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46)
EP.647 647화 – 최초의 소원 (3)
647화 – 최초의 소원 (3)
– 김아리
김상현의 꿈에서 벗어난 후, 모두가 잠시 침묵에 잠겼다.
심해 호텔을 겪기 전, 최초의 소원을 빌 당시의 상현은 대체 무엇을 보았던 걸까?
“헉! 헉…!”
“형님, 괜찮으십니까?”
“야! 야! 의사 양반 상태가 좋지 않은데?”
“할아버지, 일단 상현 형을 데리고 나가셔야 할 것 같네요.”
“그래야겠다. 내가 밖에서 의사 양반을 진정시키고, 기억나는 게 더 있는지 물어보마.”
“나도 나가서 생각 좀 할게.”
“그렇게 하세요.”
자연스럽게 묵성, 상현, 진철 세 사람이 각자의 꿈으로 뛰어들며 꿈의 왕국에서 벗어났다.
“우리도 잠시 나갈까?”
가인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안돼. 올빼미가 깨어나자마자 동료들을 도우라고 했어.”
“…”
“몇몇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악몽에 시달리고 있을 거야.”
꿈의 왕국에서 벗어나기 직전까지 공포에 질린 채 숨을 헐떡였던 김상현이 좋은 예시다.
“악몽에 오래 있으면 정신에 악영향이 있으려나?”
“아마도. 빠르게 움직이자. 다음 사람은 -”
“미로에게 가자. 상현이를 보니까 미로도 소원이 두 개일 것 같아.”
“좋아.”
*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And a Happy New Year!
휘날리는 눈발, 경쾌히 울려 퍼지는 캐럴.
오랜만에 듣는 음악에 가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곳은?”
“미로의 학창 시절이네.”
다음 순간, 새하얀 벌판을 뛰노는 소년과 소녀가 나타났다.
10대 초중반 정도로 어려진 가인과 미로였는데, 두 사람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내가 있는 걸 보니 미로의 진짜 과거 시점이 아니야.”
“한빙지옥 시점인 것 같은데?”
심해 호텔에서 실패한 미로는 한빙지옥에 갇혔고,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묵성이와 나 그리고 가인이가 한빙지옥에 들어가서 미로를 구했었지.
이건, 우리가 미로를 구해낼 당시의 기억이다.
“나 먼저 들어간다?”
“정말 나만 두고 갈 거야?”
“…”
“You like me too, don’t you? Everyone likes me!”
“소용없다고 했잖아.”
멀리서 들려오는 풋풋한 대화.
당사자, 특히 미로에겐 제법 두근거리는 순간이었던 모양이지만….
“…”
관찰 중인 나로선 실로 얼굴이 화끈거렸다!
미로도 참, 어린 걸 고려해도 좀 심한 것 아니야?
‘너도 날 좋아해, 그렇지? 모두가 날 좋아해!’
이런 말을 맨정신으로 하다니!
*
그 사이, 주변 풍경이 마치 빨리 감기라도 하는 것처럼 휘리릭 지나갔다.
대부분 ‘괴물 산타’가 교사와 아이들을 해치는 장면이긴 했지만.
공포와 비명으로 가득한 학교.
아름다운 소녀의 손을 잡고 정신없이 달리는 소년.
어린 가인이는 미로와 함께 붉은 캐딜락에 앉지만, 어느새 가까워진 캐럴 소리를 들으며 도주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절체절명의 위기와 아득한 절망.
어린 미로가 공포에 질린 채 울부짖으려는 시점.
소년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돌아서서 어린 미로를 바라보았다.
“미로, 네가 착한 아이라고 생각해?”
“… 난 나쁜 짓 한 적 없어.”
“그래? 아주 착한 아이는 아닌 것 같던데?”
“시비 걸지 마!”
“하지만, 저런 괴물에게 하염없이 죽을 만큼의 악인도 아니지. 한 번 더 해보자.”
“아, 아까부터 대체 무슨 말이야?”
혼란에 빠진 미로를 바라보며 소년이 싱긋 웃었다.
“See you later! Everything will be fine. 이 말에도 마법의 힘이 깃들기를!”
바로 이 순간, 미로의 두 번째 소원이 태어났다.
*
“…”
“…”
고요한 침묵.
가인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바닥만 보고 있고, 나는 헛웃음만 연거푸 터트렸다.
결국 내가 침묵을 깨트렸다.
“이야! 가인이 대단해!”
“…”
“너무 멋있는 것 아니야? 이러니까 미로가 단박에 반했지.”
“이건 실패했던 시도였는데.”
“한빙지옥에서 탈출할 때 이 기억도 되찾은 모양인데? 본인이 사랑에 빠지던 순간!”
“…”
“미로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것 봐. 얼마나 깊이 몰입한 거야?”
“…”
“밖에 나가서 미로에게 물어봐야지. 이때 어떤 기분이었냐고.”
