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24)
EP.625 625화 – 가장 오래된 소원 (6)
625화 – 가장 오래된 소원 (6)
– 엘레나
“이얍!”
성모의 손끝에서 위협적인 위력을 뿜어내는 보랏빛 섬광!
평범한 인간이라면 반응조차 못 하고 육편이 될 위력이지만, 이 자리에 평범한 사람 같은 건 없지.
포르투나는 등 뒤에도 눈이 달린 것처럼, 딱 반걸음 움직이는 선에서 피했다.
그렇다면 내 쪽은?
— 부우웅!
축복이 사라지자마자 불길한 상상으로 빚어낸 존재.
202호와 203호에서 큰 도움을 주었던 나방이다!
불경한 피조물이 섬광을 그냥 몸으로 받아냈다.
— 콰삭!
순식간에 몸통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리며 바삭거리는 가루가 흩날렸지만, 이 정도는 그리 큰 타격이 아니야.
어렵지 않게 복구해줄 수 있었다.
축복을 잃은 성모는 확실히 크게 약해졌다.
단순히 육각형의 크기가 줄어든 게 아니라 능력의 균형 자체가 무너졌어.
클리포트 크리스털과 태극도.
두 유산에 공격적인 능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둘 다 정의에 비해 부족함이 많다.
온전한 정의는 말할 것도 없고 조금 전까지 사용했던 반 토막 난 정의와 비교해도 마찬가지!
크리스털이 뿜어내는 보랏빛 광선?
우선 위력이 애매하다.
불경한 피조물은 아까부터 그냥 몸으로 받아내고 있는데, 정의의 축복이 만들어 내는 심판의 망치였다면 절대 몸으로 받아낼 수 없다.
또, 유산의 공격 방식이 너무 단순해.
신체적으로 평범한 나조차도 한 20번 겪으니 ‘신체 일부가 빛난다 -> 그 부위에서 광선이 직선으로 날아온다’는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포르투나야 처음 두어번 보고 바로 알았겠지.
태극도?
이쪽은 문제가 더 심했다.
“태극도(太極圖), 격-”
사용하려면 특이한 동작을 취한 채 주문을 반드시 외워야 한다.
몇 글자 안 되는 주문 외우면서 자세 잡는 게 뭐가 문제냐고?
눈앞에 포르투나가 있으니까 어렵지.
— 서걱!
“준비가 너무 요란해.”
“- 아앗!”
“이런 기술은 집에서나 쓰시길.”
새삼 전투에 있어 정의가 얼마나 편리한 능력인지 깨달았다.
발현 후에는 준비시간 따위도 없고, 심판의 힘이 내 상상에 호응해 자유롭게 변화하니 공격 루트도 끝도 없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 콰지직!
성모의 오른팔이 산산이 조각나자 살과 피가 아닌 보라색 광석이 튀어나왔다.
기괴한 장면이지만, 이미 10번도 더 본 장면이라 모두가 무감각했다.
— 부우웅!
즉시 불경한 피조물이 사방에 분진을 휘날렸고, 분진이 묻은 크리스털은 제대로 달라붙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성모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막고 있는 크리스털 조각이 온 사방에 가득하다!
“너….”
눈에서 불꽃이 튀는 성모.
“재생력이 징그러울 정도요.”
여유로운 듯 답하는 포르투나.
하지만, 포르투나라고 정말 편한 상황은 아니다.
불경한 피조물이 끊임없이 성모 쪽으로 보내는 분진때문이다.
클리포트 크리스털의 재생을 억누를 만큼 지극히 유독한 물질인데 사람에겐 어떻겠는가?
나야 피조물 뒤에서 노출을 최대한 피하고 있지만, 포르투나는 피할 수 없다.
새카만 갑옷을 입고 있어 티가 나지 않을 뿐, 갑옷 속 몸도 연거푸 망가졌겠지.
영혼의 함으로 혼을 붙들고, 포르투나 특유의 마법 같은 힘으로 육신의 끈을 부여잡고 있을 뿐.
“…”
의도한 건 아니지만, 과거의 싸움에 이어서 이번에도 같이 싸우며 포르투나를 관찰했다.
덕분에 그의 한계도 자연스레 느꼈다.
