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31)
EP.632 632화 – 가장 오래된 소원 (13)
632화 – 가장 오래된 소원 (13)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234일 차
현재 위치 : 검색 중….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 찰랑!
환영이 시작할 때 들려온 소리!
곧, 주변 풍경이 일그러진다 싶더니 시야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알레프, 어때?”
약간의 친근함마저 느껴지는 소년의 목소리.
아찔함을 느끼며 눈을 뜨자 화려한 금발을 자랑하는 소년이 보였다.
“… 왕자.”
“익숙한 기억이지? 이제 예전 생각이 좀 나?”
상태창 기록에 따르면, 왕자는 얼굴을 보아도 외견을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지금은 아니다.
환영에서 보았던 겁먹은 소년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 소년이 화려한 금발을 자랑하는 훤칠한 청년으로 변해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즉시 한바탕 할 기색은 아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느낌인데, 내게도 약간의 시간은 더 필요했다.
아주 오래된 기억을 떠올릴 시간이 필요했다.
“이건 순수한 호기심인데, 마지막 말은 무슨 뜻이었지?”
“…”
“지옥에서 나 자신을 구하기 위함이다. 이 말 말이야. 아직도 뜻을 모르겠어.”
“당시의 기억은 모두 잃었습니다. 내가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조차 지금 알았는데, 의미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건 또 맞는 말이네.”
순순히 수긍하는 모습.
내 말이 일리 있기도 했고, 거짓말 정도는 단박에 간파할 수 있는 모양이다.
왕자는 곧 본론으로 넘어갔다.
“너는 아직도 기억이 흐릿한 모양이지만, 나는 저 날의 일을 한 번도 잊은 적 없어.”
“…”
“오랜만에 만났으니 – 아, 아닌가? 시간을 돌리기 전에 한번 봤나?”
“… 글쎄.”
“하하! 아무리 호텔이라지만, 우주의 시간을 돌리는 도구가 있을 줄이야!”
“…”
“여하튼, 나는 당신이 내게 베푼 은혜를 잊은 적 없어. 사실, 저 이후로도 이야기가 좀 있지.”
“이후의 이야기?”
“별것 아니야. 당신이 날 거두어서 이것저것 가르쳤거든.”
“…”
“나는 한때 널 스승이자 아버지처럼 여겼어.”
과도할 정도로 친근함을 표현하는 왕자의 태도.
전부가 거짓은 아니라고 본다.
사라진 시간대의 기록에 따르면, 왕자는 깨어나자마자 날 ‘성자’라 칭했으니까.
또, 동료를 인질로 잡는 등 그 어떤 안전 조치 없이도 날 달 내부로 초대한 일도 생각하자.
성모를 공격하는 배신행위가 있었는데도 선대 지혜의 목을 가져가자 즉시 내 변명을 받아주고 용서했던 일도 있지.
요컨대, 왕자가 날 아군으로 여겼음은 분명한 진실이다.
“알레프, 나는 지금껏 너를 두 번, 혹은 세 번 정도 죽일 수 있었어.”
“그 부분은 내 생각과 다르군요.”
“하하! 내가 죽이려 했어도 버틸 자신 있었다?”
“…”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 해도 내가 몇 번의 기회를 포기했음은 변하지 않아.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
“내가 조금 전의 환영을 보여준 이유는 뭘까?”
“내가 ‘알레프’로 돌아가길 바랐습니까?”
“지금도 똑같아! 네가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면, 과거의 일은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지.”
어리석은 신하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는 듯한 당당한 태도.
왕자는 지금도 ‘알레프’는 자신의 편이라고 믿는다.
내가 왕자에 반하는 이유?
알레프 시절의 기억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전에 환영을 보여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보다 알레프에 가까워지면, 다시 왕자의 편으로 돌아서리라 생각하는 것.
하지만, 사라진 시간대의 내가 남긴 전혀 다른 느낌의 기록들을 생각하라.
과거의 내가 온전한 통찰로 보았던 참혹한 미래!
몸이 단박에 수백만 개의 살점으로 흩어진다.
육신은 없으며, 뇌만 뽑혀서 유리관에 갇힌다.
영혼만 남은 채 영원한 꿈에 사로잡힌 미래.
