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42)
EP.643 643화 – 승천의 길 (5) Fin
643화 – 승천의 길 (5) Fin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362일 차
현재 위치 : 강원특별자치도 태백시 태백산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다음으로 나온 이야기는 지배인이 전달한 정보였다.
“첫 번째 질문은 인원 이야기였습니다. 3층 특성상 인원이 부족할 때가 많은데, 이 경우 어떻게 진행하냐는 이야기였죠.”
“… 나와도 관련이 깊은 이야기군.”
“고민해 보셨습니까?”
호텔 3층과 ‘별개로’ 학교 3층이 형성되었음을 선대에게 들은 순간 직감했다.
아무래도 우리와 선대 지혜는 서로 다른 3층을 공략할 모양이다.
그렇다면, 선대는 혼자서 3층을 진행한단 말인가?
“글쎄, 그다지 걱정은 하지 않았네.”
“어째서입니까?”
“호텔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임무를 내릴 것 같진 않았거든. 어련히 알아서 하랴 싶었지. 새로운 동료가 생겨날 수도 있고, 어쩌면….”
“어쩌면?”
“나랑 비슷한 처지의 다른 참가자와 합쳐서 새로운 파티를 만들어 줄 수도 있겠지. 뭐, 아닐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누가 알겠나? 동료가 없는 것도 네 팔자니 혼자 진행하다 죽으라는 게 호텔의 뜻일지.”
“…”
아무래도 좋다는 듯한 선대의 태도를 보라.
호텔이 죽을 자리로 내몰아도 ‘이게 내 운명인가보다’하고 들어갈 기세가 아닌가!
살짝 당황했지만, 선대의 생각 자체는 어렴풋이 이해했다.
선대가 생각하기에 현실은 어차피 아무 의미 없는 허무한 공간이며, 오직 호텔만이 진실하다.
따라서 호텔이 안내한 장소가 설령 사지(死地)라 해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관점을 바꿔보면, 당연하다는 듯 3층에 가려 하는 나와 몇몇 동료들 역시 남들이 보기엔 이해하기 어렵겠지.
성모 역시 대체 왜 3층에 가려 하냐고 내게 물었다.
위대함에 대한 동경?
영웅의 길을 추구한다?
만상의 구원?
모두 그럴듯한 이유지만, 어쩌면 결론을 정해놓고 덧붙인 이유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 역시 내심 선대처럼 생각하는 게 아닐까?
세상은 공허한 환영이며, 호텔이야말로 단 하나의 진실이라고.
모르겠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마음이야말로 언제나 가장 큰 수수께끼였다.
“… 인원이 적으면 적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이점이 있다고 하는군요. 적정 인원을 선택하라고 합니다.”
“호?”
“수가 적어도 진행할 수 있는 모양입니다. 혹은, 당신에겐 새로운 동료가 기다릴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다행이군.”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진입할 사람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
“그렇죠.”
1층과 2층의 경우 ‘저주의 방’ 문을 여는 순간 전원이 입실했다.
3층부터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두 번째로 든 생각은 인원수에 따른 장점이 무엇이냐의 문제네.”
“흠….”
“인원이 많을 때의 장점이야 뻔하지 않나?”
“맞습니다. 전력 자체가 강하고 다양해지는 셈이니까요.”
“중요한 건 ‘인원이 적을 때의 장점’일 거야. 이 부분을 잘 이용해야 할 것 같군.”
— 탁!
웃음이 나와서 가볍게 탁자를 쳤다.
“뭔가?”
“동료들과 회의하며 내린 결론이 딱 그겁니다.”
“자네 동료들이 회의하며 얻은 결론을 내가 앉은 자리에서 내렸다?”
“그렇네요.”
“그래, 자네 동료들보다 내가 조금 더 똑똑해 보이나?”
“하하!”
“허! 나이로 치면 자네들 다 합쳐도 내가 더 많을 텐데 이 정도는 해야지.”
“그도 그렇군요.”
“또 물어보게. 보아하니 내 해석을 듣고 싶어서 온 모양인데.”
“무슨 말씀입니까? 잘 지내나 보려고 왔죠.”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말고.”
“뉴스에서 맨날 나오더군요. 독거노인의 고독사가 사회 문제라고….”
“놀리지도 말고.”
위스키 한잔을 더 마시며 말했다.
“두 번째 질문은 3층과 현실의 관계였습니다. 동료 중 현실에 가족이 있는 사람이 몇 명 있거든요.”
“아, 3층을 진행하며 가족을 볼 수 있냐 그런 질문이었나?”
“비슷한데, 좀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한 질문이었습니다.”
“뭐라던가?”
“상계(上界)와 하계(下界)의 관계란 어떠한가?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 아래에서 위로 흐르지 않습니다. 위와 아래의 관계가 이와 같으니, 여러분의 걱정은 실로 무용한 것입니다.”
