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28)
EP.629 629화 – 가장 오래된 소원 (10)
629화 – 가장 오래된 소원 (10)
– 차진철
종종 했던 생각.
누군가에게 20대란 인생의 황금기겠지.
내게 20대란 패배와 열등감으로 점철된 고통의 시기였다.
재능이 ‘살짝’ 모자란 사람의 고통을 아는가?
차라리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았다면, 깔끔히 포기했을지도 모르지.
180cm가 넘는 당당한 체격과 강골, 여기에 탁월한 힘까지!
내가 생각해도 감탄이 나오는 몸이다.
처음 격투기에 뛰어들 때만 해도 모두가 말했다.
‘장담하마! 너는 무슨 운동을 해도 대성한다.’
‘이야! 형님, 미리 사인 좀 해줘요. 언젠가 형 사인이 되게 비쌀 것 같은데!’
모두의 칭찬과 기대, 부러움 섞인 눈초리를 기억한다.
이런 것들이 안타까움과 동정, 약간의 비웃음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기억한다.
…
새삼스럽게 과거의 열등감을 고백하려는 건 아니다.
많은 고민이 그렇듯, 지금 다시 생각하면 별것도 아니었다.
세상에 인생 잘 안 풀린 운동선수가 어디 한두 명이냐?
다만, 저 시절 품었던 마음가짐 자체는 지금도 ‘차진철’을 이루는 큰 조각이다.
나아가고 싶다.
지금보다 더 대단한 존재가 되고 싶다.
유치하게 무슨, 가인이보다 세지고 싶다는 이런 게 아니야.
비교 대상은 언제나 과거의 나.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보다 뛰어나길 바란다.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보다 뛰어나길 바란다.
*
요동치는 태풍과 같은 ‘모순’의 어마어마한 존재감!
‘무수한 정신이 발생과 소멸을 반복하는 자아의 군집.’
‘공존할 수 없는 갈망을 동시에 느끼기에, 자신이 진실로 무엇을 바라는지 논할 수 없게 된 존재.’
이, 이건 가인이가 모순에 대해 떠올린 생각인가?
‘분열된 정신.’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작은 정신들.’
‘모든 방향으로 발산하는 충동.’
‘상반된 목표.’
‘쪼개진 욕구.’
‘물을 마시면서 뱉고자 한다.’
‘앞으로 걷는 동시에 뒤로 걷고 싶다.’
‘잠을 자면서 깨어있고 싶고, 삶과 죽음을 함께 얻길 바란다.’
으윽!
평소에도 가인이가 똑똑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이건…!
의식의 공유가 이루어지자 상당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아까, 왕관의 이치에 대한 터무니없는 고찰을 들으면서도 생각했지.
가인이는 단순히 머리가 좋다 이런 게 아니야!
오감을 초월한 인지, 나로서는 해석할 수 없는 정보.
알 수 없는 정보를 끊임없이 해석한 끝에 도달하는 기이한 결론들.
폭발적으로 발산하는 정신!
자아의 출력 자체가 강하다.
지혜의 축복에 장기간 노출된 결과물인가?
덕분에 이 공간에서 가인이의 ‘목소리’가 무척 크게 들렸다.
반대로 말하면, ‘내 목소리’는 무척 작았다.
급격한 정신적 피로를 느끼며 휘청이는 시점, 위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무엇을 바라는가?」
모순이 무엇을 바라냐고?
처음으로 든 생각은 의아함이었다.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너무 쉬운 질문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니까, 앞으로 가고 싶은 마음과 뒤로 가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생겨서 문제다?
그럼 둘 중 한 가지 생각을 바꾸면 되는 것 아닌가?
‘이게 대체 무슨!’
‘신이고 지랄이고 이런 미친놈 같으니!’
두 지혜의 짜증 섞인 반응을 듣자 뒤늦게 깨달았다.
모순의 질문이 쉬운 게 아니라, 내가 쉽게 해석했구나!
내가 이 자리에서 가장 똑똑해서?
아니다.
내가 ‘이계의 별 조각’에 대해 고민하며 했던 생각과 모순의 고민이 닿아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지 않은데, 빨리 이 정신 나간 신을 피해서 성역으로 가야 하는데!’
초조해하는 가인의 상념을 느끼며 결론을 내렸다.
지금은 내가 뭔가 해야 할 시점!
나를 믿고 의심하지 말자.
이 영역에서 확신이란 곧 목소리의 크기와 직결되는 문제니까.
곧, 위대한 자가 주목할 정도로 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답을 꼭 연구원이 줘야 합니까?
「누구든 상관없다. 그래서 너희 모두를 이 자리에 초대했노라.」
그러면, 내가 아주 쉬운 답을 드리지.