예를 들면, 범위가 좁은 공격은 특유의 감과 행운에 힘입어 절대 맞지 않지만, 광역 공격에는 속수무책일 때가 많다.
피할 수 있는 각도 자체가 없을 때는 행운도 별수 없다는 것.
일단 맞으면, 생각보다 허무하게 밀려난다.
마법 같은 힘으로 끈질기게 부활, 재생하는 것과 별개로 육체 자체가 극도로 튼튼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금강불괴(金剛不壞)?
겨우 단단한 돌 수준의 내구력이 이 수준의 싸움에서 의미가 있을까?
손가락 하나가 건물보다 튼튼한 성모도 속수무책으로 몸이 터지고 쪼개지는 판인데!
시간을 돌리기 전에 선대 지혜에게 순식간에 당했다는 가인 씨의 말도 이해가 갔다.
방주와 합일한 선대 지혜는 칼질 한 번에 도시 단위의 파괴를 일으켰다고 하니, 피할 방법이 없었겠지.
“아까보다 회복이 느린데?”
“너도!”
성모도, 포르투나도 회복하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뒤편의 나는?
“…”
아까부터 현기증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다.
금지된 고기, 금지된 물을 향한 식욕이요, 갈증이다.
명경지수의 도움 없이 불길한 상상을 너무 오래 쓰고 있어.
여기서 더 맛이 가면 내 팔을 뜯어먹을지도!
“슬슬 끝냅시다.”
벼락같이 달려든 포르투나의 마지막 공세.
성모는 피할 기운조차 없는지, 흑기사의 강맹한 검격을 몸으로 받아냈다.
— 콰지직!
클리포트 크리스털이 붕괴하며 셀 수 없이 많은 조각이 사방에 흩뿌려졌다.
이번에는 크리스털이 더 이상 재생하지 못했다.
폐허가 된 달 교회, 사방에 흩어진 보라색 광석들.
뒤늦게 찾아온 고요함.
곧, ‘포르투나’의 상징과도 같았던 칠흑의 갑옷이 안개처럼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각성의 한계는 여기까지였구나?
그 모습을 본 불경한 피조물 또한 흐릿한 신음과 함께 거품처럼 보글거리며 무너졌다.
성모도, 불경한 피조물도, 포르투나도 사라졌다.
남은 것은 나와 살짝 겁먹은 기색의 소년뿐.
“누나! 이, 이제 끝난 거죠?”
“… 승엽이니?”
“네, 네!”
“…”
진짜 이상해.
분명, ‘누군가의 행운은 누군가의 불운이다. 다음번에도 나는 운이 좋고, 너는 불운하다.’ 했던 목소리와 ‘이, 이제 끝난 거죠?’ 하는 목소리는 똑같아.
그런데, 실제 겪어 보니 포르투나와 승엽이는 분위기부터 완전히 달랐다.
전자는 지옥에서도 흑검을 휘두르며 악마를 도살할 것 같고, 후자는 전쟁터보다는 컴퓨터 앞에서 키보드 두드리는 모습이 어울렸다.
이래서 소피아가 승엽이를 보고 넋이 나갔구나.
승엽이가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다가왔다.
“누나? 괜찮아요?”
“…”
미안하지만, 여유롭게 대화할 상태는 아니야.
승엽이는 알고 있을까?
아까부터 저 애 옆구리 상처에서 나는 피 냄새가 무척 향기롭게 느껴진다는 사실!
실시간으로 내 판단기준이 뒤틀리는 게 느껴져.
빨리 명경지수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
“아!”
“누나?”
명경지수가 날 회복시키지 않고 있는 이유?
정의 재판에 의해 싸움이 끝날 때까지 정의의 축복을 쓸 수 없기 때문!
즉, 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팅!
사방에 흩어진 클리포트 크리스털의 잔해가 요사하게 빛나는 순간!
본능적으로 눈앞의 소년을 감쌌다.
— 우르릉!
세상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느려진 듯한 오묘한 감각 속에서 체감한다.
성모의 마지막 발악.
사방에서 폭발하는 크리스털의 잔해.
아직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는 소년.
이런 걸 주마등이라고 하는 걸까?
충격파가 장내를 휩쓴다.
