 정식 회의의 결론을 따른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긍정적인 일만 생긴 건 아니다.
침묵하는 자들이 다음으로 시작한 건 나에 대한 추궁이었기 때문이다.
“젊은 지혜! 정말 이 모든 혼란을 수습할 수 있습니까?”
“어린 참가자! 방주 해체의 여파는 네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구체적인 계획을 왜 말해주지 않느냐? 사악한 꿍꿍이가 있다면, 우리가 너희를 -”
아리가 한숨 쉬며 모두를 진정시키려 했다.
“자, 자! 다들 진정해.”
“아리! 네가 호텔에서 쌓은 친분에 그토록 얽매일 줄은 몰랐다! 이 자의 미친 소리에 협조할 줄은 -”
“친분 때문이 아니라 합리적인 판단이었다니까?
“그만! ”
“네 심판을 중지한 것이 후회스럽구나!”
아까부터 아리를 협박하듯 구는 이 대머리 이름이 뭐였지? 세르반테스?
“그럼, 회의 다시 열든가.”
“아리 너 -!”
“세르반테스, 제발 좀 조용히 해라.”
“한수호!”
“이미 벌어진 일을 따져서 어쩔 셈인가? 어차피 방주를 새로 제작할 시간은 없어.”
그나마 좀 이성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한수호였나?
어쨌든, 저녁이 되기 전에 모두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한수호의 말마따나 이미 방주를 해체한 이상, 관리국에겐 ‘달과 승부를 본다’는 선택지 외엔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
직전까지 침묵하는 자들과 회의했던 이름 모를 빌딩 옥상.
난간에 기대어 있으니 나보다 먼저 이 장소에 있던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위험하게 뭣하냐? 그러다 떨어지겠다.”
“떨어져도 날면 그만이죠.”
“어이쿠! 신성한 태양 있다고 자랑하냐?”
“자랑까지야….”
“회의는 어떻게 끝났냐?”
“난리였죠. 일이 안 풀리면 누가 책임질 거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책임진다고 했죠.”
할아버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가 책임져? 어떻게?”
“망한 후의 일을 왜 신경 씁니까? 책임 추궁할 사람도 책임질 사람도 다 죽고 없을 텐데.”
“… 맞다. 듣고 보니 애초에 누가 책임지냐는 질문 자체가 등신 같구나. 그래서 결론은?”
“관리국은 계획에 협조하겠답니다.”
“약탈자들은?”
“선대 지혜를 통해 전해왔습니다. 역시 협조하겠다고 합니다. 날짜는 3일 후입니다.”
관리국과 약탈자의 도움을 받아 달과 벌이는 승부의 시작 시점, 232일 차.
“그렇게 빨라? 그 녀석들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할 텐데.”
“더 늦으면 안 된다고 했죠. 왜냐하면 -”
“아, 미로가 달 내부에서 깨어나는 날이 233일 차였나?”
“네. 그러니 그 전엔 시작해야죠.”
233일 차에 미로를 보호하고 있는 모래시계의 동결이 끝나니까 아무리 늦어도 232일 차엔 시작해야 한다.
마음 같아선 더 일찍 시작하고 싶지만, 관리국과 약탈자들에게도 최소한의 준비 시간은 필요했다.
“하! 그 말을 들으니 이제야 느껴지는구나. 결판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지?”
“그렇습니다.”
잠깐의 침묵.
“…”
“…”
표정을 보니, 할아버지가 할 말이 있는 모양이다.
“할 말 있으세요?”
“… 아직도 긴가민가한데 말이다.”
“말해보시죠.”
“시간을 돌리기 직전 혹은 직후에 이상한 말을 들었다.”
“이상한 말?”
“참가자 김묵성, 이것으로 네 모든 갈망이 이루어졌다. 허나, 승천까진 아직 한 걸음 남았구나.”
할아버지 말마따나 이상한 말이었다.
“갈망이 이루어졌다니…. 내용도 신기한데, 타이밍은 더 신기하군요. 원 모어 찬스 사용과 할아버지의 갈망이 무슨 상관입니까?”
“… 상관이 있을지도 모르지.”
“네?”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살짝 흐릿해졌는데, 아련한 눈빛을 보니 무언가 살짝 느껴졌다.
이건, 할아버지의 ‘진짜 가족’과 관련한 이야기다.
꿈으로 만든 지금 가족의 원본이 된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
“옛날 생각이 나는구나.”
“네?”
“당장 싸움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달과의 싸움이 끝나면,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
“…”
“은솔이가 네게 할 말이 있는 것 같더라.”
*
누나는 관리국 내부 사무실에서 몇 가지 서류를 보고 있었다.
