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23)
EP.624 624화 – 가장 오래된 소원 (5)
624화 – 가장 오래된 소원 (5)
– 엘레나
— 스르릉! 서걱!
섬뜩한 기세로 뻗은 검격이 단숨에 달 교회 기둥을 가르고 성모의 왼팔을 뜯어냈다.
물론, 성모는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왼팔을 도로 붙인 채 양손을 모은 채 외쳤다.
“태극도(太極圖), 추방(追放).”
“으읏…!”
저항할 수 없는 힘이 단박에 포르투나를 밀어낸 사이, 이번엔 보랏빛 섬광과 함께 날아든 황금의 망치가 내 몸을 노렸다.
— 콰직!
정신없이 회피하며 날려 보낸 황금의 천칭!
이번에도 성모는 잠시 다리를 잃고 비틀거렸지만, 역시나 별일 없다는 듯 다리가 수복되었다.
찰나, 시선을 교차하는 세 사람.
짧지 않은 공방이 오가며 모두가 깨달은 사실.
서로에게 쉽지 않은 싸움이다.
성모의 능력 균형이 무너져 있기 때문이다.
성모의 검을 담당하는 정의의 축복은 나의 존재 때문에 반토막 나서 약해졌다.
반면, 방패를 담당하는 클리포트 크리스털은 대규모 영혼 공양에 힘입어 엄청나게 강해진 상황.
검이 무뎌졌기에 나와 포르투나를 쉽게 쓰러트릴 수 없다.
방패가 강해졌기에 나와 포르투나에게 당하지도 않는다.
단기간에 승부가 갈릴 수 없다.
싸움이 길어지면 어떨까?
당연히 온 사방에 잡아먹을 영혼이 넘치는 성모가 결국 이긴다.
그러면 성모가 유리한 구도인가?
꼭 그렇지도 않다.
따지고 보면, 지금 달 교회에서 벌어지는 싸움의 승패는 전황의 핵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여러 동료는 이미 승강기 타고 이 전장을 떠났다.
성모는 당장이라도 이 싸움을 끝내고 승강기를 추격하고 싶겠지.
— 철컹!
다시 나타난 포르투나가 비웃는 투로 말했다.
“엘레나, 시간만 끕시다. ‘연구원’께서 뒷일은 책임진다고 하셨으니까요.”
평소라면 가인 형이라고 했을 텐데, 일부러 ‘연구원’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성모에게도 연구원은 아주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연구원.
관리국을 배신하고, 성모가 신으로 모시는 왕자를 해방한 존재.
그 누구도, 달조차도 연구원의 목적과 의도를 정확히 알지 못해.
미지란 곧 두려움이요, 경외심이다.
달조차도 자신이 모르는 문제의 답을 연구원이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성모라고 다를까?
연구원이라면, 왕자를 위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할 거야.
“너…!”
어찌 보면 뻔한 수작인데, 성모의 눈빛이 흔들렸다.
본인도 내심 포르투나의 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새삼 다시 드는 의문.
승엽아, 이 대단한 심리전을 왜 컴퓨터 게임에선 발휘하지 못하는 거야?
진짜 다른 사람 아니야?
— 휘이잉!
다음 순간, 성모의 손에서 나타난 빛줄기가 허공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여기까진 평범한 공격인 줄 알았는데!
“정의를 추구하는 자라면 곧, 정의 재판을 거부할 수 없도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이번엔 내 힘까지 같이 빨려 들어갔다!
이게 뭐야!
“…!”
나와 성모, 두 사람에게 나뉘어 있던 정의의 축복이 둘 모두에게 빠져나와 한 점으로 뭉치더니 저울을 이룬다.
이 순간, 저울에 뭉친 힘은 나와 성모 각자가 가지고 있던 힘을 능가했다.
동시에 들려오는 저울의 선언.
「정의재판(正義裁判)을 시작한다.」
정의재판?
당황하는 순간, 낭랑한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들어라! 나는 운명 속에서 버림받은 무궁한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
“말해. 네 ‘정의’는 뭐지?”
방금 뭐라고 한 거야?
내 정의는 뭐냐고?
목숨 걸고 싸우는 와중에 이따위 말장난을 왜 하나 싶어 무시하려는 순간.
“답을 피하는구나?”
정의의 천칭이 상대 쪽으로 기울어졌다.
정확히 절반씩 나누어 가지고 있던 축복의 힘이 상대에게 살짝 더 많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 어?”
말이 나온다?
내 변화를 인지한 포르투나가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방금, 엘레나가 약해지고 저쪽이 강해진 것 같은데.”
“나도 그렇게 느끼고 있어!”
기다렸다는 듯 돌아오는 답변.
“답을 피하는 건 자신이 없기 때문이지. 너도 내심 아는 거야. 네가 틀렸고, 나와 왕자님의 길이 옳다는 사실을!”
