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38)
EP.639 639화 – 승천의 길 (1)
639화 – 승천의 길 (1)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355일 차
현재 위치 : 강원 특별자치도 속초시 설악산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달에서 현실로 돌아온 지 정확히 100일이 흘렀다.
나는 진철 형, 승엽이와 함께 설악산을 오르고 있다.
“후우우….”
등산하며 살짝 거칠어진 숨을 고르니 진철 형이 한마디 했다.
“설마 힘드냐?”
“엄청 힘든 정도는 아니죠.”
“히야….”
“왜 그러세요?”
“설악산 등산 정도로 힘들어?”
순간 어이가 없었다.
설악산 정도면 한국에서 꽤 험한 산에 속하지 않나?
힘들어서 바닥에 쓰러진 것도 아니고, 숨이 살짝 거칠어진 정도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것 같은데.
내 표정을 보고 무언가 느꼈는지, 옆에서 산책하듯 걷던 진철 형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놀리는 게 아니라 신기해서 그래. 비행기보다 빠르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초인이면 뭔가, 에베레스트산도 동네 뒷산처럼 올라야 할 것 같아서.”
“…”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는데, 논리적인 생각은 아니다.
신성한 태양과 마도서가 대단하든 말든 지금은 유산을 소환하지도 않았으니까.
“새삼 느껴지는구나. 우리의 능력은 뭔가 불균형한 것 같다.”
“예?”
갑작스럽게 시작된 이야기.
“나는 등산 정도로는 아예 땀 한 방울 흐르지 않거든.”
“그런 것 같네요.”
“반면, 너는 사람보다는 천사나 반신에 가까운 것 같은데 -”
“… 천사라니.”
“- 아직도 유산을 쓰지 않고 몸을 움직이면 금세 땀이 흐르고 숨이 가빠지는구나. 마치 사람처럼.”
“사람이니까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
“…”
몇 걸음 더 걸어간 후, 진철 형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너와 달리 난 정신적인 면에선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
정신적인 면?
맥락상 인내심이나 정신력 같은 일반적인 개념이 아니라 정신을 쥐어짜는 마법적인 힘에 대응하는 능력인 것 같다.
“아무래도 형의 축복이나 유산이 그런 쪽에는 도움이 안 되니까요.”
“하지만, 내겐 그런 형태의 성장이 필요해.”
“달에서 형이 경험한 ‘궁극의 영역’에 도달하기 위해서?”
“그렇지.”
진철 형이 궁극의 영역에 다시 도달하기 위해선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
그때, 근처에서 휙휙 뛰어가던 승엽이가 말했다.
“그냥 다시 머리에 꽂으면 안 돼요?”
“뭐?”
“재생력을 믿고 다시 머리에 구멍을 내서 -”
“…”
다시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진철 형이 크게 한숨 쉬었다.
“네 머리 아니라고 너무 막말하는 거 아니냐?”
“앗! 진철 형이 저번에 말했잖아요.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가 부족했다고!”
“야! ‘꿈’도 없는데 다짜고짜 대가리에 구멍 내서 별 조각 꽂는 게 용기냐?”
그런 건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니라 저능한 행동이 아닐까?
아닌가?
행운의 소유자가 하는 말이니까 이것도 뭔가 큰 그림일지도 몰라.
은근슬쩍 별 조각을 머리에 쑤셔 넣으면 뭔가 되는 것 아니야?
일단 머리에 구멍부터 뚫어볼까?
형이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면, 내가 레이저로 형 두개골에 –
“자, 자, 다들 조용.”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다.
항상 느끼지만 승엽이는 이게 문제야.
수시로 기괴한 소리를 하는데, 대부분은 아무 의미 없는 개소리지만 가끔 뜬금없이 정답을 찍지.
지나놓고 보면 와~ 승엽이가 이것도 맞췄었네? 역시 행운! 하게 된다.
하지만, 헛소리를 들을 당시엔 이게 큰 그림인지 헛소리인지 구분할 방법이 없어.
승엽이 말을 믿고 일단 진철 형 머리를 쪼개서 별조각을 박았는데 죽으면 큰일나잖아!