“아, 가인이 왔네.”
“누나, 할 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제 오랜만에 다 같이 105호에 들렀잖아?”
“그랬죠.”
“서랍을 열어보니 티켓이 있더라.”
“…”
2층 돌파 보상, 티켓.
“어떻게 할래? 바로 써서 무언가 이룰 수도 있을 텐데.”
“누나 생각은요?”
“나는….”
“…”
“아껴두고 싶어. 왜냐하면 -”
“누군가 죽을 것 같아서?”
“응.”
티켓의 용도는 다양하다.
거울의 방에서 소원을 빌 수도 있고, 또 다른 유산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용도는 역시 ‘부활’.
“부, 불길한 이야기긴 하지만!”
“…”
“달과 싸우다가 누군가 죽을지도 모르잖아.”
“그렇게 합시다.”
“좋아! 사실, 너 말고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 동의 했어.”
“하하! 어제 저 없을 때 회의하셨나 보네요.”
“맞아.”
“하실 이야기는 이게 끝입니까?”
“진철이도 네게 할 말이 있어 보이던데?”
*
진철 형은 특이하게도 종이 몇 장을 펼쳐두고 무언가 끄적이고 있었다.
슬쩍 다가가서 살펴보니, ‘차진철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본인 생각을 정리한 문서 같았다.
“네가 보기엔 어떻냐?”
“예?”
“열심히 봤잖아. 나, 차진철은 어떤 인간 같냐 이 말이지.”
“어…. 힘세고.”
“힘세고?”
“용감하고 정의로운 든든한 형?”
“핫,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하! 진심인데요? 그나저나 뜬금없이 자아 성찰은 왜 하고 계세요?”
형은 잠시 복잡한 표정을 지었는데, 제법 깊은 고민에 빠진 것 같았다.
“가인아, 나는 말이다….”
“네.”
“호텔에서 성장하고 싶었다.”
종종 들었던 이야기다.
“그래요?”
“이 시점에서 돌아보니 뭔가 기대만큼 성장하진 못했어.”
“…”
“물론 뭐, 다른 동료들도 너만큼은 아니긴 하지.”
“으음.”
“내 어디가 가장 부족한 것 같냐?”
다소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답은 금방 떠올랐다.
“축복 쪽은 많이 성장했죠. 특히 찰나는 굉장히 강한 힘이고.”
“내 생각도 그래.”
“유산…. 쪽은 얻은 이후로 거의 변화가 없네요.”
“네 생각에도 그렇지?”
“…”
말이 나온 김에 동료들이 얻은 유산을 쭉 떠올려 봤다.
여러 유산은 처음 얻었을 때보다 현재 훨씬 강해졌다.
세 가지 문장을 중심으로 성장한 화신의 서.
약간의 비행, 괴력, 최면, 회복 등 여러 능력을 발현한 오래된 피.
203호, 206호를 거치며 기괴한 활용법이 점점 늘어나는 불길한 상상.
다양한 관점 역시 처음보다 환상의 정밀도나 유지 시간 등이 길어졌다.
신성한 태양의 경우 성장했다기보단 충전했다 쪽이긴 한데, 어쨌든 처음보다 강해진 건 사실이야.
반면, 처음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 없는 유산들도 여럿 떠오른다.
“여태 거의 성장하지 못한 유산들이 꽤 된다.”
“그렇죠.”
“개중 몇몇은 애초에 성장할 무언가가 없을지도 몰라. 예컨대, 안식의 피리 같은 것 말이지.”
“확실한 건 아니죠.”
“맞아. 그냥 내 짐작이다.”
애초에 딱히 성장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 같은 유산들.
안식의 피리.
최후의 섬광.
이들은 처음 얻자마자 100% 성능이 나오는 대신, 딱히 더 성장할 무언가가 없는 느낌이다.
두 유산의 공통점은 얻을 당시 ‘성장성이 있는 대체제’가 제시됐었다.
안식의 피리 대신 고를 수 있었던 여왕 루다흐.
최후의 섬광 대신 고를 수 있었던 미지의 세포.
따라서 성장성이 없는 것 역시 참가자의 선택이라고 볼 수 있겠지.
물론 아닐 수도 있고.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막혀있는 유산들도 있어.”
“…”
“유산을 얻을 당시, 원본은 100을 보여줬는데 우린 그 일부만 쓰고 있는 것들.”
“부등변다면체가 제일 먼저 떠오르네요.”
수석연구원은 부등변다면체로 온갖 초공간을 마구 만들었는데, 아리는 그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아리가 수석의 경지에 도달하기까진 오랜 시간이 필요하리라.