포르투나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답했다.
“이건 성모 당신 능력인가? 목숨 걸고 싸우는 와중에 이상한 장난질을 -”
그가 검을 뽑아 성모를 공격하려는 순간, 중앙에 나타난 거대한 천칭이 포르투나를 향해 움직였다.
이 시점이 되어서야 성모의 능력을 이해했다!
“아, 안돼! 지금 칼을 뽑으면 -”
“… 이해했다.”
지금 상황을 만들어 낸 성모의 능력.
시작하자마자 나온 문구에 답이 있다.
정의재판(正義裁判)
재판이란 곧, 누가 옳은지 그른지를 가리는 것.
나와 성모 중 어느 쪽이 더 정의로운가의 문제!
이 국면에서 섣불리 칼을 뽑으면 천칭의 심판 대상이 된다.
결투재판이 횡행하던 중세 시대도 아니고, 현대 그 어느 국가도 결투로 정의로움을 논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느새 검을 집어넣은 포르투나가 공손한 태도로 저울을 바라보며 까딱했다.
“존경하는 재판관님, 나는 기사이며 검은 곧 내 명예입니다. 검을 뽑은 건 무례를 범하려는 게 아니라 법정에 대한 예의를 표했을 뿐입니다.”
웃기지도 않은 변명이지만, 천칭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예리하게 빛나는 성모의 눈을 주시하며 생각했다.
‘정의재판(正義裁判)’은 느낌상 정의의 축복을 강화하며 성모가 얻은 능력.
구체적으로 어떤 힘일까?
더 정의로운 쪽이 강해진다? 아니면 정의롭지 못한 쪽이 심판받는다?
어느 쪽이든, 정의 재판이 시작된 후 이 자리의 그 누구도 멋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이제야 성모가 이런 이상한 힘을 쓴 이유를 깨달았다.
첫째, 포르투나를 싸움에서 사실상 배제하기 위함이다.
둘째, ‘본인이 옳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포르투나의 속삭이는 목소리.
“엘레나, 계속 당신 힘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나도 알아.”
“우선 대답은 해야 할 것 같은데….”
처음 성모의 질문이 뭐였지?
내 정의가 뭐냐고?
“공정하게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상태! 이것이 정의라고 믿습니다.”
대답하니 비로소 빠져나가던 힘이 멈췄다.
기다렸다는 듯 성모가 반박했다.
“개인의 권리? 인간의 가장 중요한 권리가 무엇입니까?”
“어, 어….”
“답변을 피할 생각인가요?”
아 진짜!
조금 전까지 서로 썰어 죽이려고 난리였는데 갑자기 이게 뭐야?
이런 말싸움 같은 건 자신 없단 말이야!
“아, 아닙니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어.
축복이 제공하는 물리력으로 상대를 으깨서 이기는 것은 본디 정의가 아니야.
정의란 바로 이런 거지.
서로 옳고 그름을 맞대어 더 옳은 자가 이겨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성모가 축복을 강화한 끝에 얻은 ‘정의재판(正義裁判)’ 능력은 정의의 본질에 닿아 있었다.
“음, 어, 생명권 아닐까요?”
“생명권! 생명권이란 곧 세상을 살아가는 권리겠지요?”
“…”
틀린 말은 아닌데 뭔가 말리는 느낌이야.
성모는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그렇…. 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당장 무기를 내려놓고 내게 협조함이 옳습니다. 왕자님의 승리야말로 가장 많은 생명을 지키는 길이니까요!”
“뭐?”
“내 말이 틀렸나요?”
그니까 성모가 하는 말이 이거야?
관리국과 약탈자 측 영혼을 전부 합쳐도 달에 속한 영혼보다 적다.
그러므로 달의 승리가 가장 많은 영혼이 살아나는 길이다.
“자, 잠깐! 시작부터 억지잖아!”
「경고 : 참가자 엘레나는 법정에서 예의를 지켜라.」
이 와중에 예의는 무슨 예의!
… 그래도 지키자.
“어디가 억지죠?”
“달의 영혼이 제일 많은 이유는 달 본인 때문이잖아요!”
“이유는?”
“달이 먼저 세상을 위협하니, 여러 관리국 및 유사 조직이 세상을 버리고 탈출한 거죠. 그 과정에서 남은 영혼을 달이 집어삼켰고.”
“순서를 따지면, 달이 제일 먼저 태어난 방주입니다.”
“먼저 태어났으니 당연히 세상의 주인이다?”
“당연한 말을 -”
역시 원시 고대 사람 아니랄까 봐!
“하다못해 상속도 장자 상속이 아니라 형제끼리 공평히 나누는 시대인데, 먼저 태어났다고 세상을 먹을 권리가 생기는 게 아니죠.”