“특히 승엽이는 헷갈리게 하지 말고 입 좀 다물어 봐.”
“… 네.”
“그러니까 형 말은 이거네요. 형이 궁극의 영역에 다시 도달하기 위해선 ‘뭔가’가 더 필요하다.”
“그렇지. 그리고 그 ‘뭔가’는 필시 호텔에 있을 거야.”
“…”
“이 정도면 가인이 네가 아침에 한 질문의 답이 됐지?”
“가인 형이 무슨 질문 했어요?”
“3층에 갈 생각이냐고 묻더라.”
“…”
“간다. 난 무조건 간다.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결정을 끝내길 기다릴 뿐.”
승엽이가 말없이 고개를 숙이는 순간, 바닥에서 무언가 빛났다.
“… 또네. 무슨 스토커도 아니고.”
익숙한 – 너무나 익숙한 편지다.
“사랑하는 고객 여러분께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마침내 -”
“승엽아, 읽지 마라. 100번 넘게 읽어서 내용 다 외웠으니까.”
3층이 준비되었다는 호텔의 편지.
‘호텔’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뭐든지 상식에서 벗어나곤 하는데, 편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분명 주머니에 넣었는데 갑자기 책상 위에 나타나거나, 집에 두고 왔는데 지금처럼 승엽이 눈앞에 나타난다.
마치, 3층이라는 키워드를 우리가 절대 잊지 못하게 하려는 것 같아.
“승엽아.”
“네.”
“넌 어떻게 할 생각이야?”
“…”
“뭐라 할 사람 아무도 없으니까 솔직히 말해줘.”
“… 제가 갑자기 사라지면.”
“사라지면?”
“부모님이 걱정하시지 않을까요?”
“그래, 그렇겠네.”
현실의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3층에 가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심리였다.
승엽이가 미안한 듯 살짝 고개를 숙이며 앞질러 간 사이, 진철 형이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겠지.”
“…”
“승엽이처럼 가족을 만든 사람들은 3층에 가는 걸 두려워할 거야.”
“그렇겠네요.”
“따지고 보면, 너랑 내가 특이한 거 아니냐?”
“그런가요?”
“3층에 오를 명확한 동기가 없다면, 꺼리는 반응이 정상이겠지.”
3층에 오를 명확한 동기라….
에이디아도 비슷한 질문을 내게 던졌었지.
‘대체 왜 그리도 3층을 가고 싶으신가요?’ 하던 목소리가 지금도 기억난다.
에이디아는 잘 있을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대낮인데도 창백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달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
오랜만에 발현된 통찰이 승엽이와 관련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
무언가를 두려워하며 떠는 모습?
*
「날짜 : 355일 차 -> 357일 차」
여의도 인근의 커피숍에서 미로, 아리, 송이와 만났다.
가게에는 언뜻 봐도 손님이 30명은 되어 보였는데, 아리가 즉각 관리국 특제 핸드폰부터 꺼냈다.
“세상 참 빠르게 회복했네. 지구가 멸망하느니 마느니 한 게 몇 달 전인데 벌써 커피숍에 자리가 없어?”
그 말과 함께 아리가 핸드폰을 조작하자 가벼운 최면의 힘이 퍼져나갔다.
채 3분이 지나기 전에 커피숍에는 우리만 남았는데, 민폐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송이가 장난스럽게 한마디 했다.
“우와~! 이 정도면 아리 네가 격리 대상 아니야?”
“왜?”
“민간인의 행복한 일상을 지키는 게 관리국의 의무일 텐데.”
“다들 너무 풀렸어. 소소한 긴장감을 깨워주는 것도 내 일이지.”
“그냥 영업 방해 아니야? 대 민폐!”
“민폐는 제국고 아이돌이야말로 역대급 민폐지.”
“꺄아아악! 아리 너 진짜!”
송이가 얼굴을 붉히며 아리 어깨를 잡고 흔드는 사이, 미로는 표정을 딱 굳힌 채 내 건너편에 앉았다.
