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25)
EP.626 626화 – 가장 오래된 소원 (7)
626화 – 가장 오래된 소원 (7)
– 이은솔
달은 이 장소를 죄인의 평야라 칭한다.
즉, 사방에 가득한 망령은 달이 보기에 ‘죄인’이다.
“달 내부 영혼 대부분은 방주가 떠난 후, 종말이 확정된 세상에 남은 생존자들입니다.”
방주가 떠난 후에도 세상에는 최소 수십억에 달하는 생존자가 남는다.
이들을 쉼 없이 삼켜온 것이 달의 역사.
“최근 루프의 생존자들은 아닐 겁니다.”
정확히 어느 시점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완성된 방주는 루프에서 이탈하기 전에 ‘종말을 부르는 빛’으로 지구 내 생존자를 학살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살짝 웃기지만, 아리나 할아버지는 ‘종말을 부르는 빛’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호텔에 들어왔었지?
그때는 둘 다 침묵하는 자가 아니어서 진상을 몰랐기 때문이야.
관리국이야 요원이 알든 모르든 전지한 호텔이 찰떡같이 알아듣고 적절한 유산 혹은 도구를 줄 것이라 기대한 것 아닐까?
“달의 관점에서 보면, 생존자 대부분은 관리국에게 버림받은 영혼입니다. 즉, 피해자이자 구원의 대상입니다.”
달은 생존자 대부분을 가련히 여겼다.
영원의 꿈을 통해 정화하고 달 교회의 신도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일.
우리가 보기엔 지옥이지만, 달은 이 과정을 정화와 재탄생 즉 구원이라 여긴다.
물론, 겸사겸사 본인이 성장하려는 욕심도 있을 테고!
“그러면 누가 죄인일까요?”
가인은 이 말과 함께 슬쩍 아리를 보았는데, 아리 역시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한탄했다.
“… 버림받은 관리국 말단들.”
관리국은 세상 전체를 지배하는 조직.
요원의 수는 극소수지만 직원의 수는 어마어마하게 많다.
관리국 소속이었으나, 그다지 가치 있는 인적자원이 아니었기에 방주에 탑승하지 못한 하위 직급 역시 엄청나게 많다.
이들은 달이 보기에 죄인이다.
아리가 어두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모두 달에 갇혀서 영원한 보복의 대상이 됐구나.”
“영원한 보복은 아니죠.”
성모의 목소리.
조금 전에 피리의 도움을 받은 덕에 살짝 정신을 차린 모양이네.
“뭐?”
“보복이 아니라 정당한 처벌이고, 형기(刑期)도 있어요. 죗값을 치르면 이들 역시 구원받고 달 교회의 일원이 될 수 있죠.”
모두의 시선이 성모에게 쏠리자, 성모는 재빨리 변명하듯 덧붙였다.
“… 제 생각이 아니라, 달은 그렇게 생각한다는 이야깁니다.”
흠칫!
하는 느낌과 함께 성모의 변화를 깨달았다.
과거 달의 관점을 기억해 내고 설명하는 모습.
자신의 설명이 우리에게 어떻게 느껴질지 깨닫고 변명하는 모습.
처음에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우리 말을 저항 없이 따랐는데, 지금은 너무나 제정신이잖아?
조금 전에 피리를 쓴 영향도 있는 것 같아.
가인이가 처음 했던 말이 생각난다.
‘피리 쓰지 마세요.’
경고를 잊은 적은 없어.
하지만 조금 전 상황은 너무나 긴박했다고!
온 사방에서 밀려 들어오는 악몽의 해일에 억눌린 성모가 당장이라도 혼절할 지경이었으니까.
성모가 아예 무너지면, 승강기는 영원히 사라지고 말아.
그래서 가인이도 피리를 쓰는 나를 보면서도 가만두었겠지.
“…”
피할 수 없는 선택의 반복이었지만, 그 결과 너무나 멀쩡해진 성모를 보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괜찮을까?
성모는 지금 속으로 무슨 생각 중이지?
— 끼리릭!
외벽을 긁는 섬뜩한 소리.
곧이어 겁에 질린 미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그런 설명은 됐어! 어떻게 해? 망령이 더 늘어났잖아!”
지금은 미로 말이 맞아.
죄인의 평야가 얼마나 가혹하고 무서운 장소인지는 아무래도 됐어.
중요한 건 어떻게 대응하냐의 문제!
“저것들은 본능만 남은 짐승이요, 야수에 가깝습니다. 사람이라기보단 광증에 시달리는 짐승이죠.”
참지 못하고 외쳤다.
“그래서!”
— 드르륵! 끼리릭!
“내가 지금 나가면 되냐? 각오는 끝났다! 별 조각의 힘이라면 -”
눈을 부릅뜬 차진철이 당장이라도 별을 소환할 기세로 외쳤다.