모순이여!
당신이 품은 문제는 무엇인가?
공존할 수 없는 무수한 충동, 끝없이 분열된 정신이 가하는 혼란입니다.
당신은 이 혼란을 극복하길 바랍니다.
이에 대한 답은 간단합니다.
모순적인 갈망 중 하나를 포기 혹은 파괴하는 것!
「…」
침묵하는 모순.
허나, 강렬한 ‘실망’이 이 공간을 지배한다.
모순은 내 답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여긴다.
하지만….
때로는 백문이 불여일견인 법!
직후 – 두 손 위에 나타난 안개처럼 꿈틀거리는 부정형의 유체.
신비롭게 빛나는 ‘꿈’을 본 모순 역시 흥미를 표한다.
나는 꿈을 움켜쥔 채 간절히 소망했다.
호텔의 가장 상석에 앉은 분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내게 궁극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모순조차 인정할 수 있는 위대함의 편린을 보여주소서.
열 번째 꿈이 빛난다.
삼천세계를 위해 눈물 흘리는 자의 붓이 나를 덧칠했다.
직후 – 불현듯 떠오른 강렬한 확신을 느끼며 ‘이계의 별 조각’을 소환했다.
— 콰직!
‘으악! 진철 형!’
별 조각이 두개골을 으깨며 두뇌 한복판에 박혔다!
*
.
..
…
이계의 별 조각에 대해 나는 어떤 생각을 했더라?
사람이라는 틀에 갇혀있으면 제대로 쓸 수 없는 유산.
추한 몰골의 괴물로 변해 세상 전체를 뒤틀었던 원 사용자를 생각하며 내린 결론이었지.
아아….
내가 한 가지 중요한 점을 착각하고 있었구나.
별 조각을 제대로 쓰기 위해 필요한 건 육체의 초월이 아니다.
흉측한 괴물이 되고 말고 따위는 결과지, 원인이 아니었다.
궁극으로 향하는 진실한 길은 곧, 정신의 초월이자 아득한 자아의 현현이다.
심상 속에서 거대한 소용돌이를 본다.
용솟음치는 소용돌이로 변해가는 ‘차진철’을 본다.
견고한 정신으로 별 조각의 힘을 견디면서 사용한다?
전혀 아니야.
견디는 게 아니라, 별 조각이 불러낸 혼돈의 흐름에 같이 올라탄다!
…
인터넷에서 흥미로운 영상을 봤다.
아마존 밀림의 덩쿨 식물 근처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몇 달에 걸쳐 찍은 촬영분을 빠르게 재생한 영상.
보통 식물 하면 모두들 떠올리는 이미지는 어떻지?
흙 위에 움직임 없이 가만히 서서 햇빛과 물을 마시며 살아가는 존재.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풍경 속 일부요, 움직임 없는 정적인 생물.
초고속으로 재생한 영상 속 모습은 전혀 달랐다.
주변의 어린 식물 위에 넓은 잎사귀를 펼쳐 햇빛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은 기본이다.
꿈틀거리는 뿌리를 뻗어 다른 식물을 옭아매거나, 기기묘묘한 독소를 뿜어 일대 곤충 서식지를 파괴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영상 속 식물은 쉬지 않고 꿈틀거리며 사방을 기어다니는 초록색 촉수 괴물 그 자체였다.
이 모든 ‘투쟁’이 너무나 느린 속도로 이루어지기에 인간이 평소 느끼지 못할 뿐이다.
이렇듯, 속도란 세상의 모습을 전혀 다르게 보이게 한다.
사람의 눈에 식물은 너무나 느리다.
역으로 사람을 식물처럼 느리고 정적이라고 여기는 관점 또한 있으리라.
…
불꽃처럼 타오르는 정신.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 꿈틀거리는 소용돌이.
연산 속도가 빠른 그런 개념이 아니다.
사고의 전환과 폭, 갈망의 충돌, 달아오름과 식음 – 모든 변화가 너무나 혼란스럽고 폭력적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식물처럼 느리고 단조롭다고 여기는 또 다른 정신이다.
마치 외계 생물의 정신 같다.
생김새가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구조와 생각의 방식 자체가 인간과 너무 다르다고!
…
모든 방향으로 끊임없이 발산하며, 가능한 수많은 양태를 취하려 드는 혼란스러운 정신.
맹수의 고삐를 쥐었으니, 그 고삐의 이름은 ‘찰나’였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폭주하는 충동을 비슷한 속도로 가속된 이성으로 통제하는 그런 감각!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별 조각의 진정한 활용법을 나 혼자서는 터득하지 못해서 ‘꿈’의 힘을 빌렸다.