“나, 마음의 결정을 내렸어.”
“…”
아리도 아니고 미로가 이렇게 진지한 표정을 지으니 영 어울리지 않았다.
“어떤 결정?”
“저번 주에 네가 전화로 물어봤잖아!”
“아 그랬지?”
“장난치지 마! 난 일주일 내내 고민했는데. 3, 3층에 갈 거냐고 했잖아!”
3층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자마자 천장에서 무언가 떨어졌다.
“으엣?”
“사랑하는 고객 여러분께 기쁜 소식을 -”
한 문장을 읽기도 전에 아리가 편지를 치워버렸다.
“얘네 진짜 스토커야?”
“미로 말이나 듣자.”
자연스럽게 모여든 세 사람의 시선.
미로는 부끄럽다는 듯 살짝 시선을 돌린 채 답했다.
“나, 오랫동안 내면의 나와 대화했어.”
“내면의 너라면 괴담 미로?”
달에서 ‘영원의 지옥’을 겪으며 피폐하게 뒤틀린 괴담 미로.
그녀는 아직도 정상이 아니지만, 어린 미로와 최소한의 소통은 가능한 것 같았다.
“그 가엾은 애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지 이해하려 노력했어….”
감수성 풍부한 나이답게 미로는 눈물까지 글썽이기 시작했다.
주변의 반응은 전혀 달랐는데, 나와 송이는 물론 아리까지 어색한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 가엾은 애?”
“아리 넌 미로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
“과거의 내가…. 세상의 혼돈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
아리는 참기 힘들다는 듯 입만 뻐끔거렸는데, 미로에게 관대한 아리답게 결국 입을 다물었다.
“이 세상은 악의 소용돌이로 가득하고, 달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해. 지금도 어둠 속의 누군가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는 사악한 씨앗을 뿌리며 -”
와, 이런 말을 미로에게 들으니까 진짜 무지하게 어색한데?
기다렸다는 듯, 탁자에 희미하게 빛나는 글씨가 생겨났다.
「가인 오빠, 얘 미로 맞아요?」
“… 미로 네 말은, 달이 사라진 후로도 현실에는 혼돈재해가 가득하다는 이야기지?”
“응!”
“그러면 3층보다는 현실에 남을 생각이야?”
현실의 혼돈을 해결하기 위해 현실에 남겠다는 말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아니? 3층에 갈 건데?”
“어?”
“아?”
나는 물론 아리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어둠 속 악의 세력에 대해 열심히 말했잖아. 그 녀석들 때려잡으려면 여기 남아야 하는 것 아니야?”
“타락이란 음지에서 끝없이 자라나는 버섯과 같으니, 드러난 타락을 아무리 불태워도 끝이 없노라….”
“지금 괴담 미로가 한 말을 그대로 읊는 거지?”
“… 타락의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버섯을 만드는 균사체를 제거해야 한다. 그 길은 우리 손에 없으며 -”
“괴담 미로가 3층 가래?”
“자꾸 내 말 끊지 마!”
미로가 생각하기엔 ‘멋있는 말’을 하는 중인데 아리가 자꾸 말을 끊으니 삐진 모양이네.
별개로 미로의 말 자체는 쉽게 이해했다.
혼돈으로 가득한 세상.
달은 가장 큰 위협이었을 뿐, 위협의 전부가 아니다.
약탈자들이 달을 피해 숨죽였듯이 – 이에 비견할 만한 다른 세력 또한 적지 않으리라.
그들 중 누군가는 또 다른 종말의 씨앗을 뿌릴지도 모른다.
그들 중 누군가는 알 수 없는 고대의 악신을 숭배할지도 모른다.
하나하나 때려잡는 식으로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싸움.
근본적인 해법은 어디에 있는가?
괴담 미로는 ‘호텔에서 무언가 더 얻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왜?
“아무렴 천국에 악마가 있겠는가.”
“흠….”
“… 과거의 내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야. 이 말을 끝으로 다시 잠들었어.”
부처는 천국을 만들고자 하며 천국에 악마가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막연한 이야기였지만, 그럴듯한 소리이기도 했다.