직후, 앞이 보이지 않았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승엽이를 감싸고 있다는 촉감조차 사라졌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지만, 고통조차 찰나.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엘레나 이바노바’라는 인간의 육신 자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처럼.
그렇다면, 지금 생각하고 있는 ‘나’는 대체 무엇인가.
…
내 마음과 손으로 빚어낸 불경한 피조물들.
애벌레, 나방.
우화(羽化)
…
불경한 상상이 공백을 채워감을 느낀다.
*
– 김아리
“곧 다음 구역입니다!”
에이디아가 말하기 전부터 이미 장내에는 긴장한 기색이 가득했다.
승강기 계기판에서 ‘죄인의 평야’라는 단어가 깜빡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로나 은솔이는 말할 것도 없고, 선대 지혜조차 표정을 굳힌 상태.
가인이의 추측에 따르면, 죄인의 평야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건 악령 무리라고 한다.
“이제 도착!”
— 덜컹!
승강기가 죄인의 평야에 도착한 직후.
“…!”
숨 한번 내쉴 틈도 없이 온 사방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습기 찬 종유석, 회백색 콘크리트, 오래된 나무와 썩어가는 풀, 성분을 알 수 없는 암석, 끈적이는 액체, 짠맛 나는 공기, 희뿌연 색체, 차가운 광석 –
한 자리에 모으기조차 힘든 수많은 물질이 생겨났고, 사라졌고, 다시 거품처럼 일어났다.
“으악!”
균형을 잃고 넘어진 은솔.
직전까지만 해도 단단했던 승강기 바닥이 질척이는 늪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옆에 있던 차진철이 즉각 잡아챘지만, 이번엔 차진철의 발아래가 아무것도 없는 공허로 변했다.
“아니 -!”
— 화르르!
즉각 신성한 태양을 소환한 가인이가 미로와 성모를 붙잡는 사이, 차진철은 아직 멀쩡한 벽면을 붙잡고 버텼다.
하지만, 바닥이 늪으로 변했다가 공허로 변하는 판에 벽이라고 멀쩡할까!
“내 쪽을 잡아라!”
선대의 단호한 외침.
입고 있던 옷이 기묘하게 펄럭거리는가 싶더니 선대의 몸이 허공에 고정된 상태다.
진철이는 이제야 살았다는 듯 선대의 팔을 잡고 버텼지만 –
이번엔, 하늘이 갑자기 먹구름으로 변하더니 벼락까지 떨어지기 시작했다!
— 우르릉!
“당치도 않구나! 당치도 않아!”
처음으로 듣는 선대 지혜의 당황섞인 목소리.
기나긴 삶 속에서 온갖 기괴한 일을 다 겪어 본 그에게도 작금의 일은 해괴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이곳은 ‘안정된 시공간’이라는 게 완전히 사라진 혼돈의 영역.
모두가 쉴 새 없이 변하는 주변 공간 때문에 혼란에 빠진 시점, ‘부등변다면체’가 불길한 위광을 뿜어냈다.
“이얍!”
온 정신을 집중하니, 사방에 불투명한 격벽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제야 동료들이 약간의 여유를 찾았다.
“이 벽은 안전한 것 맞지?”
잠깐 사이에 창백히 질린 은솔이의 질문.
이에 대한 가인이 나름의 분석.
“아리가 부등변다면체로 만든 벽이니까 괜찮을 겁니다! 그렇지?”
선대 지혜도 나름의 의견을 냈다.
“이 공간은 꿈과 현실의 경계와 같은 것…. 유산으로 만든 벽은 꿈과 전혀 다른, 독자적인 메커니즘이니 괜찮으리라 본다.”
벽을 만든 나는 정작 자신 없는데 자기들끼리 분석하는 모습 봐!
이거 무슨 지혜 카르텔 아니지?
어이없어하는 것도 잠시, 미로가 비명이라도 지를 것처럼 반파된 승강기 한구석을 가리켰다.
“저, 저게 뭐야!”
“…”
언제부터 이런 게 들어왔지?
아니, 그보다도….
이 비참한 몰골은 대체 뭐야?
썩어가는 뼈, 꿈틀거리는 살점, 촛불처럼 흔들리는 혼.
