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43)
EP.644 644화 – 승천(昇天)
644화 – 승천(昇天)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386일 차
현재 위치 : 서울시 영등포구 63로 50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선대가 학교 3층으로 떠난 지도 몇 주가 흘렀다.
“해바라기씨 좀 그만 좀 흘려. 새들은 왜 이렇게 다 흘리면서 먹는 거야?”
— 삐익!
“먹는 양보다 바닥에 떨어트리는 양이 더 많잖아. 여의도에 해바라기 농장이라도 지을 생각 – 앗!”
— 삐이익!
“하하! 느리구나! 그 정도 부리 속도로는 내 손가락을 물 수 없어.”
여의도 공원 벤치에 앉아 페로와 장난치며 시간을 보냈다.
“… 너랑 노는 것도 오랜만이네.”
현실의 싸움이 격해질 무렵, 페로는 언젠가부터 하는 일 없이 딜라이트에 머물렀다.
덩치 큰 새로 변신하는 앵무새 따위가 끼어들기엔 판이 너무 험했기 때문이야.
“3층에선 네가 할 일이 있을까? 어떻게 생각해?”
내 말은 무시하고 머리카락만 물어뜯는 모습을 봐.
이럴 때 보면 진짜 그냥 평범한 앵무새 같네.
벤치에 앉아 있으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추위가 몸과 마음을 가득 채웠다.
정말 아무것도 없구나.
이 도시, 이 나라에는 내 가족도 없고, 친한 사람도 없어.
가장 애착 가는 대상은 굳이 따지면 서울이라는 도시 그 자체다.
아, 신앙을 모으기 위해 세웠던 선라이즈 컴퍼니도 있긴 하네.
익투스는 아직 살아있을까?
찾으려면 찾을 수 있었겠지만, 현실에 미련을 남기고 싶지 않아 찾지 않았다.
살아있다 한들 별 의미는 없다.
페로는 몰라도 나에 대해선 진즉 잊었겠지.
“…”
내가 쓴 ‘꿈’의 결과다.
호텔 동료를 제외한 그 누구도 날 기억하지 못하게 했으니, 유의미한 인간관계가 생기려야 생길 수 없지.
애초에 꿈을 왜 이런 식으로 사용했던 걸까?
관리국의 눈을 피하고 싶어서?
그런 목적도 전혀 없진 않았겠지만….
꿈을 쓸 당시엔 내 다사다난한 과거에 대해 몰랐다.
“페로, 난 처음부터 현실을 떠날 생각이었던 게 아닐까?”
— 따각!
그때, 기다리던 사람의 인기척을 느꼈다.
“호루스 님, 오랜만입니다.”
“소피아, 그냥 이름을 부르라고 했잖아?”
“글쎄, 제겐 호루스 쪽이 더 익숙하고 편하네요.”
“그렇다면야….”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때?”
“네?”
“전에 나한테 말했잖아. 천국에 보내달라고.”
“…”
207호에서 태어난 소녀는 내게 말했다.
‘긴 세월 당신을 신으로 섬겼으니, 날 천국으로 보내주세요.’
“… 세상은 어디나 비슷하더군요.”
“그렇겠네.”
207호 후반 역시 21세기 지구였으니,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실보다도 당황스러운 건 여러분이었죠.”
“그래?”
“특히 포르투나.”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포르투나와 승엽이의 괴리감을 생각하면 모두가 말문을 잃곤 하는데,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도 좋았어요. 여러분이 어떤 사람들인지 많이 느끼기도 했고.”
“… 그렇게 말해주니 다행이네.”
다시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은솔 누나에게 들었겠지만, 우린 곧 떠날 거야.”
“‘언니’에게 들었어요.”
어머니가 아니라 언니라는 표현이 생경하면서도 그럴듯하게 들렸다.
“원한다면 -”
“저도 같이 갈 수 있다? 영혼의 함에 담겨서?”
“- 그래.”
승엽이의 유산, 영혼의 함.
엘레나의 영혼이 빠져나오며 지금은 비어있다.
영혼의 함에 소피아를 담으면 함께 3층에 갈 수 있겠지.
답변은 빠르게 돌아왔다.
“죄송합니다.”
소피아는 3층에 가지 않는다.
“… 그래, 그럴 것 같았어.”
현실로 돌아와서 육신을 얻은 후, 소피아는 딱히 우리와 붙어 다니지 않았다.
때로는 여행을 다니고, 때로는 관리국 연구원 일에 충실했지.
호텔파티의 일원이라기보다는 현실에 적응하려는 태도.
그때부터 모두가 어렴풋이 깨달았다.
소피아는 현실에 남을 생각이구나.
“짐작하셨군요?”
“현실에 적응하려는 것 같았어.”
딱히 이상한 선택은 아니다.
누가 이상하냐를 따지면, 호텔의 영광과 위험을 모두 알면서도 3층에 가려는 우리가 더 이상할지도 모르지.
애초에 내가 느끼는 3층에 대한 근원적 충동은 원인이 뭘까?
부처를 보고 싶다?