그때, 아리가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미로 네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
“으앗! 또 놀리려고 -”
“놀리는 게 아니야. 이런 생각이 들었어.”
“이런 생각?”
“지금의 너와 관리국 미로는…. 정말 같은 사람이었구나.”
“…”
새삼 나도 느꼈다.
살아온 시간과 경험의 차이 때문에 평소의 미로는 철없고 귀여운 소녀처럼 느껴질 때가 많지만, 그런 그녀가 성장한 가능성 중 하나가 괴담 미로다.
혼돈의 세력이 인류를 지배하는 꼴을 두고 보지 못해 호텔로 뛰어든 사람이 바로 괴담 미로가 아니던가?
그때, 송이가 장난치듯 말했다.
“그냥 가인 오빠가 간다고 하니까 너도 가는 것 아니야?”
“뭐, 뭣!”
“오빠가 현실에 남는다고 하면 미로도 남았을지도?”
미로가 얼굴을 붉히는 사이, 아리가 미로 편을 들었다.
“넌 현실에 남을 생각이면 수능 공부나 해.”
“응~ 대학 안 가!”
“공부도 안 하고 수능도 안 치고. 이게 요즘 고등학생인가? 나라가 진짜 망했네.”
“나라가 망하면 공부를 안 하는 나 때문이 아니야. 평일 대낮부터 침묵하는 자가 일도 안 하고 노니까 망하는 거지.”
“난 요즘 업무에서 반쯤 쫓겨났어.”
시답잖은 이야기 와중에 갑자기 튀어나온 진지한 이야기.
“뭐?”
“다른 침묵하는 자들이 날 은근히 밀어내더라.”
“…”
“최근엔 지배에게 이런 말도 들었어. ‘정체불명의 또 다른 지혜’를 3층으로 보내라.”
정체불명의 또 다른 지혜라….
“관리국이 오빠에 대한 정보를 다시 잃은 모양이네요.”
“구체적인 정보는 잃었지만, 분석을 통해 호텔파티 배후의 거대한 악을 인지하고 내게 경고한 거지.”
“거대한 악? 그거 가인이 말하는 거야?”
“큭! 농담도 참.”
“농담 아닌데.”
아리의 실없는 농담에 가볍게 웃었다.
관리국이 보기에 ‘우리’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강대한 혼돈체 아닐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때 되면 갈 생각인데 지배 그 인간도 참….
갑자기 현실을 떠나기 전에 요란스러운 일을 벌이고 싶어졌다.
하, 알레프식 매운맛 한번 보여줘?
세상을 3,000번 정도 말아먹은 것 같던데, 3,000번이 3,001번으로 바뀐다고 달라질 것 같냐고!
“뒤에 이런 말이 숨어있는 것 같았어. 가능하면 아리 너도 같이 가라.”
“…”
“내가 부담스러운 모양이지.”
송이가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전 참가자가 있던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닌 데 왜 그리 예민해? 애초에 본인들도 참가자면서!”
아리는 창밖으로 손을 뻗어 창백한 존재를 가리켰다.
“저걸 봐.”
“…”
“관리국도 바보가 아니야. 달이 사실상 관리국 위의 관리국, 현실에 강림한 신이나 다름없다는 사실 뻔히 알아.”
“…”
“우리는 에이디아의 동료나 다름없지. 지금이라도 달과 연락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하잖아?”
“그건 그렇네.”
“그러니까 경계하는 거야.”
“우릴 외계 신의 권속처럼 생각한다?”
“비슷하지. 그렇다고 죽일 수도 없으니, 제발 알아서 3층으로 떠나달라 하는 느낌.”
미로가 눈을 빛내며 아리에게 물었다.
“그럼 갈 거야? 갈 거야?”
잠시 침묵하던 아리가 담담히 답했다.
“미로, 나는 널 떠나지 않아. 알잖아?”
“아자!”
미로가 현실에 남겠다면 남고, 3층에 오른다면 같이 오르겠다는 식의 답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방금의 대답은 진실한 이유를 숨기기 위한 연막에 불과하다고.