왕자가 알레프를 아낀다는 것은 잘 쳐줘야 ‘아끼는 애완동물’ 수준이며 심하면 ‘조금 비싼 물건’ 정도의 의미에 불과하다.
지금의 회유도 단순히 날 아껴서라기보다, 날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면 왕자를 압박하는 관리국과 약탈자 등을 쉽게 정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
생각이 여기에 닿았을 때.
“아아….”
왕자가 취했던 사람의 형상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우르릉!
거대한 진동이 성역 전체에 울려 퍼지는가 싶더니, 사방의 풍경이 변화한다.
일견 아름답기까지 했던 성역의 풍경이 삽시간에 폐허로 변하고, 닫혀있던 천장이 열린다.
따스한 온기나 주변을 밝히던 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남은 것은 창백하기 그지없는 얼어붙은 영역.
「안타까운 일이로다. 직접 여기까지 오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나?」
조롱과 비웃음, 약간의 안타까움이 뒤섞인 폭풍 같은 목소리!
— 라아아…!
기다렸다는 듯, 사방에서 달의 찬송가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끊임없는 노랫소리 속에서 끊임없이 확장하는 달의 형상!
「네가 죽고 또 죽으며 억겁의 시간을 낭비하는 사이, 나는 위대한 영역에 단 한 걸음을 남겼지.」
왕자의 말이 들려오는 순간에도 거침없는 공격이 이어졌다.
덕분에 난 선대 지혜를 잡아든 채 하늘에서 떨어지는 회백색 빛을 피하느라 정신없었다!
우습게도 작금의 ‘공격’은 달이 생각하기엔 공격도 아니다.
그저, 한때 스승으로 여겼던 필멸자와 척진 것에 대한 일말의 아쉬움을 드러냈을 뿐!
이곳은 상상과 현실의 경계가 흐릿한 공간.
왕자의 저 마음 자체가 내게는 신성한 태양의 힘을 빌려 정신없이 피해야 하는 공격이다!
「혹시 이런 착각에 빠졌나?」
다음 순간, 성역 전체가 멈췄다.
허공에서 – 온유하게 빛나는 왕관이 그 자태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대가 내게 왕관을 빼앗으면 된다?」
왕관을 바라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직전까지 들고 있던 선대 지혜조차 바닥에 내려놓은 채 왕관을 향해 걸어갔다.
영혼 끝까지 불타오를 듯한 격렬한 탐욕이 한순간에 내 이성을 집어삼켰기 때문이다.
내게 – 알레프에게 왕관이란 무엇인가?
이후에 있을 수백 번의 삶을 지옥에 밀어 넣는 한이 있더라도 얻고자 했던 보물!
넋 놓고 다가가 왕관을 매만졌을 때, 한 가지 차가운 진실이 드러났다.
아무 일도 없다.
아무 변화도 없다.
내게 왕관은 그냥 아름다운 금속 덩어리에 불과하다.
「어리석은 나의 스승이여, 애초에 왕위에 오를 자격이 있는 자만이 왕관을 쓸 수 있다.」
“…”
「왕족이 아닌 이가 제관을 갖추고 옥좌에 앉는다고 왕이 될 것 같으냐?」
최초로 영혼 결집체의 이치를 발견한 태고 문명, 그들은 회귀자를 ‘왕족’이라 여기며 신성시했다.
여기서 왕족이란 오직 태고 문명에 속한 회귀자를 뜻한다.
태고 문명의 파멸 이후에 발생한 회귀자가 아니고!
「모든 회귀자에게 왕족의 자격이 있다고 착각했구나! 알레프, 알레프, 나의 어리석은 스승이여!」
나는 물론이고 ‘첫 번째 나’라고 할만한 알레프조차 태고 문명 출신이 아니다.
이는 곧, 왕관을 쓸 자격이 없음을 뜻한다.
— 와락!
그때, 가만 서 있던 날 누군가가 낚아채고 빠른 속도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선대 지혜다!
“계획은 실패, 실패다!”
“…”
“왕관이 왕자에게만 복종하는 물건이었다니…! 애초에 이런 식으로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어!”
“…”
“어떻게든 탈출해야 한다, 다음, 다음 기회를 노린다면 -”
수압을 막아낸 도구에 이어서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양탄자 같은 도구를 꺼내든 선대.
속도만 따지면 어지간한 자동차 이상인 것 같긴 했다.