“제발 그러지 마….”
가인이를 놀리며 장난스러운 분위기를 유도하긴 했지만, 내 기분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적어도 겉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즐겁지 않은 것만은 확실해.
미로도 참, 왜 하필 얘를 좋아하는 거야?
물리적인 나이는 피차 무의미하다 쳐도, 하다못해 정신연령이라도 비슷한 사람을 –
“…”
생각해 보니 이건 무리네.
아무리 그래도 승엽이를 이성으로 좋아하긴 쉽지 않지.
그런 일이 벌어지려면 승엽이에게 최면술이 필요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후유…. 정황상 이건 두 번째 소원이야. 파이오니어에서 빈 소원이지.”
“…”
“김상현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첫 번째 소원은 심해 호텔에 가기 전에 빌었을 거야. 그 내용이 곧 나올 -”
“시작한다.”
— 찰랑!
이번에는, 상현이 때와 달리 배경이 바뀌지 않았다.
*
“어? 계속 학교 – 설마?”
“첫 번째 소원도 기숙학교에서 빌었구나.”
미로는 두 번의 소원을 모두 어린 시절에 다녔던 기숙학교에서 빌었다.
물론, 장소만 똑같을 뿐 시기는 전혀 다르다.
조금 전에 본 두 번째 소원을 빈 시기는 실제로는 ‘한빙지옥 시점’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소원이 진짜 과거, 실제로 어린 미로가 학교에 다닌 시점이다.
두 시기의 중대한 차이점.
“가인이 네가 없네.”
“아리 너도 없고. 할아버지도 없어.”
나도 없고, 가인이도 없고, 묵성이도 없다.
실제 역사에선 그 누구도 미로와 친구들을 구해주지 않았다.
한참 동안 비극과 고통으로 가득한 환영이 지나갔다.
혼돈 재해 – 산타는 광기에 찬 캐럴을 부르며 학교 내 모든 생존자를 도살했고, 미로는 정신없이 숨고 또 숨었다.
침대 밑에 숨어서 바깥의 비명을 듣는 순간.
정신없이 도주하다가 친구의 내장을 밟고 미끄러지는 순간.
검붉은 루돌프의 뿔에 받혀 가느다란 팔이 부러지는 순간.
“…”
보는 나와 가인이까지 눈살을 찌푸렸으니, 당시의 미로가 얼마나 두려웠을지 상상이 간다.
몇 번이고 꿈을 멈춰서 미로를 편하게 해주고 싶었지만, 가인이가 제지했다.
분명, 혹시 모를 추가 정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 중이겠지.
어떤 면에선 정말 냉정한 사람이니까.
두 번째 꿈이 끝날 때까지 미로는 깨어나지 못했다.
“가인아, 다 끝난 것 같지 않아?”
“아마도. 산타를 피해 도주하면서 최초의 소원을 빈 모양이네.”
“…”
“죄 없는 우리가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지? 정의롭지 않아. 세상에 질서가 있다면, 악마를 멸하고 무고한 자를 살려야 해 – 이런 느낌의 소원이었겠지?”
“… 아마도. 이미 알고 있는 산타 재해 말고는 추가 요소가 보이진 않네.”
“없을 수도 있고, 있는데 우리가 못 찾았을 수도 있고.”
“…”
“미로를 깨우자.”
심약하게 헐떡이는 소녀에게 다가가며 문득,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 고마워.”
“음?”
“네가 아니었다면 미로는 아직도 이 지옥에 갇혀있었겠지….”
가인이는 무슨 말 하냐는 듯 빙그레 웃었다.
“하하! 누가 들으면 나 혼자 구한 줄 알겠다.”
*
깨어난 미로는 꿈의 내용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미로처럼 꿈에 깊이 몰입했던 상현이 상당한 후폭풍을 겪고 있음을 고려하면, 이는 분명 미로의 특별함이다.
불변의 축복이 조화를 부렸을까?
아니면 단순히 미로의 개인적 성격 문제?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편했다.
“으앗! 왜 나만 아무것도 기억 못 해?”
“… 괜찮아. 우리가 봤으니까.”
“내 소원 뭐였어? 뭐였어?”
“…”
어색하게 웃던 가인이는 내 쪽을 슬쩍 보더니 엉뚱한 소리를 꺼냈다.
“그, 미로가 커피숍에서 했던 이야기 있잖아.”
“응?”
“… 내면의 괴담 미로와 대화하며 인류를 구하기로 마음먹었다며.”
“그랬지! 아, 커피숍의 일이 나왔어?”
“그래.”
말없이 스쳐 가는 두 사람의 시선.
나와 가인이는 한 가지 사실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미로가 가인이에게 반하는 순간’을 우리가 봤다는 사실을 미로가 알면 얼마나 부끄러워할까?
분명 최소 일주일은 요란을 떨면서 모두를 피곤하게 하겠지.