“먼저 태어났으니 당연히 주인이라는 게 아니라, 이후의 방주는 달이 가졌어야 할 세상을 훔쳤다는 말입니다.”
“훔친 게 아니라 독립운동!”
“독립운동이라는 증거 있어요?”
“훔쳤다는 증거는!”
이 시점에서 성모가 손뼉을 딱 치며 논제를 넘겼다.
“태고의 이야기는 이쯤 합시다. 서로 증거가 없는 부분이니까.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니라 현재!”
“현재?”
“그래서 지금 누구에게 속한 영혼이 제일 많죠?”
다시 처음의 이야기.
달에게 속한 영혼이 제일 많으니, 달이 세상을 차지하는 게 곧 ‘정의’라는 것.
공리주의적 견해고,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을 받아들이는 관리국의 철학과도 닿아 있다.
207호의 성모가 관리국 유사 조직을 설립했던 일을 생각해 보면, 에이디아는 본래 이런 성향인 것 같아.
“숫자가 많다고 당연히 세상을 차지해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어요!”
“그러면 적은 쪽이 차지해야 하나요?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하는 건 물론 비극이지만, 소수를 위한 다수의 희생은 더 큰 비극인데.”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 말을 어떻게 반박해야 해?
당황하는 시점,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감을 느꼈는지 갑자기 옆에서 탁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말 좀 합시다. 두 사람만 계속 떠드는데, 이것도 부당한 것 아닙니까?”
재밌게도 저울이 포르투나 쪽을 주시했는데, 이 말 자체는 일리 있다고 본 것 같다.
에이디아도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 말씀하시죠.”
“아까 증거가 없다고 넘긴 부분 말입니다.”
“네.”
“증인 신청 안 됩니까? 여기 왕자님하고 연구원님이 직접 오셔서 설명해 주시죠.”
“말이 되는 소리를!”
으악!
포르투나라길래 승엽이랑 달리 똑똑한 줄 알았는데 뭐냐고!
내가 저 인간을 믿은 게 잘못이지!
“포르투나, 그걸 말이라고!”
나와 성모는 둘 다 어이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기색을 내비쳤고, 저울은 포르투나를 위협하듯 움직였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
“재판인데 증인 신청이 왜 안 되죠?”
“아니, 둘 다 여기 올 수가 없는데….”
포르투나가 어두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내 생각에, 엘레나도 내 말에 동의했으면 통했습니다.”
“뭐라고요?”
시간 낭비하기 싫다는 듯, 성모가 외쳤다.
“엘레나, 답변하지 않을 생각인가요?”
또 내 힘이 줄어들었다.
내가 답변을 회피 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한숨 쉬며 정신을 집중하니, 혼란스러운 상황 변화 속에서 헷갈렸던 생각들이 정리되었다.
자연스럽게 떠오른 성모의 말에 대한 반박.
“성모, 당신은 달의 승리가 곧 다수의 승리라고 했죠?”
“맞습니다.”
“그러면 반대로 성모 당신 쪽이 물러셔야 합니다. 왜냐면, -”
이 말 해도 되나?
여기까지 왔는데 무슨 상관!
“우리는 달과 약탈자 모두의 승리를 꾀하고 있으니까요!”
성모가 어이없다는 듯 답했다.
“그건 연구원이 당신에게 한 말? 그걸 어떻게 믿죠?”
“어떻게 믿냐의 문제로 간다? 그렇게 치면 난 달의 말을 어떻게 믿죠?”
“무슨 -”
“모든 싸움이 끝난 후, 세상에 천국을 구현하겠다는 달의 약속은 그냥 달의 약속일 뿐입니다. 반드시 지킨다는 보장이 있나요?”
미로의 말에 따르면, 달이 승리한 실제 미래는 정반대다.
천국은커녕, 그 어떤 생명도 없는 공허하기 그지없는 암울한 미래만 남아있으니까.
지금까지와 반대로 내가 성모를 추궁하는 듯한 상황.
다음 순간, 천칭은 당연하다는 듯 성모 쪽을 향했다.
이를 깨달은 성모가 눈을 크게 뜨며 당황하자 정의의 힘이 내 쪽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당황하는 성모의 모습을 보고 떠오른 생각.
추측건대, 본래라면 정의 재판은 지금처럼 공방이 오가는 능력이 아니다.
성모가 일방적으로 ‘죄인’을 추궁하며 심판하는 힘이겠지.
지금처럼 나도 성모를 추궁할 수 있는 이유는?
정의 재판 구성에 ‘내 힘’도 들어갔으니까!
두 사람의 축복이 합쳐지며 재판이 시작됐으니, 나 역시 성모를 추궁할 수 있는 것.
이 현상을 이용할 수 없을까?