“…”
선대는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위스키를 들이켰다.
이번에는 생각할 것이 훨씬 많았던 모양이다.
“지금 내가 할 말이 자네 말과 연관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듣겠습니다.”
“나는 학교의 존재 이유를 영웅의 양성이라 생각하네.”
“영웅의 양성?”
“‘학교’라는 이름을 생각하게. 말 그대로 영웅을 양성하는 학교처럼 들리지 않나?”
“음….”
“알아. 이름은 호텔일 때도 있고, 탑일 때도 있고, 아파트일 때도 있으니까. 당시엔 학교가 주기적으로 이름을 바꾼다는 사실을 몰랐거든.”
“이해했습니다. 아파트는 처음 듣긴 합니다만.”
“다만, 이름에는 분명히 의미가 있네. 학교, 호텔, 탑, 아파트…. 모두 의미가 있어. 우리가 아는 그 장소가 품은 여러 가지 특성을 드러내는 단어들이지.”
“학교라는 단어에도 의미는 있다?”
“그렇지. 나는 학교 혹은 호텔이 영웅을 길러내는 장소라고 믿네.”
“…”
재미있는 생각이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종종 했던 것 같기도 하고.
“또, 나는 이렇게 생각하네. 영웅의 양성은 1, 2층에서 끝났다.”
“…”
“2층을 돌파하고 탈출한 시점에서 우리는 모두 초인이며, 기세가 하늘을 덮는 개세(蓋世)의 영웅일세.”
“그러면 3층은?”
“1, 2층에서 보검을 정련했으니, 제대로 써야 하지 않겠나?”
“…”
“그게 바로 3층이야. 완성된 우리를 제대로 한번 휘두르기 위한 장소!”
“…”
“그래서 3층을 가고자 했네. 사람으로 태어나 위대한 운명을 얻어 지고한 자의 보검이 되었지. 보검은 곧 전장에 서야 하는 법.”
“보검은 전장에 서야 한다…. 3층에 가고 말고를 우리가 선택하는 이유는?”
“제 의지로 전장에 선 보검이야말로 진정한 보검이기 때문이지. 자네도 알잖나? 흔들림 없는 마음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뛰어난 무기일세.”
“…”
“강제로 떠밀린 자와 스스로 종말에 맞서는 운명을 택한 자는 전혀 달라. 학교가 보기엔 후자야말로 진짜 영웅이요, 보검이지. 그러므로 3층을 택한 자만 다음 기회를 얻는거야. 당연한 이치일세.”
3층에 대한 선대의 해석은 제법 신기하면서도 어딘가 그럴듯했다.
그의 생각대로 호텔이 영웅을 만들어내는 장소라면, 3층 진입 여부를 우리가 선택하는 건 당연하다.
남의 손에 떠밀린 자가 어찌 영웅이겠는가?
영웅은 자신의 의지로 환란의 소용돌이에 들어서야 한다.
선대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긴 시간 3층을 갈망해 왔다.
그래서인지 고민의 깊이 역시 그 누구보다 깊었다.
“내가 있어야 할 장소로 갈 뿐이야.”
“…”
“말하면서도 이게 자네가 얻은 정보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군.”
“연관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리 생각해 주면 다행이고.”
또 긴 침묵이 흘렀다.
이제 남은 질문은 단 하나다.
“할 말이 더 있지 않나? 그래 보이는데.”
마지막 질문을 꺼내려니 살짝 아쉬웠다.
이 대화가 우리의 마지막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 마지막 질문은 이거였습니다. 3층의 전반적인 테마와 우리가 고민할 만한 화두를 던져달라.”
“질문이 두 개인데?”
“2인분 같은 1인분을 받고 싶었거든요.”
“큭! 그래서 뭐라던가?”
“너희가 품은 최초의 소원을 되새겨라.”
“…”
“그 말을 끝으로 사라졌습니다.”
최초의 소원.
“소원이라…. 그래, 그런 말이 있지.”
“아리가 말하더군요. 당신이 소원에 대해 뭔가 아는 것 같으니 꼭 물어보고 오라고.”
“하하! 그래, 기억나네. 그 맹랑한 아가씨와 소원 관련 이야기를 했었지?”
선대는 케밥 꼬치를 한입 크게 베어 물며 말했다.
“그런데, 내가 아는 건 그때 다 말했네. 모든 참가자는 최초에 소원을 빌었다.”
“…”
“우리는 호텔에 소원을 빌었으면서, 소원을 빌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말았네. 슬프게도 말이지.”
다시금 뇌리를 스치는 호텔 시네마의 기억.
*
“몇 년 전부터 가끔 꿈을 꿨어요. 과거의 저 자신에 대한 꿈인데, 그때의 전 너무나 이루기 어려운 목표를 끝없이 추구해 왔죠.”
