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41)
EP.642 642화 – 승천의 길 (4)
642화 – 승천의 길 (4)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358일 차
현재 위치 : 서울시 영등포구 딜라이트 호텔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좋은 질문입니다. 상계(上界)와 하계(下界)의 관계란 어떠한가?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 아래에서 위로 흐르지 않습니다. 위와 아래의 관계가 이와 같으니, 여러분의 걱정은 실로 무용한 것입니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답변.
호텔에서 셀 수 없이 경험한 선문답의 전형이라 살짝 당황했다.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동료들도 있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없어? 갑자기 상계가 어쩌고 하계가 어쩌고 해봐야!”
자칭 3층 지배인이라는 상대는 아무 반응이 없다.
마치, 이 정도면 충분한데 뭐가 더 필요하냐고 되묻는 느낌.
할아버지가 캐묻는 느낌으로 슬쩍 던졌다.
“3층으로 떠난 후에도 현실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혹시 이런 의미인가?”
즉각 반박한 사람은 의외로 승엽이였다.
“그럴 리 없어요! 라, 라이언이 말했잖아요? 3층으로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고!”
할아버지가 살짝 당황하며 답했다.
“어, 라이언은 아니고 아서였지. 라이언 아들 녀석이었는데 -”
“어쨌든요!”
승천자 중 그 누구도 현실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
정보 자체야 잘 알고 있었지만, 이 말을 승엽이가 했다는 사실이 살짝 놀라웠다.
동료에게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승엽이가 솔직히 기억력이 좋거나 하진 않으니까.
그만큼 이 주제에 대해 민감히 여기고 오래 고민했다는 이야기겠지.
그때, 묵직한 손이 승엽이의 어깨를 툭 쳤다.
“상현 형?”
“…”
형의 입이 강제로 닫혔기에 말은 하지 않았지만, 표정만 봐도 뜻을 알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된 것 같다. 나는 안심했으니까, 승엽이 너도 안심하렴’이라는 느낌.
그 반응을 보고 조금 전의 문장을 다시 생각하니, 마지막 문구가 떠올랐다.
‘여러분의 걱정은 실로 무용한 것입니다.’
형은 이 말을 ‘정확히 어떤 원리인지는 알려줄 수 없지만, 네 걱정은 3층에 와서 보면 큰 문제 아니다’라는 의미로 해석한 모양이네.
여기에 나도 내 나름의 해석을 전달했다.
“승엽아, 명심해.”
“네.”
“세상 그 누구도 3층에 대해 정확히 몰라. 라이언? 그의 상관 격인 선대 지혜도 3층을 잘 모르는데, 라이언이라고 뭘 알겠어?”
“… 그건 그렇죠.”
“부족한 정보로 아는 체했을 뿐이야.”
“그러면, 3층에서 현실로 돌아온 사람도 있을까요?”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아래에서 위로 흐르지 않는다….”
“형?”
“즉, 승천자는 현실에 영향을 끼치지만, 현실은 승천자에 영향을 줄 수 없어.”
이것이 내 나름의 해석이다.
그때, 송이가 슬쩍 끼어들었다.
“승엽아, 그리고 또, 음, 3층에선 티켓을 쓸 수도 있고, 얻을 수도 있잖아?”
“티켓이요?”
“예컨대 유미를 살린다거나….”
갑자기 유미 이야기라니?
이건 마치 ‘꿈으로 만든 가족을 신경 쓰느라 훨씬 긴 세월을 함께한 연인을 버릴 생각이야?’처럼 들렸다.
비슷하게 느꼈는지, 말하던 송이도 즉시 후회하는 표정을 지었다.
“미안. 내가 괜한 말을 -”
“… 그것도 중요한 이야기네요.”
다만 송이의 심리는 이해했다.
며칠 전에 내게 말하지 않았는가?
‘무슨 일을 하든 모두 다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나뉘지 말고요.’
다소 자극적이긴 했지만, 송이의 말 자체는 대단히 효과적이었다.
‘3층에 가지 말아야 할 이유’에 집중하던 승엽이에게 ‘가야 할 이유’를 되새긴 셈이니까.
전에 미로에게 들은 대화 내용이 슬쩍 뇌리를 스쳤다.
*
“왜 유미를 부활시키지 않은 게냐? 꿈으로 되살릴 줄 알았는데 말이다.”
“… 일회성이니까.”
“뭐?”
“꿈을 통한 현실 덮어쓰기는 딱 한 번의 루프에서만 가능하다고 상인이 말했잖아.”
“…”
“그런 부활은 싫어. 언젠가 유미를 깨운다면, 더 이상 헤어지지 않는 영원한 재회였으면 좋겠어.”
*
다소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흘러간 잠시간의 침묵.
모두가 ‘상계(上界)와 하계(下界)의 관계’라는 맥락을 고민 중인 것 같다.