그리하여 불가해한 맹수가 내 안에서 깨어났는데….
맹수를 통제하기 위한 고삐가 기다렸다는 듯 진작부터 내 손에 있었다고?
이게 무슨 소리냐, 후원자는 처음부터 별 조각을 이런 식으로 쓸 수 있음을 알았다는 말이지!
하하!
이곳은 정말로 꿈이 인도한 궁극의 영역이다!
바로 그 순간.
「이제 내 질문에 답할 수 있겠구나.」
모순의 흡족함을 느낀다.
모순이 보기에 지금의 나는 위대한 자의 의문을 풀어줄 수 있는 존재였다.
「다시 물으마. 나는 무엇을 바라는가?」
이제 나는 문제의 답을 진실로 안다.
곧, 별 조각이 뿜어내는 변화의 파동이 일대를 집어삼켰다!
…
…
…
궁극의 끝.
위대한 영역에 어설피 다가갔던 정신이 다시금 인간의 영역으로 돌아간다.
흐릿해지는 의식 속에서 한탄하고 또 한탄했다.
내가, 내 힘으로 이 영역에 다시 도달할 수 있을까?
한 가지는 확실히 알았다.
위대한 영역을 알기 전이라면 모르되, 한번 경험한 이상….
나는 죽는 그날까지 이 영역으로 돌아오길 끝없이 갈망하리라.
그러므로 오늘의 경험은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자 저주였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234일 차
현재 위치 : 검색 중….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 덜컹!
“허억, 헉! 으아…!”
“잠깐만 쉬자!”
벌써 두 번째 휴식.
승강기를 만들고, 파괴당하고, 복원하는 과정에서 성모의 심신은 크게 쇠약해졌다.
또, 가장 깊은 바다에서 진철 형의 별 조각에 노출된 것도 상당한 타격인 모양이다.
불멸에 가까운 성모에게 어지간한 타격은 별일 아니겠지만….
아까 전, 진철 형이 발현한 힘은 평소 느꼈던 별 조각의 그것과도 또 달랐다.
마치 원초의 혼돈을 마주한 듯한 아득함.
“… 미로.”
정신없이 헐떡이는 성모를 지탱하며 미로에게 손짓했다.
미로는 조심스럽게 두 손을 펼쳐 ‘7’을 보였는데, 성모의 시간이 7분 남았다는 의미다.
다행히 성역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찰나의 침묵.
주변이 조용해지니, 자연스럽게 아까의 충격적인 일을 떠올렸다.
진철 형이 그러니까….
“아까 일어난 일 말일세.”
선대의 목소리.
“모순의 문제는 이름 그대로 공존할 수 없는 혼탁한 정신 그 자체였네.”
“그랬죠.”
“자네 동료 – 차진철은 모순적인 생각 일부를 쳐내라고 했지.”
“그건 오답이었을 겁니다.”
“맞아. 모순도 그리 여겼어.”
진철 형이 처음 낸 답은 오답이라고 본다.
“혼탁한 정신이 끊임없이 생기고 사라지고를 반복하는데, 그중 일부를 쳐내는 식으로는 끝이 없죠.”
“없애봐야 곧 다른 모순적인 정신이 생겨나겠지.”
하지만, 별 조각을 두뇌에 박아 넣은 후 알아낸 또 다른 답은 어떨까?
“자네 동료가 대체 뭔 짓을 한 건가?”
“… 잘 모르겠습니다.”
진짜 모르겠다.
그냥, 평소와 너무나 다른 파동이 별 조각에서 뿜어져 나왔을 뿐이다.
“뭔가 했어. 뭔가 했고, 그러자 모순이 갑자기….”
“…”
“대화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네.”
“그랬죠.”
“이전에는 최소한의 소통은 가능했는데, 그것조차 불가능해졌어.”
최소한의 소통조차 불가능한 무언가.
굳이 표현하면, 끊임없이 변화하는 소용돌이 그 자체.
“…”
“…”
나와 선대는 그 소용돌이로부터 이루 말할 수 없는 기괴함을 느꼈다.
“그게 답인 건가? 왜 답이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
“의문은 이쯤 하고, 왕자를 만나러 갑시다.”
“… 그래, 그래야지.”
다시 승강기가 출발하기 직전.
미로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가, 가인아….”
“…”
“진철이는 죽은 거야?”
“잘 모르겠어.”
죽은 건가?
아니면 살아있다?
혹은 그런 식으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상태?
모르겠다.
동료 위치정보로도 알 수 없었다.
— 덜컹!
“도착했습니다.”
왕자, 왕관 – 마지막 비밀이 숨겨진 지고의 영역.
성역에 도착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