다만, 패배했다는 공포심에 휩쓸린 선대와 달리 나는 뒤편을 보고 있었기에 안다.
“뒤를 보시죠.”
이런 식의 도주는 아무 의미 없다는 사실을.
“무슨 – 아, 아…!”
왕자와 우리 사이의 거리가 조금도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 영역은 하나부터 끝까지 왕자가 창조해 낸 꿈과 같은 영역이다.
뛰어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왕자는 그저 선대의 마지막 발악을 조롱하고 있을 뿐.
곧, 아득한 손길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두려워 말라.」
“아, 아, 아…!”
「너희는 지극히 유용한 필멸자이니, 죽음은 끝이 아니다.」
“한가인 이놈아!”
「내가 너희를 다시 빚으리라. 너희는 무익한 과거를 전부 잊은 채, 오직 나를 섬기는 종복으로 다시 태어나리라….」
“진짜 왕관 하나 믿고 온 거냐?”
왕자는 승리를, 선대는 패배를 확신하는 이유.
달 공략의 핵심은 우리가 왕관을 얻어 왕자로부터 달의 통제권을 강탈하는 것.
마지막 순간이 되고 보니 계획은 근본부터 뒤틀려 있었다.
왕관을 얻을 수도 없고, 얻는다 한들 우리가 사용할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나도, 알레프도, 선대도 – 우리 중 그 누구도 태고 문명 출신이 아니니까.
왕관을 쓸 수 없다면, 달의 통제권 강탈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의 계획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
선대와 왕자의 착각.
나는 왕관의 특성, 태고 문명의 회귀자만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선임연구원 알레프 시절에도, 호텔 참가자 한가인 시절에도 두 번 다 알아냈다.
모르고 이 자리에 온 게 아니라 알면서도 왔다는 것
나는 ‘왕관’을 빼앗으려 온 게 아니야.
…
만물이 멈춘 듯한 찰나의 순간.
머나먼 과거의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통찰이 보여주는 환영일까?
아니면 왕자의 목적대로 내가 알레프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일까?
모르겠다.
이제부터는 의미 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폭풍우가 쏟아지던 날.
천둥소리를 들으며 절망하던 날의 기억.
…
사람으로 태어나 신비로운 지식을 얻었으니, 이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다.
이 우주에 셀 수 없이 많은 별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별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인류 보호국의 촉망받는 인재가 되어 출세 가도를 달렸다.
모든 이의 칭송을 받으며 더 없는 복락을 누렸다.
마침내 더욱 신비로운 지식 – 영혼 결집의 이치마저 알아냈다.
직후에 다가온 것은 더 큰 절망.
나는 별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별이 될 수도 없는 존재구나.
위대한 자로 태어나지 못했다.
왕관을 쓸 수 있는 왕족으로 태어나지도 못했다.
그런 인생, 그런 운명.
지옥에서 태어나 지옥으로 돌아감을 반복하는 꾸물거리는 애벌레.
…
별이 되고 싶었다.
저 하늘에서 영원히 빛나는 위대한 자가 되고 싶었다.
천국이 되지 못한 지옥에서 태어난 내 운명을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소원을 빌었다.
‘가장 오래된 소원’을.
“… 위대한 부처님.”
“무슨 말을 하는 건가!”
“당신이 정녕 대자대비한 존재라면, 만세의 구원을 꿈꾸는 분이시라면.”
“자네, 지금 헛소리할 때가 -”
“우주의 먼지와 같은 미천한 자들에게도 기회를 주소서.”
부처님!
당신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나이다.
왜 열반의 길을 선택받은 자에게만 내리셨습니까?
왜 날 때부터 혼돈에서 태어났거나, 태고 문명의 회귀자로 태어난 자만 열반에 들 수 있단 말입니까?
기회를 바랍니다.
육도윤회(六道輪廻)의 밑바닥, 지옥도(地獄道)에서 태어난 제게도 열반의 기회가 있기를!
그러므로 소원을 빌겠나이다.
내가 직접 열반에 들 수 없다면….
열반에 들 수 있는 자의 운명을 빼앗는 힘을 주시기를!
직후 –
한 권의 책이 펼쳐졌다.
황금으로 빛나는 하나의 문장이 그 빛을 드러냈다.
“하늘 아래 너뿐임을 알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