“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어요.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라 해도. 정작 지금은 그 꿈이 무엇인지도 모르겠지만요.”
*
당시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과거의 내가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안다.
“내가 직접 열반에 들 수 없다면, 열반에 들 수 있는 자의 운명을 빼앗는 힘을 주시기를.”
“그게 자네 소원인가? 꽤 흉악한 이야기로 들리는데.”
“과거의 저는 신이 되길 바란 모양입니다.”
“음?”
“근데, 당시의 제겐 위대한 자가 될 자격이 없었어요.”
“신기한 이야기군. 자세한 사정은 이번에 처음 듣는 -”
“그래서 태고 문명의 왕자를 격리 구역에서 탈출시켰죠.”
“무, 뭐, 뭐라고?”
“그리고 과거의 나는 오랫동안 현실에서 죽어 나가다가, 알 수 없는 시기에 호텔에 잡혀갔습니다.”
“아니 -”
“운명을 빼앗는 힘을 얻어서 나왔죠. 나와보니 왕자는 반쯤 신이 된 상태였고.”
“그래서 반쯤 신이 된 왕자의 운명을 빼앗았다? 그게 자네가 왕자를 쓰러트린 비결이었나?”
“자세한 사정은 지금 아신 모양이군요.”
“…”
선대는 한참 동안 말문을 잃은 채 붕어처럼 뻐끔거리다가 뒤늦게 한마디 했다.
“… 그래서 그놈의 신 한번 되겠다고 이 모든 난리를 만든 거야?”
“정확히는 과거의 내가 그랬습니다.”
“…”
“…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자네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개새끼야.”
“그게 전부?”
“당장 무간지옥에 박혀서 10만 년 정도 반성하게.”
“또?”
“나한테 사과할 생각은 없나? 내가 저놈의 달 때문에 현실에서 얼마나 오래 고생했는데!”
“죄송합니다. 이번 케밥은 제가 구워드리죠. 그리고?”
“… 됐네, 됐어. 보니까 인격이 사실상 바뀐 모양인데, 더 따져서 어쩌겠나.”
“하하….”
“늦게 태어난 내 잘못이지.”
다시금 고요한 시간이 흘러갔다.
선대는 연신 양꼬치와 위스키를 들이켰는데, 복잡한 마음을 정리 중인 것 같았다.
딱히 내게 적대감을 드러내거나 하진 않았다.
알레프와 나를 다른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리 생각하는 게 서로에게 편할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저 말고 다른 동료들도 다 소원을 빌었겠군요.”
“나도 빌었겠지.”
“기억나십니까?”
“오래전에 잊었네. 전혀 기억나질 않아…. 어쩌면 이것 역시 오랜 시간 날 위한 학교 3층이 나타나지 않은 이유일지도 모르지.”
“…”
“여러 동료의 힘을 빌린 자네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도 나름의 수단이 꽤 있네.”
“그렇겠죠.”
“덕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들어보겠나?”
“물론입니다.”
“종말 이후 세계.”
“예?”
“3층 관련해서 내가 얻은 건 이 여섯 글자가 전부야. 부족해서 미안하군.”
“… 아닙니다.”
3층의 테마와 관련한 두 가지 정보.
하나는 우리가, 다른 하나는 선대 지혜가 얻었다.
첫째, 최초의 소원을 되새겨라.
둘째, 종말 이후 세계.
“…”
“…”
한참 동안 두 남자가 테이블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고민에 잠겼다.
셀 수 없이 많은 생각이 떠올랐지만, 역설적으로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어떤 추측이 옳고 어떤 추측이 틀린 지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테이블 위의 케밥과 술이 전부 떨어질 무렵, 선대가 몸을 일으켰다.
“슬슬 가야겠군.”
“벌써 말입니까?”
“벌써라니? 늦어도 너무 늦었지.”
“정보를 많이 얻었으니 고민할 시간이 필요할 텐데….”
“더 고민한다고 뭐가 나올 것 같진 않군. 망상만 늘어나겠지. 이럴 때는 직접 부딪히는 게 답이야.”
“앞으로 하는 일에 행운을 빕니다.”
“좋은 인연이었네.”
미묘한 아쉬움과 약간의 씁쓸함.
선대와 함께 한 시간은 짧고, 그 짧은 시간조차 긴장을 푼 적이 없지만….
나는 이 사람을 동료처럼 느꼈고, 상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친근감의 원인은 뭘까?
같은 축복을 공유해서? 말이 잘 통해서?
모를 일이다.
학교를 향해 걸어가는 선대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선대, 우리가 앞으로 또 만날 일이 있을 것 같습니까?”
노인은 살짝 뒤로 돌아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누가 알겠나? 이 나이까지 살며 내가 깨달은 사실이 있다면, 호텔에선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일세.”
곧, 노인의 뒷모습이 흐릿해짐과 동시에 학교 전체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