“시간대여기도 있지.”
과거의 미로는 시간대여기를 훨씬 다양하게 썼었다.
그 핵심은 ‘본인 시간’을 시간대여기에 넣는 것 같은데, 미로는 아직 이런 힘을 보여준 적 없다.
“영혼의 함도 뭔가 더 있을 것 같네요.”
영혼의 함에는 빙의 능력이 있음이 중론이지만, 승엽이는 해당 능력을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다.
느낌상, 승엽이가 빙의를 깨닫기까진 아주 오래 걸릴 것 같다.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승엽이가 빙의 같은 것에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가인아, 가장 대표적인 유산이 바로 이계의 별조각이다.”
성장성이 있는 것 같은데 막혀있는 유산.
저주의 방에서 원본은 훨씬 더 많은 것을 보여줬던 유산.
이계의 별조각
“그렇죠.”
“왜 내가 이계의 별조각을 제대로 쓰지 못할까?”
“… 제 생각에.”
“네 생각에?”
“그 답은 형이 스스로 알아내야 합니다.”
“그래, 그래. 네 말이 맞아. 내가 스스로 알아내야지.”
“…”
“최근, 알듯 모를 듯한 깨달음이 오기 시작했다.”
“최근에요?”
“다른 존재들을 봤거든.”
진철 형 혼자서는 얻을 수 없었던 깨달음이 최근 오기 시작한 이유?
“선대 지혜를 보았다. 또, 네게 왕자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지.”
선대 지혜와 왕자라는 예시를 알았기 때문.
“그게 형의 깨달음과 연관이 있습니까?”
“있지. 둘 다 사람에서 많이 벗어났잖냐?”
“…”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계의 별 조각은….”
“…”
“사람이라는 틀에 갇혀있으면, 그 능력의 1할도 발휘할 수 없는 그런 유산이 아닐까.”
“…”
“원래 사용자 기억 나냐? 김상민 그 녀석 말이다.”
“괴물이 되었었죠.”
“추한 몰골이긴 했지. 하지만, 지금 나보다 훨씬 엄청난 힘을 다룰 수 있었어.”
“…”
“물론 김상민 그 녀석처럼 슬라임이 될 생각은 없다.”
사람의 틀 내에선 정상적으로 쓸 수 없는 유산?
이 시점에서 미묘한 불길함을 느꼈다.
진철 형이 얻은 깨달음은 정상적인 무언가가 아닌 것 같았다.
“마침, 내게 열 번째 꿈이 남았구나.”
“…”
“어쩌면 이 순간을 위한 호텔의 안배일지도….”
불길함과 기대감이 뒤섞인 혼란스러운 감정의 격류.
“어떻게 생각하냐? 마지막에 네 조언을 듣고 싶었다. 가능하면, 어, 올빼미에게도 한마디 듣고 싶은데.”
“…”
“혹시 무리한 부탁이냐? 그러면 미안 -”
“아닙니다.”
하지 말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간질거렸다.
이상한 시도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사람의 틀 내에선 제대로 쓸 수 없는 유산이라면, 이쯤에서 포기하라고 하고 싶었다.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부터가 화신의 서와 신성한 태양을 마음껏 연구하며 점차 기이하게 변했는데, 다른 사람을 말리는 게 의미가 있을까?
애초에 정상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무슨 기준으로 구분하는가?
괴물로 변하는 것과 위대한 자로 변하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인 세상이다.
「조언 : 3 -> 2」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살아있는 한, 사람의 욕망은 멈추지 않는다. 네가 무슨 말을 하든 결론은 정해져 있다.」
올빼미의 답을 듣는 순간, 맥이 탁 풀렸다.
어차피 형이 내릴 결론은 정해져 있구나.
상승에 대한 욕망이 있는 이상 내가 뭐라고 해도 할 연구는 하기 마련이지.
심지어 상승을 위한 수단 – 별 조각을 1년 365일 언제든 소환할 수 있는데, 성장에 대한 갈망을 참을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세상 그 누구도 형을 막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다른 조언을 건넸다.
“후회 없는 선택이길 바랍니다.”
“고맙다.”
성과가 있길 바랄 뿐.
*
「날짜 : 229일 차 -> 232일 차」
결전의 날이 밝았다.
아침부터 정신없이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끼며 창밖을 보니 주변이 시끄러웠다.
하늘에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존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약탈자가 현실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곧, 관리국과 힘을 합쳐 달과의 승부를 준비하리라.
그리고 – 오랜만에 시나리오 이해가 다시 활성화되었다.
「시나리오 : 도둑맞은 세계 -> 가장 오래된 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