천국의 실체를 알고 싶다?
세상의 심오한 비밀을 깨닫고 싶다?
혹은, 어항 밖을 나가고 싶다?
“얼마 전에 은솔 언니가 한참 동안 절 붙잡았어요. 예전에 했던 대화가 기억이 안 난다, 기억나는 대로 말해달라는 거였죠.”
“들었어.”
“기억나는 대로 말씀드리면, 아마 ‘그릇 속의 찻잔’이라는 이야기였을 겁니다.”
“…”
“찻잔이 207호라면, 그릇은 현실이다. 현실의 주민이 보기엔 207호는 거짓된 환상이겠지만….”
“그릇 밖에는 테이블이 있고, 테이블 밖에는 방이 있다.”
“그렇죠.”
“…”
“다르게 비유하면 이런 거죠. 여러분이 말하는 ‘저주의 방’이 그림이라고 치면, 현실은 그림이 걸린 미술관입니다.”
“…”
“하지만, 더 위의 존재가 보기엔 미술관 역시 그림입니다. 호텔은 그림 속의 그림이고.”
“그렇겠지.”
“이 사실을 깨닫자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진짜 세상이니 가짜 세상이니 하는 고민은 의미가 없다. 영원한 방랑자가 되어 시공을 떠돌 생각이 아니라면….”
“적절한 세상 하나를 골라 정착해야겠다?”
“… 네. 제 답변이 도움이 되었나요?”
“물론.”
“마지막으로 도움을 드릴 수 있어 기쁩니다.”
대화가 끝날 무렵, 소피아는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내 쪽을 살폈다.
과거엔 날 따라왔지만, 이번엔 현실에 남겠다는 선택.
207호에 있을 당시의 소피아와 지금의 소피아가 여러모로 달라졌다는 증거다.
본인 말마따나 일종의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겠지.
완전한 이별은 아니라고 생각해.
소피아는 몰라도 우리는 현실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테니까.
“호루스 님. 당신의 미래에 영광이 있길 기도드립니다.”
“고마워.”
금발 아가씨가 떠나간 후, 빈자리에는 나와 한 마리의 앵무새만 남았다.
— 삐익!
“왜? 너도 3층 가기 싫어?”
— 삐이이익!
“넌 안돼. 소피아는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지만, 넌 무조건 우리를 따라와야 할걸?”
— 삑! 삐빅!
“너도 영웅이야? 영웅 앵무새니까 스스로 선택하는 거야?”
— 삑!
“그래, 그래. 히어로 앵무새 페로님, 같이 갑시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생각했다.
페로가 실제로 한 말은 뭐였을까?
해바라기씨가 다 떨어졌다?
아니면….
*
「현재 위치 : 서울시 영등포구 딜라이트 호텔」
딜라이트 호텔 로비에 도착하니 이미 동료들이 가득했다.
가볍게 손을 흔들다 보니, 로비 여기저기에 플래카드가 걸려있음을 알았다.
“뭐야 이거?”
미로나 승엽이 등은 플래카드를 보고 키득거렸는데, 내용을 보니 나도 헛웃음이 나왔다.
「영광스러운 침묵하는 자, 김아리 요원님의 오랜 공헌에 감사드립니다.」
여기까진 관리국 나름의 작별 인사 같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머나먼 길을 떠나시게 된 점, 큰 슬픔이 아닐 수 없습니다.」
“…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영원한 이별은 분명 아쉽지만, 김아리 요원님의 결단 덕에 지상은 큰 우환을 덜어낼 것이며 -」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는 소리만 두 번이네. 큰 우환은 뭐야?!”
송이가 웃으며 답했다.
“뭐긴 뭐겠어요? 우릴 말하는 거죠. 특히 오빠!”
“대놓고 우환 취급이네.”
「- 김아리 요원님의 이름은 ‘명예의 전당’에 영원히 기록되었습니다.」
“명예의 전당?”
묵성 할아버지가 헛웃음을 터트리며 설명했다.
“관리국에서 업적을 쌓고 죽은 사람의 이름을 기록하는 걸 말한다.”
“이미 아리는 죽은 사람 취급이군요.”
이대로 3층으로 떠나서 다신 돌아오지 말라는 관리국의 의지가 너무 적나라하게 느껴져서 되려 헛웃음이 나왔다.
“참고로 처음 왔을 땐 직원들이 폭죽까지 터트렸지.”
“…”
“아리가 다 쫓아냈다.”
슬슬 나도 웃음이 나와서 아리 쪽을 보았는데, 아리는 살짝 짜증 난 표정으로 플래카드를 떼어내고 있었다.
“3층에 가면!”
“음?”
“분명히 현실에 영향을 끼칠 수 있어. 틀림없어.”
“그렇겠지.”
3층 지배인이 간접적으로 전한 정보다.
이 해석은 모두가 동의했고, 그래서 현실에 가족이 있는 동료들도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진짜 서운해! 평생 봉사했는데 이런 취급이라니!”
“하하! 명예의 전당에 기록해 주겠다잖아? 고맙게 생각 -”
“3층 도착하자마자 전부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이런 소리를 하니까 쫓겨나는 거 아니야?”