“싸울 생각 하면 안 됩니다! 싸우려고 하면 성모보다 훨씬 힘든 상대입니다.”
이 말은 이해했다.
성모는 강력할지언정 결국 한 사람이고, 죄인들은 숫자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어마어마한 망령이니까.
“피리를 이용해서 유혹해야 합니다!”
피리를 이용해서 유혹해라.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인이가 세운 계획을 이해했다.
곧, 가인의 눈이 ‘나’를 향했다.
아아….
그렇구나.
이번이 내 차례였네.
“누나.”
“가인아, 잘하고 와!”
빙긋 웃으면서 슬슬 사라지기 직전인 승강기 출입문으로 향했다.
“같이 가.”
어느새 출입문 밖에 나타난 불투명한 발판들.
뒤쪽을 보니, 아리가 따라오고 있었다.
“같이 해야지. 은솔이 너 하늘 날 수 있어?”
“없지.”
상상이 곧 현실로 변하는 공간.
달이 만들어 낸 꿈의 세계.
개인으로서 꿈을 가장 잘 다루는 존재는 누가 뭐래도 성모야.
그러나 한 손이 열 손을 당해내기 어려운 것이 세상의 이치.
셀 수 없이 많은 망령의 악몽 앞에선 성모의 꿈조차 채 몇초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아리가 부등변다면체로 안정된 영역을 만들어 주지 않으면, 난 승강기 밖에서 버틸 수 없어.
*
지옥의 꿈이 가득한 곳에서 성모가 승강기를 복원하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
따라서 누군가는 승강기 밖에서 죄인의 이목을 끌어야 한다.
누가 죄인의 이목을 끌 수 있을까?
바로 나다!
죄인이란 곧, 끝없는 고통 속에서 이지를 잃은 망령들.
이들이 간절히 갈망하는 것은 딱 하나, 안식이다.
안타깝지만, 피리의 힘으로도 이들을 생전의 멀쩡한 모습으로 돌릴 수는 없다.
접시가 깨진 정도를 넘어서 불타고, 으깨지고, 녹고, 섞인 끝에 흙 반죽이 되었기 때문이다.
회복시키기엔 너무 멀리 온 존재다.
그러나 고통을 잠시 멈춰주는 정도는 가능했다.
죄인들에게 이보다 더한 유혹은 없으리라.
죄인의 평야, 공략 제1단계.
“새장 속 카나리아.”
“그게 뭐야?”
“내가 붙인 작전 이름.”
거품처럼 끓어오르는 악몽으로 가득한 지옥.
나는, 부등변다면체가 만들어 낸 자그마한 새장 속에서 피리를 잡았다.
— 로오오!
피리 소리가 예전에 비하면 제법 유려했다.
“피리 실력이 꽤 늘었네. 설마 연습한 거야? 아, 대답은 필요 없어.”
그래. 유튜브 영상 보면서 연습했어.
“안식의 피리 쓸 때 연주 실력은 필요 없지 않나?”
그렇긴 한데, 맨날 쉭쉭 바람 새는 소리만 나면 너무 멋없잖아.
안식의 피리는 해신의 힘이 깃든 천고의 보물인데.
“… 죄인의 혼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어.”
몰려드는 망령의 수가 점점 더 많아진다.
평원의 풍경은 점점 사람의 정신이 감내할 수 없는 지옥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 끼익!
악몽이 파도처럼 몰려와 온 세상을 집어삼킨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고통의 소용돌이!
사람의 형상조차 잃은 무수한 형상이 비통하게 울부짖는다.
아아…!
보았다.
보고야 말았다.
만상의 고통을 빚어내는 자!
저런 존재를 막아야 한다고?
누가? 우리가? 가인이가?
“진정! 진정하고 피리에 집중해.”
“… 고마워.”
호텔에서 온갖 일을 겪으며 담이 꽤 커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수행이 부족했구나.
아리가 중간에 끊어주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
— 로오오…!
연주에 집중하며 억지로라도 다른 생각을 떠올리려 노력했다.
뇌리를 스치는 과거의 기억.
어린 시절부터 세간의 시선을 받아왔다.
대한민국 굴지의 대재벌 대양그룹 회장님의 피를 이어받았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해당 학교 사학 재단과 대양그룹이 어떤 관계인지 기사가 떴었지.
기분 전환 삼아 간단히 패션 좀 바꿨더니, 그걸 가지고 ‘재벌가 유행’이라며 잡지에 실리는 정도는 흔한 일이었다.
당시엔 내 행동 하나하나에 주목하는 언론을 보며 불쾌하기도 했지만….
인정하자.
약간의 우월감을 같이 느꼈어.
내가 이렇게 대단해?
나 진짜 대단한 집에서 태어났구나!
…
시선.
시선.
시선.
지금도 수많은 시선을 받고 있다.