위는 아래에 영향을 끼치나, 아래는 위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
쌍방향이 아닌 일방통행과 같은 관계.
알듯 모를듯한데?
그때, 은솔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것과 비슷한 이야기를 전에 누구랑 한 것 같은데.”
“누나?”
“잠깐만!”
누나가 인상을 찌푸린 채 고민에 빠졌다.
과거의 기억을 뒤지는 모양인데, 이런 반응 자체가 신기했다.
지배인이 들려준 이야기는 3층과 관련한 신비로운 정보인데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와 나눈 적 있다고?
“아으…! 왜 이렇게 기억이 안 나지? 비슷한 느낌의 대화였는데!”
누나가 답답해하니 보는 나까지 답답해졌고, 송이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언니, 대화라면 상대방이 있을 것 아니에요?”
“그렇지! 좋은 지적이야.”
“누님, 누굽니까?”
“소피아!”
“소피아라면 지금 병실에 있는데! 그 애도 돌처럼 굳었거든요.”
“참가자가 아니니까 굳은 거야 당연하고…! 그게 문제가 아니라 대화 내용이 뭐였지?”
갑자기 소피아라니?
예상치 못한 답에 다른 동료들이 살짝 당황했다.
나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놀랐다.
뭐지?
은솔 누나가 말하는 소피아와의 대화가 어떤 내용이었는지 알 것 같아.
현장에 내가 있었나?
아니지, 그랬으면 누나가 내 이름도 말했을 거야.
그 자리엔 없었지만, 올빼미의 도움을 받아 몽롱한 정신상태로 부유하며 들은 것 같다.
“…”
나까지 고민에 빠지려는 차, 할아버지가 누나의 팔을 잡았다.
“그러면 나중에 소피아에게 물어보자. 네가 잊었어도 소피아는 기억할지도 모르지. 지금은….”
아리가 다음 말을 받았다.
“옛 기억을 뒤지기보단 마지막 질문을 고민할 시점이야.”
기다렸다는 듯, 3층 지배인이 알림창을 보냈다.
「다음이 마지막 질문입니다. 신중하게 선택하시길.」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아리가 조심스레 말했다.
“마지막 질문은 3층 저주의 방에 대한 게 어떨까?”
할아버지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답했다.
“당연히 그게 제일 궁금하긴 한데, 말해주겠냐?”
“개별 방의 내용이 아니라 전반적인 테마 정도라면….”
“으음, 괜찮을지도? 다들 동의하지? 가인이 넌?”
“괜찮게 들립니다.”
모두의 끄덕임을 확인한 후, 이번엔 내가 손을 들었다.
물론, 손을 들기 전에 ‘타이밍’을 신경 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번 참가자들에게는 분명 특출난 면이 있고 -」
“세 번째 질문! 3층의 전반적인 테마와 -”
순간, 그럴듯한 단어가 떠올라 추가했다.
“- 3층에 오르기 전에 우리가 고민할 만한 화두(話頭)를 던져주시겠습니까?”
…
*
「날짜 : 358일 차 -> 362일 차」
달이 환히 빛나는 늦은 밤.
차가운 공기를 느끼며 강원도 태백산 인근을 거닐었다.
여유롭게 산보한 시간이 20분 정도였을까?
어디선가 반짝이는 불빛이 있어 다가가자 어울리지 않게도 ‘학교’가 나타났다.
또 5분 정도 걸어가니 운동장이 보였고, 중앙에는 모닥불과 테이블이 있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상관없네. 시간이 급한 것도 아니고.”
시간 이야기를 듣자 궁금해졌다.
“최근, 호텔에서 보낸 편지 내용에 각주가 추가됐습니다.”
“각주?”
“3층에 갈 셈이면 한 달 내로 오라더군요. 시간 낭비 하지 말라는 뜻이겠죠.”
“…”
“선대 당신은 어떻습니까?”
“난 날짜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아마도….”
“아마도?”
“재촉하지 않아도 곧 올 것 같으니 그렇겠지.”
상현 형이나 승엽이와 달리 선대 지혜는 현실에 아무런 미련이 없다.
그러니 재촉하지 않아도 언제든 3층으로 떠나겠지.
어쩌면 오늘 밤일지도 모른다.
“이런 데서 무슨 요리까지 하셨군요. 양꼬치?”
“터키에 가본 적이 없는 모양이지?”
“예?”
“쉬쉬 케밥이야. 뭐, 양꼬치라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군. 여기 앉게.”
선대 건너편에 앉으니 기름이 줄줄 흐르며 이국적인 향을 뽐내는 먹음직스러운 케밥 꼬치가 내 앞에 놓였다.
또, 황금색으로 번쩍이는 술 한잔도 다가왔다.
“한잔하게.”
주는 대로 가볍게 들이키다가 살짝 놀랐다.
맥주가 아닌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도 도수가 높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흙냄새인지 풀냄새인지 모를 이상한 향이 나서 다소 불쾌하기까지 했다.