그니까 그냥 나와 가인이의 기억 속에 묻어두자.
“아리도 봤어? 커피숍 장면?”
“… 응. 소원으로 인류의 구제를 빌다니, 미로 참 대단해~!”
“아이참! 놀리지 마.”
부끄러워하는 미로를 보고 있으니 정말이지 견디기 힘들었다.
“… 가인아. 다음 꿈으로 가자.”
“그래. 다음은 -”
“승엽이!”
재밌다는 듯 외치는 미로의 목소리를 들으며 다시금 말문을 잃었다.
이번에도 낯 부끄러운 장면을 볼 것 같지 않아?
“그래. 승엽이 꿈으로 가자.”
*
「소환사의 협곡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시작부터 숨이 턱 막혔다.
가인이는 아찔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설마…! 승엽아, 아니지?”
“…”
“하하! 나도 참 무슨 생각을 -”
“시간 봐. 지금 새벽이야. 얘 지금 밤새 게임 중인 모양인데.”
“… 진짜네.”
분명 중학생 시점일 텐데 밤새 게임 중인 꼴을 보니 절로 한숨이 나와.
“아 진짜! xx 새끼들! 내가 운영하는 동안 물리지만 말라고 했잖아!”
가인이가 눈에 띄게 휘청거리기 시작했는데, 새삼 승엽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의 종말이었던 태고의 왕자나 억겁 속에서 판을 짠 알레프조차 지금의 승엽이만큼 가인이를 당황하게 하진 못했겠지.
이쯤에서 소신 발언을 하기로 했다.
“솔직히 말할게. 승엽이 소원 혹시 게임 잘하게 해달라는 거 아니야? 혹은 팀 운이 좋게 해달라?”
“… 동료를 너무 무시하지 마. 승엽이가 아무리 유치해도 -”
기다렸다는 듯, 컴퓨터 앞의 승엽이가 외쳤다.
“진짜 왜 내 팀 운만 이렇게 나쁜 거야? 왜 이렇게 운이 없냐고!”
나까지 말문을 잃은 사이, 미로가 냉소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아니라고 해봐야 방배중학교 서열 1위 같은 거겠지!”
“… 너희 둘 다 승엽이를 너무 비하하는 것 아니야?”
“승엽이를 비하하는 게 아니라 비하된 상태의 승엽이를 잘 아는 거야.”
미로의 가차 없는 평가가 나온 후, 날이 밝으며 등교 시간이 다가왔다.
밤새 게임에 빠졌는데 아침이라고 정신이 멀쩡하겠어?
당연히 승엽이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휘청거리며 등교했다.
이 과정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승엽이 부모님들을 보고 있으니 내가 다 답답했다.
“두 사람 다 아들에게 왜 이리 무른 거야?”
“…”
“회초리를 휘둘러서라도 정신 차리게 해야지!”
“아리야앙. 방금 말은 진짜 나이 든 사람 같았어.”
“미로 너도 나한테 혼날래?”
“아, 아니야….”
휘리릭 지나가는 학교생활은 딱 봐도 그리 순탄치 않아 보였다.
뭐, 체구도 작은 애가 맨날 흐리멍덩한 상태인데 교우관계가 좋으면 그게 더 이상해.
그렇다고 승엽이가 선 넘는 괴롭힘을 당했다는 건 아니다.
승엽이도 호텔에 온 후론 예전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어.
본인도 대단한 원한을 품은 적은 없다는 의미 아닐까?
수업이 다 끝날 때쯤, 승엽이의 눈빛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얘 또 게임하려는 것 아니야?”
“틀림없지.”
“우와! 진짜 팀 운 좋게 해달라고 빌었나 봐!”
“참! 호텔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애를 뽑은 거야?”
“… 둘 다 적당히 해. 승엽이가 들을까 무섭다.”
가인이는 이미 반쯤 내려놓은 표정이었는데, 이 시점에선 모두가 내심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분명 게임하다가 ‘팀 운 좋게 해주세요.’ 따위의 소원이나 빌었겠지!
이 정도로 모두가 마음을 놓으려는 순간.
– 꿀꺽!
승엽이가 침을 삼키며 누군가를 몰래 따라가기 시작했다.
“… 이건 또 뭐야?”
“누구를 쫓아가는 것 같은 – 어머나 세상에.”
곧,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소년이 제법 귀여운 느낌의 여자애를 불렀다.
“소, 소연아!”
으아악!
여기서 부끄러운 장면이 더 남았다고!
“아 제발!”
“가인앙! 승엽이 당장 깨워!”
“그냥 깨우자. 이건 승엽이의 인권을 위해서야.”
언제나 그렇듯, 가인이는 이런 순간에선 한없이 냉정했다.
“안돼. 숨겨진 정보가 있을지도 -”
“넌 진짜 사람도 아니야.”
오