“니가 할 말이냐고!”
이런 느낌으로 잠시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우리에 대한 관리국의 반응이 너무 적나라해서 웃기긴 했지만, 그 덕에 동료들의 긴장이 살짝 풀린 느낌이라 마냥 나쁘진 않았다.
어쩌면 관리국도 이걸 의도했을지도 – 아니, 이건 너무 과한 해석이네.
그 사이, 몇몇 동료들은 가족들에겐 어떻게 말했냐, 장기 출장 계획이 잡혔다고 했다는 등의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마침내 ‘3층’이라는 압박감이 동료들의 심혼을 억누르기 시작한 것.
— 꿀꺽!
여기저기서 침 삼키는 소리와 딸꾹질이 들려온다.
호텔 1, 2층과 현실의 시련을 이겨낸 동료들이지만, 그런 역전의 용사들에게도 3층이라는 미지의 영역은 쉽지 않다.
“출발합시다.”
진철 형이 가장 먼저 몸을 일으켰다.
“그래, 그래야지.”
할아버지가 턱을 쓸며 일어섰고, 진철 형은 엘리베이터를 호출했다.
— 띵!
마침내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들어갑시다.”
“… 다들 이쪽으로 와.”
살짝 창백해진 은솔 누나의 표정.
그러고 보면, 은솔 누나는 왜 3층에 가려는 걸까?
요전의 대화는 갑자기 등장한 3층 지배인으로 인해 멈췄었지.
이후에도 몇 번 물었지만, 어설프게 웃을 뿐 명확히 답하지 않았다.
뭐, 누나에게도 프라이버시가 있는 법이다.
때가 되면 다 알게 될 테니 재촉할 필요 없어.
모두가 긴장한 표정으로 엘리베이터 계기판 상단을 올려다보자 특이한 버튼이 보였다.
〚3층 : 천상〛
“볼 때마다 신기해. 천상이라니.”
“이래서 관리국 직원들이 ‘천상 층’이라는 표현을 썼죠.”
공사가 끝난 후, 엘리베이터에 천상 층으로 가는 버튼이 생겼다.
오직, 우리만 누를 수 있는 버튼이다.
“누를까요?”
“은솔아, 식은땀 그만 흘리고 눌러라. 누가 보면 누르자마자 벼락이라도 떨어질 줄 알겠다!”
“… 벼락 정도면 아무것도 아니죠.”
“언니, 그냥 눌러요. 점점 더 무섭잖아요.”
“미안.”
— 딸깍!
그렇게 버튼이 눌리는 순간.
— 두두두두…!
어마어마한 진동과 함께 엘리베이터가 터무니없는 속도로 치솟았다!
“으악!”
“꺄아아악!”
— 삐이익!
— 우당탕!
“내, 내 손을 잡고 -”
“가인아~!”
“미로, 가만히 있어!”
1초도 지나지 않아 전원이 엘리베이터 바닥에 널브러졌고, 미증유의 압력이 전원을 억누르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의식을 잃을 듯한 지극한 괴로움!
본능적으로 동료들이 유산을 소환했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으아…!”
이 비슷한 경험을 전에도 했어! 어디였지?
성역이다!
성역에서 ‘드높은 영역’으로 나아갈 때 느꼈던 고통과 똑같다!
고통의 유형은 비슷한데 강도가 몇십 배, 몇백 배 강해.
“…”
설마 엘리베이터에서 단체로 죽는 건 아니겠지?
위기 알림이 침묵 중인 걸 보니 최소한 내가 당장 죽을 위기는 아니다!
“으아…!”
끝없이 ‘위로’ 향하는 우리들.
어느새 엘리베이터가 사라졌고, 불가해한 인력이 우리를 알 수 없는 영역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지구는 진즉 사라졌다.
태양은 티끌보다 작아졌는데, 저 자그마한 ‘점’이 태양인지 아닌지도 불확실했다.
몇초가 채 지나지 않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반짝임이 주변을 스쳤다.
곧, 내가 수많은 행성과 항성 – 나아가서 ‘은하’를 보았음을 알았다.
아찔하다!
당장이라도 의식을 잃을 듯한 고통 속에서 새하얀 빛으로 가득한 건너편이 보였다.
“…?”
하얀 공간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창백한 직선 혹은 실이 보인다.
이게 대체 –
「조언 : 3 -> 2」
「너무 많은 것을 보았구나. 눈을 감고 귀를 막아라.」
“…”
그제야 내 얼굴 전체가 피로 물들었음을 알았다.
누군가는 날 위대한 영역에 반쯤 걸친 존재라 여기지만, 그런 내게도 지금의 풍경은 너무나도 아득했던 것.
하지만, 다음 질문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조언 : 2 -> 1」
‘저게 대체 무엇입니까?’
「전부.」
“…”
「조언 : 1 -> 0」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만 잠들라. 깨어나는 대로 네 동료들을 도와라.」
동료들을 도우라고?
그 말을 듣고야 내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음을 알았다.
이것이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