비슷한 생각에 도달한 성모가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
“… 아무래도 서로 설득할 수 없는 듯합니다.”
상호 설득할 수 없는 영역.
논리를 따지다 보면, 결국 최후의 질문은 이거다.
달과 가인 씨 중 누구를 믿는가.
우리는 가인 씨를 믿고, 성모는 달을 믿는다.
이 간극을 좁힐 길은 없으며, 말로 설득할 방법도 없다.
이러니까 과거 가인 씨도 성모의 포섭은 불가능하다 생각했었지.
소환체 성모는 토론 따위가 아니라 ‘영원의 지옥’을 실제 경험한 후에야 생각이 바뀌었다.
“정의 재판을 종료하길 바랍니다.”
과연, 성모는 천칭이 자신까지도 위협하자 능력의 종료를 택했다.
예상대로 이 힘은 본디 성모가 추궁하고 심판하는 힘이지, 지금처럼 성모 자신을 궁지에 모는 힘이 아니다.
두 정의의 축복이 얽히니 성모의 예상과 다른 형태로 발현되었다.
성모도 이를 느꼈기에 끝내려 하는 것.
‘종료’라는 단어가 나오니 천칭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정의재판(正義裁判)’은 여기서 끝인가?
다시, 강자가 이기는 원초의 싸움으로 –
그 순간!
— 짝!
포르투나가 기세 좋게 일어서서 말했다.
“누구 마음대로 종료입니까? 두 사람이 여태 많이 이야기했으니, 내게도 의견을 낼 기회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사라지려던 천칭이 다시 또렷해지며 포르투나를 바라본다.
능력을 사용한 에이디아 본인도 천칭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모습.
나와 심해호텔의 미로 역시 정의의 축복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었음을 생각해 보면, 이런 면은 축복 자체의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아닐까?
에이디아가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
“… 말씀하시죠.”
“저는 무림인이거든요.”
“아깐 기사라면서요?”
“무림인이기도 합니다.”
“무림인이 뭐죠?”
“나도 잘 모르지만, 무림에는 이런 격언이 있습니다.”
“격언?”
“관무불가침.”
“뭐?”
“무림의 일에 관이 끼어들면 안 됩니다. 사람의 일에 신이 끼어들면 안 됩니다.”
“아니 아까부터 뭔 소리를 -”
“재판관님, 저는 이제부터 ‘당신’이 빠져야 한다고 봅니다. 무림의 일은 무림에, 지상의 일은 사람에 맡겨두시길.”
이 시점이 되어서야 에이디아와 나는 포르투나가 하려는 말을 이해했다.
그는 지금, ‘정의의 축복’ 자체를 이 싸움에서 배제하려 한다!
서로 같이 축복을 잃는 건데 의미 없지 않냐고?
아니야!
축복을 잃는 건 나와 에이디아 뿐, 포르투나의 행운은 건재하다!
목적은 알겠는데, 이게 가능해?
말도 안 되는 –
“…”
침착하게 생각하자.
본래라면 성모에게 지극히 유리하게 발현되었어야 하는 정의 재판 능력이 ‘공평하게’ 발현된 이유?
나와 성모의 의견이 둘 다 이 힘에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야.
이는 성모 본인도 예상치 못한 결과다.
우리만큼은 아니지만 포르투나의 의견도 일정 부분 반영되고 있다.
유치하게 표현하면, 성모 1, 엘레나 1, 포르투나 0.3 정도로 반영 중인 상황.
명심할 것.
이 자리에 정의로운 심판자 같은 건 없다.
축복은 사용자의 마음가짐이 결정한다.
정의 재판이 법정의 형태로 진행 중인 이유?
나와 성모가 이런 형태를 바람직하다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설득하기 위해서.
…
파이오니어 호텔에서 보아온 종말의 양태.
현실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싸움.
위대한 자들의 패권 다툼 아래 신음하는 나약한 이들.
나는 ‘진심으로’ 믿는다.
관무불가침.
아니지.
신인불가침(神人不可侵).
“존경하는 재판관님, 저 역시 포르투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지상의 일은 사람에 맡겨두시길. 이제부터 정의의 축복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천칭이 사라진다.
나와 성모의 영혼을 충만케 했던 정의의 축복이 사그라든다!
정의 재판의 결과.
이 싸움이 끝날 때까지 나와 성모는 정의의 축복을 쓸 수 없다.
성모의 검이 부러졌다.
그녀는 창백한 표정으로 외쳤다.
“관무불가침? 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조폭도 아니고 이딴 무식한 정의가 어딨어!”
— 스르릉!
승리를 직감한 포르투나의 냉소적인 답.
“성모, 당신은 이번에도 중요한 사실을 모르는군.”
“무슨 -”
“난 아직 초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