아리에겐 3층을 가기 위한 별도의 목적이 있을 것 같았다.
미로처럼 거창한 대의가 있다기보다는 조금 개인적인 이유.
그래서 남에게 밝힐 수 없는 그런 것.
“…”
이건 단순한 직감일까? 아니면 통찰의 힘?
점점 나 자신도 그 둘을 구분하기 힘들어진다.
“송이 너는 어떤 생각이야?”
“3층요?”
“응.”
“글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이전에도 승천 권한을 얻은 파티는 더 있었잖아요?”
“그렇지.”
“권한을 얻었다고 모두가 3층을 택하진 않았겠죠. 분명 현실에 남아 잘 먹고 잘살겠다는 사람도 많았을 테고.”
“그렇겠지.”
“적은 수의 사람만 3층에 가는 경우가 많을 텐데….”
“…”
“그래서야 3층을 진행할 수 있나요?”
“그러게.”
나도 그 부분이 궁금하다.
“제 생각에 3층은 1, 2층과 굉장히 다를 것 같아요.”
“그렇겠지.”
“오빠! 그래, 그러게, 그렇겠지, 이런 대답 말고 뭐 없어요? 이쯤 했으면 만상에 통달한 현자처럼 말해야죠!”
“뭐?”
뜬금없이 만상에 통달한 현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아리가 내 목소리를 흉내 내며 말했다.
“그런가…. 그런 건가. 3층이라…. 그곳에는 너희가 모르는 수많은 비밀이 있지…. 거기까지 알았나? 네 추측? 맞췄다고도 틀렸다고도 할 수 있지….”
“…”
“달을 보라 했더니 손가락밖에 보지 못하는구나…. 두 눈이 멀쩡하나 장님과 다름이 없나니. 위대한 이치는 -”
“야, 야! 내가 언제 그렇게까지 말했냐?”
“비슷하지 않았어?”
“완전 비슷!”
“그냥 한가인 그 자체!”
미로와 송이가 적극 호응하자 나만 뻘쭘해졌다.
아무래도 통찰을 얻은 후 내 모습이 동료들에게 약간의 스트레스를 준 모양이다.
“미안한데 이번엔 진짜 전혀 몰라.”
아무리 통찰이라도 커피숍에 앉아서 3층이 어떤 장소인지 알아낼 수는 없다.
애초에 3층에 대한 통찰을 호텔이 허락하지 않을 것 같기도 했고.
“그리고 송이야, 중요한 질문이니까 정확히 답해줘. 3층에 갈 생각이야?”
송이는 담담한 투로 답했다.
“3층도 좋고, 현실에 남는 것도 좋아요.”
“무슨 -”
“무슨 일을 하든 모두 다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나뉘지 말고요.”
“…”
다섯 사람의 의견은 확인했다.
*
— 지이잉! 지이잉!
늦은 시각, 핸드폰이 요란히 울렸다.
전화를 받으니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잘 지내고 있나?
“… 전화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오랜만입니다.”
– 오랜만이네.
“요즘은 어떻게 – 아니, 그보다 절 기억하시는군요?”
– 잊을 이유가 있나?
“지금 당신은 방주가 아니지 않습니까?”
현실에서 꿈으로 빈 소원으로 인해 동료를 제외한 존재는 날 기억할 수 없다.
이 효력은 대단히 강력하며, 관리국은 물론 라이언 같은 다른 참가자들조차 날 기억하지 못한다.
– 방주는 아니지만, 동료긴 하지.
“…”
– 자네 입으로 한 말 아닌가.
그렇네.
내가 내 입으로 선대 지혜보고 동료라고 했어.
그 이후로 꿈은 선대 지혜 역시 내 동료라 판정하며 기억을 지우지 않는 모양이다.
내가 초래한 일이고, 실제로도 동료에 가깝다 생각하지만….
미묘한 긴장감은 어쩔 수 없었다.
“무슨 일입니까?”
– 기쁜 소식이네. 또, 자네에 대한 감사 인사이기도 하지.
“예?”
– 학교가 나타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