“으엇! 이거 무슨 술입니까?”
“위스키. 스프링 뱅크 21인데…. 잘 모르나? 꽤 유명한 술인데.”
“으아…! 누가 이런 걸 양꼬치랑 마셔요? 당연히 콜라 아니면 맥주지.”
“…”
“뱉을 뻔했네.”
선대는 잠시 어처구니없는 눈으로 날 바라보더니, 한숨 쉬듯 중얼거렸다.
“말하는 꼴만 보면 진짜 스무 살인 줄 알겠군. 이제 막 술을 배워가는 나이 말일세.”
“칭찬으로 듣죠.”
이후에도 잡담을 잠시 나눈 후, 중요한 이야기를 꺼냈다.
“최근, 딜라이트에서 신기한 존재를 만났습니다.”
“신기한 존재?”
“자칭 3층 지배인이라 하더군요.”
“호오…. 숨겨진 NPC 같은 존재인가?”
호텔 층마다 두 명의 숨겨진 NPC가 있고, 두 개의 숨겨진 방이 있다.
“그건 아닐 겁니다.”
“하긴, 숨겨진 NPC가 벌써 나올 리는 없지.”
“3층에서 직접 찾아야겠죠. 말 그대로 안내인 혹은 하수인 같았습니다.”
“하수인?”
“배후에 정체불명의 존재들이 있더군요.”
“존재가 아니라 존재‘들’인가?”
“그들의 말은 제게만 보였습니다. 알림창의 형태였는데, 나중에 동료들과 대화해 보니 다들 본 적 없다고 하더군요.”
“뭐?”
“그때는 이게 왜 내게만 보이는지 신기했죠. 시간이 지나고 생각하니 -”
“통찰?”
“- 필시 그렇습니다. 그때는 즉시 알아채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아하!”
“뒤늦게 깨닫고 나니 이상하긴 했더군요.”
어쨌든 지배인은 ‘호텔 NPC’라는 직책에 얽매인 존재다.
때문에 모두에게 보이는 알림창에는 평범하게 공손한 호텔 직원 같은 말투의 문장이 나왔다.
내게만 보였던 알림창에 과하게 자극적인 문장이 나온 이유?
정상적인 소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배인을 불러낸 사람은 은솔 누나인데, 내게만 보이는 정보가 있다는 것도 특이한 일이었지.
돌이켜보면, 해당 정보의 근원이 탐욕의 손이 아니라 통찰이었다는 증거들이다.
통찰이 보여주는 환영을 다른 것과 착각하는 일은 이전에도 종종 있었다.
이번에는 하필 ‘알림창’이라는 형태로 보여주니 조금 늦게 깨달은 것.
“종종 있는 일이네. 통찰은 때로는 꿈처럼 모호하고, 때로는 현실처럼 생생하지. 나도 이게 내 착각인지, 감인지, 통찰인지 혼란스럽곤 했어.”
“가능하면 시작할 때 ‘통찰 시작!’하고 알려주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하하!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했지. 하여튼 그놈의 새가 불친절한 건 알아줘야 한단 말이야.”
“그런 의미로 한잔하시죠.”
“좋지.”
선대와 함께 올빼미를 욕하다 보니 케밥이 이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통찰 덕에 지배인 배후의 존재를 깨닫고 나니, 또 재밌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일 것 같습니까?”
“자네 지금 나한테 퀴즈 내나?”
선대의 어이없어하는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의도한 건 아닌데, ‘한번 맞춰봐라.’는 식의 말투였네.
혹시 내가 동료들에게도 이런 말투를 가끔 쓰나?
그래서 며칠 전에 아리가 장난친 모양이다.
앞으로도 계속 써야지.
“하하! 이게 지혜죠.”
“허! 무슨 말 하려는지는 알겠네.”
“뭡니까?”
“지배인 배후의 존재를 인지함은 물론, 그들의 의사까지 들었다라…. 통상적으로 통찰로 알 수 없는 정보군.”
“그렇죠?”
“통찰은 천리안이나 예지가 아니야. 아무 근거 없이 그 정도의 정보를 얻어낼 수는 없어. 다시 말해서 -”
“올빼미가 통찰이라는 틀을 빌려서 직접 알려줬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거든요. 제주도에서 말이죠.”
“…”
“지배인 배후에 누군가가 있다. 이들이 3층에서 변수가 될 것이다. 뭐 이런 거죠.”
“… 자네가 갈 3층 말고, 내가 갈 3층에도 있겠지?”
“아마도.”
“허! 이거이거, 우리의 후원자께서 언제나 그렇듯 굉장한 친절을 베푸신 것 같은데?”
“그런가요?”
“그런 의미로 한잔하지. 위대한 지혜의 영광을 위하여!”
“위하여!”
또 한잔했다.
다음으로 나온 이야기는 지배인이 전달한 정보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