그 수를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는 억겁의 망령이 나를 바라본다.
저들에게 나는 어떻게 보일까?
1,000년을 굶주린 아귀의 눈앞에 나타난 기름 뚝뚝 떨어지는 스테이크?
“…”
그래, 나를 봐.
저쪽에 뭐 있어? 없지?
내가 너희의 기름진 고기요, 달콤한 술이야.
그러니까 승강기를 보지 말고 나를 봐!
— 로오오…!
가련하기 그지없는 영혼들.
살아선 관리국에 버림받았고, 죽어선 달의 보복을 받는다.
달 교회의 신도들보다도 더욱 비참한 운명.
카나리아의 노래가 유구의 지옥 끝까지 퍼져나간다.
피리의 힘에 노출된 영혼들이 잠시나마 고통을 잊을 수 있길 바랐다.
…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까? 5분? 10분?
아까부터 머리가 지끈거려서 시간관념이 이상하다.
어라? 시간?
방금 뭔가 좋은 생각을 떠올린 것 같은데….
그 순간, 멀리서 들려오는 어렴풋한 소리.
— 덜컹!
“지금, 승강기가 이 공간에서 사라졌어.”
내가 이목을 끈 사이, 성모가 승강기를 복원해 출발한 모양이다.
“됐다, 됐어. 은솔아, 잘했어.”
“…”
한없이 지친 아리의 목소리.
오랜 시간을 함께해서일까?
아리 목소리만 들어도 대충 어떤 생각인지 느껴진다.
승강기를 보내는 데 성공한 것과 별개로, 우리가 살아남긴 어렵다고 생각 중이구나.
왜?
우리가 가진 그 어떤 힘도 무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리가 부등변다면체로 만든 새장.
피리의 힘으로 안정시킨 주변의 망령들.
두 유산이 만든 자그마한 기적은 때가 되면 끝난다.
— 탁!
“끝났어?”
“응. 더 불어도 피리에 남은 힘이 없어.”
“그래? 이제 어떻게 할래?”
“… 아리 네 생각은?”
“별거 없어. 자살이라도 할까?”
싱긋 웃는 아리 손끝에 나타난 냉기의 칼날.
오래된 피의 힘?
꽤 오랜만에 보는 느낌이네.
“여기서 자살하면 달이 집어삼키지 않을까?”
“그러게. 어떻게 해야 하지….”
쓴웃음을 짓는 아리를 보며 말했다.
“나한테 계획이 하나 있는데.”
“뭐?”
“가인이도 여기까진 생각 못 한 것 같아. 내가 조금 전 떠올렸어. 대단하지?”
“… 무슨 계획인데?”
“아주 위험해. 변수도 많고.”
“어차피 지금도 위험해. 변수는 다 지옥행뿐이고.”
“그러면 첫째.”
“첫째?”
“아리 넌 당장 ‘존재감 없는 소녀’ 쓰고 달려.”
“…”
“달리라니까?”
망령 상대로도 존재감 없는 소녀가 통할까?
아리도 모를 거야.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할 뿐.
아리는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새장 밖으로 말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등변다면체가 만들어 낸 새장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지옥의 꿈으로부터 날 보호하던 최소한의 안전망이 사라지면, 나와 지옥의 망령들 사이엔 그 어떤 장애물도 없다.
시선.
시선.
시선.
광기가 마치 파도처럼 몰려온다.
그 앞에서 나는….
— 탈칵!
언제나 내 머리 한 편을 지키던 소중한 브로치, ‘호접몽’을 사용했다!
다섯, 열, 스물, 서른 – 수십 마리의 ‘악몽 나비’가 신비롭게 나풀거리기 시작했다.
이 정도 수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해.
그러니까….
[탐욕의 손 : 1 -> 0]“소원 출력 최대!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 호접몽의 힘을 훨씬 더 강하게 만들어줘! 그리고 -”
이, 이런 소원은 좀 얌체 같긴 한데 가능할지도 모르니깐!
“혹시 가능하면, 달을 없애주실 수는 없나요?”
— 우르릉!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후자는 양심이 너무 없구나. 탐욕스럽긴 했다. 전자는 이루어졌다.]갑자기 푸른 브로치가 부들부들 떨더니, 그 속에서 엄청난 수의 나비 대군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 하핫! 고마워요!”
꿈을 다루는 내 실력은 성모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모자라지만, 때로는 양이 질을 압도하는 법.
몰아치는 악몽 나비의 폭풍 속에서 생각한다.
내가 구현하고자 하는 또 다른 악몽의 내용.
지성을 잃은 영혼은 곧 짐승과 같으니, 채찍으로 다스려야 하는 법.
망령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악몽을 보여주리라.
그 누구도 내 근처에 올 수 없을 만큼 두려운 꿈!
“…”
시
간
이
느
려
지
기
시
작
했
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