사람이라기보다 사람이었던 무언가.
“하나가 아니군. 당연한 말이지만 말일세.”
뒤늦게 주변 상황을 인지한 선대 지혜의 침중한 목소리.
그 말대로 시선이 향하는 ‘모든 장소’에 참혹한 몰골의 혼이 가득했다.
썩어 문드러진 채 고통만을 호소하는 정신들.
‘고통’이라는 개념을 사람의 형태로 빚어낸 것 같은 흉측한 존재들이 끊임없이 신음한다.
저들이 토해내는 절망이 곧 벽돌이요, 기둥이 되어 주변 공간을 끊임없이 변질시키고 있다.
가인이는 창백한 표정으로 전의 설명을 보충했다.
“전에 성모가 말했습니다. 함부로 탁 트인 공간으로 가지 마라. 셀 수없이 많은 영혼의 뒤틀린 꿈이 우리를 침식하게 된다.”
“트인 공간으로 나온 적은 없지 않았나? 승강기 안에 있었으니 말일세.”
선대 지혜의 말대로 우린 승강기 밖을 나간 적 없어.
승강기 자체가 뒤틀렸지.
“아무래도 밀도가 너무 높은 장소라 안전 장소가 사라진 것 같 -”
“우웩!”
“어엇, 에이디아!”
“성모!”
그때, 성모가 갑자기 무릎 꿇은 채 미친 듯이 토하기 시작했다.
핏발이 선 눈, 파들거리는 몸, 입에서 정신없이 토해내는 – 보라색 광물?
성모! 사람이냐 렙틸리언이냐는 둘째 치고 생물은 맞는 거야?
“꿈…. 꿈이 너무 많아….”
“승강기 복구할 수 있겠습니까?”
“너무…. 너무 많아요….”
“은솔아! 일단 -”
“피리 부를게!”
은솔이가 성모에게 찰싹 붙어서 안식의 피리를 사용했지만, 성모의 상세가 즉각 나아지진 않았다.
이곳은 꿈과 현실이 뒤섞인 영역.
성역으로 향하는 승강기 역시 하나의 꿈이며, 이 꿈을 만들어 낸 사람은 성모다.
달 교회에 이어서 죄인의 평야에서 연이어 승강기가 공격받으니 꿈을 만든 성모의 정신 역시 타격을 받은 게 아닐까?
심호흡하며 주변을 살폈다.
끝없이 울려 퍼지는 통곡.
온 세상에 가득한 뒤틀린 영혼들이 자아내는 지옥의 꿈.
이 폭력적인 악몽의 영향을 받으며 승강기를 다시 그린다?
폭풍이 몰아치는 데 그 속에서 섬세한 수채화를 그리는 것과 같다.
이래서 성모가 지금 승강기를 복원하긴커녕 숨만 헐떡이는 것.
어떻게 해야 해?
“후….”
한숨 쉬는 선대 지혜의 손에 나타난 낡은 상자를 보는 순간 깨달았다.
선대 지혜의 두 번째 유산!
모두가 약간의 기대감을 담아 상자를 바라보는 시점.
“…”
갑자기 상자가 사라졌다.
선대 지혜가 유산을 역소환했다?
은솔이가 어이없다는 듯 질문했다.
“뭐 하시는 거죠?”
설마 본인 유산 두 개라고 자랑하는 건 아닐 텐데, 이게 뭐야?
“소환하자마자 조언을 썼네.”
“아?”
“조커는 함부로 쓰지 말라는군.”
노인은 어깨를 으쓱하며 가인이를 보았다.
가인이는 잠시 고민한 후 비슷하게 답했다.
“조금 전, 조언을 썼습니다.”
“이곳이 ‘죄인의 평야’인 이유가 뭘까요?”
“오호?”
“악몽을 멈추고 승강기를 복원하는 방법은?”
“아하, 이해했네! 그거였군!”
뭘 이해했다는 거야?
이거 진짜 지혜 카르텔 아니냐고!
나, 현실로 돌아가는 대로 법을 만들든지 해야겠어.
대명사 금지법은 어때?
지혜 놈들이 ‘그거’, ‘이거’, ‘저거’ 이딴 표현 쓸 때마다 혀를 뽑아버리든지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